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582화
축 늘어진 케인의 어깨.
최상윤은 황급히 케인을 달랬다.
“그, 그래도 앞으로 퀘스트 깨다 보면 좋은 일 있을 거야.”
“그렇지?”
그렇게 떠들던 둘. 그사이 도시 NPC들이 지나가면서 케인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았다.
“힉! 괴물이야! 도망쳐!”
“…….”
케인의 어깨가 한층 더 축 늘어졌다.
‘악마의 피 저주를 해결하든가 해야지…….’
* * *
신전 거리.
모라 시의 자랑거리 중 하나였다.
중앙 대륙의 유명한 교단들은 여기에 으리으리하고 번쩍번쩍한 신전 건물들을 지어 놓았다.
플레이어들은 원하는 신전에 가서 교단에 가입하고 퀘스트를 깨면 됐다.
태현은 입맛을 다시며 신전 건물들을 훑어보았다.
‘영지에 있는 아키서스 교단 본 신전보다 더 좋네…….’
잘나가는 대륙의 교단들이 신전을 대충 짓지는 않았다.
유명한 드워프 건축가 NPC들을 불러서 건설을 맡긴 것이다.
현재 플레이어들이 만드는 수준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의 건축물!
[타이란 교단의 최고급 신전 건물을 보았습니다. 신성이…….]
[야타 교단의…….]
[파이토스 교단의…….]
경쟁 교단이 이렇게 잘나가는 걸 보니 역시 배가 아팠다.
[카르바노그가 가까이 다가가기 싫어합니다.]
카르바노그의 성물을 자기들 신전에 놓으려고 한 탓에, 카르바노그의 메시지창이 떴다.
“신전 건물 구경하는 거냐?”
“어.”
케인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태현은 주변을 훑어보았다.
거대한 신전 건물 뒤뜰에는 성기사들을 위한 훈련장까지 있었다.
말이 훈련장이지 거의 경기장처럼 넓은 건물이었다.
와글와글-
신전 근처에는 초보자부터 시작해서 고렙 플레이어까지 다양하게 있었다.
교단 퀘스트는 초보자든 고렙 플레이어든 모두가 좋아하는 퀘스트였다.
각자 수준에 맞는 보상이 나오는 퀘스트!
“아. 진짜. 훈련장 2단계 아직도 못 깼어. 파이토스 교단 난이도 너무 높다니까.”
“너 그거 아직도 깨려고 하고 있냐? 그거 안 깨도 된다니까. 그냥 다른 퀘스트 깨도 돼. 깨는 놈이 이상한 거야.”
“그래도 주는 건데 받아야지.”
“야, 그거 받아봤자 스킬 별로 쓸모도 없대. 전투 스킬 다른 데에서 많이 주니까 그거나 받자. 내 생각에 이건 밸런스를 잘못 맞췄어.”
“……?”
지나가던 플레이어들의 대화를 엿들은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게 무슨 소리지?”
“아마 파이토스 교단 성기사 훈련장 이야기일 걸요? 거기 층 깰 때마다 스킬 보상 나오거든요.”
있는 건 토끼하고 사냥꾼들밖에 없는 곳에서 시작한 태현에게는 거리가 먼 이야기!
초보자들에 대한 배려가 넘치는 곳들은 막 전직한 성기사나 사제를 위해 훈련장과 훈련용 퀘스트를 마련해 놓았다.
훈련장으로 들어가 장애물들을 통과하면 보상으로 이런저런 스킬들을 주는 것이다.
문제는 난이도!
막 전직한 플레이어들에게 ‘깨고 보상 받아가세요’ 하고 만들었는데, 정작 난이도가 높아서 깨기 힘들다니 본말전도였다.
그래서 플레이어들이 투덜거리는 것이었다.
1단계 훈련장은 어찌어찌 깼는데, 2단계 훈련장은 난이도가 확 뛰고, 다른 사람 말을 들어보니 3단계는 그보다 더 심각하고…….
여기 훈련장은 공개된 지 오래여서 관련 정보나 공략도 엄청나게 많았다.
그런데도 이 정도 난이도!
공략을 안다고 달라지는 난이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얻는 스킬이라고 해봤자 평범한 교단 스킬 몇 개!
다들 포기하고 바로 퀘스트로 넘어가는 이유가 있었다.
“……!”
설명을 들은 태현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러면 훈련장만 깨면 스킬 보상 주는 건가?”
“네. 그렇죠?”
“시간도 별로 안 걸리겠네. 나 잠깐 갔다 올게.”
“……???”
호다닥 달려가려는 태현.
다른 사람들은 순간 멈칫했다가 제정신을 차리고 태현을 붙잡았다.
“왜 잡아?”
“아, 아니. 아키서스 교단인데 다른 교단 들어가면 어떡해요!”
“왜 안 되는데?”
“어…….”
“그야…….”
“교단 페널티를 받으니까?”
이미 한 교단에 가입한 상태에서, 다른 교단으로 갈아타면 예전 교단은 매우 싫어했다.
공적치 포인트가 날아가는 건 물론이고 친밀도도 팍팍 깎였다.
“난 안 받아.”
“…….”
그러나 태현에게는 다른 세상 이야기!
이미 사디크 교단도 받아들이고 있는데 다른 교단 훈련장 들어가서 스킬 좀 받는다고 뭐 달라지겠는가.
“파이토스 교단에서 싫어하지 않을까?”
“괜찮아.”
“무슨 방법이 있는 거야?”
“아니. 걔네는 내가 이거 안 해도 싫어하거든. 그러니까 상관없지.”
“…….”
누군가가 널 이유 없이 싫어한다면 그 이유를 만들어줘라!
태현은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다.
“입구는 어떻게 통과하게?!”
“후. 뒤에서 보고나 있어라.”
‘진짜 되나?’
‘아니, 아무리 김태현이어도 이건 좀…….’
일행들은 태현의 뒷모습을 보며 조마조마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입구에서 쫓겨날 것 같았던 것이다.
-…….
-…….
입구에서 성기사 교관과 만나서 떠드는 태현. 케인은 그걸 초조하게 쳐다보았다.
‘설마 문제 생겨서 튀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기껏 왔는데…… 도망치려면 어느 길로 도망쳐야 하나…….’
-들어가도록!
-감사합니다.
“?!?!?!”
최고급 화술 스킬을 얻은 태현에게 이런 입구는 자기 집 안방 문이나 마찬가지였다.
* * *
[파이토스 교단 성기사들을 위한 훈련장에 들어왔습니다. 당신이 아키서스 교단의 사람이라는 게 발각될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경고 메시지는 가볍게 무시하고, 태현은 안으로 들어섰다.
[레벨이 1로 고정됩니다.]
[각 스탯이 10으로 강제로 고정됩니다.]
[안에서는 레벨 업이 불가능합니다.]
[…….]
‘아. 이런 식이군.’
태현은 오랜 경험으로 이 훈련장이 어떤 시스템인지 깨달았다.
스탯, 레벨, 아이템 보정 같은 건 하나도 받지 못하고, 오로지 컨트롤만으로 깨야 하는 곳!
판온에서 이런 곳은 은근히 있었다.
‘컨트롤 안 좋은 사람들에게는 지옥이겠군.’
정수혁 같은 플레이어가 여기 온다면 피눈물을 흘리며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공략을 외우고 외워도 컨트롤이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었으니까.
스킬과 스탯, 레벨이 있다면 달려드는 수십 명의 적도 손쉽게 쓰러뜨릴 수 있었지만, 그런 게 하나도 없다면 세 명만 와도 손발이 어지러워지는 게 사람이었다.
[파이토스 성기사 훈련용 허수아비가 나타납니다.]
덜컹!
훈련장 바닥에서 허수아비가 나오더니 칼과 방패를 들었다.
[고급 기계공학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파이토스 성기사 훈련용 허수아비> 제작법을 완벽하게 터득합니다.]
[신성 대장장이 기술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파이토스 성기사 훈련용 허수아비>를 개조해 <아키서스 성기사 훈련용 허수아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아키서스 성기사 훈련용 허수아비>를 설치하면 성기사들의 훈련도가 올라갑니다.]
“……!”
생각지도 못한 보너스에 태현은 깜짝 놀랐다.
이런 선물까지 주다니!
‘파이토스 교단, 사실 좋은 교단이었군!’
파이토스 교단 측에서 안다면 ‘뭐 저런 놈이 교황이냐’ 하고 난리를 쳤겠지만, 지금 설마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이 가면으로 얼굴을 바꾸고 훈련장에 침입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카르바노그가 당신을 응원합니다!]
카르바노그의 메시지창 응원을 받으며, 태현은 허수아비들을 하나씩 체크하기 시작했다.
‘좋아. 좋아.’
쉭!
태현이 다가오지 않자 허수아비들이 먼저 덤비기 시작했다.
기본으로 준 칼과 방패. 태현은 방패를 앞으로 집어 던졌다.
퍽!
그리고 달려들어서 칼로 급소 공격!
[정확하게 목을 노렸습니다. 추가 데미지가 들어갑니다.]
[정확하게 심장을 노렸습니다. 추가 데미지가…….]
붕, 붕붕-
매섭게 반격이 들어왔지만 태현은 이미 허수아비의 동작을 읽고 있었다.
방패를 버린 이유는 하나였다.
어차피 피할 자신이 있었으니 공격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끼익, 끼익!
허수아비 하나와 싸우고 있자, 다른 허수아비들이 점점 몰려오기 시작했다.
보통 플레이어라면 뒤로 물러서야 하는 상황.
그러나 태현은 물러서지 않았다.
앞으로, 앞으로.
더 앞으로!
얼굴로 들어오는 공격을 고개를 꺾어서 피하고, 옆구리를 베는 공격은 재빨리 한 걸음 뛰어서 피했다.
1㎝의 묘기!
판온 2에서는 압도적인 행운 스탯 덕분에 잘 드러나지 않았던, 판온 1에서 태현이 자주 보여주던 컨트롤이 훈련장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는 게 아쉬울 정도!
탁-
[허수아비들을 전부 쓰러뜨렸습니다. 1단계 훈련장을 통과했습니다.]
[보상으로 <망치 던지기> 스킬을 받았습니다.]
<망치 던지기>
파이토스의 힘이 담긴 망치를 불러내 던집니다.
평범한 중거리용 스킬!
다른 플레이어들이 고생하면서 깨지 않으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러나 태현은 만족했다. 스킬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으니까.
‘좋아. 시간도 아낄 겸 빨리 다음 훈련장으로 가야겠군.’
* * *
“이야…… 이건 확실히…….”
태현은 감탄했다. 사람들이 왜 욕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2단계 훈련장도 1단계와 비슷했다. 허수아비들이 나오고, 그 허수아비들을 지나쳐 반대편으로 통과하면 됐다.
달라진 건 숫자와 질!
더 강해진 허수아비들이 더 많이 나온다.
단순했지만 확실한 난이도 상승이었다.
-2단계 훈련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일단 방패 쓰는 것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방패가 공략의 핵심이거든요. 허수아비의 공격을 피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워낙 숫자가 많아서, 처음에는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싶어도 나중에 가면 포위되어서 무너집니다. 그냥 처음부터 최대한 방패로 막으면서 밀고 가야 합니다. 훈련장 보면 포위 안 될 만한 좁은 길들이 있는데, 거기로 들어가서 방패로…….
2단계 훈련장은 깬 사람이 그래도 꽤 있었다. 당연히 그런 사람들이 올린 공략도 있었다.
방패 위주로, 최대한 좁은 곳에서 싸우는 공략 방식!
그렇지만 태현은 공략을 읽지 않았다.
‘다섯 대. 다섯 대 정도면 쓰러지나. 여기 있는 놈을 치면 뒤에 하나, 우측 상단에 두 놈이 다가올 테고…… 속도를 봤을 때 대충 5초인가. 5초 안에 빠르게 두들겨서 눕히면…… 되긴 하겠군. 좋아. 간다!’
1초 만에 끝난 계산!
태현은 좁은 곳이 아닌 넓은 곳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방패를 쓸 시간에 공격을 더 넣었다.
‘넓은 곳은 허수아비들이 모이려면 더 시간이 걸린다. 그걸 이용하면 되는 거야!’
[허수아비들을 전부 쓰러뜨렸습니다. 2단계 훈련장을 통과했습니다.]
[보상으로 <망치 내려치기> 스킬을 받았습니다.]
<망치 내려치기>
파이토스의 힘이 담긴 망치를 불러내 내려칩니다.
‘오?’
이것도 평범한 스킬이었지만, 광역기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성기사들을 짜증 나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조준을 하지 않고 대충 바닥에다가 쾅쾅 광역기 스킬을 내려찍으면 데미지가 들어온다는 점이었다.
HP도 높은 놈들이 스킬도 짜증 나는 것!
그런 스킬을 얻었으니 태현은 충분히 만족했다.
‘탈락할 때까지 계속 가봐야겠다.’
* * *
“……이건 깨라고 만든 건가?”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3단계 훈련장은 머리를 굴려 봐도 허수아비를 다 잡고 갈 수가 없어 보였다.
전사 허수아비뿐만 아니라 저 높은 곳에서 활을 쏘아대는 궁수 허수아비까지 있었다.
-3단계부터는 다 잡을 생각 하면 안 됩니다. 그냥 최대한 피해서 반대쪽으로 이동하는 게 정석입니다.
열 손가락에 꼽히는 정도지만, 3단계도 깬 사람이 몇 명 있기는 했다.
그들의 공략법은 거의 똑같았다.
-최대한 싸움을 피해 통과해라!
그렇지만 태현은 싸움을 피해 통과할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공략을 읽지 않았기에 그냥 통과해도 된다는 걸 모르는 것!
‘다른 놈들이 깼으면 나도 깰 수 있겠지.’
태현은 근거 있는 자신감을 가지고 어떻게 깨야 할지 머리를 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