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588화
안 그래도 탄탄한 장비에 고급 낚시 스킬들까지 더해지자, 유 회장은 거리낄 게 없었다.
[어마어마한 양의 물고기를 낚았습니다!]
[칭호: 아란티스 왕국 물고기들의 학살자를 얻었습니다.]
“…….”
유 회장은 눈을 깜박거렸다. 이게 무슨 기분 나쁜 칭호?
효과는 분명 좋은 칭호인데…….
‘음. 낚시나 계속해야지.’
* * *
유 회장이야 유유자적하고 있었지만, 아란티스 왕국 내에서는 치열한 혈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바다 위에서도 싸웠는데 배를 타고 안으로 들어왔다고 싸우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아란티스 왕국은 중앙 대륙의 왕국과 다른 점이 한 가지 있었다.
“경비병님! 도와주세요! 저놈들이 절 공격해요!”
“야! 치사하게!”
싸우다가 밀린 플레이어가 도망쳐서 어인 전사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쫓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욕했다.
치사하게 싸우다가 밀리니까 NPC를 부르다니!
보통 왕국 NPC들은 왕국 내에서 싸우는 걸 막았다. 반항할 경우 공격당하거나 감옥에 갇히거나 쫓겨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힘내라!”
“???”
“힘내라, 인간!”
[아란티스 왕국 안에서는 플레이어들끼리 싸워도 페널티를 입지 않습니다.]
[푸른 꼬리 부족 어인 전사가 당신을 응원합니다.]
“…….”
콰콰콰쾅!
아란티스 왕국은 점점 무법지대가 되어가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은 각자 타고 온 배를 기지 삼아서 싸우기 시작했다.
일단 왕국 안에만 들어오면 죽어도 왕국 안에서 리스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왕관을 찾아서 아란티스 왕국의 새로운 왕이 되겠다고 찾아왔지만, 플레이어 중 일부는 점점 그 목적을 잊고 싸우는 데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일단 살고 보자! 아니, 적을 이기고 보자!
“나는 왕관을 찾으러 가는 거예요!”
“시끄럽다! 죽어라!”
“으아아아! 여기 진짜 미쳤어!”
탐험가 플레이어 한 명은 파티 전체가 그를 쫓아오자 기겁해서 밖으로 도망쳤다.
아란티스 왕국에서 떠나면 바다 위로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첨벙!
“앗. 사람이다.”
“한 명인데? 배도 없어 보이고. 그냥 잠깐 나온 거 아닐까?”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탐험가 플레이어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심심해서 수영 좀 하러 나온 걸까?
그런 의문을 플레이어는 깔끔하게 날려주었다.
“살려줘요!”
“앗! 고객님이시다!”
“밧줄 갖고 와!”
후다닥 움직이는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재빨리 밧줄을 던진 길드원들은 손바닥을 비비며 기대 어린 눈빛을 보냈다.
-과연 얼마나 나올까?
첨벙, 첨벙, 첨벙!
“……!”
“어딜 도망가!”
“크흐흐…… 피를 내놔라!”
탐험가를 쫓아온 파티원들!
한번 싸운 이상 끝을 봐야 했다. 그들의 이름이 시뻘겋게 빛나는 걸 본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기겁했다.
“어우, 뭐야. 저것들. PVP를 얼마나 했길래 저래?”
“완전 연쇄살인마네, 연쇄살인마. 사이코패스일지도 몰라.”
“눈빛 봐 눈빛. 저게 사람의 눈빛이야?”
“…….”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떠드는 소리는 쫓아온 파티원에게도 그대로 들렸다.
그들은 사납게 외쳤다.
“내놔!”
“뭘? 골드를? 헉. 절대 못 줘!”
“……골드 말고! 지금 올라간 그놈!”
배 위로 올라간 탐험가 플레이어는 기겁해서 고개를 흔들었다.
내려가면 바로 사망할 게 분명했던 것이다.
길드원들은 궁금해져서 물었다.
“뭔 짓을 했길래 저렇게 쫓아오는 거지?”
“아니, 그냥 마을 돌아다니면서 정보 모으고, 혹시 왕관 관련해서 정보 얻은 거 있냐고 물었을 뿐인데…….”
탐험가 플레이어는 정말 억울했다.
그는 PVP에 관심 없이 정말 퀘스트를 깨기 위해 왔던 것이다.
그 말을 들은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놈들이 아주 나쁜 놈들이네.”
“맞아! 선량한 일반인을 공격하다니! 너희 그러면 못 써!”
“……죽고 싶냐?!”
어디서 레벨 100도 안 되는 것 같은 플레이어들이 배 위에서 약을 올리자 파티원들은 분노했다.
“당장 안 내놓으면 너희도 공격한다!”
“해봐! 인마! 우리가 누군지 알아?”
“너희가 누군데?”
“<파워 워리어>다!”
“<파워 워리어>면……. 별거 아닌 놈들만 모인 길드잖아?”
날카롭게 가슴에 박히는 말!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반박할 수가 없었다.
“크윽!”
“반박할 수가 없어……!”
“치사하게 사실만 가지고 말하다니……. 그렇지만 우리는 다른 게 있지!”
“……?”
척척척-
갑자기 갑판 위에서 고개를 내미는 해적 전사들과 구출된 플레이어들!
그들은 빤히 파티원들을 내려다보았다. 수십 명이 넘는 숫자에 파티원들은 기가 죽었다.
떼거리로 다닌다고 듣긴 했는데 진짜 떼거리로 다니잖아!?
“…….”
“다시 말해봐!”
“아……. 아니. 그놈은 그냥 가져. 우리는 갈 테니까.”
바로 분노조절이 된 파티원들은 다시 왕국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길드원들은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내놔!”
아까 파티원들이 했던 소리를 그대로 돌려주는 그들!
“뭐…… 뭐를?”
“골드!”
“…….”
그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유 회장은 여전히 낚시에 집중했다.
“저쪽은 언제나 시끄럽군. 좀 조용히……. 응?”
[<아란티스 왕이 키우던 애완 물고기>를 낚았습니다.]
[아름답고 똑똑한 이 물고기는 대륙의 모든 왕실에서 갖고 싶어 할 것입니다. 살려서 가져갈 경우 높은 보상을…….]
번쩍번쩍!
황금빛으로 빛나는 물고기는 딱 봐도 비싸 보였다.
그러나 유 회장은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주머니칼로 물고기의 숨통을 끊었다.
푹푹!
‘해체 스킬 올려야지.’
보상이고 뭐고 돈 많은 유 회장에게는 필요 없었다.
해체 스킬을 올려서 더 쾌적한 사냥을 하겠다는 마음뿐!
[<아란티스 왕이 키우던 애완 물고기>를 해체했습니다.]
[해체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가차 없는 손속으로 칭호: 냉정한 낚시꾼을 얻습니다.]
[…….]
[<아란티스 왕이 키우던 애완 물고기의 살점>을 얻었습니다.]
[<아란티스 왕이 키우던 애완 물고기의 아가미>를…….]
[<아란티스 왕이 숨겨 놓은 편지>를 얻었습니다.]
“음?”
유 회장은 꼬깃꼬깃한 편지를 펴서 읽었다.
<이제 다 틀렸다! 놈은 바다 여신의 힘을 빌려 이 왕국으로 공격해 오고 있다.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놈에게 이 왕관을 넘겨줄 수는 없다! <아란티스 왕국의 왕관>은 절대 해적 놈 따위에게는 줄 수 없으니 말이다! 먼 훗날 이 편지를 발견한다면 <아란티스 왕국의 왕관>을 찾아 왕국의 원수를 갚아다오.>
[퀘스트 정보가 추가되었습니다.]
<잊혀진 아란티스 왕국의 왕관-아란티스 왕국의 국왕 퀘스트>
사라진 왕관의 위치는 국왕이 키우던 애완 물고기의 뱃속에 들어 있었다.
해적왕에게 습격당해 가라앉은 아란티스 왕국의 원한을 풀기 위해서는 왕관의 위치를 찾아 정당한 왕이 되어야 한다.
편지에 나온 위치로 찾아가 왕관을 얻어내라!
보상: 아란티스 왕국의 국왕.
판온 역사에 관심 많은 플레이어들이 들었다면 펄쩍 뛰었을 정보였지만, 유 회장은 그가 들은 정보가 얼마나 대단한 정보인지 알지 못했다.
그냥 ‘해적한테 습격당해서 왕국이 멸망하다니, 거 참 잘못 걸렸구나’ 정도?
‘우리 회사도 예전에 해적 놈들 때문에 피를 본 적이 있었지…….’
아무도 공감 못 할 생각을 하면서 유 회장은 편지를 집어넣었다.
[아무도 잡아내지 못한 물고기를 행운과 끈기로 낚아 올리는 데 성공합니다!]
[<행운의 신에게 축복받는 낚시꾼>으로 전직할 수 있습니다.]
<영웅 직업-행운의 신에게 축복받는 낚시꾼 전직 퀘스트>
행운을 위해서는 끈기가 있어야 한다.
당신은 아무도 잡아내지 못한 물고기를 잡아냄으로써 그것을 증명해 보였다.
당신이 믿고 있는 신도 거기에 감탄해 당신을 전직시켜주려 한다.
보상: 행운의 신에게 축복받는 낚시꾼.
‘……!’
유 회장은 깜짝 놀라 멈칫했다. 뭔지도 모르는 왕관보다 더 좋은 낚시꾼으로 전직시켜준다는 지금 퀘스트가 훨씬 더 중요했다.
<세월을 낚는 낚시꾼>도 영웅 직업에 밝혀진 낚시꾼 직업 중에는 손꼽히는 직업이었는데, 여기서 더 좋은 걸로 전직한다고?
물론 전직 퀘스트는 무조건 더 좋은 직업으로 전직하는 건 아니었지만, 게임 경험이 적은 유 회장은 무심코 더 좋다고만 생각했다.
행운의 신이 누구인지 바로 떠올리지 못한 채!
-수락! 수락! 잠깐, 행운의 신이면…….
[<행운의 신에게 축복받는 낚시꾼>으로 전직했습니다.]
[행운이 크게 오릅니다.]
[스킬 <행운의 미끼>…….]
[…….]
[아키서스 교단 내 공적치 포인트가 쌓입니다.]
“…….”
아키서스 교단 내 공적치 포인트가 쌓였을 때 유 회장은 깨달았다.
행운의 신이 누구겠는가!
‘후…….’
* * *
“어? 왜 교단 명성이랑 세력이 오르지?”
“방금 사기 친 거 때문에 오른 거에?”
이다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진짜 그런가? 아니, 아닌 것 같은데…….”
태현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
정말로 그런 이유로 올라도 이상하지 않은 교단이기 때문!
어쨌든 파이토스 교단에서 일 처리도 끝냈으니 다른 교단을 돌아야 했다.
먼저 타이란 교단!
“<카르바노그의 창>은 파이토스 교단에 바쳤습니다!”
“뭐라?!”
“파이토스 교단 후고 사제가 ‘우리 교단만큼 믿을 수 있는 교단은 없지. 다른 교단 놈들은 모두 머저리 같은 놈들이니까. 날 믿고 바치면 내가 김태현 백작은 아주 잘 봐주지 크헤헤’라고 말했습니다!”
“이, 이, 이 빌어먹을 놈이……! 같이 관리하기로 약속해놓고 감히?!”
타이란 교단의 고위 사제는 매우 분노했다. 옆에 있던 다른 사제들이 속삭이며 말했다.
“그런데 사제님, 저 말을 믿을 수 있습니까?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이라면 아주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아키서스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
화술 스킬 버프에 아키서스의 이름까지 걸자 아무도 태현을 의심하지 않았다.
태현은 그런 식으로 야타 교단에 가서 똑같이 처리했다.
“파이토스 교단 후고 사제가 ‘야타 교단 놈들은 무식해서 냄새가 난다’고 말했습니다!”
“이, 이, 이, 무식한 갑옷이나 입고 다니는 개자식들이……!”
[악명이 오릅니다.]
[신성이 오릅니다.]
[…….]
‘후, 이제 데메르 교단만 남았군.’
데메르 교단은 다른 교단과 달리 태현에게 친절하게 대해준 교단이었다.
그렇지만 이미 시작한 일!
한 교단만 빼놓으면 너무 억울하지 않겠는가!
“오셨군요, 김태현 백작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다리고 있었다니, 이게 무슨 소리?
“혹시 <카르바노그의 창>을…….”
“예? 아, 그 성물 말입니까? 저희 교단에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다른 교단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알아서 해주시겠지요.”
“…….”
사기를 치려던 태현은 머쓱해져서 멈췄다.
‘어라? 그러면 왜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
“하론 사제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번에 김태현 백작님과 같이 세운 공으로 교단에서 위치가 많이 올라가셨지요. 하론 사제님께서 얼마나 김태현 백작님 칭찬을 많이 하셨는지…….”
“그거 잘됐습니다.”
“하하. 다른 교단 사람들은 아키서스 교단이 수상쩍고 이상한 짓을 한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저는 믿지 않습니다. 백작님. 그건 다 음해겠죠?”
“음, 그렇죠.”
“그럴 줄 알았습니다! 사디크 교단같이 나쁜 놈들이 퍼뜨리는 소문이 분명해요!”
“…….”
이쯤 되자 슬슬 양심이 찔렸다. 그러나 사제는 멈추지 않았다.
“백작님 같은 영웅이 그런 짓을 하고 다닐 리 없지 않습니까?”
순진무구하고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는 데메르 교단 사제!
태현은 주현영 같은 사람을 만날 때 느끼는 기분을 느꼈다.
‘크윽……. 눈부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