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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578화 (578/1,826)

§ 나는 될놈이다 578화

“이 사람은 부끄러울 뿐이야. 뒤늦게 와서 이렇게 입만 놀리다니!”

“당연한 말을…….”

“응?”

“아차. 와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 마음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순간 튀어나온 본심을 수습하고, 태현은 브랑송을 칭찬했다.

일단 그를 좋아해 주는 귀족을 구박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앞으로 오래오래 친하게 지내자!

[브랑송이 당신을 좋아합니다.]

[친밀도가 크게 오릅니다.]

“국왕 전하께 오늘 있었던 일들을 꼭 말씀드리겠네. 김태현 백작의 영웅적인 활약도!”

“하하. 무슨 말씀을.”

“아니야! 내가 꼭 말해야겠어!”

“꼭 그러셔야겠다면 최대한 길고 자세하게 말씀해 주시지요.”

“그, 그러지.”

촤아아악-

“응?”

태현은 멀리서 또 나타난 배를 보고 의아해했다.

“저건 제독님 함대입니까?”

“뭐라고? 내 함대가…… 음? 저건 내 배가 아닌데.”

멀리서 나타난 배 한 척. 다행히 함대가 아니라서 두렵거나 하지는 않았다.

“저 깃발은…… 파이토스 교단의 깃발이군!”

파이토스 교단.

망치와 성기사의 신인 파이토스를 섬기는 교단이었다.

대륙에서 나름 잘 나가는 교단 중 하나였고, 에랑스, 에스파, 덩글랜드, 오스턴…… 에는 없고, 아탈리 왕국 등등 어지간한 나라에 다 신전이 있는 교단이었다.

태현은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 교단의 NPC가 나타난 게 좋은 징조 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배가 해안가에 멈춰 서고, 파이토스 교단 고위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내렸다.

그들은 내리자마자 고함을 질렀다.

“아니, 아니, 아니…… 이런 사악한! 저 배에서 사악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런 걸 갖고 있다니. 역시 김태현 백작은…….”

“네? 이거 해적선에서 건진 건데요.”

“그리고 김태현 백작 거 아닌데요. 우리 건데요.”

플레이어들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태현이 그들에게 나눠준다고 해서 싱글벙글하고 있었는데 웬 성기사, 사제들이 와서 훼방이란 말인가.

“그런 걸 받으면 안 돼!”

“아, 됐거든요. 저 파이토스 안 믿거든요.”

“어디서 이래라 저래라야? 저리 안 가?”

“이, 이놈들……!”

플레이어들의 단체 무시!

자기가 믿는 교단이 아니라면 솔직히 무서울 게 별로 없었다.

파이토스 교단 NPC들이 사디크 교단 NPC들처럼 안 믿는다고 공격할 NPC도 아니었고.

그 모습에 파이토스 교단 고위 사제들과 성기사들은 부들부들 떨었다.

“흠흠.”

태현은 그들에게 다가갔다. 안 좋은 목적으로 온 것 같았지만, 일단 친하게 지내려는 노력은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시오. 김태현 백작.”

파이토스 교단 NPC들은 못마땅한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아키서스 교단의 악명이 심합니다. 파이토스 교단의 NPC들이 당신을 경계합니다.]

‘칫.’

최고급 화술 스킬과 아키서스 직업 패시브 스킬들을 갖고 있어도 지우지 못하는 경계심!

아키서스 교단이 그만큼 성장했다는 증거기도 했다.

“김태현 백작. 그쪽에 대해 안 좋은 소문들을 몇 가지 들었는데…….”

“헉! 설마 사제님은 돌아다니는 소문을 일단 믿고 보는 분이신가요?”

“…….”

태현은 결코 그냥 당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 * *

태현과 파이토스 교단의 말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미 승패는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화술 스킬도 최고급!

게다가 여기는 태현의 영지 앞!

“우르크 지역에서 고블린들을…….”

“미개한 고블린들에게 위대한 아키서스의 이름을 알려줬을 뿐. 그들도 아키서스를 믿고 회개했을 겁니다. 저기 저 고블린을 보십시오. 원래 고블린들은 폭탄과 화약에 절어서 다른 놈들을 터뜨리려고 하지만 저 고블린은 요리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괴식 요리사 스타우는 전투가 끝나자 호다닥 달려 나와 저주받은 해적 전사들의 촉수를 넣고 요리를 만들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를 외면했다.

-헤이 츄라이 츄라이! 한 번 먹어봐라, 인간!

-뭐라는 거야 이 미친 고블린이! 그걸 어떻게 먹어!

-김태현이 이렇게 자신감 있게 말하면 먹는다고 했는데! 날 속였다, 김태현!

다행히 멀어서 그런지 그들의 대화는 여기까지 들리지 않았다.

브랑송은 박수를 치며 말했다.

“그렇군! 김태현 백작은 우르크 지역의 고블린까지 교화시킨 건가!”

“……브랑송 님. 그런데 왜 여기 계신 겁니까?”

“지금은 교단 관련 대화 중인데…….”

파이토스 교단의 NPC들은 떨떠름한 눈빛으로 브랑송을 쳐다보았다.

원래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옆에서 맞장구를 치는 브랑송이 더 얄미웠다.

그렇지만 왕국의 고위 귀족 NPC이니만큼, 파이토스 교단 NPC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냥 좀 저리 가주라!’

그러나 브랑송은 그런 면에서 눈치가 없었다.

“응? 내가 가야 하나?”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러면 계속 있겠네. 김태현 백작의 영웅담이 재미있군.”

“…….”

“…….”

파이토스 교단은 화제를 돌렸다. 고블린이 실패했다면 다음은 해적이다.

“그렇다면 저 해적들은 어떤가! 저 해적들을 교단에 받아주다니! 아키서스 교단은 범죄자도 받아들이나?!”

브랑송도 놀란 눈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해적들을 교단에 받아줬다고?

“저 해적들은…….”

꿀꺽-

브랑송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해적 생활을 그만두고 교단에 가입한 이들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리치가 흑마법을 끊었다고 하지 그러시오! 저 해적들이 해적 생활을 그만뒀다는 걸 어떻게 믿소! 기회만 되면 돌아갈 텐데!”

“저들은…… 자기들이 있던 섬을 무너뜨리고 나왔습니다! 그 정도로 해적 생활을 그만두고 싶어 했던 겁니다. 그런 진심을 믿어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

옆에서 듣고 있던 브랑송이 깜짝 놀랐다. 섬을 무너뜨리다니?

“못 믿겠으면 확인해 보십시오. 우르크 지역의 해골섬은 완전히 파괴되었으니!”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태현!

누가 무너뜨렸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최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

[…….]

[…….]

[브랑송이 당신의 말을 철저하게 믿습니다!]

“그런…… 김태현 백작은 왕국의, 아니, 대륙의 영웅이야!”

브랑송은 눈물을 글썽거릴 정도로 감동했다.

세상 어떤 귀족이 저런 오지까지 가서 해적들을 설득해서 데리고 온단 말인가!

물론 교단 NPC들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어떻게든 태현을 궁지로 몰아서 아탈리 왕국 내 세력을 꺾어야 하는데, 옆에서 브랑송이 초를 치고 있었다.

한 대 때리고 싶다!

“크으으…… 브랑송 제독을 자기편으로 아주 잘 만들었군…… 김태현 백작.”

“무슨 소린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국왕 전하로부터 내려받은 작위에 걸맞은 명예에 따라 살았을 뿐…….”

“캬아!”

“아, 브랑송 님은 제발…….”

인내심 강한 고위 성기사도 짜증 나게 만드는 브랑송!

파이토스 교단 NPC들은 이를 갈며 말했다.

“후. 좋아. 김태현 백작. 이런 일들은 그렇다 치지. 지금 따지기에는 증거가 없으니까.”

“흑흑. 파이토스 교단 여러분들. 저는 순수한 믿음과 명예로 살아왔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태현은 재미를 들렸다.

옆에서 브랑송이 도끼눈을 하고 파이토스 교단 NPC들을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브랑송이 파이토스 교단에 대해 가진 신뢰도가 하락합니다.]

[아탈리 왕국 내 파이토스 교단의 명성이 하락합니다!]

[아탈리 왕국 내 파이토스 교단의 영향력이 하락합니다!]

[아탈리 왕국 내 아키서스 교단의 명성이 오릅니다!]

[아탈리 왕국 내 아키서스 교단의 영향력이 오릅니다!]

혓바닥 하나로 파이토스 교단 세력을 내려깎는 신묘한 기술!

뒷목을 잡고 있던 파이토스 교단 NPC들은 간신히 이성을 되찾은 그들은 말했다.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지. 카르바노그! 카르바노그의 성물을 갖고 있겠지?”

“네. 갖고 있습니다!”

“…….”

“…….”

태현이 없다고 거짓말을 할 줄 알았던 NPC들은 당황했다.

“그, 그래?”

“갖고 있습니다만?”

“크흐으음! 잘됐군. 내놓게!”

“네? 왜요?”

“……그 성물은 자네 같은 사람이 갖고 있을 게 아니야!”

“지금 왕국의 백작을 모욕한…….”

스르륵-

브랑송이 허리춤에 찬 칼에 손을 가져다 댔다. 파이토스 교단 NPC들은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왕국의 백작 작위를 말하는 게 아니라, 교단! 교단의 교황!”

“아. 전 또 뭐라고. 이렇게 와서 저한테 따지시길래 왕국의 백작 위를 무시하는 줄 알았습니다.”

[아탈리 왕국 내 파이토스 교단의 명성이…….]

[아탈리 왕국 내 파이토스 교단의 영향력이…….]

[…….]

* * *

“저는 <파이토스 교단 하급 성기사>입니다!”

“흥. 파이토스 교단은 안 받아줘. 다른 교단 성기사면 모를까. 이를테면 아키서스 교단이라던가.”

“네?!?!?”

파이토스 교단 성기사로 전직한 초보 플레이어는 깜짝 놀랐다.

원래 성기사는 마을에서 환영받는 직업이었다. 사디크 성기사 같은 악신 직업만 아니라면.

그런데 왜?!

* * *

“근데 왜 제가 가지고 있으면 안 됩니까?”

“아키서스 교단이 갖고 있기에는 위험한 성물이야!”

“왜 아키서스 교단이 갖고 있으면 위험합니까?”

“아키서스 교단은 능력이 없지 않나!”

“음…….”

태현은 말끝을 흐렸다. 그 여유에 파이토스 교단 NPC들은 당황했다.

“예전에 <신 잡아먹는 괴물> 토벌할 때 저한테 힘 빌려달라고 했던 분들이 누구시더라…….”

“…….”

“…….”

태현이 <권능 포식>을 얻었던, <신 잡아먹는 괴물> 토벌 퀘스트!

그때 태현에게 도와달라고 했던 교단들이 바로 타이란 교단, 야타 교단, 파이토스 교단, 데메르 교단이었다.

데메르 교단이야 그나마 아키서스 교단에게 우호적인 교단이었지만, 다른 교단들은 아키서스 교단을 좋아하지 않았다.

덕분에 태현에게 영혼 깊숙이 탈탈 털렸다. 같이 마계로 끌려간 건 덤이고!

아픈 곳을 찔린 파이토스 교단 NPC들은 할 말을 잃었다.

브랑송은 놀랐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 일이 있었나?”

“흑흑. 다른 교단 분들은 절 싫어하고 무시했지만 저는 대륙의 안전을 위해서…….”

“그런……! 그런 김태현 백작을 핍박하다니!”

“제가 마계에서도 간신히 보호해 주면서 데리고 나왔는데…….”

“그런!!”

태현의 말에 파이토스 교단 NPC들은 혈압이 치솟았다.

태현 때문에 같이 마계로 끌려가 생고생을 했던 교단 동료들.

그들은 교단 공적치 포인트까지 헌납하고 나서야 마계에서 나올 수 있다고 들었다.

그 이후로 ‘아키서스’만 들어도 학을 떼는 동료들!

“어디서 그런 거짓말을!”

“네 신이 두렵지 않느냐!”

“네? 거짓말 아닌데요? 신께 맹세코?”

“저, 저, 저…….”

태연하고 당당하게 신께 맹세하는 태현!

“그만!”

대화를 끊은 건 브랑송이었다. 태현은 살짝 아쉬웠다. 이렇게 놀리면서 계속 영향력과 명성을 깎는 것도 좋았는데!

“내 앞에서 김태현 백작을 핍박하는 건 더 이상 두고 보지 않겠네.”

“브랑송 님! 이건 교단의 문제…….”

“김태현 백작은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이지만 동시에 왕국의 백작이자 대륙의 영웅이야!”

“…….”

“…….”

“내 이름을 걸고, 여기서 김태현 백작을 핍박하는 건 용서하지 않겠네!”

파이토스 교단 NPC들은 눈에 핏발을 세우며 이를 갈았다.

“크윽……!”

“두고 보자, 김태현 백작……!”

“누가 보면 악당인 줄 알겠는데.”

사디크 교단 NPC들이 태현한테 당하고 나서 꼭 저런 대사를 했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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