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550화 (550/1,826)

§ 나는 될놈이다 550화

태현은 빠르게 충격에서 회복했다. 원래 이런 면에서 오래 충격받지 않는 게 태현이었다.

“그런데 가브리엘, 너는 뭐 안 만드냐?”

“폭탄 말씀이십니까?”

“폭탄 말고.”

“더 큰 폭탄 말하시는 겁니까?”

“…….”

태현은 어이가 없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가브리엘도 실력 있는 기계공학 대장장이니, 폭탄 말고 다른 제작에 몰두해도 충분히 먹힐 것이다.

아니, 사실 좀 그래줬으면 했다.

앞으로 영지를 관리해야 하는데 주야장천 폭탄만 만들어서 대체 어디다 써먹는단 말인가!

영지 주변에 심어놓기라도 할 게 아니라면 뭐라도 좀 쓸 만한 방향으로 돌려야 했다.

“그런 거 말고…… 좀 장비나, 탈것이나, 하다못해 다른 아이템이라도 만들어 보라고. 리더인 네가 자꾸 폭탄만 만드니까 다른 대장장이들도 폭탄만 만드는 거 아냐!”

“으음. 저도 다른 걸 이것저것 만들어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 어떤 거?”

“흔한 대장장이들처럼 무기나 장비 같은 거 말입니다. 그런데 다들 똑같이 이런 걸 만드니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뭔가 다른 걸 해야 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폭탄 같은?”

“하하. 그때는 아직 폭탄을 생각 못 했고…… 이것저것 스킬들을 찾아보고 어떤 것에 특화된 대장장이가 되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태현은 살짝 놀랐다.

가브리엘은 게임 시작부터 ‘히히 폭탄 발싸!’ 하고 외치고 다녔을 줄 알았는데…….

“왜 그렇게 쳐다보시죠?”

“아, 아니야. 아무것도. 계속 말해봐.”

“어쨌든 이것저것 찾아보긴 했는데 영 시원치 않았습니다. 라제단 대장장이라고, 나름 레어한 직업이라 NPC 찾아서 스킬 몇 개 배우긴 했는데 플레이어들은 별로 안 좋아하더라고요.”

보기 드문 스킬이나 직업이라고 꼭 좋은 건 아니었다.

그냥 쓰기 애매하고 안 좋아서 보기 드문 것일 수도 있는 것!

그러나 태현은 놀랐다. 라제단 대장장이라니. 태현이 지금 잘 써먹고 있는 스킬들 아닌가.

<장비 위조>, <장비 강제 착용>, <불안정한 장비 제작>…….

‘음. 생각해 보니 플레이어들이 엄청 싫어하긴 하겠군.’

대장장이 플레이어는 아이템을 만들고 팔아야 성장이 가능한데, 누가 멀쩡한 대장장이를 내버려 두고 라제단 대장장이를 찾아가겠는가.

“게다가 대장장이는 길드 없으면 텃세가 엄청 심해서…… 그렇지만 폭탄을 만나고 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담담하게 이야기하다가 ‘폭탄’ 이야기를 하니 눈빛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가브리엘!

태현은 살짝 뒤로 물러섰다.

“언제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태현 님!”

“그, 그래. 알겠으니까 좀 떨어져 줄래? 그리고 라제단 대장장이 스킬 뭐 있는지 물어봐도 되나?”

태현은 <라제단 대장장이> 직업에 관심이 갔다.

약간 맛이 간 것 같은 스킬 세트들과 대장장이 직업이란 게 태현의 취향!

만약 아키서스의 화신으로 강제 전직을 안 했다면 <라제단 대장장이>로 전직을 고민했을지도 몰랐다.

“<장비 위조>나 <장비 영혼 파괴> 같은 걸 배웠습니다.”

“……<장비 영혼 파괴>?”

이름만 들어도 뭔가 매우 수상쩍은 스킬!

가브리엘은 웃으면서 말했다.

“별로 이상한 스킬은 아닙니다. 그냥 버프 스킬이에요.”

장비 버프 스킬.

제작 말고 대장장이의 밥줄 중 하나였다. 사냥이나 던전에 대장장이를 데리고 가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스킬 때문!

숙련된 대장장이가 걸어주는 장비 버프 스킬은 정말 있고 없고의 차이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태현은 대장장이 기술 스킬, 기계공학 스킬 둘 다 고급을 찍은 것치고는 장비 버프 스킬이 정말 적었다.

기껏해야 무기에 거는 <날카롭게 갈기>, 방어구에 거는 <녹 없애기>가 전부.

대장장이 직업을 고르지 않았기에 기본적인 스킬들만 갖고 있었다.

물론 그 기본적인 스킬들을 엄청나게 갈고 닦아 스킬 레벨이 어마어마하게 높았지만…….

<사디크의 화염 부여> 같은 것도 있었지만 이건 대장장이 스킬이 아니었고.

“장비 버프 스킬? 버프 스킬인데 왜 이름이 <장비 영혼 파괴>지?”

“그야…… 버프 효과는 좋은 대신 장비 내구도가 엄청나게 하락하거든요. 최대 내구도도 내려가는…….”

“……!”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거나, 부작용이 심한 것이 라제단 대장장이의 스킬!

다른 플레이어들이 싫어하는 게 이해가 갔다.

-장비 버프 해드립니다!

-오. 정말로 이만큼이나 버프가 돼?

-예! 대신 내구도가 이만큼 하락합니다!

-…….

그렇지만 태현은 경우가 달랐다.

플레이어 중에서는 드물게 장비를 일회용으로 쓰려는 게 태현!

어차피 일반 아이템을 스킬로 극한까지 강화시켜 쓸 생각이었으니, 이렇게 태현에게 필요한 스킬도 없었다.

“그거 어디서 구할 수 있지?”

“예? 이런 스킬이 필요하십니까? 이거 정말 아무도 안 쓰던데…….”

“다 잘 쓰면 좋은 거지. 그래서 어디서 배웠어?”

“잠깐만요…… 여기 어딘가 스킬북이 있을 텐데…….”

“스킬북이 있어?!”

태현은 깜짝 놀랐다.

판온에서 스킬을 배우려면 퀘스트를 깨야 했다. 직업 퀘스트든 일반 퀘스트든.

그리고 그런 퀘스트로 얻는 보상들은 대부분 본인 혼자만 사용 가능한 게 보통이었다.

저렇게 모든 사람들이 쓸 수 있는 스킬북이 있는 스킬들은 거의 평범한 일반 스킬들!

‘라제단 대장장이 직업 스킬이 뭐 일반 스킬인가?’

“네. 애초에 라제단 대장장이 스킬들 배운 이유가 NPC한테 돈만 주면 스킬북을 팔아서였습니다.”

“……그, 그래.”

“아. 여기 있습니다! 이거 배우고서 효과 좋으면 다른 대장장이들한테 비싸게 팔려고 몇 권 더 사놨는데…….”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태현 님이 받아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지요!”

“고마워. 잘 쓰지.”

“태현 님. 아까 말씀드렸지만 감사드리고 있는 건 진심입니다. 저뿐 아니라 다른 대장장이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가브리엘은 진지하게 말했다. 그 모습에 태현은 살짝 뭉클했다.

그래, 폭탄에만 집착하는 미친놈들이어도 뭐 어떠냐!

이렇게 그를 따라주는데!

“……그런 의미에서 저희랑 폭탄 한 번 만들지 않으시겠…….”

“스킬은 잘 쓰도록 하마.”

“쳇.”

* * *

<장비 영혼 파괴>

장비의 영혼을 끌어내 파괴시켜 장비의 힘을 극대화시킵니다. 부작용으로 내구도와 최대 내구도가 급격하게 하락합니다.

‘흠. 뭐 괜찮긴 하군.’

태현은 스킬창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스킬은 많을수록 좋다!

어떤 스킬이든 간에 있어서 손해 볼 건 없었다.

‘그 라제단 대장장이 NPC, 어디서 만나볼 수 없나?’

골드만 주면 스킬을 살 수 있다니. 엄청난 기회였다. 태현은 바로 찾아가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그럴 수 없었다.

-떠돌이로 돌아다니는 NPC여서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저도 잘…….

위치가 고정된 NPC가 아니었던 것이다.

‘뭐, 어쩔 수 없지. 이거 얻은 것만으로 만족하자.’

스킬들을 얻을 기회가 더 많으면 좋을 텐데. 태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음 작업으로 넘어갔다.

다음 작업은 혼자 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가브리엘은 도와줄 수 없는 작업.

-아키서스의 아티팩트 제작!

[아키서스의 아티팩트를 제작하기 시작합니다.]

[제작하는데 걸린 시간과 사용한 재료에 따라 아티팩트의 힘이 달라집니다.]

[결과물은 랜덤입니다.]

[신성 스탯이 소모됩니다.]

[행운 스탯이 소모됩니다.]

‘일단 오크들 비밀창고에서 챙겨왔던 광석들하고, 영지에 있는 보석들하고…….’

이곳저곳에서 모아왔던 것들.

보상으로 얻은 것도 있고, 다른 플레이어들에게서 뜯어낸 것도 있고.

그런 아이템들을 태현은 아낌없이 갈아 넣었다.

원래 대박을 노릴 때에는 아껴서는 안 되는 법.

‘외형은…… 이다비 말대로 최대한 투박하게 하는 게 좋겠군!’

쓰는 본인이 그러라고 했으니 태현은 최대한 맞춰 줄 생각이었다.

땅, 땅, 땅-

“그거 뭐 그렇게 묵직하게 생겼냐?”

“디자인이 좀 이상하지 않아?”

케인이나 최상윤은 지나갈 때마다 의아하다는 듯이 물어봤다.

너무 투박하게 생겼던 것이다.

굳이 저렇게 디자인을 할 필요가 있나?

“아이템은 성능이지!”

“아니, 그렇긴 한데…… 디자인도 좋으면 좋잖아?”

“쯧쯧.”

태현은 최상윤을 보며 안쓰럽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자식. 요즘은 이게 유행이다.”

“……?????”

최상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들어보는 유행!

“뭐, 뭔 유행?”

“너도 유행에서 뒤처졌구나.”

태현은 최상윤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가버렸다.

“…….”

왠지 모르게 굴욕적!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유행과는 거리가 먼 태현에게 ‘넌 유행에서 뒤처졌구나’라는 소리를 듣다니!

‘아니, 근데 뭐가 유행이라는 거지?’

* * *

[용광로에서 보석을 녹이고 있습니다.]

[남은 시간-03:00]

아티팩트 제작이라고 계속 붙들려 있는 건 아니었다. 사이사이 시간이 났다.

태현은 그 틈을 타 고블린들한테 받은 제작법을 읽어보기로 했다.

뭔지 궁금하기도 했고.

‘고블린 하면 기계공학이니까, 분명 쓸모없는 걸 주지는 않았겠지!’

-확인.

[<고블린 만능 제작기>의 제작법을 얻었습니다.]

“……!”

이름부터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이름!

만능 제작기라니.

이 무슨……!

태현은 허겁지겁 아이템 설명을 확인했다.

고블린 만능 제작기:

고블린 기계공학의 정수! 설치하고 아무거나 집어넣으면 아무거나 나옵니다!

“……끝?”

그게 다였다.

* * *

‘아, 아니. 그럴 리 없어. 그럴 리가 없어……!’

태현은 현실을 부정하며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을 불러 <고블린 만능 제작기>를 만들었다.

기계공학 스킬이 고급 이상 있어야 만들 수 있는 거지, 재료 자체는 흔하게 구할 수 있는 강철이나 구리 같은 재료들이어서 창고 안에 있는 걸로 만들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러면 한 번 넣어보겠습니다!”

“그래. 넣어봐.”

대장장이 한 명이 철광석을 집어넣었다.

[<평범한 철광석(1)>을 집어넣었습니다.]

[가동 중…….]

[짜잔! <맛있는 치즈(1)>가 나왔습니다.]

“여기 치즈…….”

“진짜 랜덤이냐!!!”

울컥한 태현은 치즈를 집어 던졌다. 옆에 있던 케인은 치즈를 머리에 얻어맞았다.

“후…… 그래. 공짜로 얻은 것에 그렇게 많은 걸 바라면 도둑놈이지.”

“에드안 부르셨습니까?”

“아냐. 갈락파드. 에드안 부른 거 아니야.”

하도 ‘고대의 비법’이라고 해서 기대를 한 것이지, 얻은 건 공짜로 얻은 것이다.

실망할 것도 없었다.

“쯧…… 이거 영지 가운데에 설치하고 원하는 놈들 마음대로 쓰라고 그래.”

“그래도 됩니까?”

“어. 이건 뭐 써먹기도 애매하고…….”

완전 랜덤으로 나오는 결과물.

이건 태현이라도 통제 자체가 불가능했다.

태현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최대한 빨리 아티팩트 제작 끝내고 해적 부족 전도하러 가야겠다.”

우르크 지역의 오크들은 박살 났고, 남은 건 해적 부족들인 <붉은 바다 무법자 부족>뿐이었다.

다행히 오크들이 없어져서 설득은 훨씬 쉬울 것 같았다.

‘해적들은 뭘 좋아하나? 럼주? 앵무새? 화약? 고블린처럼 쉬우면 편할 텐데.’

“역시 태현 님! 아키서스의 위엄을 대륙의 서쪽부터 동쪽까지 퍼뜨리려고 하는 그 모습에 저는 감격했…….”

갈락파드가 늙은 몸을 떨며 감격하는 모습을 본 태현은 갑자기 불안해졌다.

‘이 자식 혹시 또…….’

“갈락파드. 너도 따라와라.”

뭔가 사고를 치기 전에 미리 예방하려는 속셈!

“예?”

“왜, 싫어?”

“영광입니다!”

갈락파드는 펄쩍 뛰며 기뻐했다.

“교황님의 위대한 원정에 제가 참여하게 되다니! 이 갈락파드, 늙은 몸이지만 목숨을 다해……!”

“어, 뭐야. 갈락파드 밖에 나갑니까?”

지나가던 펠마스가 듣더니 기뻐하며 말했다. 순간 태현과 갈락파드는 시선을 교환했다.

둘은 서로가 무슨 말을 할지 깨달았다.

“펠마스도 데리고 가셔야…….”

“그래. 펠마스. 너도 같이 가자!”

“……저, 저는 갑자기 몸에 탈이…… 크으윽……!”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