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551화
“내가 고쳐주마. 펠마스.”
꾀병을 부리는 펠마스를 보며, 갈락파드는 자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같은 아키서스를 믿는 이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끈끈한 우정!
“갈락파드……!”
“펠마스……!”
“……그걸 믿으라고?”
“저놈을 잡아라!”
바로 돌변하는 둘의 태도!
갈락파드가 외치자, 평소에 갈락파드가 데리고 다니는 로브 입은 괴인들이 호다닥 달려들었다.
그들은 재빨리 펠마스의 사지를 붙잡고 쓰러뜨렸다.
“이거 놔라! 이거 놔! 갈락파드! 이놈! 어디서 위대하신 태현 님 앞에서 이런 짓이냐! 반역이라도 저지를 셈이냐!”
“시끄럽다. 닥쳐라.”
갈락파드는 지팡이로 펠마스의 얼굴을 찰지게 후려갈겼다.
퍽!
경쾌하고 둔탁한 소리. 태현은 감탄했다. 사람을 한두 번 패봐서는 저런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커헉!”
“자, 내가 네 병을 고쳐주마!”
“으악! 크악! 커헉!”
퍽! 퍽! 퍽!
굳이 마법을 쓰지 않고 지팡이로 두들겨 패는 갈락파드!
“나았느냐!”
“나, 나았다! 나았다고!”
“아직 안 나은 거 같구나!”
“아냐! 진짜로 다 나았어! 보라고! 엄청 쌩쌩하잖아!”
“아니다! 너는 아직 낫지 않았다! 나는 알 수 있다. 네 마음속에는 아직 사악한 것이 남아 있어!”
“뭔 개소리 컥! 크악! 그만 패라고! 다 늙어서 뭐 이리 힘이 좋아!”
태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지켜보았다.
이게 아키서스 교단 고위 NPC들이라니!
“됐다. 그만해라. 갈락파드.”
“예. 태현 님.”
“그래. 펠마스. 병은 좀 나은 거 같으냐?”
“다…… 나았습니다……!”
“그래, 그래. 그러면 같이 갈 수 있겠지?”
갈락파드를 데리고 가면 펠마스가 날뛸 게 분명했다.
한쪽을 데리고 갈 거면 둘 다 데리고 가야 한다!
‘무슨 양, 늑대, 양배추를 데리고 강을 건너는 옛날이야기도 아니고 이런 걸 신경 써야 하나?’
“하지만 태현 님! 제가 가버리면 영지는 누가 관리하겠습니까? 아, 아니. 제가 꼭 가기 싫다는 건 아니고요.”
갈락파드가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자 펠마스는 변명부터 했다.
“맥크레니 상단 NPC들한테 맡길 거다.”
영지를 돕고 있는 아탈리 왕국의 맥크레니 상단!
갈락파드나 펠마스처럼 과감한 결정은 내리지 못하지만, 현상 유지는 기막히게 잘할 것이다.
그리고 태현이 바라는 게 바로 그거였다.
제발 어디 갔다 오는 동안 사고 좀 치지 마라!!
* * *
땅, 땅, 땅-
태현은 눈빛을 빛내며 망치를 두드렸다.
아키서스 아티팩트 제작을 위한 압도적인 집중!
“야, 안 쉬냐?”
“먼저 나가라.”
원래 태현은 규칙적으로 운동-게임-운동-게임을 돌리는 사람이었다.
-게임도 몸 망가지면 못한다!
그러나 몇몇 상황은 예외였다.
그중 하나가 대박 아이템 제작!
원래 명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몇 날 며칠 밤새우는 것 정도는 기본이었다.
캡슐에서 나와서 한숨 잔 케인은 아직도 캡슐에서 나오지 않는 태현을 보고 경악했다.
“얘 진짜 안 쉬냐!?”
“뭐. 태현이? 쟤 원래 저러잖아. 내버려 둬. 체력 좋아서 며칠 정도는 저래도 돼.”
최상윤은 판온 1때 태현이 저러는 걸 몇 번 봐서 그런지 태연했다.
정수혁도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캡슐을 쳐다보았다.
둘 다 걱정하자 최상윤은 다시 설명했다.
“야, 저건 별것도 아니야. 판온 1때는 어땠냐면…….”
“안녕하세요!”
“앗. 안녕하세요. 어서 오시죠.”
이다비가 들어오자 모두 반갑게 인사했다.
“태현 님은요?”
“캡슐 안에 있는데?”
“일찍 들어가셨네요.”
“아냐. 안 나온 거야.”
“…….”
이다비가 놀라는 동안 최상윤은 설명을 이어갔다.
“어떤 길드랑 싸움이 한 번 붙었는데, 그때 그쪽 길드가 너무 숫자가 많으니까 거기 길드가 점령한 던전에 들어가서 버티기를 시작했어. 거기 던전이 엄청 큰 던전이어서 길드가 뽑는 수익이 어마어마했거든. 길드 입장에서는 어떻게 뚫어야 하니까 계속 들어가려고 하는데, 태현이는 입구부터 닥치는 대로 함정 깔면서 오는 족족 죽여 버렸고.”
케인과 정수혁은 눈빛을 빛내며 태현의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태현이 판온 1에서 했던 것들은 유명했지만, 직접 아는 사람한테서 듣는 생생한 이야기는 질적으로 달랐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길드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인 거지. 한 명이 저렇게 알박기를 했는데 못 뚫으니까. 그래서 누가 아이디어를 낸 거야. 한 명씩 교대로 들어가면서 시간을 끌자고.”
“……??”
“태현이는 혼자니까 언젠가는 로그아웃하고 쉴 거 아니야. 그때 던전 안으로 들어가서 재접속할 경우 앞뒤로 포위하려고 한 거지.”
“아아, 그렇군요!”
“물론 태현이는 그걸 간단하게 깨뜨렸다.”
“어떻게 말입니까?”
“그냥 안 자고 계속 버텼지.”
“…….”
생각지도 못한 무식한 방법!
“들어오는 길드원들 공격하고, 잠깐 숨어서 ‘어? 이 자식 로그아웃했나?’ 싶게 만든 다음 공격하고, ‘야 안 되겠다 잠깐 쉬자’ 하면 나와서 폭탄 던지고 다시 들어가고…….”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의 얼굴은 점점 질려갔다.
“나중에는 길드 쪽에서 그냥 골드 주면서 나가달라고 빌던데?”
“왜 그렇게 다들 원한이 심한지 알겠다.”
“뭘 이 정도를 가지고. 다른 거 들으면 더 기겁을 할 거다. 이른바 <길드장 인간폭탄 협박 사건>인데, 이건 공개도 안 됐어. 거기 길드가 쪽팔리다고 통제해서 영상 안 올렸거든. 거기 랭커가 지금 판온2 랭커 중 한 명이었는데 누구였더라…….”
이름부터 수상쩍은 사건!
그러나 최상윤은 다 말하지 못했다. 캡슐을 열고 태현이 나온 것이다.
“……!”
벌컥벌컥벌컥-
캡슐을 열고 나온 태현은 물을 1.5L 페트병째로 들이키더니, 밖에 모인 사람들을 보고 손 한 번 흔들고 다시 캡슐로 들어가려고 했다.
“야! 야!”
“좀 쉬세요!”
“안 돼. 지금 잠깐 광석 녹이는 시간이라 쉬러 온 거야. 다시 들어간다.”
“뭘 그렇게까지 해서 만드는 거예요! 저번에 그 선물이라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을 거예요!”
“무슨 소리야. 선물이라면 정성을 다해야지.”
말이야 맞는 말!
이다비는 할 말이 없었다.
“그, 그렇지만 너무 무리하면…….”
“난 무리 안 해. 멀쩡하다고. 솔직히 여기서 몇 날 며칠은 더 셀 수 있는데.”
“받는 상대방이 슬퍼할지도…….”
말해놓고도 이다비는 설득력이 없다는 걸 느꼈다. 그러나 태현은 살짝 흔들렸다.
“아, 아니. 안 그럴걸. 아마.”
“대체 누구 주시려고 그러는데요?”
결국 이다비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상대를 알고 싶지 않았지만 호기심이 이긴 것이다.
그러나 태현은 곤란한 얼굴로 피했다.
“그건 대답하기 조금 그런데…….”
“설, 설마……!”
이다비는 무언가 깨달았다. 뭐든 간에 당당하게 대답하던 태현이 대답하지 못한다니.
‘케인 씨?!’
생각해 보니 그 갑옷도 엄청나게 투박하게 생긴 게 딱 탱커용 같았다.
“응? 나 왜 쳐다봐?”
‘아, 아니. 여자라고 했으니까…….’
“……??”
케인은 왜 쳐다보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다비는 혼란스러운 생각을 정리했다.
‘그런데 진짜 케인 씨 말고 받을 사람 없지 않나?!’
“내, 내가 뭐 잘못했나? 이다비. 내가 저번에 <파워 워리어> 길드 욕한 건 진심으로 욕한 게 아니라 걔네들이 날 별명으로 써서…….”
이다비가 말이 없자 케인은 주절주절 변명을 시작했다.
* * *
[<아키서스 비전의 성스러운 갑옷> 아티팩트가 완성되었습니다.]
[신성이 소모됩니다.]
[행운이 소모됩니다.]
[……]
[대장장이 기술 스킬, 기계공학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아키서스 비전의 성스러운 갑옷:
내구력 800/800, 물리 방어력 300, 마법 방어력 300.
스킬 ‘아키서스의 비전 가호’ 사용 가능, 스킬 ‘아키서스의 비전 축복’ 사용 가능, 스킬 ‘아키서스의 성스러운 힘’ 사용 가능, 스킬 ‘아키서스의 축복받은 도주’ 사용 가능, 피격 시 스킬 ‘아키서스의 마법’ 발동.
‘아키서스의 화신’이 주위에 있을 시 행운 대폭 상승, 명중률 대폭 상승, 회피력 대폭 상승, 물리 저항력 25% 상승, 마법 저항력 25% 상승.
아키서스의 화신이 신성력을 불어넣어 만든 갑옷이다. 단순히 신성력만 있는 성물이 아닌, 대장장이 기술로 봐도 어마어마한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아키서스의 화신이 주변에 있다면 갑옷의 성능이 엄청나게 올라간다.
파아아아아아앗!
엄청난 빛이 하늘로 솟구쳤다.
[교단의 명성이 올라갑니다.]
[아키서스 교단의 아티팩트가 만들어졌다는 소식이 대륙의 각 교단으로 전해집니다.]
‘전의 아티팩트는 안 나온 거 보면, 퀄리티 차이가 심해서 그런가?’
태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오오…… 태현 님……! 이것이 드디어……! 이 갈락파드, 눈물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이걸 교단 본 신전에 전시해 놓고 오는 신도들에게 보여줘야…….”
“아니, 쓸 건데.”
“그런! 태현 님께서 쓰신다면 어쩔 수 없겠군요. 이 갈락파드…….”
“아니, 선물할 건데.”
“그런!!!”
갈락파드의 비통한 외침은 무시하고, 태현은 성능을 확인했다.
갖고 있던 금속들과 보석들을 쏟아부은 보람이 있었다.
‘오토바이 만들고, 내 검 만들고, 영지 창고는 거의 비었겠군. 새로 채워 넣어야겠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오리하르콘이나 아다만티움 같은 특별한 금속을 원했다.
대장장이들의 꿈만 같은 금속!
오리하르콘이나 아다만티움 같은 금속을 아주 조금만 섞어 넣어도 아이템의 퀄리티가 달라졌다.
게다가 태현 같은 경우는 오리하르콘 석궁에 쓸 화살도 필요했고.
그렇지만 이런 건 쉽게 구할 수 없었다.
‘깡스탯도 훌륭하고. 옵션도 강력하다. 내가 근처에 있을 때만 추가로 발동된다는 게 아쉽지만 그걸 감안해도 충분히 좋아.’
만약 태현이 없을 때도 추가 옵션이 발동된다면 거의 사기 아이템이라고 봐야 할 정도!
‘달려 있는 스킬들은…….’
<아키서스의 비전 가호>는 액티브 스킬로, 사용할 경우 각종 상태 이상을 제거하고 회피력을 올려주는 스킬. <아키서스의 비전 축복>도 액티브 스킬로 비슷한 축복 버프 계열이었다.
특히 <아키서스의 성스러운 힘>이 좋았는데, 패시브 스킬로 공격을 맞을 경우 일정량의 HP를 흡수하는 스킬이었다.
<아키서스의 축복받은 도주>는 이름 그대로의 스킬이었고…….
거의 이 정도면 걸어 다니는 요새나 다름없는 수준!
‘근데 피격 시 스킬 <아키서스의 마법> 발동은 뭐냐?’
<아키서스의 마법>. 태현도 잘 아는 스킬이었다.
정수혁의 랜덤으로 발동하는 그 마법 아닌가!
그 스킬이 한 대 맞을 때마다 자동으로 발동된다니.
태현은 갑자기 불안해졌다.
다른 옵션들은 다 평범하게 좋았는데 왜 하필 이 옵션만 이렇게 랜덤이야?
태현이야 쓸 자신이 있으니까 불확실하고 랜덤인 아이템을 쓰는 거지, 남한테 이런 걸 추천하는 건 좀 그랬다.
“완성하셨어요?”
“어. 잘 왔다.”
“……?”
이다비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태현은 뿌듯한 얼굴로 갑옷을 내밀었다.
“선물이야.”
“네? 설마 저보고 케인 씨한테…….”
“……?? 케인이 왜 나와?”
“앗, 죄송해요. 아니었군요. 역시…….”
“네 선물이야.”
“……네?”
“내일모레가 네 생일이잖아.”
“그, 그걸 어떻게…… 앗! 얘네들이……!”
“그렇다고 동생들한테 뭐라고 하지는 말고. 기특하잖아. 난 외동이라서 잘 모르는데 형제자매가 그렇게 챙겨주는 건 드문 일이라고.”
[아이템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태현은 아이템을 건넸다. 이다비는 깊숙한 곳에서 감동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태현이 이 아이템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직접 옆에서 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자기는 옆에서 질투나 하고 있었다니.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좋을 정도로 부끄러워……!’
이다비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무슨 선물이 좋을지 몰랐는데 생각보다 판온 아이템 선물이 유행이더라고.”
“그, 그랬나요?”
양심의 고통으로 떨리는 이다비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