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570화
이다비는 흐뭇한 얼굴로 웃었다.
얄미운 길드원들이 나눠 먹는 것보다는 태현이 독식하는 게 훨씬 더 기쁜 결과였다.
길마로서의 위엄도 보여주고, 말 안 듣고 혼자 먹으려고 한 길드원들을 응징하고, 덤으로 태현에게 상금까지 줬으니…….
“이다비. 이다비.”
“네?”
“상금은 반으로 나눠 갖자.”
“……!”
그걸 옆에서 들은 길드원들은 깨달았다.
사회생활이란 저렇게 하는 거구나!
* * *
붉은 바다 해적들을 전부 이끌고 왔지만, 솔직히 갈르두를 상대하기에는 아직 모자라 보였다.
태현은 방어를 뚫고 해골섬에 당당히 올라온 갈르두의 강력함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제 육지로 올라오지 못한다는 저주도 의미가 없었다.
갈르두는 약해지는 페널티를 감안하고서라도 태현을 죽이고 싶어 했던 것이다.
‘동원할 수 있는 건 전부 동원해야…… 젠장. 아농 백작의 기사단을 써야겠군.’
아농 백작의 기사단.
사용 기회가 한 번 남은, 태현의 영지에 있는 비장의 카드 중 하나였다.
귀족들의 기사단은 현재 플레이어들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NPC들이었고, 보통 방법으로는 빌릴 수도 없었다.
쓰게 된다면 분명 다른 플레이어들과 공성전을 할 때 쓰게 될 줄 알았는데…….
‘어쩔 수 없지. 지금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니까.’
솔직히 갈르두와 정면으로 맞붙게 된다면 아농 백작 기사단으로 이길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아무래도 아농 백작 기사단보다는 갈르두가 더 레벨이 높아 보였으니까.
‘백작 기사단이 대충 잡아서 레벨 300 안팎이라고 쳐도 갈르두는 그걸 훨씬 넘긴 것 같으니…… 그리고 이놈들은 못 써먹겠지?’
태현은 랭커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김 전무에게 선금을 두둑하게 받은 덕분에 엄청 손해를 보지는 않았지만, 역시 기분이 좋을 리는 없었다.
그래도 한번 말은 꺼내봐야지.
“혹시…….”
“안 해.”
“저, 저도 좀…….”
“난 가봐야 해서. 바쁜 일이 있거든. 미안!”
에반젤린, 로이, 크로포드는 즉각 반응이 튀어나왔다. 그들은 남은 둘을 쳐다보았다.
저들도 당연히 비슷한 반응을 보이겠지?
“전 같이 싸우고 싶습니다.”
“스미스?!”
“아니…… 스미스 씨라면 충분히 가능한…….”
다른 랭커들은 깜짝 놀랐다가, 로이의 말에 수긍했다.
랭커 중에서 스미스만큼 성격 좋고 친절한 랭커는 드물었던 것이다.
그러나 스미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태현 씨를 도와드리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애초에 제 도움이 필요하신 분도 아니시고요.”
“아니, 많이 필요한데…….”
“하하. 겸손도.”
“필요하다니ㄲ…….”
“어쨌든 제가 받은 건 다른 이유입니다.”
스미스는 태현의 말을 농담으로 알아듣고 잘라냈다. 태현은 살짝 시무룩해졌다.
“갈르두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
“……!!!”
“아니, 진짜로 잡으려고?”
크로포드는 깜짝 놀라 태현을 쳐다보았다. 그도 랭커이니 갈르두와 한 번 싸우고 나서 바로 견적을 냈던 것이다.
결론은 ‘지금 잡는 건 무리’였다.
당연히 태현도 잡을 생각은 안 할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아닌 것 같았다.
정말로 잡으려고?
태현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잡아보려고.”
“……!!”
태현의 말에 랭커들 사이에 조용한 파문이 번졌다. 그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확실하게 달라진 분위기!
“잠깐 생각 좀 해볼게.”
태현과 그나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에반젤린이 먼저 손을 들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태현은 이런 일을 허투루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철두철미의 대명사!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사람!
“너 나 쳐다보는 눈빛이 뭔가 이상한데.”
“생각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 다른 사람들이 오해하잖아!”
크로포드나 로이가 ‘둘이 뭔 사이길래?’ 하는 표정으로 듣고 있었던 것이다.
“……좋아! 한다!”
“나도 낄게.”
“저도…….”
한 명이 한다고 하자 그 뒤는 쉬웠다. 다른 랭커들은 모두 손을 들었다.
그러자 태현이 말했다.
“흠. 이제 내가 잠깐 생각 좀 해본다.”
“…….”
“…….”
스미스를 제외한 랭커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야…….”
“뭘? 야. 이 스미스를 봐라. 그리고 너희들을 봐라. 내가 고민을 안 하게 됐냐? 스미스는 자기가 알아서 순수한 선의로 도와주겠다고 했는데…….”
“그런 건 아닙니다만…….”
“조용히 하고 있어.”
“앗, 네.”
“그런데 너희는 설명을 다 듣고 나서야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참가하겠다고 말했지. 너희의 계산적인 행동이 날 불안하게 만든다고.”
“…….”
‘이런 치사한 자식…….’
‘갈르두 잡을 때 우리 도움이 분명 필요할 텐데…….’
랭커들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스스로의 캐릭터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나는 그들이었다.
분명 태현이 갈르두 레이드를 할 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태현은 알면서도 저런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약점 한 번 잡으면 절대 놓치지 않는 놈 같으니!’
“흐음…… 흐으음…….”
“아! 그만하고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어허. 누굴 너희처럼 계산적인 사람으로 아나. 원하는 건 없고, 레이드할 때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줬으면 좋겠군. 까딱했다가는 내 영지가 날아가거든.”
“알겠다.”
“알겠어.”
“…….”
앨콧 혼자 조용했다. 사실, 앨콧은 그냥 여기서 빠져서 행복한 오스턴 왕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거기는 태현도 없고 카르바노그 퀘스트도 없는 곳!
탁-
“?!”
“앨콧, 너도 할 거지?”
“어? 어? 나, 나는 급한 일이 있어서…….”
“에이. 우리 친하잖아?”
“……하면 되잖아…….”
* * *
태현이 해적선들을 이끌고 내린 해안가에서,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까지 가려면 반나절이면 충분했다.
물론 매우 빠르게 이동해야 했지만 갈르두에게 그 정도 능력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해안가에서 막는 게 가장 좋았다.
영지 근처에서 싸우면 싸울수록 영지에 피해가 갈 확률이 높아질 것이고, 태현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날 것이다.
특히 거의 완성 직전인 투기장이 부서지기라도 한다면……!
“다른 곳으로 내리지는 않겠죠?”
“육지로 올라오면 저주로 페널티 입는 놈인데 굳이 다른 곳으로 올라가서 빙 우회하지는 않겠지. 게다가 자기 실력에 자부심이 넘치는 놈이고.”
태현은 해안가를 훑으며 어떻게 엿을 먹일지 고민했다.
일단 가장 먼저 시작한 건, 영지의 대장장이들을 부른 것이었다.
“오늘 너희들을 부른 이유는…….”
“…….”
대장장이 플레이어들은 엄숙한 얼굴로 태현의 말에 집중했다.
“폭탄을 설치하라고 하기 위해서…….”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깜짝이야! 뭐야?! 뭐야?!”
랭커들은 갑자기 미친 듯이 소리 질러대는 대장장이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무슨 콘서트라도 온 사람 같은 모습!
“폭탄! 폭탄! 폭탄! 폭탄! 폭탄!”
“폭탄! 폭탄! 폭탄! 폭탄! 폭탄!”
광기에 찬 폭탄 환호성!
“……생, 생각보다 훨씬 더 미친놈들이었잖아?”
“자폭하고 다니던 대장장이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였나…….”
그러거나 말거나 대장장이들은 눈빛을 빛내며 어떤 폭탄을 설치할지, 어떤 함정을 만들지 이야기를 나눴다.
몇몇 말들은 랭커들도 섬뜩하게 만들 정도!
“……그러니까…… 여기에…… 역병을…….”
“……아니…… 그보다는 좀 더 심플하게…… 위력적인 걸…….”
“방금 역병이라고 하지 않았나?”
“잘못 들었겠지.”
대장장이들이 해안가 근처에 폭탄을 쫙 까는 동안, 태현은 다음 작업에 돌입했다.
우르크 지역에서 갖고 나온, <옛 고블린 추적 파괴 골렘>, <옛 고블린 전투 승리 골렘>, <옛 고블린 요새 수호 골렘>을 배치하는 일이었다.
이제는 태현이 수리한 덕분에 <김태현의 추적 파괴 골렘>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음…… 이다비. 혹시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불러서 이 골렘 타고 다닐 생각 있니?”
“네?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 시키는 게 낫지 않을까요?”
길드원에 대한 기본적인 불신!
이다비는 기본적으로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의 능력에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게 길드를 유지하는 비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각자 싸워야 하거든. 그리고 이 골렘 타고 다니는 건 스킬이랑 별 상관없어. 기껏해야 영향받는 건 운전 스킬 정도일걸. 운전 스킬 올린 놈은 없을 테니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타나 다른 놈들이 타나 마찬가지겠지.”
“그러면 그렇게 할게요. 지금부터 연습시킬까요?”
“부탁할게.”
그러는 동안 가브리엘은 미친놈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폭탄을 땅바닥에 설치하고 있었다.
악마 대장장이, 사루온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며 말했다.
“훌륭한 녀석들이야. 인간 주제에 저렇게 잘 배우다니.”
“저렇게 대놓고 폭탄을 바닥에 깔면 안 되지 않나?”
“크흐흐…… 아직 뭘 모르는군. 저건 <모래 잠입 폭탄>이다. <그림자 잠입 폭탄>처럼 내 비장의 기술이지. 저렇게 놓으면 땅바닥으로 들어가 터뜨릴 때까지 잠자고 있을 거다.”
“……이번 기회에 나도 배우자.”
“뭐? 너 정도 되는 녀석에게 이런 게 필요할까 싶지만…….”
[악마 대장장이, 사루온에게 <모래 잠입 폭탄>과 <그림자 잠입 폭탄> 제작법을 배웠습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재료가 많고 까다롭긴 했지만 이런 건 많이 익혀놓을수록 좋았다.
태현은 이런 폭탄들을 많이 만들어서 길드 동맹의 영지에 잘 심어두는 행복한 상상을 했다.
무럭무럭 자라거라!
그러는 사이 사루온이 태현에게 말을 걸었다.
“그보다 영지에 하도 모험가들이 많아서 짜증 나는데, 어떻게 할 수 없나?”
“참아. 없는 것보단 낫지.”
영지에 사람들 모으려고 어떤 짓을 했는지 생각하면, 영지에 사람이 많아서 나오는 불평은 배부른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아직도 무료로 음식 파티를 벌이고 있겠지…….’
태현은 지금 여기서 갈르두를 막기 위해 고생 중인데, 영지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신이 나서 놀고 있을 생각을 하니 배가 아팠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하다고. 평소 수준이면 나도 불평을 안 하겠는데 이건 뭐 제대로 연구를 할 수 없을 수준이니…….”
“그래, 그래. 나중에 가면 조용히 좀 하게 할…… 잠깐만. 평소 수준이라니. 평소보다 더 많다는 건가?”
태현은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그렇다니까. 몇 배는 된다고.”
“……?”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섬뜩한 불안감!
태현은 바보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와! 영지에 사람이 그렇게 늘다니! 착하게 산 보람이 있어! 역시 사람은 진심이야!’라고 좋아했겠지만, 태현은 의심부터 먼저 했다.
갑자기 영지에 사람이 늘 리 없었다. 결과에는 언제나 원인이 있기 마련.
그렇다면, 설마……!
‘또 이벤트냐?!’
저번 무료 음식 이벤트처럼 새로 퍼주는 이벤트가 영지에서 열린 게 분명하다!
태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잠깐. 말이 안 되는데.’
사고를 칠 만한 놈들은 전부 다 데리고 나왔다. 펠마스도 갈락파드도 다 같이 바다를 떠돌지 않았던가.
그런데 누가 그런 이벤트를 열지?
맥크레니 상단 NPC들은 기본 관리만 할 거고, 교단 사제들은 펠마스처럼 간덩어리가 크지 않았고…….
“가브리엘. 지금 영지에 사람들이 많나?”
“네? 네. 다 태현 님이 놓고 가신 것 덕분이죠.”
“……내, 내가 뭘 놓고 갔는데?”
태현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물어보기가 매우 두려웠던 것이다.
“그야 <고블린 만능 제작기> 말고 더 있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