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553화
그런 펠마스를 태현은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어쩌면 이렇게 비교가 된단 말인가!
물론 태현이 무슨 목숨을 건 절대적 충성을 바라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건 성격에 맞지도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퀘스트 깨러 와서 저렇게 당당하게 말하다니.
“그래. 펠마스. 지능적인 방법이라고?”
“예! 갈락파드 말대로 힘으로 제압하는 건 위험한 방법입니다. 여기 우르크 남쪽 바다의 해적들은 숫자가 많고, 강하며, 악독한 놈들입니다. 그에 비해 우리 숫자는 불과 몇십 명도 안 되는 수준! 힘으로 제압하려다가 역으로 제압당할 수도 있습니다. 아주 멍청한 제안입니다!”
펠마스는 그렇게 말하며 갈락파드를 쳐다보았다.
방법의 장단점을 말하며 갈락파드를 공격하는 펠마스!
그러나 그가 한 가지 놓치고 있는 게 있었다.
“제안은 내가 했는데.”
“……아, 아차!”
갈락파드는 더 이상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잡아라. 저놈에게 따끔한 벌을 내려야겠다.”
“아, 안 돼! 태현 님! 태현 님! 갈락파드가 이렇게 멋대로 행동하게 읍읍읍!”
펠마스가 두들겨 맞는 동안, 태현은 잠깐 생각해 보기로 했다.
목숨이 아까운 펠마스가 주절대기는 했지만 아픈 곳을 찔렸다.
태현 파티의 치명적인 약점.
그건 숫자가 너무 적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태현이 날고뛰어도 숫자가 적으니 한계가 있었다.
원래 이런 해적 부족들을 상대하는 대형 퀘스트는 파티 하나로 깨는 게 아니었다.
대형 길드들이 손을 잡고 도전하거나, 아니면 대대적으로 알려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든가 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둘 다 무리!
‘음. 길드 동맹의 힘을 빌릴 수는 없나?’
평소 미웠던 놈들부터 써먹을 수 없나 생각하는 태현. 마치 병력을 맡겨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어떻게 싸움을 붙일 수는 없나…… 으음…… 지금 휴전 상태라 내가 먼저 선빵을 날리기는 뭐하군.’
양심과 신뢰 때문이 아니라, 지금 휴전 약속을 하고 이득을 보고 있는 건 태현이었다.
물론 지금 길드 동맹도 오스턴 왕국 영지전을 연달아 벌이느라 태현과 싸울 여력이 없긴 했지만(게다가 웬 리치도 갑자기 튀어나왔고), 태현도 길드 동맹과 싸울 시간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괜히 여기서 먼저 싸움을 일으키면 상황은 진흙탕 싸움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영지 투기장은 완성되는 거 보고 싸우고 싶은데.’
싸움을 일으켰다가는 정말 투기장을 영원히 보지도 못할 것 같은 두려움!
그렇게 태현이 누구의 힘을 이용할까 고민하는 사이, 누군가 나타났다.
“여기서 뭐 하는 짓들이냐! 이놈들!”
“……?!”
갑자기 나타난 NPC들!
태현은 황당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니, 너희, 주변 제대로 안 보냐?”
“미, 미안. 펠마스 두들겨 맞는 거 구경하느라…….”
케인과 최상윤은 멋쩍은 듯이 고개를 긁적거렸다.
펠마스가 너무 찰지게 두들겨 맞고 있었던 것이다.
판온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모습!
“움직이지 마라. 수상쩍은 놈들이군!”
나타난 NPC들은 상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판온을 돌아다니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유랑상인들.
이다비도 그들의 정체를 금세 알아봤다. 태현은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이런 곳까지 오나?”
“해적들도 아이템은 사고팔 테니까 충분히 올 만하죠?”
“이봐! 뭘 수군거리는 건가! 정체를 밝혀라! 설마 강도는 아니겠지!”
상인 NPC들은 태현 일행을 불안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확실히 수상쩍은 구성이기는 했다.
이럴 때 잘못 대응하면 바로 싸움으로 이어졌다. 판온 NPC들은 이런 부분에서 현실적이었다.
그렇지만 태현은 걱정하지 않았다.
화술 스킬 고급!
태현이 뒤에 산적들 떼거리를 데리고 왔어도 ‘하하 이 친구들은 산적이 아니라 산적처럼 위장한 왕국군 특수부대입니다’라고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수준!
[고급 화술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
“……그래서 저희는 수상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렇군. 의심해서 미안하네.”
바로 의심을 푸는 상인 NPC들. 그들은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의심한 것도 미안한데, 해적들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주겠네.”
“해적들을 만날 수 있는 곳 말입니까?”
“하하. 정확히는 해적들이 자주 찾아오는 마을이지. 해적들 소굴이라고 봐도 좋을 걸세.”
* * *
처음 보는 상인들과 친해져서 길까지 안내받는 모습에 이다비는 다시 한번 감탄했다.
“언제 봐도 신기해요.”
“상인 직업들은 화술 스킬 안 찍나?”
“있으면 좋긴 한데, 솔직히 화술 스킬보다 먼저 올려야 할 스킬들이 많아서…….”
그리고 화술 스킬은 올리기도 힘들었다.
태현처럼 어마어마한 퀘스트를 다 화술 스킬로 해결 보는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올리는 거 자체가 엄청나게 어려운 것이다.
“자. 저기일세.”
숲 사이 좁은 길을 지나, 언덕을 올라가자 상인 NPC들은 해안가의 작은 마을 하나를 가리켰다.
딱히 해적들의 소굴처럼 보이는 것 없이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뭐야. 해적들은 없나?”
“저기 해적선 있잖아.”
“……!”
케인은 태현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평화로운 마을 근처에 해적선 세 척이 정박되어 있는 게 보였다.
[<붉은 마다 해적 마을>을 발견했습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붉은 바다 해적 마을>은 붉은 바다 해적들의 세력권에 있습니다. 마을에서 소란을 일으킬 경우 해적들의 적이 될 수 있으니 주의하십시오.]
해적들도 계속 바다 위를 떠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당연히 내려서 쉴 곳이 필요했다.
해적단의 소굴이나 본거지는 물론이고 이런 해적들의 세력에 있는 마을도 그런 곳에 속했다.
해적들의 보호를 받으며 지내는 마을! 상인 NPC들은 그런 마을에 가서 장사를 하는 게 분명했다.
그걸 깨달은 이다비는 눈빛을 빛냈다.
“여기 아직 다른 상인 플레이어들한테는 공개 안 된 마을 같은데. 루트 열어놔야겠네요.”
“그러려면 저 상인 NPC들은 제거하는 게 좋겠는데.”
“…….”
“…….”
방금까지 길을 안내해 준 착한 상인 NPC를 제거한다는 말에 케인은 어이가 없었다.
저 사악한 사기꾼들!
“야! 너무하잖아! 길을 안내해 주셨는데!”
“상인들의 세계는 냉정한 거야. 케인. 독점과 비독점의 차이가 얼마나 나는데. 그리고 감사의 뜻으로 죽이지는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화술 스킬로 마을에서 쫓아만 내야지.”
태현의 능력이라면 상인 NPC들을 마을에서 쫓아낼 수 있었다.
-저놈! 저놈 해군의 앞잡이다!
이런 반응을 만들어내는 것도 순식간!
“다 왔네. 허허.”
뒤에서 그런 사악한 대화가 오가는 것도 모르고 상인 NPC들은 웃으며 멈췄다.
그러자 마을 입구 앞에서 해적들이 달려왔다.
“왔냐? 물건은 갖고 왔겠지?”
“너희들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겠군. 빨리 물건 내놔라. 출항해야 하니까. 어? 저놈들은 뭐 하는 놈들이지?”
해적들은 태현 일행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케인은 상인 NPC를 보며 눈짓했다.
-착한 상인 NPC님! 저희를 잘 소개해 주세요!
“하하. 해적님들한테 팔 노예들입니다. 튼튼하니 노 하나는 잘 저을 겁니다!”
“…….”
“…….”
갑자기 싸늘해지는 분위기. 케인은 귀를 의심했다.
“아, 아니. 상인님들. 지금…… 잘못 말한 거죠?”
“미안하네. 자네들이 수상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건 알겠지만 그건 그거고 장사는 장사지.”
“캬. 상인의 귀감이네.”
“정말 진정한 상인이시네요!”
옆에서 듣고 있던 태현과 이다비는 감탄했다. 그러나 케인은 감탄할 여유가 없었다.
“아니, 어떻게 사람이 그래!! 이 김태현 같은 자식들!”
“야.”
“아, 아차.”
상인 NPC들은 더 이상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해적들에게 말했다.
“아이고, 해적님들. 저놈들 데리고 가십시오. 더 이상…….”
“흑흑아. 물어. 쉿쉿!”
콰르릉!
말하자마자 태현의 뒤에서 흑흑이가 튀어나왔다.
덩치를 키운 흑흑이는 순식간에 저주 마법을 연속으로 퍼부어 상인 NPC들을 제압했다.
“으아아아?!”
“으허헉!”
[<붉은 마다 해적 마을>에서 소란을 일으킬 경우 해적들의 적이 될 수 있습니다!]
경고 메시지창이 떴지만 태현은 무시했다.
알 게 뭐냐! 일단 응징부터 하고 보자!
-주인님. 저는 펫이 아닙니다만…….
“시끄럽고 빨리 제압해라.”
상인 NPC들도 용병들을 데리고 있었지만 태현 일행의 어마어마한 스펙에 비해 밀릴 수밖에 없었다.
전력으로만 보면 어지간한 보스 몬스터 하나 정도는 잡을 수 있는 전력!
콰콰쾅!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너희들을 믿었는데!”
“아, 아니, 모험가님 저희가…….”
“닥쳐!”
케인은 울부짖으며 상인 NPC들을 모조리 제압했다.
차차창-
“뭐냐. 너희들은!”
상인 NPC들의 제압이 끝나자, 해적들은 태현 일행에게 무기를 겨눴다.
명백히 경계하는 모습!
상인 NPC들은 얼굴을 아는 모습이고, 태현 일행은 처음 보는 이들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일행은 모두 태현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하지?
“전부 죽여서 아키서스의 위엄을 알려줍시다, 태현 님!”
“시끄럽다. 갈락파드. 흠흠. 해적님들. 오해하지 말아주십시오. 저희들도 상인입니다.”
“뭐라고?”
“여기 보십시오. 상인이잖습니까.”
“…….”
이다비를 앞에 내세우는 태현!
“저희들도 이놈들처럼 장사하러 여기 왔습니다. 그리고 덤으로 이놈들을 노잡이로 팔고요.”
케인은 옆에서 입을 떡 벌렸다.
사기 치려고 한 놈들에게 사기를 치다니!
“아, 아니! 모험가님들! 저희가 잘못했…….”
“쟤네 입 다물게 해라, 갈락파드.”
“예!”
상인들을 닥치게 만든 후 태현은 은근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해적님들. 저희들과 거래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저희들과 싸우는 것보다는…….”
“으음…… 으음…….”
[고급 화술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방금 전 압도적인 전투를 보여줬습니다.]
[…….]
“좋다! 거래를 허락하도록 하지. 하지만 내가 감시할 테니 마을 내에서 소란은 일으키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하하!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해적들이 물러난 다음, 이다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태현 님. 해적들한테 장사할 아이템은 어디서 챙기시게요? 지금 그런 아이템들은 안 갖고 왔잖아요.”
“얘네들 거 뺏어서 팔지, 뭐.”
“그런 좋은 아이디어가……!”
“하하. 쑥스럽게 뭘.”
“태현 님은 장사의 천재예요!”
“나는 그저 기본을 잊지 않는 것뿐이지.”
둘이 떠드는 동안 나머지 일행은 못 들은 척했다.
* * *
“재미없어.”
“이런 곳은 원래 상인 직업들이나 좋아하는 곳이긴 하지…….”
투덜거리는 케인을 최상윤이 달랬다.
마을에 뭐 쓸만한 아이템이 없었던 것이다. 다 흔하고 평범한 아이템들이었다.
플레이어들에게 발견 안 된 곳이니 특별한 장비 같은 걸 기대했는데!
“희귀한 아이템이 가끔 나오긴 하는데 그건 운이니까 어쩔 수 없지.”
“크흑…….”
그러거나 말거나 이다비는 신이 나서 상인으로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이거, 이거, 이거 사서 가방에 다 넣어놔. 갖고 가서 팔아야겠다.”
“이 약초도 가격이 싼데 살까요?”
“그건 갖고 가서 팔 만큼 이익이 안 남을 거야. 넘어가자.”
[<붉은 마다 해적 마을>에서 영향력이 높아집니다.]
[마을 주민들이 당신의 얼굴을 기억합니다.]
상인 직업은 이런 미개척 마을을 찾아 거래를 할 경우 이득이 엄청났다.
골드도 골드지만 경험치까지!
그러는 동안 태현은 상인 NPC들을 데리고 돌아다녔다.
“여기는 뭐 없냐?”
“없, 없습니다. 그보다 모험가님. 저희를 풀어주시면…….”
“저희를 풀어주시면 뭐? 응? 노잡이로 팔아넘긴다고?”
마을에서 뜯어먹을 게 없나 찾아보는 태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