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591화
인해전술!
길드 동맹의 전략은 바로 인해전술이었다.
늘어나기 시작한 길드원의 숫자가 한번 눈덩이처럼 굴러가기 시작하니,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길드 동맹에 가입했다.
그러자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의 길드원들이 덤벼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일당백의 <최강지존무쌍>의 아저씨들이라도 위협을 느낄 정도!
얼마 전부터는 아예 밖에 나가서 필드전은 하지도 않고, 오로지 성벽 안에서 수성전만 하고 있었다.
“끙…….”
김태산은 오스턴 왕국의 지도를 훑어보았다.
길드 동맹이 이렇게 잘 나갈지는 몰랐었다.
태현에게 맨날 깨지고 당하는 호구들 모임인 줄 알았는데, 한번 세력을 불리기 시작하니 정말 끝도 없이 강해지고 있었다.
오스턴 왕국의 다른 길드들을 압도하는 건 물론이고 오스턴 왕국까지 압도하고 있었다.
어떻게 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지금 떠나야 하나?’
김태산은 최근 한 가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대탈출!
오스턴 왕국에서 영지 몇 개를 잡고 엄청나게 돈을 투자한 입장.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 생각할 수 없는 발상이었다.
그렇지만 김태산은 이런 부분에서 계산이 정확했다.
-이대로 계속 가면 결국 길드 동맹한테 밀려서 있는 것도 다 빼앗길 수 있다!
어차피 다 빼앗기게 된다면 차라리 지금 있는 걸 가지고 후퇴하는 게 낫지 않을까?
최소한 NPC들과 각종 설치 아이템들은 갖고 나올 수 있을 테니까!
“……이사를 할까 생각 중인데 어떻게 생각하냐?”
풉!
태현은 먹고 있던 국밥을 잠시 뿜었다. 아니, 갑자기 웬 이사?
“이사요? 집에 뭐 문제 있어요?”
“아니. 판온 이야기인데.”
“……판온 이야기라고 먼저 말하시죠, 좀.”
“아니, 인마! 당연히 판온 이야기지 내가 집에서 왜 이사를 가?!”
“아,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정말 쓸데없는 걸로 싸우는 두 부자!
주변에서 밥 먹고 있던 손님들이 쳐다보자 둘은 빠르게 진정했다.
“근데 웬 이사요?”
“길드 동맹 놈들이 너무 세력이 커져서 안 되겠더라. 걔네 숫자가 너무 많아.”
“이야……. 세월은 못 이기신다고…….”
“…….”
김태산은 태현을 노려보았다. 이노무쉬키가…….
“리X지에서는 군주셨으면서…….”
“목소리 줄여, 인마. 그리고 그때랑 지금이랑 같냐? 시대가 다른데.”
“에이, 핑계는. 그때도 중국인들은 있었잖아요.”
“그때는 작업장 돌리던 애들이고! 걔네들은 전혀 다른 애들이잖아!”
게임 내 판도에 관심 없이 현금만 관심 있던 사람들과, 게임 내 판도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은 차원이 달랐다.
김태산은 화제를 돌렸다.
“흥. 너도 남 이야기할 때가 아닐 텐데. 걔네 더 커지면 당장 너부터 골치가 아플걸.”
“전 걔네들이랑 화해했는데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라. 퍽이나 화해가 되겠다. 그리고 꼭 길드 동맹에 있는 애들만 널 노리는 줄 아냐? 길드 동맹 아닌 놈들도 널 싫어해.”
“……?”
“……?”
태현이 ‘무슨 소리세요?’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김태산은 당황했다.
“너 몰라?”
“뭘 몰라요. 아버지가 길드 동맹한테 진 거요?”
“야, 아직 안 졌어! 그리고 그거 말하는 거 아니다. 게임단 애들 있잖아.”
김태산은 말과 동시에 인터넷 사이트를 켜서 기사 몇 개를 띄웠다.
[야심 찬 탄생, <베이징 파이터즈>……. 압도적 지원 속에 1군 팀원 선발 완료……. 목표는 ‘우승’, 주목해야 할 상대로는 ‘김태현’을 꼽아. ‘절대 방심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상대하겠다’고 밝혀…….]
[<상하이 팬더즈>의 주축 선수들과 김태현과의 악연? <상하이 팬더즈>와의 단독 인터뷰. ‘우린 김태현이 싫어요’.]
확실한 적대감!
중국 쪽 게임단들은 대부분 태현을 노린다거나, 태현을 목표로 삼는다거나, 태현한테는 절대 질 수 없다고 발표하고 있었다.
이들 중 태현에게 당한 사람들도 분명 있긴 했지만, 전체 비율로 봤을 때 당하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런데도 이렇게 대놓고 태현의 이름을 언급한다는 건…….
일종의 유행!
태현이 워낙 첫 대회 때 활약하기도 한 데다가 중국 팀에 한 짓이 있어서, 중국 쪽에서는 거의 악당 이미지였던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주목을 받아야 하는 게임단 입장에서는 ‘김태현, 우리가 쓰러뜨린다!’, ‘김태현을 상대할 방법이 있다!’ 같은 식으로 말하게 됐다.
한 게임단이 ‘김태현을 주목하고 있다’고 하면 다른 게임단은 ‘김태현을 상대할 방법을 연습하고 있다’라고 하고, 또 다른 게임단은 질 수 없으니 ‘김태현, 우리가 쓰러뜨린다!’라고 발표하고…….
‘얘네는 뭐 이런 걸로 경쟁을 하냐?’
태현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 뿐!
“기분이 어떠냐? 응?”
“<상하이 팬더즈>라는 이름이 귀엽네요.”
“……그런 거 말고!”
“아니 뭐……. 저한테 당한 놈들이 저 싫어하는 게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중국 애들이야 저 뭐 싫어할 수도 있죠. 저한테 안 당한 놈들도 저러는 건 왜 저러나 싶긴 한데 같은 친구들이 당했으니…….”
“중국 애들만 너 노리는 거 아니다.”
김태산은 다른 기사를 띄웠다. 일부러 처음에는 중국 쪽 기사만 보여줬던 것이다.
받아라, 시간차 공격!
[<뉴욕 라이온즈>, 로스터 발표, 대회 포부 밝혀……. ‘신생팀들과는 역사와 격이 다르다’.]
“얘네 너희 저격한 거 아니냐?”
“에이, 설마 스카우트 제안 거절했다고 사업하는 사람들이 저렇게 쪼잔하게 굴…… 것 같긴 하네요.”
“……너 왜 내 얼굴 보고 납득을 하지?”
“착각이겠죠.”
태현은 계속해서 기사를 읽었다.
[<보스턴 타이거즈>의 주장은 가장 주목해야 할 상대로 이세연 선수를……. ‘김태현? 아무리 김태현이라고 해도 초짜 여럿을 데리고 이길 수는 없다. 신생 팀은 김태현이 실수한 것’.]
“이야. 노골적이네.”
“화 안 나냐?”
“저 무시한 게 아니라 저 말고 다른 놈들 무시한 거라 별로 화는 안 나네요.”
“…….”
김태산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확실히 보스턴 타이거즈 주장의 지적은 그럴듯했다.
게임은 혼자 하는 게 아니고, 게다가 태현은 직접 게임단을 만들어서 대회에 참가하려고 하고 있었다.
다른 게임단들은 코치와 감독들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하는데 태현의 게임단은…….
‘음. 구체적으로 놓고 보니 구체적으로 불안해지는군.’
태현도 솔직히 슬슬 걱정되기 시작!
“넌 근데 진짜 이런 거 올라오는 거 하나도 몰랐냐?”
“굳이 기사 안 찾아보니 몰랐죠.”
“얌마. 시대는 언플의 시대야, 언플.”
“홍보의 시대겠죠……. 하다못해 PR이라고…….”
좋은 말 놔두고 언플이 뭐란 말인가.
그렇지만 언플이 좋다는 건 태현도 잘 알고 있었다. 파워 워리어 길드가 몇 번이고 활약해 주지 않았는가.
태현이 기사를 보고서 별 반응이 없자, 김태산은 재미없어졌다.
‘에이, 재미없는 놈.’
“그래서, 내가 이사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
“오스턴 왕국에서요? 최대한 버티면서 끝까지 장렬하게 싸우시는 게 어떨까요?”
“……너 지금 길드 동맹이란 나랑 손잡고 망하라고 이러는 거지?”
“네!”
“이 자식이 진짜!”
“아, 알 만한 분이 왜 물어놓고 이러세요?!”
또 한바탕 말싸움을 한 후 둘은 빠르게 진정했다. 옆 테이블의 손님들은 둘을 보더니 슬슬 거리를 벌렸다.
“이사…… 를 할 거면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그렇지?!”
태현이 동의를 하자, 김태산은 솔직히 기뻤다. 이런 판단은 믿어도 될 놈이었으니까.
“괜히 자존심 부리다가 다 잃는 사람들이 많은데, 도망칠 때는 도망쳐야죠.”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런데 어디로 도망칠지가 문제야.”
“저희 영지에 오시는 건?”
태현은 히죽히죽 웃으며 물었다. 김태산이 당연히 거절하리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미쳤냐! 네 신세를 지게!”
“세금 좀 걷으려고 했는데…….”
“…….”
“그래서, 정하셨습니까?”
“아직…….”
김태산은 우물거렸다.
그냥 이동하는 것도 아니라, NPC들과 아이템들을 다 들고 이동해서 새로 영지를 꾸릴 곳을 찾는 것이었다.
찾기 쉬울 리 없었다.
태현은 문득 생각이 나서 말했다.
“우르크 지역 어떠십니까?”
“……거긴 왕국이 없잖아, 인마!”
“왕국이 없으니까 추천하는 거죠. 왕국이 있으시면 아버지가 새로 들어가실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거기는 지형이 험해서 수비하기도 좋고, 주변에 사냥할 곳도 많으니 레벨 업 하기도 좋고, 오크 부족들도 많아서 아버지하고 아버지 친구들이 지내기 좋고…….”
오크 대족장이 그 꼴이 난 후 오크 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움직이고 있었다.
오크 종족을 고른 김태산이라면 그들을 비교적 손쉽게 영지 주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음…….”
김태산은 신음을 내며 생각에 잠겼다. 우르크 지역은 생각도 안 해본 것이다.
보통 플레이어들이 말하는 영지라는 건, 멀쩡한 왕국에 있는 성, 도시, 요새, 마을 같은 걸 말하는 거였다.
우르크 지역처럼 왕국도 없고 야생 그 자체인 곳에 영지를 만들려는 사람은 없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니까!
“……너무 어렵지 않나?”
“뭐 어렵기야 하겠는데 오스턴 왕국에서 튀려면 거기밖에 없잖아요. 남쪽은 아탈리 왕국이고 서쪽은 에랑스 왕국인데 거기 갔다가는 당장 왕국군 올 거고. 북쪽은 바다니까 동쪽인 우르크로 가야죠. 그리고 어차피 영지 만들고 꾸미는 건 다 골드로 해결되는데 아버지는 현질도 물 쏟아붓듯이 하시니…….”
“……꼭 그런 표현을 써야겠냐?”
말은 그렇게 했지만 김태산은 태현의 제안에 끌리는 걸 느꼈다.
‘우르크라?’
처음부터 다시 쌓아 올려야 하니 어렵기는 하겠지만, 다른 플레이어들의 방해 없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게 솔깃했다.
게다가 우르크 지역은 그 많은 오크들이 있는 곳 아닌가.
김태산은 눈을 감고, 수많은 오크 전사 NPC들을 이끌고 길드 동맹과 맞붙는 모습을 상상했다.
‘좋군!’
“좋아! 우르크로 가서 오크들을 포섭해야지.”
“아, 거기 오크들 원래 살던 요새 쪽으로는 가지 마세요. 미친놈 있으니까.”
“…….”
“그리고 높은 산 쪽으로도 가지 마세요. 비행형 몬스터 있는데 거기 지형이 안 좋아서 한 대 잘못 맞으면 싸우기도 전에 떨어져서 죽으니까.”
“…….”
“거기에 가끔 가다가 땅굴 같은 거 보이는데 거기도 들어가시면 안 되는…….”
“아예 그냥 가지 말라고 해라!”
기껏 추천해놓은 다음에 단점을 말하는 태현이었다.
* * *
“우르크 지역으로 가신다고요?”
잠깐 나온 주현영이 둘의 대화를 듣고 흥미를 보였다.
“그러려고 하는데 이놈의 자식이 사기를 쳐서…….”
“거 말씀 이상하게 하시네. 진실만 말했을 뿐인데.”
“우르크 지역으로 가시는 거면 영지나 길드에 있던 플레이어들도 다 같이 가시는 건가요? 그런 거라면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우르크 지역 쪽 요리에 흥미가 있어서…….”
“……?!”
“아니, 왜 저런 우르크 지역에 가서 고생을? 에랑스 왕국에서 일하고 있지 않으셨나요?”
“야…….”
“계속 똑같은 것만 하니까 성장도 더디고 좀 질려서요. 요즘은 왕도 잘 안 보이고요.”
“물론 환영입니다. 실력 좋은 요리사는 언제든지 좋죠. 저희 길드 요리사들도 많이 배우고 싶어 할…….”
김태산이 신이 나서 떠드는 동안 태현은 생각했다.
‘내 영지에는 스타우 놈이 요리하는데 왜 아버지 영지에는 주현영이…….’
어떻게든 방해하고 싶다!
“아버지. 우르크 지역을 잘 아는 요리사 NPC 한 명 보내드릴까요?”
“그거 좋은 생각……. 아니, 됐다.”
순간 넘어갈 뻔한 김태산은 정신을 차렸다.
분명 무언가 함정이 있다!
“쳇.”
“너 방금 혀 찼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