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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569화 (569/1,826)

§ 나는 될놈이다 569화

갈르두는 ‘이 해골섬을 바다 밑으로 무너뜨려 버리겠다!’라고 말했었다.

물론 그건 말 그대로의 의미는 아니었다.

그런 건 보스 몬스터 중에서도 마법사나 드래곤 같은 존재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갈르두는 강력한 전사였고, 강력한 해적이었으며, 온갖 아티팩트까지 갖고 있었지만 마법사는 아니었다.

당연히 해골섬을 바다 밑으로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그럴 능력도 없었고.

그렇지만 지금, 해골섬은 거의 반쯤 바다 밑으로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

“…….”

다행히 남은 해적선을 타고 빠져나가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분위기를 바꿀 필요가 있었다.

태현은 헛기침을 몇 번 하고 일어섰다.

“사악한 갈르두의 공격으로 해골섬이 부서졌지만, 그렇다고 해적들은 죽지 않는다!”

“……?”

“……???”

플레이어들은 태현의 외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해골섬을 감싸고 있는 저 폭풍은 네가 불러냈잖아?

“붉은 바다 무법자들아! 들어라! 우리에게는 뜨거운 심장과 피가 있다!”

벌떡!

해골섬이 박살 나는 모습에 얼이 빠져 있던 해적들은 고개를 들었다.

“우리는 지지 않는다! 우리는 갈르두를 찾아내서 이 피의 대가를 받아낼 것이다!”

“오오……!”

“오오! 해적 지도자! 오오!”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최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해적들은 누가 이 태풍을 불러냈는지 잊어버리고, 갈르두가 원흉이라는 것만 기억하게 될 겁니다.]

고급 화술 스킬을 넘어서 최고급 화술 스킬로!

태현은 이제 자신감이 붙었다.

이제 어떤 놈을 만나도 사기를 칠 수 있을 것 같아!

“해적들아! 이 사태가 일어난 이유가 뭐냐!”

“갈르두!”

“이 섬을 무너뜨린 게 누구냐!”

“갈르두!”

“우리가 죽여야 할 게 누구냐!”

“갈르두! 갈르두!”

“나를 따라와라! 내가 너희들의 명예를 지켜줄 테니까!”

“와아아아아아!”

배 갑판 뒤에서 태현의 연설을 구경하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입을 떡 벌렸다.

“와, 저런 미친…….”

“김태현은 매번 저렇게 퀘스트 깬 거냐?”

크로포드는 기가 막히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못 할 퀘스트 깨는 방식!

퀘스트란 건, 사전에 정보를 모은 다음 적당한 수준의 플레이어들과 파티를 맺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는…… 그런 거였다.

그런데 태현은…….

‘뭐라고 표현하기도 힘들군!’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괴상한 방식!

“야, 야, 넌 왜 그래?”

“어? 어. 어?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

“이 자식도 홀렸나? 야! 정신 차려!”

앨콧이 아까부터 해적 NPC들처럼 얼빠진 얼굴로 있었던 것이다.

크로포드가 앨콧을 앞뒤로 흔들자 앨콧은 짜증을 내며 밀어냈다.

“아, 멀쩡하다고!”

“멀쩡한 놈이 그래?”

“생각할 게 있어서 그렇다니까!”

그랬다.

앨콧이 이러고 있는 이유는 물론 태현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태현이 갈르두에게서 구해줄 때 쓴 창!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거…….

‘카르바노그의 창 아니냐!?’

처음에는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었다.

앨콧은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카르바노그의 창이 맞았다.

찾기 위해 판온 안의 책을 얼마나 뒤지고 읽었던가. 그 모습을 헷갈릴 리 없었다.

게다가 갈르두를 일격에 제압하는 강력함까지!

괜히 전설 무기가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맞아.’

사실 잘못 본 거였으면 했다. 그게 카르바노그의 창이라면 앨콧에게는 절망적인 일이었으니까.

그 김태현 손에서 어떻게 뺏는단 말인가!

‘아, 아니. 그래도……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잘 말하면…….’

잘 말하면? 정말 이번에는 영혼까지 탈탈 털려서 부려먹힐지도 몰랐다.

‘……음…… 은근슬쩍 속여서 뺏으면…….’

속여서 뺏으면? 뒷감당이 두려웠다. 앨콧은 아직도 판온 1에서 태현이 얼마나 뒤끝 심한 놈이었는지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애초에 태현 같은 놈을 상대로 속여서 뺏을 자신도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군.’

앨콧은 퀘스트창을 켰다. 그리고 ‘포기’를 눌렀다.

* * *

[퀘스트를 포기하시겠습니까?]

-안 해! 개XX들아!

앨콧은 반성했다.

멀쩡한 직업 퀘스트를 내버려 두고 이상한 교단 스킬에 눈이 멀어서 퀘스트에 매달리니 이 꼴이 된 거지.

앞으로 교단 관련해서는 어떤 짓도 하지 않을 것이다!

“저기, 김태현. 이번에는 어디로 가는 거지?”

“걱정 마라. 아탈리 왕국으로 가는 거니까. 너희들도 거기서 내리면 되겠네.”

“휴. 다행이야.”

크로포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닫고 의심의 눈빛을 보냈다.

“설마 그렇게 말해놓고 또 이상한 곳으로 가는 건 아니겠지?!”

“무슨 소리야? 난 거짓말을 안 한다고. 해골섬으로 갔을 때 내가 아탈리 왕국으로 간다고 한 적 있냐?”

“…….”

뒤에서 에반젤린과 케인은 싱글벙글 웃었다.

다른 놈들이 태현에게 당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었다.

너도 좀 당해봐라!

“그, 그래. 어쨌든 스크롤은 안 써도 되겠군.”

“안 썼으니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생각은…….”

호다닥!

크로포드는 재빨리 돌아서서 못 들은 척하고 도망쳤다.

태현과 그렇게 많이 대화하지는 않았지만, 몇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약점 한 번 잡히면 골수까지 빨아 먹힌다!

에반젤린이 왜 학을 떼고, 스미스가 왜 대단하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앨콧이 왜 그렇게 겁을 먹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사실 겁을 먹은 건지는 좀 의문스러웠다. 크로포드 생각에 앨콧은 누구한테 겁먹을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괜찮아. 나는 틀리지 않았어. 매몰비용에 아까워하면 안 돼…….”

“……??”

앨콧은 옆에서 혼자 뭐라고 중얼대고 있었다.

‘저 자식 점점 볼 때마다 이상해지는 거 같단 말이야…….’

“그런데 태현 씨.”

“……?”

“어르신은 어디 계십니까?”

“아. 다른 배에 타고 오고 있지.”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구출대 랭커들은 다들 유 회장을 잊고 있었다. 그럴 만했다. 갈르두 같은 보스 몬스터를 만나서 죽을 뻔했으니까.

그래도 스미스는 성격답게 가장 먼저 떠올리고 물어본 것이다.

* * *

연락을 들은 김 전무는 접속해서 해안가로 달려왔다.

아탈리 왕국의 잘 만들어진 항구가 아닌, 태현의 영지에 가까운 해안가였다.

“힉!”

김 전무는 멀리서 나타난 해적선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해적 깃발을 안 달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저기 타고 있는 건 해적들 아닌가?

“적 아니니까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 그렇군…… 미안하네. 해적들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

“화물이 해적들한테 납치당한 적이 있어서 그래.”

“…….”

뭐라고 반응하기 힘든, 현실적인 말!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김 전무는 일을 맡긴 랭커들을 발견하고서 물었다.

“어르신은?”

“저기 배에 타고 계신다네요.”

“뭐라는 건가! 직접 모시고 와야지!”

“아, 죄송합니다.”

김 전무는 후다닥 달려갔다. 태현은 그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참 힘들게 사는군.’

권력을 위해 사람은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게다가 저렇게 한다고 유 회장이 딱히 김 전무를 더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실제로 태현은 배에서 유 회장이 ‘김 전무 그 친구는 능력은 있는데 쓸데없는 데 너무 신경을 쓴단 말이야……’라고 투덜거리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그사이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유 회장을 배에서 데리고 내렸다.

“회장님! 회장님! 아이고, 회장님!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납치된 걸 들었을 때 제 가슴이 다 찢어지는…….”

“김 전무. 이거 게임인 건 알고 있지?”

“그래도 얼마나 제 가슴이 미어졌는지 아십니까!”

둘의 대화를 듣던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회장님?”

“뭐 저 정도 나이면 어떤 곳이든 회장 자리 하나 정도는 맡고 있겠지. 우리 할아버지도 경로원 조기축구회 회장이시라고.”

“근데 전무라고 했잖아?”

“좀 규모가 큰 조기축구회겠지.”

“……??”

파워 워리어 길드원은 친구의 말이 뭔가 이상하게 들렸지만, 거기서 더 넘어가지는 못했다.

중요한 게 있었으니까!

탁-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행복한 미소와 함께 손을 내밀었다.

“……?”

“보상 주세요!”

“아…… 어? 자네들이 데리고 온 건가?”

“저희가 데리고 왔잖습니까?”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당당하게 내미는 모습에 김 전무는 당황했다.

“저기 사람들이 한 게 아니라?”

“아닌데요. 물어보세요!”

“뭐야? 무슨 일이야?”

랭커들도 소란을 듣고 다가왔다. 그리고 그들은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지금 장난하나?

“아니, 지금 장난해? 마지막에 같이 배 타고 왔다고 데리고 온 거야?”

“데리고 온 거 맞지 않습니까! 섬에서 그 난리 일어난 동안 어르신 챙긴 건 우린데!”

“애초에 누가 구출했는데!”

“김태현 님이 구출했잖아요!”

“……윽!”

그제야 랭커들은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왜 이러는지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그들도 유 회장을 구출했다고 말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온다면…… 김태현!”

“……?”

앨콧이 그를 부르자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영지 방어할 계획 짜느라 정신없는데 왜 부르지?

“뭔데?”

“내 말 좀 들어봐!”

앨콧은 방금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태현의 얼굴은 험악해졌다.

“그래서 네가 말을 좀…… 그, 근데 왜 그렇게 노려봐? 무섭게?”

“지금 바쁜 거 안 보이냐? 응?”

“나, 나야 몰랐지.”

“후…… 바빠 죽겠는데 이것들이…… 간단하게 해결해 주지. 갇혀 있는 어르신을 너희 힘으로 구해서 데리고 나왔냐?”

“그랬……! 아니, 안 그랬네.”

그랬다고 우기려다가 앨콧은 급히 말을 바꿨다. 태현에게 한 대 맞을 것 같았던 것이다.

“그다음에 계속 모시고 다녔냐?”

“그건 아닌데…… 갈르두가 있었는데 어떻게 모시고 다녔…….”

“올 때 같이 왔냐?”

“아니, 그것도 아니지만 갈르두가…….”

“아, 변명은 그만하고!”

“힉!”

“…….”

크로포드는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앨콧을 쳐다보았다.

이제 확신할 수 있었다.

저놈. 김태현 무서워하는 거 맞네!

“그러면 얘네가 너희보다 한 일 많네.”

“……!!”

“난 간다. 쓸데없는 걸로 나 부르지 말고. 이것들이 진짜 지네 영지 아니라고…….”

“잠깐만요.”

“……?”

“그렇게 따지면 어르신을 구한 건 태현 님 아닌가요?”

“길마님?!”

이다비의 말에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사색이 되어 쳐다보았다.

다 된 떡에 무슨!

그러나 피도 눈물도 없는 길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길드원들은 마음속으로 울었다.

‘저희가 조금 숨겼다고 너무한 거 아닙니까!’

‘그냥 두시면 상금이 다 우리 건데!’

이다비의 말에 스미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태현 씨가 상금을 받으셔야겠군요.”

태현은 갑자기 궁금해져서 물었다.

“상금을 얼마나 걸었길래?”

“성공하면 10억.”

“…….”

“…….”

태현과 유 회장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김 전무를 쳐다보았다.

순간 둘은 서로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 *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의 눈물, 에반젤린의 투덜거림, 크로포드의 앨콧을 향한 의심 섞인 눈빛…… 을 다 겪고 나서야 일은 일단락되었다.

“김, 김태현 님. 김태현 님은 푼돈에 신경 안 쓰는 부자시니까 이런 것도 신경 안 쓰시겠…….”

“아닌데? 꽁돈인데 받아야지. 잘 쓰겠습니다. 하하.”

구출 퀘스트가 거의 대회 우승 상금에 맞먹는 수준!

물론 이걸 랭커들이 나눠야 하는 거였지만, 태현은 혼자 독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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