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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566화 (566/1,826)

§ 나는 될놈이다 566화

“그냥 주는 게 낫지 않았을까?”

케인은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이건 왠지 모르게 태현이 나쁜 놈 같았다.

그러나 태현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저놈 잘못이지.”

“…….”

“애초에 이렇게 필요한 거였으면 고개 숙이고 ‘제가 이런저런 사정이 있으니 제발 좀 빌려주십시오. 여기 값을 치를 아이템이 있습니다’ 이랬으면 서로 좋았을 거 아냐?”

말이야 맞는 말.

물론 분노한 갈르두에게 그 말이 먹힐 리 없었다.

-내가 네놈을 수백 갈래로 찢어 상어들의 먹이로 주겠다!

“저걸 들었어? 귀 더럽게 좋네.”

-이놈!

[갈르두가 <포효하는 바다의 이빨>을 사용했습니다!]

촤아아악!

바다가 사납게 일렁이더니 파도가 가시로 변해 태현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후퇴! 후퇴! 안개 속으로 들어간다!”

“갈르두의 함대와 직접 마주치지 마라! 놈은 괴물이다!”

해적들이 고함을 치며 후퇴하기 시작했다.

꾸드드득-

갈르두의 부하 해적들은 갈르두처럼 몸이 뒤틀렸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저주받은 이들이었던 것이다.

“갈르두……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정말로 저주받은 게 맞았군! 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길래……!”

카다는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태현은 이때다 싶어서 물었다.

“혹시 약점 같은 거 없습니까?”

“소문으로는 저주받은 탓에 약점이 있다고 하더군.”

“오, 뭡니까?”

태현은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머리가 잘려 나가면 죽는다고…….”

“…….”

태현은 순간 한 대 칠 뻔했다. 그걸 약점이라고 말해주냐?

“그거 말고는 없습니까?”

“음, 저주 때문에 땅에 올라가지 못한다는 소문이 있었지.”

“……!”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이제까지 갈르두는 태현을 만나면 쫓아오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다 바다 위에서였던 것이다.

실제로 태현의 영지까지 쳐들어오지도 못하고 있었으니까.

‘잠깐, 근데 이번에는 내 영지를 불태우겠다고 병력 모으는 거 아니었나? 자기는 바다 위에 있고 부하들을 시키려고 한 건가? 뭐지?’

저주 때문에 땅에 올라가지 못하는 거라서 다른 해적들을 모으려고 한 거라면…….

지금 이미 못 모으게 됐으니 태현은 빠져도 되지 않나? 땅으로만 도망치면…….

‘도망쳐도 되나?’

태현이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카다는 호쾌하게 말했다.

“걱정 말게. 아무리 갈르두가 강하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이 안개와 해골 섬을 끼고 있어! 우리는 절대 지지 않아!”

“아, 네. 혹시 여기 후퇴로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만약을 대비해서요. 하하.”

* * *

<해골 섬을 사수해라-붉은 바다 무법자 퀘스트>

대해적 갈르두의 침공!

아무리 무서워하는 게 없는 붉은 바다의 무법자들이라고 할지라도 이번 공격에는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붉은 바다의 무법자들에게 있는 건 뜨거운 심장과 불타는 용기!

그들과 손을 잡고 공격을 물리쳐라! 뜨거운 해적들의 영혼을 보여줘라!

보상:?, ??, 붉은 바다 무법자 내 평판, 칭호:해적들의 동료

“아니, 이걸 우리가 왜 해?”

크로포드는 퀘스트창을 보고 당황했다. 유 회장을 빼내려고 온 거지, 갈르두와 정면에서 맞붙으려고 온 게 아니었던 것이다.

“저기, 김태현. 내가 널 평소에 좋게 생각하긴 했는데 이건 좀 아니다. 이 퀘스트에는 참가할 수 없어.”

크로포드는 냉정했다.

랭커인 이상 끼어야 할 퀘스트와 끼어야 하지 말아야 할 퀘스트 구분은 엄격하게!

“뭐,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잘 가라. 마중은 안 나갈게.”

“……너 설마 타고 나갈 배 없다고 이러는 거 아니겠지?”

크로포드는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설마 그 김태현이 이런 얕은 수작을?

“아, 아닌데?”

“내 직업이 마법사인데 설마 배 없다고 여기서 못 빠져나가겠냐? 아깝지만 여기서 더 있다가는 정말…….”

[저주받은 갈르두가 마법을 방해합니다.]

[공간이동 스크롤을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

착착착-

아무리 스크롤을 당겨봤자 써지지 않았다. 태현은 크로포드를 빤히 쳐다보았다.

“간다며?”

“어, 음, 그게, 그러니까…….”

“그러면 내리지그래?”

“……퀘스트에 참가할게…….”

“역시. 뭘 좀 아는군.”

태현은 기분 좋은 얼굴로 크로포드의 어깨를 두드렸다. 마치 사기꾼이 사기를 성공시키고 나서 짓는 표정 같았다.

“너희들도 다 참가하겠지?”

“…….”

“…….”

랭커들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라면 그냥 돌아갔어야 하는 일인데 어쩌다가 이렇게 안 맞는 퀘스트에 참가하게 됐단 말인가.

‘욕심을 부려서인가? 아냐.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김태현 때문 같아.’

에반젤린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 * *

쾅, 콰앙, 콰아앙!

멀리서 다가오는 갈르두의 대함대. 그 대함대를 향해 해골 섬의 해적들은 마법 대포를 발사했다.

불덩어리가 날아가 수면을 때리자 물기둥이 연신 솟구쳤다.

“조금 더 위로! 마법탄 아껴라!”

“어차피 저놈들은 미로를 뚫지 못한다! 마음껏 쏴붙여!”

‘아, 되게 불안하네.’

해적들이 자신만만할수록 태현은 불안해졌다. 태현은 뒤를 돌아보았다.

해골섬은 거의 왕국의 도시 수준으로 커다란 섬이었지만, 방어력은 별로였다.

커다란 성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항구가 요새화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마법의 안개 하나만 너무 믿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방어일수록 한 번 뚫리면 대책 없이 무너지기 마련!

-끓어오르는 용암의 분노!

“잘한다, 잘한다! 크로포드!”

“크로포드 파이팅!”

현재 태현의 배 위에는 랭커들과 파워 워리어 길드원, 그리고 해적 NPC들이 타고 있었다.

랭커들 덕분에 전력만 따지면 다른 배에 결코 밀리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해라.”

“넵.”

“죄송합니다.”

크로포드를 응원하던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콰직, 콰직!

마법 대포를 맞아가면서 전진하는 갈르두의 함대. 배 몇 척이 너덜너덜해지고 부하들이 바다로 날아갔지만 갈르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깟 안개를 믿고 내 앞에서 건방지게 굴었다는 것이냐. 치워라!

[갈르두가 <마법 흡수의 저주받은 선수상>을 사용합니다!]

[마법의 안개가 약해집니다!]

갈르두의 배 앞에 달려 있던 조각상이 사악한 빛을 뿜어내며 안개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설, 설마……!”

“말도 안 돼! 안개를 뚫을 수 있는 놈들은 아무도 없어!”

‘이것들 해적 맞아?’

케인은 해적들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해적들 주제에 명예 따지고 원칙 따지고 대비책도 없고…….

아무리 봐도 태현 쪽이 훨씬 더 해적다웠다!

“왜 날 쳐다보냐?”

“아, 아무것도.”

케인은 태현의 시선을 피했다. 지금 다른 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안개가 약해진다!

-배를…… 붙여라!

촤아아아악!

갈르두의 함대 근처에 파도가 거대하게 솟구치더니 모습을 가렸다. 그걸 본 유 회장이 깜짝 놀라서 외쳤다.

“저거! 저건 순간이동하는 스킬이다!”

“뭐 그런 사기 스킬이…….”

말도 끝나기 전에, 갈르두의 함대가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안개를 뚫고 해적들 함선 앞에서!

“…….”

“…….”

-와아아아아아아아!

-붉은 바다 놈들을 모두 쓸어버려라! 영원한 저주를 받게 해줘라!

[붉은 바다 무법자들의 사기가 급하락합니다.]

[갈르두의 해적들이 돌격해 옵니다!]

“이런 미친…….”

갈르두는 손쉽게 장애물을 제거한 다음 바로 배를 붙여왔다.

배 숫자는 대충 비슷해 보였지만, 아무리 봐도 배를 붙여서 싸우면 갈르두의 해적들이 강해 보였다.

딱 봐도 저주받아서 강해 보이지 않는가.

“크아악!”

“컥! 후퇴! 후퇴!”

“해골 섬으로 올라가라!”

해적들은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닥치는 대로 포탄을 쏘아대며 배를 뒤로 움직였다.

“그렇군. 육지로 못 올라가니까 일단 해골 섬으로 올라가는 건가?”

바다 위에서 공격을 퍼부으면 해골 섬의 건물들이야 박살 나겠지만, 그래도 목숨은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김태현! 너도 같이 좀 싸워!”

“응? 알아서 잘하는데 왜. 열심히 해.”

“야!”

갈르두의 함대는 태현이 있는 배를 가장 먼저 노리고 덤벼들어 왔다.

-지도…… 지도를 내놔라!

-네깟 놈에게 있을 지도가 아니다!

“……??”

“뭔 지도?”

에반젤린과 앨콧은 무심코 고개를 돌려 태현을 쳐다보았다. 이 상황에서 의심 가는 건 한 명밖에 없었다.

그러나 태현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난 모르겠는데?”

“…….”

-죽어라, 이 살아 있는 놈!

[저주받은 해적 전사가 <촉수 휘감기>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으악. 더러워!”

앨콧은 기겁하며 해적 전사의 촉수를 잘라냈다. 무슨 문어 같은 공격이었다.

“앨콧 씨. 조심하십시오. 이놈들 만만치 않습니다.”

“누구한테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스미스가 걱정을 해주자 앨콧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아무리 숫자가 많고 레벨이 높아도 그가 랭커인데 이런 잡몹들한테…….

휘리릭-

[<촉수 휘감기> 스킬에 당했습니다!]

[움직일 수 없습니다. 끌려갑니다!]

‘?!?!?!’

갑자기 배 위로 기어오른 놈한테 당한 앨콧! 기가 막혔지만 몸이 먼저 움직였다.

-포박 탈출, 이중 베기, 삼중 베기, 분노의 질주!

촤촤촤촥!

앨콧 주변에 오러가 솟구치더니 검이 날카롭게 휘둘러졌다. 앨콧을 끌고 내려가려던 해적 전사들이 그대로 회색으로 변했다.

“앨콧 씨! 제가 그러니까 주의하라고…….”

“닥쳐! 닥…… 어?!”

스미스의 말에 대꾸하던 앨콧은 실수로 발을 잘못 디뎠다.

원래라면 절대 하지 않을 실수!

그 결과…….

풍덩!

“……?”

“뭐야. 누구 빠졌어?”

태현은 당황해서 고개를 돌렸다. 설마 여기 중에 바다에 빠질 정도로 어설픈 놈이 있다니.

“파워 워리어 길드원인가?”

“저희는 전원 무사합니다!”

“저희는 애초에 뒤에서 숨어 있어요!”

“아. 그래…….”

“앨콧 씨가 빠졌습니다. 구해줘야…….”

“그래? 안 됐군. 앨콧의 명복을 빌며 후퇴하자!”

“…….”

“크로포드! 불 좀 질러줘!”

“좀 고상하게 말할 수 없냐?”

크로포드는 투덜거리면서도 바로 화염 마법을 앞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 서슬에 몰려들던 해적들이 멈칫했다.

-김태현…… 김태현……!

갈르두가 이를 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저 멀리 있는데도 소름이 돋았다.

끼이익-

태현의 배를 향해 방향을 돌리는 갈르두의 본함!

크로포드는 이 와중에 문득 생각이 나서 물었다.

“예전에 프리카 대륙 가다가 갈르두가 갑자기 습격을 한 적이 있었거든? 갈르두가 나타나는 항로가 아니었는데. 설마 그거 너 때문…….”

“후퇴! 후퇴! 전속력으로!”

* * *

해적들의 배는 생각보다 빨랐다. 덕분에 그렇게 많이 잡히지 않고 해골 섬으로 후퇴할 수 있었다.

재빨리 육지로 기어오른 해적들은 고함을 지르며 수비를 준비했다.

“놈들은 육지로 올라오지 못한다! 여기서 쏘아서 격퇴할 준비를 해라!”

“마법 대포를 끌고 와! 궁수들, 마법사들 전부 모여라!”

에반젤린이 불안하다는 듯이 태현에게 물었다.

“잠깐만. 여기 포위당하면 우리 계속 여기 갇혀 있는 거 아니야?”

“하하. 그럴 리가. 그러기 전에 어떻게든 방법이 나겠지. 걱정 말라고.”

“어떤 방법?”

“그거야…….”

생각 안 해놨고 대충 넘어가려고 말한 것이었기에 방법이 있을 리가 없었다.

-쥐새끼처럼 땅 위로 올라가면 무사할 줄 알았느냐? 내가 올라간다!

“뭐?”

“못 올라온다며?!”

당황한 해적들은 무시하고, 갈르두의 대함대는 천천히 전진했다.

-땅으로 올라가는 건 미친 듯이 고통스럽지만…… 네놈의 심장을 터뜨릴 수만 있다면 참을 만하지!

“…….”

에반젤린은 태현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냥 이 자식을 바치면 안 되나…….’

“우리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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