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560화
“좋습니다. 그러면 가봅시다!”
촤아악-
어두운 밤, 작은 조각배 다섯 척이 바다를 가르고 나아갔다.
고렙 목수 플레이어들이 엄선해서 만든 조각배.
크기는 작았지만 흑단나무와 고급 떡갈나무를 사용해 내구도는 엄청났고, 속도도 엄청나게 빨랐다.
몰래 잠입해서 구출해 오는 목적에 딱 맞는 배!
물론 이 배도 김 전무가 구입한 배였다.
-아니, 안 그래도 저희가 만든 자식 같은 배를 팔아서 가슴이 아팠는데, 기껏 또 만든 배를 다시 팔라니…… 으허헛!
졸지에 목수 플레이어들은 자본주의의 매콤한 맛을 2연속으로 맛봐야 했다.
* * *
[<사라지는 소음>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은밀도가 크게 증가합니다.]
“됐다. 들어가!”
크로포드가 마법을 사용하자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은 아주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뭘 모르는 사람들은 화려하게 펑펑 터지는 걸 좋아했지만, 뭘 좀 아는 랭커들은 조용하고 깔끔하게 끝내는 걸 좋아했다.
원래 퀘스트는 조용히 보상만 챙기는 게 제일!
크로포드가 배에 마법을 걸어서 은밀도를 올리고, 그 틈을 타 각자 배를 해적선 가까이에 붙인다.
갈르두 함대의 위치는 잡힌 사람들이 있어서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으아암. 이 주변에 우리한테 덤빌 놈이 누가 있다고 이렇게 경계를…… 컥!”
하품을 하며 보초를 서고 있던 해적은 갑작스러운 기습에 쓰러졌다.
은신 상태에서 기습한 덕분에 앨콧은 일격에 적을 쓰러뜨리는 데에 성공했다.
보고 있던 크로포드도 감탄할 정도의 완벽한 기습!
“누가 암살자 아니랄까 봐 저런 건 잘해요.”
“쉿. 앨콧 씨 열심히 하시는데 들리겠습니다.”
“걱정 마. 안 들려.”
스미스는 또 싸움이 일어날까 봐 걱정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이건 칭찬이잖아.”
“별로 칭찬 같지는…….”
샤샤샥-
로이와 앨콧은 보초를 쓰러뜨린 뒤 재빨리 어둠 속을 헤쳐 해적선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인가?”
“여기 아닌 것 같은데요.”
“젠장. 일일이 다 뒤져야 하나? 그놈들은 위치도 제대로 안 알려줘?”
“안에 갇혀 있어서 확인할 수가 없답니다.”
앨콧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혀를 찼다.
아무리 랭커인 그라도 이렇게 수많은 함대 가운데에서 혼자 움직이는 건 긴장되는 일이었다.
태현처럼 매번 겁도 없이 혼자서 깽판 치는 놈이 이상한 것!
“다음 해적선으로 가자.”
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로이는 무의식적으로 앨콧의 지시를 따르고 있었다.
확실히 앨콧이 괜히 암살자 랭커로 불리는 게 아니었다. 나름 랭커인 로이가 봐도 앨콧의 실력은 대단했던 것이다.
단순히 레벨과 스킬만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빠르게 현재 상황을 읽는 판단력, 그리고 그 판단을 바탕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를 결정짓는 결정력, 그걸 뒤받치는 행동력까지.
수백, 수천 명의 해적들이 있는 이 함대 가운데에서 과감하게 움직일 수 있는 플레이어는 흔치 않았다.
‘대단하다!’
로이는 앨콧의 뒤를 따르며 가슴 속 깊숙이 든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앨콧이라면, 정말로 자기가 말한 것처럼 김태현과도 승부가 되지 않을까?
‘충분히 가능해!’
앨콧은 뒤에서 로이가 무슨 흉악한 상상을 하는지는 꿈에도 모르는 채 다음 해적선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운이 좋았다.
“……!”
해적들과 완전히 다른 복장. 플레이어가 확실했다.
“야. 야.”
“……?”
“야!”
“으헉! 암살자다! 잘, 잘못했어요, 길마님! 죽이지만 마세요! 으헝헝! 아무리 제가 잘못했어도 그렇지 암살자까지 보내는 건 너무하잖아요!”
“???”
앨콧은 당황했다. 이 자식은 뭘 잘못 처먹었나 왜 헛소리지?
“닥쳐! 조용히 하라고.”
“흐끅. 흐끅.”
“구해주러 왔는데 무슨 헛소리야?”
“네? 구해주러 오셨다고요? 역시 길마님! 사실 믿고 있었습니다! 제가 방금 말한 건 제발 잊어주세요!”
“네 길마가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목소리 안 낮추면 당장 죽여 버린다.”
“…….”
앨콧의 살기 섞인 협박에 파워 워리어 길드원은 입을 조용히 다물었다.
“다른 놈들 깨워서 모두 탈출 준비시켜. 그리고…… 여기서 ‘유성수’란 양반이 누구야?”
“어? 그게 누구죠?”
“낚시하는 사람 있을 텐데?”
“아. 어르신이요. 안에 계십니다.”
“그 사람 데리고 와.”
다른 놈들은 몰라도 유 회장은 앨콧이 직접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김 전무의 의뢰가 애초에 그것이었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유성수 씨는 무조건 데리고 나와야 합니다! 무조건! 꼭! 반드시!
“뭐야? 무슨 일인가?”
“어르신! 구출대가 왔습니다.”
“……김 전무 그 사람 정말…… 일은 안 하고…….”
“네?”
“아무것도 아니야. 어쨌든 구출대가 왔으니 가보도록 하지.”
구출대가 기껏 구하러 왔는데 거절할 수는 없었다. 유 회장은 고개를 저으며 밖으로 나섰다.
바로 그때였다.
파아아앗!
저 멀리 수평선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다가오는 해적선 한 척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해적선 가장 앞에 서 있던 케인이 외쳤다.
“내가!!!!”
잠든 갈르두 함대를 모두 깨우는 우렁찬 고함 소리!
“바로!!!!”
-뭐야? 뭐야?!
-감히 어떤 놈이!
-전원 기상! 전투 준비!
차차차착-
무기를 들며 일어나는 해적 전사들. 그 모습에 앨콧과 로이는 서로 눈을 마주 보았다.
X됐다!
‘대체 어떤 새끼가 모두 자는 이 밤중에 이 난리를……!’
“김태현이다!!!!!!!!!!!!”
-…….
-……김태현 백작?!
-죽여라! 발사! 발사!!!
태현의 이름 효과는 대단했다.
갈르두 해적 함대에 이미 완전히 퍼져 있는 악명!
위대한 선장님을 속이고 도망친 태현을 발견한 부하 해적들은 눈에 불을 켰다.
퍼퍼퍼퍼펑! 콰콰쾅!
굉음과 함께 해적선에서 마법 대포가 발사되었다.
“내가 김태현이다! 내가 김태현이라고! 날 쏴봐라! 으아아…… 으아아아!”
케인은 마지막으로 외치고서 날아오는 포탄을 보고 기겁했다.
이제 도망칠 시간!
케인은 눈을 질끈 감고 스킬을 사용했다.
파앗!
다행히 아직 해적 마법사들이 마법을 쓰지 않아 도망을 칠 수 있었다.
그러나 앨콧과 로이는 그럴 수 없었다.
“……XX…….”
“김태현……!”
둘은 이를 갈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잠이 깨서 눈을 비비며 일어난 해적들이 그들을 발견하고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저거 뭐냐?”
“저거…… 침입자다!!! 침입자! 정말로 침입자다!”
뿌우우우-
나팔과 함께, 갑작스러운 태현의 등장에 놀라워하던 해적들이 정신을 퍼뜩 차렸다.
이건 정말로 해적선 위에 침입자가 올라왔을 때 나오는 나팔 소리!
“아오, 진짜!!”
“저, 저기 도망칠 수 있는 겁니까?”
“몰라, 이 새끼들아!!”
앨콧은 거의 반쯤 울먹이며 해적들에게 덤벼들었다.
대체 그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다른 랭커 놈들과 달리 그는 태현에게 거의 적대한 적이 없었다. 공격해야 할 때면 혹시 원한을 살까 봐 시늉만 내고 그랬는데 대체 왜!
‘혹시 그때, 길드 동맹 랭커들이 쫓았을 때 꼈다고 보복하는 건가?! 아니, 그건 진짜 심하잖아! 털끝 하나 안 건드렸는데!!’
촤촥! 촤촤촤착!
-암살자의 신조, 암살자의 눈, 어둠의 도래, 핏빛 시간!
앨콧은 각종 스킬들을 사용한 다음 해적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망설이면 죽는다!
앨콧의 방어력과 HP는 다른 직업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폭발적인 데미지와 은신 스킬을 위해 얻은 페널티였다.
퍼퍼퍼퍼퍽!
붉은 선이 허공에 그려지자 스킬 이펙트가 화려하게 피어났다. 앨콧은 그가 어째서 랭커로 불리는지 확실히 보여줬다.
“크악!”
“으아악!”
“해적들을 더 불러! 저놈 보통 놈이 아니다!”
[갈르두 해적단이 당신을 위험인물로 지정했습니다!]
[빨리 탈출하지 않으면 점점 더 많은 해적들이 몰려올 겁니다.]
‘젠장, 젠장, 젠장!’
버프 스킬들은 벌써 끝나가고, 스킬 쿨타임은 아직 돌아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다른 해적선에서 붙은 해적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
“야! 너희들도 도와!”
앨콧은 다급하게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을 불렀다. 그러나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바닥에 납죽 엎드렸다.
“저희는 이 사람들 몰라요!”
“……이 XXX들이!”
다행히도 여기에는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부우웅-
콰아아아아앙!
엄청난 폭발! 해적선이 옆으로 크게 흔들렸다. 크로포드가 날린 화염 마법 덕분이었다.
“망했다! 빠져나와!”
크로포드는 가장 먼저 배를 출발시켰다. 가장 뒤에 있었던 그였기에 눈치를 보지 않고 내릴 수 있어 가능한 선택이었다.
그걸 깨달은 앨콧이 욕설을 퍼부었다.
“혼자 튀냐?! 이 의리 없는 새끼!”
“그럼 여기서 같이 죽으리? 걱정 마라! 마법은 써줄 테니까!”
상황이 꼬였을 때부터 크로포드는 도주로를 생각하고 있었다.
김 전무의 임무 때문에 목숨을 걸 생각은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크로포드가 양심이 없지는 않은지, 배를 타고 빠르게 뒤로 도망치면서도 마법은 계속해서 써주었다.
꿀꺽, 꿀꺽-
[최상급 마나 회복 포션을 사용했습니다!]
[잠깐 마나 멀미 상태에 빠집니다.]
-아다드의 지옥 화염 작렬!
마계의 악마가 사용한다는 강력한 비전 화염 마법!
한 방 날아갈 때마다 해적선 하나가 뒤집힐 정도로 흔들렸다.
직업 중에 가장 파괴력 있는 스킬을 자랑하는 마법사답게, 크로포드는 혼자서 엄청난 소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틈을 타 스미스와 에반젤린이 올라왔다.
“도와드리겠습니다.”
“너, 너희……!”
앨콧은 울컥했다. 평소에는 잘난 척하고 착한 척하는 재수 없는 새끼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의리가 있었다니!
“내가 널 잘못 봤어! 그냥 재수 없는 놈인 줄 알았는데!”
“…….”
“그냥 두고 갈까요?”
“아, 아니, 그럴 수는 없습니다.”
에반젤린의 말에 스미스는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앨콧은 당황해서 변명했다.
“아냐! 칭찬한 거라고!”
“그게 칭찬이면 욕은 대체 뭘 어떻게 할지 좀 궁금한데…… 어쨌든 싸우기나 하죠.”
에반젤린은 말과 함께 핏빛 대검을 꺼내 휘둘렀다.
거대한 스킬 이펙트와 함께 올라오려던 해적들이 날아가 바다에 떨어졌다.
풍덩!
“이야. 의리 있고 좋네! 파이팅!”
랭커 넷이 올라가자 어그로는 완전히 그들에게 쏠렸다.
주변 해적선들은 모두 그들이 올라간 배에 붙여졌고, 잠에서 깬 해적 전사들은 고함을 지르며 타고 올라갔다.
덕분에 신이 난 건 크로포드!
편하게 마법을 난사하며 점점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저 새끼…….”
“크로포드 씨 욕은 나중에 하고 지금은 우리 일에 집중합시다. <진정한 태양의 시간>!”
파아아앗!
스미스 주변이 미친듯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리고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버프가 들어갔다.
[<진정한 태양의 시간> 버프를 받았습니다.]
깎여 나갔던 HP, MP, 스킬 쿨타임이 돌아오는 걸 보자 앨콧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전설 직업이 좋기는 좋구나!
“야, 버프는 좋은데 너무 밝은 거 아냐?! 이쪽으로 공격 모이잖아!”
어두운 밤중에 혼자 반짝반짝 빛나는 스미스 주변은 너무 잘 보였다.
실제로 다른 해적선의 해적들이 우르르 활을 꺼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걱정 마십시오. <완전한 태양의 결계>!”
파앗!
스미스 주변으로 쳐지는 거대한 반구(半球) 형태의 결계!
그 위로 들어오는 공격과 해적들의 침입은 전부 다 튕겨 나갔다.
그걸 본 앨콧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더러운 성기사 새끼들…….’
같은 팀이지만 이런 사기적인 방어 스킬을 볼 때마다 치가 떨렸다.
이런 건 반칙이잖아!
물론 이런 스킬들은 대부분 시간이 짧긴 했지만…….
그리고 스미스 덕분에 크로포드는 피를 보게 됐다.
저놈을 못 건드린다면 일단 다른 놈부터 치자!
배 위에서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 모르고 있던 크로포드는 갑작스럽게 달라진 분위기에 움찔했다.
왜 조용해졌지?
“잠깐, 설마…….”
급하게 쓰려던 마법을 취소하고 방어 마법을 시전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콰콰콰콰콰쾅!
해적선들이 얄밉던 마법사에게 마법 대포 포격을 퍼부은 것이다.
“으아아아아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