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549화
“됐다. 지금은 정보가 필요하니 말해봐라.”
유 회장은 차분하게 말했다.
판온을 처음 시작했을 때 보여줬던 초보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 유 회장도 어엿한 고렙 플레이어!
아니, 갖고 있는 장비들과 비싼 아이템들을 감안한다면 하위권 랭커와도 맞먹을 수 있을지 몰랐다.
그렇게 성장한 유 회장이기에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정보라는 걸!
정보를 갖고 있는 자가 판온에서 승리한다!
괜히 사람들이 비싼 돈 주고 정보를 사고파는 게 아니었다.
“이 근처에는 해적이 없습니다. 어르신.”
“맞아요. 원래 카테란드 해적단이라고 하나 있었는데 김태현 님이 퀘스트 깨면서 날려 버렸잖아요.”
“그거 덕분에 그쪽 어부 플레이어들이랑 해적 플레이어들이 엄청 기뻐했다고 들었었는데.”
가끔씩 출몰해 바다를 돌아다니는 플레이어들을 공격하는 해적단.
플레이어들 입장에서 좋을 리 없었다.
“혹시 브랑송 함대랑 헷갈린 거 아냐?”
“맞아. 이 근처에서 브랑송 함대 보인다던데.”
브랑송. 아탈리 왕국의 3함대를 이끄는 귀족.
태현과도 카테란드 섬 토벌 때 만난 적이 있는 귀족이었다.
그러나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은 단호하게 말했다.
“해적 깃발 달고 있었어요!”
“맞아요!”
“잘못 본 거 아냐?”
“아니라니까요!”
“알겠어. 알겠어. 그렇지만 하나 명심해 둬.”
파워 워리어 길드원, 최민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설사 해적이라고 해도 이 배를 쓰러뜨릴 수는 없어! 플레이어들이 만든 배 중 가장 크고 아름다운 배라고 해도 좋다고! 어중간한 해적 NPC가 보이면 그냥 함선째로 짓밟고 진행해도……!”
“……저게 뭐지?”
“네?”
“저게 뭐냐고 물었는데.”
유 회장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수평선을 가리켰다. 수평선 너머에서 뭔가 많은 것들이 넘실거렸다.
“…….”
“…….”
수십 척이 넘는 대함대!
“저, 저거…….”
“함대다! 어디 함대야?!”
“해, 해적인데?”
“뭐?! 해적이 여기 왜 나타나?! 아탈리 왕국은 뭐하는 건데?!”
플레이어, NPC 가릴 거 없이 동시에 패닉!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은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에게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해적이라도 쓰러뜨릴 수 없다고 하셨잖…….”
“닥쳐! 지금 그게 중요해?! 너희들 때문이야! 너희들이 해적을 몰고 왔어!”
완벽한 소인배의 모습!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의 비난에 플레이어들은 당황했다.
“아, 아니…… 제가 몰고 온 거 아닌데요!”
“시끄러! 너희들을 바치고 살아남겠어!”
둥둥둥둥-
배의 사람들이 혼란에 빠진 사이 해적 대함대는 빠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과 달리 냉정을 잃지 않은 유 회장이 물었다.
“추하게 그만 싸워라!”
“네, 넵!”
“그래서 지금 어떻게 할 건지 말해봐라. 도망칠 수 있겠냐?”
“물론입니다!”
최민수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여기 있는 파워 워리어 길드원 중 가장 발언력이 높은 건 그였다.
개인 방송 <파워 워리어 길드원 최민수가 진행하는 판타지 온라인 믿거나 말거나>로 나름 충성팬이 있는 플레이어!
물론 그 과정에서 태현의 이름값도 한몫했다.
“지금 거리를 보십시오. 어르신! 저놈들이 전속력으로 달려와도 우리는 느긋하게 낮잠 한 번 자고 가도 될 정도의 거리입니다. 게다가 이 배는 플레이어들이 만든 배 중 손꼽히는 속력을…….”
“됐고, 출발이나 시켜라.”
“예!”
어쨌든 안 잡힌다니 잘됐다. 유 회장은 그렇게 생각하며 명령을 내렸다.
그 순간…….
[대해적 갈르두의 함대가 <파도 올라타기> 스킬을 사용합니다.]
콰르릉!
갑자기 근처에 깊은 원이 생기더니, 파도가 올라오면서 같이 해적선 한 척이 올라왔다.
“……?!?!”
바다에서의 거리를 일순간에 좁혀버리는 스킬!
해적 함대라면 이런 스킬이 있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뭐야?!”
“괜, 괜찮습니다! 아직 한 척입니다!”
[대해적 갈르두의 함대가 <파도 올라타기> 스킬을 사용합니다.]
[대해적 갈르두의 함대가 <파도 올라타기> 스킬을 사용합니다.]
콰릉! 콰르릉!
계속해서 생겨나는 해적선들.
“…….”
“…….”
자리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최민수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거 어쩔 거냐는 눈빛!
“괜, 괜찮…… 싸우면 됩니…….”
“넌 그냥 조용히 해라.”
“……네…….”
최민수는 시무룩해져서 조용해졌다. 그걸 본 길드원들은 수군거렸다.
“저거 완전 케인 아니냐?”
* * *
[해적들이 배 위로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이대로 계속해서 지속될 경우 배 상태가 <나포> 상태로 바뀝니다. <나포> 상태에서는 배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습니다.]
“싸울까요?!”
“싸울 자신은 있는 거냐?”
“아니요…….”
“저희는 비전투 공작이 전문이라…… 헤헤…….”
솔직한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유 회장은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됐다, 이것도 판온이지.”
그러는 사이 비서실 직원들이 가까이 다가와서 비장하게 말을 걸었다.
“회장님! 저희가 최선을 다해서 길을 뚫어드리겠습니다! 탈출하십시오!”
“……이, 이게 그렇게까지 비장하게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비서실 직원들의 눈빛은 뜨겁게 타올랐다.
-반드시 이번 기회에 회장님에게 눈도장을 찍히고 말겠다!!!
너무 투명하게 보이는 속마음!
유 회장은 혀를 차며 말했다.
“여기서 도망을 치면 어디로 치라는 거냐? 헤엄이라도 치라는 거냐? 배 타고 가봤자 잡히기만 할 것 같은데.”
“저희가 목숨을 걸고!”
“아. 시끄럽다.”
“네…… 죄송합니다…….”
[파티 상태가 <포로>로 바뀝니다.]
[<포로> 상태에서는 마음대로…….]
-크하핫! 이 배는 우리가 점령했다!
해적들이 시끄럽게 떠들며 갑판 위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걸 본 플레이어들은 분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배인데!
-여기 창고에는 뭐가 있을…… 아니, 왜 물고기들이랑 낚시용 미끼밖에 없어?! 이런 배에! 너희 거지냐!
“낚시하러 왔으니까 그렇지!”
-낚시하러 이런 배를 끌고 오는 놈들이 어디 있냐!
-쉿! 조용히 해! 갈르두 님 오신다!
-허어억!
떠들던 해적들은 갑자기 움찔하더니 자세를 딱 바로잡고 멈췄다.
쿵-
“……!”
대해적 갈르두가 나타났다.
[대해적 갈르두가 나타났습니다.]
[저항에 실패합니다. 공포 상태에 빠집니다.]
[대해적 갈르두를 직접 마주했습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이 이야기를 해안 도시에 전하면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
오금이 저리는 보스 몬스터, 갈르두!
플레이어들도 모두 능력치가 내려가는 걸 보면서 벌벌 떨었다.
공포 면역인 태현이나 이런 보스 몬스터 앞에서 멀쩡했지, 보통 페널티를 안고 시작했다.
-너희는 뭐하는 놈들이냐?
“저, 저희는 선량한 낚시꾼들입니다! 갈르두 님!”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잽싸게 엎드리며 말했다.
비서실 직원들과는 차원이 다른 생존 본능!
자존심 따위는 애초에 배에 싣지 않은 그들이었다.
-낚시꾼 놈들이 이런 배를 끌고 와?
“좀 더 크게 낚으려고 했습니다! 보십시오! 배에 낚시꾼 아이템들밖에 없습니다! 아이고! 갈르두 님! 위대한 갈르두 님을 이렇게 뵙게 되어서 정말로 기쁘기 그지없…….”
-시끄럽다!
“……넵.”
-뭐라도 있을 줄 알고 잡았는데 쓴 마력이 아깝군.
갈르두는 혀를 찼다.
하도 배가 있어 보이길래 일단 잡고 봤는데, 잡고 보니 든 건 별로 없었다.
-좋다. 해군이면 죽였겠지만 아니라니 살려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역시 갈르두 님이야!”
-선택지를 주마. 아이템을 다 벗고 저기로 나가거나, 아니면 내 밑에 들어와라.
“저기…… 라면?”
갈르두는 턱 끝으로 바다를 가리켰다.
그러니까 장비 다 벗고 헤엄쳐서 육지까지 가라는 뜻!
“…….”
“…….”
“……언제나 해적이 되고 싶었습니다!”
갑자기 돌아가는 대화에 유 회장이 당황해서 귓속말로 물었다.
-이래도 되는 건가?
-이럴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장비 다 벗고 갈 수는 없잖아요!
-장비야 뭐 새로 사면 되지 않나?
-……너무 아깝잖습니까!
차원이 다른 유 회장의 금전 감각!
그렇지만 유 회장은 일단 플레이어들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궁금했기도 했던 것이다.
과연 이 해적 놈은 왜 나타난 걸까?
‘그러고 보니 예전에 남쪽 대륙으로 건너갈 때도 한 번 이놈을 만났었지.’
남쪽 대륙, 프리카 대륙.
투기장을 구경하기 위해 태현과 같이 배를 타고 갔었었다.
그때 갑자기 갈르두가 나타나고, 유 회장이 태현을 수상하게 쳐다보자 ‘하하, 전 저놈과 상관이 없는데요’ 하면서 망루로 올라가 갈르두의 해적 깃발을 쏴버리며 도발했다.
덕분에 그때 강제로 전투 참여하게 됐었는데…….
* * *
희미하게, 멀리서 갈르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놈들이 도망을 치고 있다! 잡아라! 김ㅌ…….
“김ㅌ?”
유 회장은 순간 고개를 돌려 태현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태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했다.
“잘못 들으신 것 같은데요?”
* * *
‘……정말 아무 상관 없는 사이가 맞나? 아닌 것 같은데.’
그때는 도망치느라 정신없어서 넘어갔는데, 유 회장은 갑자기 의심스러워졌다.
쾅!
“……!”
갈르두는 발을 한 번 구르더니 큰 목소리로 외쳤다.
-됐다! 이제 이런 귀찮은 짓은 필요 없다. 우르크 쪽으로 해적 놈들을 데리고 가자!
-와아아아아아!
“해적들을 데리러 간다고?”
“대해적 갈르두가 세력을 더 늘리려고 하나 봐요. 그런데 이상하네요. 갈르두는 에스파 왕국 근처에서 주로 움직이던 해적이고, 우르크 지역은 엄청 먼데…….”
-그 해적들을 이끌고 김태현 백작을 치겠다. 나를 세 번이나 모욕한 빌어먹을 개자식!
“…….”
“…….”
-아참. 너희는 김태현 백작을 아냐, 모르느냐?
“그런 놈 모릅니다!”
“이름만 들어도 엄청 나쁜 놈 같습니다!”
-잘 아는군.
[갈르두의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휴…….”
“우리 정체는 절대 밝히지 말죠.”
“여기서 아키서스 교단 믿는 사람?”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전원이 손을 들었다.
“……절대 무슨 신 믿는지도 말하지 말자!”
괜히 재수 없으면 걸릴 수 있었다.
* * *
“역시 태현 님! 예술과 같은 제작입니다! 여기에 폭탄 달까요?”
“오토바이에 폭탄을 왜 달아!”
유 회장이 들었다면 ‘암살이냐?! 암살이냐!?!?’ 하며 기겁을 했을 소리.
“태현 님. 제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십시오.”
“……말해봐라.”
“폭탄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무조건 좋습니다. 그건…… 상식입니다.”
“…….”
“폭탄이 있으면 안 터뜨려도 되고, 터뜨려도 됩니다. 그렇지만 폭탄이 없으면? 터뜨릴 상황이 닥쳐도 아예 터뜨릴 수가 없는 겁니다. 무조건 넣는 게 좋습니다.”
은근히 그럴듯한 소리!
가브리엘은 옆에서 은근은근하게 계속 속삭였다.
마치 뱀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 소리에 순간 솔깃해 버린 태현은 결국…….
은색으로 칠한 폭발적으로 날아다니는 오토바이:
내구력 2000/2000
스킬 ‘부릉부릉’ 사용 가능, 스킬 ‘폭발 가속’ 사용 가능, 스킬 ‘미쳐 날뛰기’ 사용 가능.
고급 기계공학 스킬이 없을 시 운전에 페널티, 운전 시 낮은 확률로 주변에 폭발을 일으킴.
드워프나 고블린을 상대할 시 친밀도에 막대한 보너스.
기계공학에 도가 튼 대장장이가 만든 뛰어난 탈것이다. 알 수 없는 신성과 행운이 느껴진다.
-붉은 버튼을 누르면 <비장의 자폭> 시전.
“……헉!”
만들고 나서야 태현은 아차 싶었다. 대체 무슨 짓을!
가브리엘은 그러거나 말거나 신이 나서 기뻐할 뿐이었다.
저번에 만든 오토바이 시리즈와 거의 비슷했다. <폭발적으로>가 이름에 들어간 것과, ‘붉은 버튼을 누르면 <비장의 자폭> 시전’ 정도만 차이점일 뿐.
“통제 가능하니까 괜찮겠지. 뭐 어차피 내가 탈 것도 아니고.”
빠르게 회복하는 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