§ 나는 될놈이다 592화
스타우를 보내려는 계획은 결국 실패했다.
김태산은 가기 전에 우르크 지역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왔다.
현재 우르크 지역에 대해 가장 잘 아는 플레이어 중 하나가 태현이었으니까!
하나하나 대답해 주던 태현은 귀찮아져서 말했다.
“그냥 돈 주고 정보 사시죠? 파는 놈들 많잖아요.”
“인마. 너한테 물은 다음에 그것도 살 거야. 다 일장일단이 있는 법인데…….”
그렇게 말하면서 김태산은 사이트를 켜 판온 정보 판매자 리스트를 훑어보았다.
태현은 그 리스트 가장 위에서 <파워 워리어>를 본 것 같았지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꾹-
김태산은 예약 구매 신청을 눌렀다.
“뭐 더 주의할 건 없겠지?”
“아. 거기서 잘 지내시려면 아키서스 교단 믿으시는 게 좋으실 것 같은데요.”
“뭐? 크하하하!”
김태산은 태현이 농담하는 줄 알았다.
“인마. 나랑 내 친구들이 아키서스 교단 믿게 하려면 ‘아버지 부탁드립니다’하고 말해라. 그러면 생각해 볼게.”
“아니, 믿으시는 게 좋을 텐데.”
“됐다. 요즘 파이토스 교단이 유행이라던데.”
“……?”
“왜?”
“아무것도 아닙니다.”
김태산은 정말 몰랐다.
우르크 지역에 그렇게 아키서스 교단이 흥하고 있을 줄은!
* * *
“정말 하기 싫다.”
“농담이지? 이렇게 신나는……. 미안.”
케인은 태현이 농담하는 줄 알았다가 눈을 마주치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지금 그들의 숙소에는 <혼자 사는 인간들> 촬영팀이 와 있었던 것이다.
“이 시간에 게임을 하고 연습을 해야지……. 투덜투덜……. 다른 팀들은 날 노린다고 공개 발표를 하는데 케인 같은 놈은 방송 나간다고 좋아나 하고…….”
“…….”
분명 혼자 중얼거리는 건데 이상하게 케인 귀에만 쏙쏙 들어오는 중얼거림!
“아, 아니. 나도 요즘 열심히 연습하는데…….”
“연습한다고 말은 하면서 합은 안 맞추고 스킬 연습할 시간에 놀기나 하고……. 투덜투덜…….”
“야! 그냥 차라리 직접 말해!”
케인은 울컥해서 외쳤다. 저렇게 말하니까 더 괴로웠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PD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하하, 두 분 참 사이 좋으시네요.”
“이게요?!”
케인이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눈은 장식으로 두고 다니나?!
그러나 PD는 가볍게 무시하고 말했다.
“부담 가지지 마시고, 여러분들의 일상을 아주 자연스럽게 보여주시면 됩니다.”
“케인이 코 파는 것 같은 일상?”
“내, 내가 언제?!”
PD는 다시 한번 무시했다. 방송계에서 잔뼈가 굵은 PD인 만큼, 쓸데없는 말은 무시하는 재주가 있었다.
“재미는 저희가 뽑아낼 테니 여러분은 부담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게 핵심이에요! 여러분들이 뭘 하는지 궁금해하는 팬분들이 엄청 많으니 말입니다!”
열정으로 뜨겁게 타오르는 PD의 눈빛!
태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눈빛이 좀 변태 같군.’
* * *
PD는 자신이 있었다.
어떤 일상이든 간에 그걸 재미있게 만들 자신이!
<혼자 사는 인간들>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많은 걸 해줄 필요가 없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일상을 보여주면 됐다.
그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모두가 관심을 가질 만한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이다.
“좋아. 한번 봐볼까?”
PD는 손바닥을 비비면서 영상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0분 후, PD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
‘이건 정말…….’
재미가 없다!
일단 아침에 일어나면 태현이 침대에서 어슬렁어슬렁 기어 나와서 샤워를 하러 갔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체육관의 프로 선수를 두들겨 팬……. 아니, 운동 좀 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듯이, 태현의 몸매는 완벽 그 자체였다.
시청률 좀 나오겠구나! 싶었는데…….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태현이 밥을 하고 요리를 한 다음 케인을 쥐잡듯이 흔들어서 깨우고, 다른 사람들을 깨워서 밥을 먹고…….
아니, 사실 여기까지도 괜찮았다.
요리하는 남자도 잘 먹히는 소재였으니까!
그 다음부터 이 인간들은 캡슐에 들어가서 나오질 않았다.
정말 밤이 될 때까지 나오질 않는 것!
-아니, 밖에 안 나가세요?
-약속 없는데…….
-…….
-태, 태현 씨는 운동 가시지 않습니까?
-어제 갔다 왔는데요.
-그래도 또 가시죠! 체육관, 체육관 좋지 않습니까?
-여기 단지 내 시설 좋아서 거기서 운동하는데요.
-…….
‘밖에 좀 나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영상!
건질 건 초반의 멋진 숙소 소개와 태현이 옷 벗는 모습밖에 없었다.
‘이건……. 아무리 부풀리고 부풀려도 분량 절반밖에 안 되는데……. 으으으…….’
경험 많은 PD는 분량에 대한 감이 왔다.
숙소 소개, 샤워, 요리까지 해서 아무리 부풀려도 절반까지가 한계!
결국 PD는 다시 나섰다.
“여러분! 뭐라도 합시다!”
“아니, 자연스럽게 하면 된다면서요?”
“세상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밖에 나간다고요!”
“아니……. 우리는 일이 게임인데…….”
“프로게이머 분들도 몇 번 방송에 나왔는데 여러분들처럼 안 나가는 사람은 없어요!”
태현이 협조를 안 해주자 PD는 방향을 돌렸다.
“케인 씨! 뭐라도 합시다. 나갈 일 없어요? 약속은? 계획은? 친구라도 불러요! 프로게이머 친구 없나요?”
“어……. 친구 없는데요…….”
“…….”
“…….”
순간 어색한 침묵이 자리를 맴돌았다. 최상윤과 정수혁도 차마 케인을 쳐다보지 못했다.
“왜, 왜 그런 눈으로 쳐다봐?”
“아냐. 아무것도.”
사실 케인은 판온을 종종 같이하는 파이브 걸스의 하연을 부르면 됐다.
PD도 원하는 그럴듯한 장면이 나올 테니까!
그렇지만 케인은 떠올리지를 못했다.
PD가 알았다면 ‘이런 답답한 양반아!’ 하면서 가슴을 쳤을 상황!
최상윤도, 정수혁도 마땅히 떠오르질 않자 PD는 필사적으로 고민했다.
이런 기회를 그냥 날려 버릴 수는 없다.
두뇌 풀가동!
“아!!!”
“……?”
“이세연 씨 불러오죠!”
왜 이제까지 생각 못 했나 싶을 정도로 기막힌 아이디어!
PD는 스스로가 기특해서 무릎을 쳤다.
“?!?!”
물론 태현 입장에서는 기막힌 아이디어가 아니라 기가 막히는 소리였다.
* * *
“내가?”
“어.”
“왜???”
“그러게 말이야.”
“……같은 소속사니까 도와주는 거야.”
“그래…….”
뚝-
태현은 전화를 끊고 괴로워했다.
젠장, 내가 왜 이세연한테 부탁을 해야 하지!
-아니, 그냥 체육관 가겠습니다! 체육관 가서 거기 있는 선수들 다 패면 방송 분량이 나올 겁니다! 가죠! 패러 갑시다!
양성규의 체육관 선수들이 들으면 기겁할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태현!
-그것도 좋네요! 그것도 하고 이세연 씨도 부르죠!
-아니 왜! 이세연을 왜 불러요! 걔 성격 더러워서 부르면 싸운다고요!
-싸우면 더 좋죠! 태현 씨! 평생의 소원입니다! 저랑 같이 판온한다고 하셔놓고 안 하려고 도망친 것도 잊어드릴게요!
-그거 눈치채고 있었어요? 이런……
PD부터 시작해서 촬영팀 스태프 전원이 태현을 붙잡고 늘어지자 태현도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끄응……. 끄으응……. 끄으으응…….”
“아니, 이세연 오면 좋은 거지 왜 그래?”
“죽을래?”
“힝…….”
케인은 괜히 말 걸었다가 살기 넘치는 눈빛에 조용히 찌그러졌다.
최상윤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세연한테는 당한 게 많으니까 빚을 지고 싶지 않은 거겠지.”
“이세연한테 당한 게 많다고?”
케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세연이 태현한테 맺힌 게 많을 것 같은데…….
“왔다!”
“그래서, 뭘 하면 되는 건데?”
문을 열고 들어온 이세연은 주변을 빙 둘러보았다.
잘사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잘사는구나! 이런 곳을 숙소로 쓰고 있다니!
‘앗. 이거 경쟁 상대를 염탐할 기회인가? 약간 양심에 찔리는데…….’
이세연은 살짝 고민했다. 게임단 관련된 걸 지금 밝혀야 하나?
다른 상대였다면 정정당당이고 비겁이고 뭐고 신경 안 쓰고 자기 길을 갔겠지만, 태현이 상대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꼭 정정당당하게 짓밟……. 아니, 이기고 싶었던 것!
“잘 왔다…….”
“…….”
이세연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기껏 사람 불렀는데 ‘아 정말 하기 싫다’가 표정에 다 나와 있는 태현!
‘음. 그냥 말하지 말고 염탐해야겠다.’
이 자식은 잘해줄 필요가 없어!
이세연은 깔끔하게 포기하고 화사하게 웃었다.
방송용 스마일!
그러자 태현이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움찔했다.
“뭐야, 그 사악한 웃음은?”
“…….”
* * *
프로게이머들이 모이면 할 이야기는 사실 그리 많지 않았다.
그 프로게이머들 대부분이 밖에 안 나가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아니, 게임 이야기만 해도 괜찮은 거야?”
이세연은 카메라를 의식하며 작게 물었다.
아까부터 모여서 계속 판온 이야기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길드 동맹이 어쩌니, 이번에 새로 열린 해저 왕국이 어쩌니, 대회가 어쩌니…….
‘진짜 이래도 되나?’
“괜찮다잖아. 괜찮으니 저런 거겠지.”
“방송을 하면 책임감을 가져야지!”
“날 부른 사람이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거 아닐까?”
“그걸 말이라고……!”
아웅다웅하는 이세연과 태현을 보며, PD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서 분량이 나와 주는구나!
“이렇게 떠든 다음에는 뭐 하려고?”
“체육관에 가서 거기 있는 사람들을 패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
이세연은 순간 태현이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다.
얘가 대체 무슨 소리를?
“그보다 판온 이야기나 다시 해보자고. 맞다. 넌 그러고 보니 대회 준비 안 해? 어디 들어갔다고 했지?”
태현은 은근슬쩍 이세연에게 물었다.
목표는 다른 게임단의 훈련 방식!
‘요즘 깨달은 거지만, 나 혼자 잘해서는 의미가 없잖아? 케인도 끌고 가야…….’
물론 이세연은 냉정했다.
“비밀이다.”
“그게 뭐 비밀이라고……. 어차피 너 데려갈 만한 게임단은 한정되어 있지 않나? 대형 게임단 중 몇 군데겠지.”
‘대형이긴 하지…….’
지원하는 모기업 규모만 봤을 때 유성 게임단은 절대 다른 게임단에 밀리지 않았다.
“벌써 대회 준비하고 있지?”
“비밀이라니까. 흥.”
“준비하고 있는 거 맞군.”
태현이 계속 묻자 이세연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이건 사실 별로 숨길 것도 아니었으니까.
“당연하지. 지금 다들 합 맞춰서 연습하고 있잖아. 초에 있을 던전 공략 대회를 노리고…….”
“…….”
태현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저번에 던전에서 합 한 번 맞추려다가 별 이상한 일만 일어났던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뉴욕 라이온즈> 연습 영상 봤지? 길드 전용 던전을 구해서 계속해서 타임어택으로 뚫더라. 정도에 차이는 있겠지만 그게 기본이겠지.”
대형 게임단 정도면 게임 내 길드 정도는 당연히 갖고 있었다.
길드 내 사냥터나 던전은 자연스럽게 대회 대비용 연습장이 되는 형식!
“너도 그렇게 하나?”
“당연하지. 나도 내 길드가 아는 던전들이 있으니까.”
이세연은 소수 정예 길드의 길마, 그 길드만 아는 비밀 던전이 몇 개 있었다.
“빌려줄래?”
“미쳤니?”
“쳇.”
“애초에 넌 영지도 있으면서 뭘 빌려달라는 거야? 영지 근처의 던전을 돌면 되잖아.”
“으음…….”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는 점점 좋아지고 있는 영지였지만, 엄청 어려운 던전이 있지는 않았다.
물론 지금 계속해서 플레이어들이 근처에서 퀘스트를 깨고 영지에서 활동하고 있으니 나중에 추가로 발견될 수는 있겠지만, 일단 중요한 건 지금!
“남의 던전을 빌릴까…….”
“……어떻게 이야기가 거기로 흘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