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554화
그렇지만 역시 작은 마을은 작은 마을이었다. 아이템도 다 그저 그랬다.
‘역시 없나?’
태현도 크게 기대한 건 아니었다. 이다비가 마을에서 독점 상인으로 거래를 하는 동안 심심해서 뒤져본 것이었을 뿐.
“저, 모험가님. 저기…….”
“……?”
“제가 좋은 곳을 알려드리면 저를 풀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뭐, 좋은 곳이면.”
“저기 저 집! 저 집이 아주 좋은 걸 팝니다!”
태현은 의아하다는 듯이 집을 쳐다보았다. 상점이 아니었다.
“저긴 상점이 아닌데?”
“상점이 아니라, 마을 약초사의 집입니다. 그렇지만 저 약초사가 만드는 약이 아주 좋습니다!”
“어떻게 좋길래?”
“……마비, 기절, 혼란 상태에 빠뜨리는 약들을 아주 잘 만드는…….”
“누가 노예상인 아니랄까봐…….”
“노, 노예상인 아닙니다!”
“시끄럽다.”
태현은 무시하고 들어갔다.
생각해 보니 곧 해적들과 싸워야 할 텐데, 태현의 요리 스킬을 생각한다면 저런 약초들을 미리 챙겨놔서 나쁠 게 없었다.
-해적님들! 제가 만든 <둘이 먹다 둘 다 확실히 죽는 요리>를 드셔 보십쇼!
‘흠. 아주 좋아.’
행복한 미래를 떠올리며 태현은 문을 열었다.
덜컥-
어두운 집 안에는 커다란 솥이 독특한 냄새를 풍기며 끓어오르고 있었다.
“누구냐?”
“고블린?”
“왜, 고블린이 여기 있으면 안 되냐?”
놀랍게도 안에 있는 약초사는 고블린이었다. 늙은 고블린은 투덜거리며 걸어 나왔다.
“또 어디서 이방인 놈들이…… 허어어억!”
“……?”
“너, 너!”
“뭐. 기계공학? 내가 기계공학의 달인이긴 하지.”
“아니. 그딴 게 아니라!”
“그딴 거? 너 고블린 맞지?”
고블린이 기계공학을 ‘그딴 거’라고 하다니. 드워프가 대장장이 기술을 ‘그딴 거’라고 하는 것 같은 충격!
“너! <괴식 요리>를 할 줄 아는 인간이구나!!”
[중급 괴식 요리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블린 괴식 요리사> 스타우가 당신을 보고 매우 놀랍니다!]
“인간 중에서 <괴식 요리>를 할 줄 아는 인간이 있다니! 놀랍다!”
“난 기계공학을 안 좋아하는 네가 더 놀라운데.”
“기계공학 따위는 필요 없어!”
태현은 살짝 상처받았다. 기계공학이 얼마나 좋은데!
그러나 스타우는 당당했다.
“기계공학 같은 건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히기만 하는 스킬이다! 모든 스킬이 그렇지! 그렇지만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히지 않는 유일한 스킬이 있다. 그게 바로 요리다!”
“……?”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이야 그럴듯했는데, 생각해 보니 저놈은 괴식 요리사 아닌가.
괴식 요리는 충분히 다른 사람들을 상처 입혔다!
‘그럴 거면 그냥 요리를 익혀야 하는 거 아닌가?’
“그리고 괴식 요리는 요리의 정점! 기존 요리의 개념을 깨뜨린 요리의 정수인 것이다!”
“……그,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미친 사람을 상대할 때 진지하게 대하면 안 됐다. 태현은 스타우가 미친 고블린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근데 넌 왜 여기 있냐? 고블린 부족은 다른 곳에 있잖아?”
“……내가 떠났다.”
“왜?”
“……내 괴식 요리를 다른 고블린들이 이해 못 해서지.”
머뭇거리며 말하는 스타우. 태현은 바로 알아차렸다.
이놈. 쫓겨났구나!
“너 설마 괴식 요리 먹였다가 쫓겨났냐?”
“아니다! 어디서 그런 소리를! 흥! 괴식 요리를 좀 아는 것 같은 인간이라서 기껏 말해줬더니!”
“쫓겨난 거 같은데…….”
“……족장님이 드시고 앓긴 했다.”
결국 진실을 털어놓는 스타우!
태현은 한심하다는 듯이 스타우를 쳐다봤다.
“왜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는 거냐!”
“아냐. 아무것도. 어쨌든 약초 사러 왔으니까 약초나 팔아라.”
“인간. 보니까 <괴식 요리>를 배우면서 이것저것 고민한 것 같군.”
“아니, 별로.”
그냥 살다 보니 어쩌다가 얻어진 스킬!
“<괴식 요리>가 가야 하는 길은 무엇인가,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런 것들로 고민했겠지.”
“안 했는데.”
“그러면서 생각했겠지. 스승이 필요하다고!”
“나, 간다.”
약초도 안 팔 것 같고, 미친 고블린을 상대하는 것도 귀찮아진 태현은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잠깐! 잠깐만! 가지 마라, 인간!”
호다닥 달려와 태현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스타우!
“아. 왜 이래, 귀찮게. 약초 안 팔 거면 놔라.”
“아니! 내가 훌륭한 스승이 되어준다니까!”
“필요 없어.”
검술 스킬이나, 기계공학 스킬이나, 마법 스킬이라면 스승을 해주겠다는 NPC가 나왔을 경우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괴식 요리는…….
굳이 스승이 필요할까?
“가지 마라! 인간! 엉엉엉! 주변에 괴식 요리를 아는 놈이 아무도 없단 말이다! 네가 가버리면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다!”
“누가 보면 사귀는 줄 알겠다. 안 놔? 안 놔, 인마?”
태현은 발목을 탈탈 털어서 스타우를 떨쳐내려고 했다. 그러나 스타우는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
“뭘 원하나, 인간! 원하는 걸 말해봐라!”
“네가 놔주길 원하는데. 솔직히 주변에 이상한 놈들은 이미 충분하다고.”
“그런 거 말고! 다른 거! 내 <괴식 요리>를 배워다오!”
<영웅 직업-고블린 비전의 괴식 요리사 전직 퀘스트>
고블린 요리사로서 정점에 도달한 스타우는 새로운 길, <괴식 요리>에 눈을 뜬 요리사다.
그 대가로 부족에서 쫓겨났지만 스타우는 언제나 재능 있는 후계자를 찾아 헤맸다.
우르크 지역에서 가장 뛰어난 요리사인 스타우! 그 밑으로 들어가 괴식 요리를 배워라!
보상:고블린 비전의 괴식 요리사로 전직.
[<아키서스의 화신>입니다. 다른 직업으로 전직이 불가능합니다.]
‘그래. 뭐 이건 당연하고.’
이제까지 전직 퀘스트만 뜨면 ‘넌 아키서스에서 벗어날 수 없어!’라고 뜬 메시지창이 한두 번이 아니라 태현은 놀라지도 않았다.
“미안. 무리다.”
“아니! 꼭 요리사로 전직하지 않아도 돼! 스킬만 배워! 내 스킬을 배워달란 말이다!”
“아, 이 양반 왜 이렇게 끈질겨?”
[마을에서 소란을 일으킬 경우…….]
결국 경고창까지 뜨자 태현은 말 정도는 들어보기로 했다.
“내가 배우면 뭘 해줄 건데?”
뭔가 많이 뒤바뀐 것 같은 상황!
원래 이런 건 스킬을 배우는 쪽에서 많이 아쉬워해야 했는데, 지금 상황은 정반대였다.
“원하는 걸 말해봐라, 인간! 놔주는 거 말고!”
황급히 말하는 스타우. 정말 어지간히 배울 사람이 없었나 보다 싶었다.
태현은 살짝 짠해졌다.
일단은 뛰어난 요리사 같긴 한데…….
‘우르크 지역에서도 뛰어나고 고블린 요리사로도 뛰어나면 확실히 실력 없는 NPC는 아니니까 데리고 다니면 손해 볼 건 없긴 하겠는데…….’
뭔가 불길했다.
족장님에게 괴식 요리를 먹였다가 쫓겨난 전적!
아무리 봐도 스타우는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에 어울리는 위험해 보이는 NPC였다.
‘미친놈들은 이미 충분한데…….’
고민하던 태현은 결국 결정을 내렸다.
“그래. 알겠다. 배우마.”
“……!!”
스타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잘 결정했다, 인간! 내가 아주 잘 가르쳐주마!”
“대신 난 지금 바빠서 여기서 배울 시간이 없는데, 날 따라다니면서 가르쳐줄 수 있겠지?”
“물론이다!”
“날 따라다니면서 가르치는 동안 다른 일도 해야지. 그냥 놀고먹을 수는 없잖아.”
“물론이다! ……잠깐, 가르쳐주는데 그게 왜 놀고먹…….”
“따라다니면서 이렇게 말에 토를 달 거면 안 데리고 갈란다.”
“아, 아니다! 데리고 가다오!”
아쉬운 건 스타우!
결국 스타우는 노예계약에 도장을 찍었다.
“대신 너도 <괴식 요리>를 완전히 배워야 한다! 내 비전의 <괴식 요리>를 완전히 다 익혀야 한다!”
“알겠어. 알겠어.”
“네가 다 배우지 않으면 난 널 끝까지 쫓아다니겠다!”
“알겠어. ……응? 뭐라고?”
태현은 대충 대답하다가 움찔했다.
방금 뭔가 섬뜩한 말을 하지 않았나?
* * *
“헤헤, 좋은 곳을 안내해 드렸으니 저를 풀어주실…….”
“옛다.”
“감사합니다!”
태현이 정말 풀어주자 상인 NPC는 반색했다. 다른 동료들이 애타는 눈빛으로 쳐다봤지만, 상인 NPC는 무시했다.
“그러면 안녕히 계십…….”
“응? 어디 가?”
“네? 저도 고향이 있으니 돌아가 보려고 합…….”
“아니지. 우리 같이 해적선 가기로 했었잖아.”
“…….”
“…….”
상황을 깨달은 상인 NPC의 얼굴이 파랗게 변했다.
정말 풀어주기만 한 것!
“자. 가자. 밧줄 푸니까 그래도 기분은 좋지? 상쾌한 기분으로 노 저으러 가야지.”
“아, 아니! 모험가님!”
그걸 본 스타우는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데 어디를 가는 거냐?”
“해적선.”
“……해적선을 대체 왜 가는 거냐……?”
“괴식 요리 배우는 놈이 이유 따지면 좀 웃긴데.”
일행에게 돌아오자, 이다비는 일을 다 끝내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갈락파드와 펠마스는 싸우고 있었다.
“가서 전부 죽이고 아키서스 님의 위엄을 보여야 한다!”
“미쳤냐! 죽기 딱 좋은 일이다! 더 지능적으로 가야 한다! ……태현 님. 그 고블린은 누굽니까?”
“우리 요리사.”
“예? 고블린을요?”
펠마스는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이었다.
인간 요리사.
이건 그럴듯해 보였다.
엘프 요리사.
이것도 그럴듯해 보였다. 뭔가 고급스러운 요리를 잘할 것 같았다.
오크 요리사.
약간 이상하지만 여기까지도 괜찮았다. 뭔가 좀 양 많고 값싸고 스태미너 많은 요리를 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고블린 요리사라니.
처음 들어보는 단어!
“왜. 고블린 요리사는 있으면 안 돼? 너 고블린 무시하냐?”
스타우는 펠마스를 찌릿 노려보았다. 그 눈빛에 펠마스는 당황했다.
“아, 아니. 고블린 무시하는 게 아니라…….”
“저거 봐, 저거. 고블린 무시하는 거 맞네!”
“펠마스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다.”
졸지에 나쁜 놈이 된 펠마스는 울상을 지었다.
“자. 다 끝난 거 같으니 해적선에 가자고.”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싸울 거야?”
“일단 상인 짐도 다 뺏었으니까 가서 보자고.”
태현은 해적들을 직접 본 다음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강해 보이면 상인들로 위장해서 친한 척을 하고, 약해 보이면 그냥 제압을 하고.
유연하게 결정할 생각이었다.
* * *
“정지! 상인들이냐?”
“예.”
“선장님이 나오길 기다려라.”
“그냥 물건 파는 건데요?”
“원래 선장님께서 직접 확인하고 사신다. 그리고 저 노잡이들도 파는 거니 확인을 해야지.”
“읍읍! 읍읍읍!”
상인 NPC들은 입이 막힌 채로 읍읍거렸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때? 할 만한 거 같냐?”
“세 척이니까 좀 애매하긴 한데…… 음. 해봐도 될 거 같긴 하다.”
태현은 생각에 잠겼다.
그 순간 벼락같은 목소리가 거세게 울렸다.
“이놈!!!!!!”
“……?!”
해적선 갑판 위에서 난 엄청난 목소리! 태현은 깜짝 놀랐다.
설마 속셈이 들켰나?
“이, 이, 이, 이놈……! 감히! 감히!”
“아니.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태현은 재빨리 변명하려고 했다.
‘응? 뭐지?’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해적선 갑판 위에 나온 선장이 태현이 아닌 다른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람은 바로…….
펠마스!
펠마스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당황해하고 있었다.
“내 돈을 떼먹고 내 앞에 나타나? 네 간덩어리가 아주 단단히 부었구나! 내가 네 간을 빼서 먹지 못하면 해적이 아니다!!”
“…….”
“…….”
상황을 깨달은 태현 일행은 펠마스를 쳐다보았다.
저 한심한 놈!
펠마스는 세상에서 가장 애절하고 간절한 눈빛을 태현에게 보냈다.
‘도와주십쇼!’
‘알겠다.’
태현은 펠마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든든함에 펠마스는 감동했다.
“선장님! 제가 감히 선장님을 속이고 달아난 도둑놈을 붙잡아 왔습니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