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548화
“……그런데 넌 왜 날 따라오니?”
“무엇이라도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눈빛을 초롱초롱 빛내며 쫓아오는 기계공학 대장장이, 가브리엘!
솔직히 태현도 가브리엘은 무서웠다. 판온 1에서도 이런 미친놈은 흔하지 않았던 것이다.
해맑게 미친놈!
“아니…… 그냥 저기 골렘 가서 너희 친구들이랑 같이…….”
“꼭!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알겠다.”
태현은 입맛을 다셨다.
가브리엘도 이제 나름 대장장이 기술, 기계공학 스킬 양쪽으로 전문화된 대장장이 랭커였다.
맨날 ‘히히 폭탄 만들자 폭탄 발싸!’ 이러고 다녀서 그렇지…….
[옛 고블린 추적 파괴 골렘을 수리합니다.]
[옛 고블린 전투 승리 골렘을 수리합니다.]
[옛 고블린 요새 수호 골렘을 수리합니다.]
“개조할까요?”
“아니.”
“옆에 폭탄 발사구 달아도 될까요?”
“안 돼.”
“자폭 기능은 안 되겠습니까?”
“……그, 그건 넣을까?”
태현도 살짝 흔들리는 마음! 가브리엘은 씩 웃었다.
‘아. 젠장. 괜히 말했…….’
“그럼 지금 넣겠습니다!”
호다닥!
[<옛 고블린 요새 수호 골렘>에 <자폭> 스킬이 추가됩니다.]
“그런데 태현 님. 태현 님은 역시 대단합니다. 이번 우르크 퀘스트 보면서 감동했습니다!”
“뭘 감동까지…… 결국 대족장은 잡지도 못했는데.”
“그래도 충분히 대단하셨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교단에 고블린 부족이 아키서스 믿는다고 떴던데요.”
“어. 이번에 가서 퀘스트 깨서 믿으라고 설득했어.”
태현은 가브리엘의 눈빛이 이상하게 빛난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대답했다.
“고블린이라면 역시 기계공학…… 아닙니까?”
“드, 드워프도 기계공학 잘하잖아.”
“드워프의 기계공학보다는 고블린의 기계공학이 더 좋습니다!”
안정적이고 무난한 드워프의 기계공학 스킬보다는, 뭔가 이상하고 실패 확률 있고 괴상한 결과물이 많은 고블린의 기계공학!
가브리엘은 그런 불확실함이야말로 기계공학의 정수라고 생각했다.
물론 태현은 아니었다.
-기계공학은 그냥 기계공학이지 뭔 불확실의 매력이고 그런 게 있어!
“저도 고블린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아, 아니. 고블린들이 은근히 부끄러움을 잘 타서 보기 힘들지 않을까?”
“저도 나름 고블린들이 좋아할 칭호를 갖고 있습니다! 괜찮을 겁니다!”
“…….”
태현은 왠지 모르게 둘을 만나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우리 하던 수리나 마저 하자고!”
급히 말을 돌리는 태현!
[옛 고블린 추적 파괴 골렘의 수리를 완료했습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오릅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옛 고블린 추적 파괴 골렘>이 <김태현의 추적 파괴 자폭 골렘>으로 변합니다.]
“…….”
이름이 뭔가 변하고 외형도 많이 변했지만 태현은 애써 외면했다.
“좋아. 이 정도면 됐겠지!”
“태현 님! 다음에는 뭘 하실 겁니까?”
“아니, 넌 할 일 없냐? 네 일 해!”
“태현 님을 도와드리는 게 제 일입니다!”
“……이제 무기 만들어서 강화할 생각이었는데…….”
“아, 그래요?”
순식간에 시무룩해지는 가브리엘!
“강화가 뭐 어때서?”
“폭발 안 하잖습니까.”
“…….”
“그렇지만 태현 님의 일이라면 돕겠습니다! 앗. 혹시 폭탄 강화는 안 하나요?”
* * *
[<대충 만들어서 쓸 불안정한 강철검>을 만들었습니다.]
[완벽한 균형! 완벽한 밀도! 경지에 오른 대장장이만이 만들 수 있는 명품입니다.]
[제작법을 널리 알리시겠습니까? 제작법을 널리 알릴 경우 추가로 보너스가 있습니다.]
“뭐하러…… 거절.”
태현은 이제 대충 만들어도 명품을 만들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해있었다.
각종 대장장이 기술 스킬과 함께 아키서스 직업 스킬까지 합쳐지니 어마어마한 시너지 효과가 나오는 것이다.
“태현 님. 이거 불안정해 보이는데 혹시 폭탄을 넣으실 겁니까?”
“아니.”
“그렇다면 폭탄을 넣지 않으시겠습니까?”
“안 넣는다.”
“힝…….”
가브리엘은 무시하고, 태현은 <대충 만들어서 쓸 불안정한 강철검>을 계속해서 만들었다.
“요약해서 <대만불강검>이라고 해야지.”
쓸데없이 강해 보이는 이름!
[<대만불강검>을 만들었…….]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오릅…….]
기본적으로 백 개는 넘게 만들 요량이었다. ‘불안정’ 옵션에, 강화까지 할 생각이었으니 이 정도로도 모자라게 느껴졌다.
무한 반복 작업!
땅, 땅, 땅-
지나가던 케인은 태현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저놈은 질리지도 않나?’
정말 하루종일 자리에 앉아서 망치만 두드릴 수도 있을 것 같은 초연한 모습!
“태현 님. 광석 갖고 왔습니다.”
“어. 앞에 놔줘.”
“태현 님. 화로 세기 올릴까요?”
“어.”
가브리엘은 확실히 입만 다물고 있으면 훌륭한 조수였다. 아니, 오히려 조수로서 과분했다.
태현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끼어들지 않지만, 필요한 재료를 파악해서 만들 때마다 계속해서 옆에다 가져다주는 것이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플레이어만 가능한 것!
“좋아. 이제 강화해 볼까.”
“강화 이펙트도 폭발이면 좋겠…….”
가브리엘은 무시하고 태현은 강화를 시작했다.
꽝! 꽝! 꽝!
[강화를 시도합니다.]
[강화가 성공합니다.]
[<대만불강검>이 <대만불강검(+1)>로 변합니다.]
[……]
[강화가 실패합니다.]
[강화를 시도합니다.]
[……]
<대만불강검>은 평범한 롱소드의 겉모습을 갖고 있었다.
재료가 질 좋은 강철일 뿐, 나머지는 아무것도 넣지 않은 것이다.
애초에 소모품으로 쓰려고 작정한 구성!
태현의 스킬이 워낙 좋아서 겉으로 날카로운 기운이 흐르고 번쩍이긴 했지만, 플레이어들이 보고 ‘어? 저 무기 좀 좋은 무기인가?’ 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아니, 레벨 높으면 좀 좋은 무기 쓸 것이지 왜 저런 상점에서 팔 거 같은 무기를 쓰지?’라는 반응이 나올 것 같은 무기!
그런데 계속해서 강화가 성공하자, 은은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강화 레벨이 높아질수록 강해지는 빛!
겉모습은 평범한데 번쩍번쩍하는 오라를 가지게 된 것이다.
“무슨 직업 스킬이냐?”
옆에서 구경 온 최상윤은 검을 보더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중얼거렸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보면 직업 스킬로 오해하기 딱 좋아 보였다.
[강화를 시도합니다.]
[강화가 성공합니다.]
[<대만불강검(+8)>이 <대만불강검(+9)>로 변합니다.]
-확인.
대충 만들어서 쓸 불안정한 강철검(+9):
내구력 15/15, 물리 공격력 375
공격 속도 100% 증가. 일정 확률로 방어 무시 데미지.
스킬 ‘칼날 폭파’ 사용 가능
행운 제한 500, 대장장이 기술 제한 고급, 기계공학 제한 고급.
경지에 오른 대장장이가 자신 혼자 쓰기 위해 만든 독특한 검이다. 안 그래도 날카로운 검을 강화한 결과 엄청난 공격력을 갖게 되었지만, 내구도는 매우 불안정하다.
“……!”
태현은 눈을 커다랗게 떴다.
물리 공격력 375! +9까지 강화를 한 보람이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에다오르의 대검보다 단순 공격력은 높았다.
물론 에다오르의 대검은 각종 속성 스탯과 스킬들이 붙어 있어서 비교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강철과 강화석만으로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박이었다.
일회용 무기를 바꿔가면서 사용하려는 태현의 계획이 차츰 가닥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스킬이 <칼날 폭파>인 게 아쉽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아이템 만들었을 때 나오는 스킬은 태현이 고를 수가 없었다.
한 번 쓰면 칼이 박살 나는 스킬!
‘내구력이 15. 생각보다 훨씬 낮긴 하지만……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쓸 거니까.’
평소에는 에다오르의 대검이나 유성을 꺼내서 쓰고, 정말 폭딜이 필요할 때마다 이 칼들을 꺼내 쓸 생각이었다.
태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성공이라고 볼 수 있었다.
스킬이 아쉬웠지만 깡스탯이 워낙 좋았고, 게다가 공격 속도 증가 옵션과 일정 확률로 방어 무시 데미지가 들어간다는 게 어마어마했다.
저 두 옵션은 경매장에서도 손꼽히는 옵션 아닌가!
원래 아이템에서는 없는 옵션이지만 강화가 +9까지 도착하자 추가로 옵션이 나왔다.
착착착-
태현은 강화를 마친 <대만불강검>을 차곡차곡 가방에 넣었다.
‘이제 다음은…… 아. 이다비 생일선물로 줄 갑옷이나 만들어봐야지.’
평소 언제나 고생하는 이다비에게 그냥 갑옷을 줄 생각은 없었다.
<아키서스의 아티팩트 제작>.
직업 스킬을 써서 갑옷을 만들어줄 생각이었다.
‘상인 직업한테 좋은 건 뭐려나? 회피, 방어, 도주 기능 정도려나…… 아. 아티팩트 제작하면 한동안 못 움직일 테니 다른 것부터 먼저 해야겠다.’
이다비에게 줄 갑옷도 있고, 고블린들에게서 받은 아이템 제작서도 있지만…….
태현은 일단 탈것을 하나 추가로 만들 계획이었다.
유 회장에게 줄 오토바이!
‘저번에 그렇게 신세를 졌으니 이 정도는 해드려야지. 싸게 먹히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갑자기 궁금해졌다.
요즘 유 회장은 뭘 하고 있지?
* * *
“후우우…….”
유 회장은 눈을 감고 거대한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지금 유 회장은 거대한 대형선 <유성호>에 타고 있었다.
물론 현질로 지른 배였다.
목수 플레이어들이 만든 대형선 중 손꼽히는 배였지만, 유 회장의 현질 공격에는 버티지 못했다.
-이건 저희가 만든 배입니다! 팔 생각이 없어요! 이건 저희들의 우정이 담긴…… 이, 이만큼을 주신다고요? 정말로? 팔겠습니다!
거절하기에는 너무 많은 돈이었다.
유 회장은 그 배에 타 판온의 바다를 천천히 여행하고 있었다.
배 위에는 골드로 고용한 용병 NPC들과 비서실 직원들, 그리고 유 회장을 따라다니기 시작한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있었다.
“후우우우우…….”
아, 이렇게 평화롭고 고요한 것을!
유 회장은 분노와 증오가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래. 김태현 그놈에게 쓸데없이 휘둘렸던 것 같군…….’
유 회장의 뒤통수를 매콤하게 후려치고 게임단을 창설해 버린 태현!
최대한 안 보고 잊으려고 했는데도 태현은 잊을 만하면 유 회장 눈앞에 나타났다.
-회장님. 여기 그 김태현 선수가 이세연 선수와 같이 찍은 화보가…….
꾸기깃!
그러나 그런 분노의 시간도 이제 끝이었다.
이세연도 섭외 성공했고, 좀 있으면 대회에서 태현의 팀에게 호된 맛을 보여줄 것이 분명했다.
그걸 생각하니 원한이 조금 잊혀졌다.
핑-
바다에 드리운 낚싯대가 팽팽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오오!”
“어르신! 파이팅입니다!”
“저희 대기하고 있습니다!”
요리사 복장을 하고 있는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박수를 치며 유 회장을 응원했다.
그들이 응원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유 회장은 돈을 정말 잘 줬다!
“음?”
유 회장은 눈을 가늘게 떴다. 저 바다에서 무언가 플레이어처럼 보이는 게 헤엄을 치고 있었다.
“저게 뭐지?”
“사람 같은데요? 배를 잃어버렸나 봐요.”
“무시하고 가죠? 인생은 냉혹한 법인데.”
이런 면에서는 철저한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그러나 유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기껏 분노와 증오를 가라앉힌 상황.
“구해주러 가자.”
“넵!”
누구 명령이라고 거절하겠는가. 일행은 재빨리 배의 방향을 틀었다.
“헉, 헉헉…… 감사합니다!”
“살았습니다!”
배를 기어오른 플레이어들은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대로 체력이 빠져서 익사하는 줄 알았던 것이다.
“자네들은 왜 여기서 헤엄치고 있나?”
“배가 박살 나서요!”
“배가 박살 나? 어떻게 배를 몰았길래?”
“암초에 박은 게 아니라 해적한테 당해서…….”
“해적?”
“네!”
낚시꾼 플레이어들은 정말 재난이었다고 투덜거렸다.
조각만 한 낚싯배를 이끌고 바다를 돌아다니고 있는데, 웬 해적선이 그들을 치고 지나간 것이다.
“이 근처에 해적이 있었나?”
“네? 없는데요? 카테란드 해적단 해체된 지 오랜데?”
“김태현 님이 그 퀘스트 깼…… 읍읍!”
“야. 조용히 해, 인마. 어르신께서 싫어하시잖아!”
“읍읍읍!”
태현의 이야기만 하면 유 회장의 심기가 불편해진다는 걸 이미 깨달은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