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547화
눈치를 챈 건 이다비였다.
“태현 님. 설마…….”
“아. 미안. 역시 좀 그런가? 파워 워리어도 내부 분위기 있을 텐데 저런 약탈자 플레이어를 넣으면…….”
“……저런 선물을 주시다니! 너무 감동이에요!”
눈물을 글썽거리는 이다비!
태현은 흐뭇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코밑을 쓱 훔치며 태현은 말했다.
“훗. 착각하지 말라고. 딱히 파워 워리어 길드가 예뻐서 주는 건 아니니까.”
“…….”
“…….”
케인과 최상윤은 못 볼 걸 봤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러는 사이 이야기를 끝낸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입을 모아 외쳤다.
“김태현 님! 말해주십시오! 저희는 준비됐습니다!”
“맞아요! 잘 생각해 보니 저희도 가족 같은 길드에 들어가서 가족 같은 길드원들과 함께 플레이를 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습니다!”
옆에서 듣던 케인이 중얼거렸다.
“거기가…… 음…… 가족같긴 하지…….”
‘가족’에서 ‘가’는 이상하게 작게 들렸다.
그래도 미운 정이라고, 예전 길드원이 저렇게 멍청하게 끌려가는 걸 보니 속이 쓰렸다.
“그래? 정말로 그랬나?”
“정말입니다!”
“정말로 정말인가?”
“정말로 정말입니다!”
무슨 광신도처럼 외치던 약탈자 플레이어들!
그러던 그들 중 한 명이 뭔가 이상한 걸 깨달았다.
‘어? 김태현 길마 아니지 않나?’
그러나 정신을 차리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 분위기는 더 이상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
“좋다! 너희들에게 길드 초대를 할 테니 받아라!”
“감사합니다!”
[<파워 워리어>길드에 가입하셨습니다.]
“와! 신난다! <파워 워리어> 길드에 가입했…… 다?”
“……<파워 워리어>……?”
“같, 같은 이름의 길드지? 그렇지?”
뭔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길드의 이름을 본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현실을 부정하려고 했다.
그럴 리가 없어!
“나한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이런 걸로 고마움을 받는 것도 멋없는 짓이니까.”
“태현 님은 너무 착한 거 같아요!”
태현과 이다비의 대화를 듣고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납득할 리 없었다.
“아, 아니. 김태현 이 샊…… 아니, 김태현 님…… 이게 뭡니까?”
“크고 안정적이고 길드에 넣어줬잖아? 길드원들도 가…… 족같고.”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방금 ‘가’와 ‘족’ 사이에 뭔가 거리가 있지 않았나?
“어때. 기쁘지?”
“뭔 개소리야! 누가 이딴 길드에 들어가고 싶댔냐…….”
스르릉-
태현, 케인, 최상윤이 동시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무기를 꺼냈다.
“응? 뭐라고?”
“싫어? 설마 싫은 건 아니지?”
“…….”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가장 잘하는 짓.
무기 뽑고 협박하기!
던전 안 같은 곳에서 아이템 분배 시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무기를 뽑고 은근히 위협을 했다.
-난 널 PVP 할 수 있다!
이렇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죽이는 것보다 이게 더 효과가 좋았다.
페널티도 안 받고 아이템도 챙기고!
그런데 지금 태현 일행이 그걸 역으로 하고 있었다.
너무도 능숙하게!
“싫어?”
“아, 아니요. 싫다는 게 아니라…….”
“좋지? 응? 좋지?”
“좋, 좋습니다…… 크흐윽!”
“으흐흑! 너무 좋습니다!”
울먹이며 감동하는 약탈자 플레이어들! 태현은 그들을 토닥였다.
“녀석들. <파워 워리어>처럼 좋은 길드에는 평생 들어갈 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군. 괜찮아. 괜찮아.”
“개새…… 너무, 감동을 받아서…… 크흑!”
‘나중에 두고 보자!’
‘너만 사라지면 바로 길드에서 나간다!’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속으로 저주를 내뱉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 가지를 잊고 있었다.
태현은 판온 1때부터 아침 점심 저녁으로 약탈자 플레이어들을 먹고 살아왔다는 것을!
그들의 속마음 정도는 뻔히 읽고 있었다.
“설마 내가 이렇게 제안했는데 받고서 나중에 몰래 길드 탈퇴하는 건 아니지? 그러면 난 마음에 너무 상처를 받아서 너희들을 계속 쫓아다닐지도 몰라. 판온 1때처럼 말이야. 내가 그때 상처를 많이 받았었거든.”
“…….”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협박!
약탈자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흔하게 ‘너 죽인 다음 리스폰 지점 찾아가서 또 죽인다!’ 하는 협박이지만, 태현이 하니까 정말 질적으로 다르게 느껴졌다.
“탈퇴 안 할 거지?”
“물론입니다!”
“절대 할 생각 없습니다!”
“아. 만약 한 놈만 탈퇴해도 내 마음이 너무 아파서 연대 책임을 물게 될 거야.”
완전히 쐐기에 쐐기를 추가로 박는 태현!
“…….”
“…….”
더 이상 도망갈 구석이 없다는 걸 깨달은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화살의 방향을 돌렸다.
-어떤 새끼가 김태현 성질 죽었 댔냐?
-너희들도 좋다고 따라와 놓고 내 탓이냐!
아까까지의 팀워크는 사라지고 서로를 물어뜯는 그들!
* * *
“그런데 파워 워리어 길드에 저런 놈들 쓸모 있어?”
“물론이죠! 저희 길드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어요!”
분명 감동적인 말인데 이다비가 하면 다른 의미로 들리는 말!
“게다가 저희 길드에는 전투 직업이 적은 편이거든요. 잘됐네요, 잘됐어!”
“저기, 그런데 말이야…….”
“……?”
“저건 뭐냐?”
빠르게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로 움직인 그들.
케인은 영지 앞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광경을 가리키며 물었다.
“<딸기 위에 크림을 바르고 또 딸기를 올리고 또 크림을 바르고 또 또 딸기를 올린 요리>! 다른 요리사들 요리보다 훨씬 더 사치스럽다고 자부합니다! 드시고 가보세요!”
누가 누가 더 사치스러운 요리를 만드나 경쟁하는 요리사들!
“아. 미안. 너무 배불러서 못 먹겠어. 꺼억!”
하도 많이 먹어서 더 이상 못 먹을 정도의 플레이어들!
“여기 이거 마시고 먹어봐.”
“이게 뭔데?”
“<연금술사의 소화제>. 더 먹을 수 있게 만복 페널티를 없애줘.”
“오오! 그런 아이템이! 이걸 먹으면 저걸 더 먹을 수 있겠군!”
“…….”
불끈!
이다비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당장에라도 가서 저 거대한 테이블을 뒤엎고 ‘너희 돈으로 해먹어!!!’라고 외치고 싶었다.
“엎, 엎으면 안 돼.”
“안, 안 엎어요……!”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는 이다비였다.
“앗! 김태현이다!”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님! 덕분에 잘 먹고 있습니다!”
순수한 감사!
그러나 태현의 귀에는 이상하게 비꼬듯이 들렸다.
-네 돈으로 잘 먹고 있습니다!
“크, 크윽……!”
“야! 김태현! 정신 차려!”
태현도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
최상윤은 케인과 정수혁을 불러 말했다.
“야, 얘가 사고 치기 전에 빨리 데리고 가자!”
“김태현! 김태현!”
“태현 님! 이쪽 한 번만 봐주세요! 저 강화하려는데 손 한 번만 잡아주십쇼!”
“요리 너무 맛있게 잘 먹고 있습니다! 꺼억!”
꽈악!
“야! 아파! 살살 잡아!”
환호하는 영지의 플레이어들을 간신히 뒤로 한 채, 태현 일행은 영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케인은 뒤를 보며 중얼거렸다.
“근데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졌지?”
* * *
“위대한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이시자 저 남쪽 대륙에서도 아키서스 교단의 세력을 펼치시고…….”
“1절만 하자. 갈락파드.”
“……예! 태현 님. 태현 님이 안 계시는 동안 이 갈락파드, 분골쇄신, 견마지로를 다하여 교단의 이름을 떨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적당히 노력하지 그랬냐…….”
“예?”
“아무것도 아니다. 됐다. 나가봐.”
태현은 기운 빠진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갈락파드는 우르크 지역에서 고블린들을 믿게 한 걸 칭송하며 나갔다.
“태현 님! 그들 중 싹수 있는 고블린들을 데리고 와서 위대한 아키서스의 가르침을 받게 하는 게…….”
“누가 저거 좀 데리고 나가라.”
갈락파드가 나가고 나서 태현은 한숨을 푹 쉬었다.
“영지 상황이…….”
[현재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는 매우 발전 중입니다. 다른 영지의 영주들이 질투할 수 있으니 주의하십시오.]
[현재 전투 직업을 가진 모험가들이 급격하게 늘었습니다. <아키서스 교단 전투 연습장> 건물을 추천합니다.]
[사디크의 힘을 받아들이는 모험가들이 늘었습니다. <아키서스 교단 사디크 스킬 명상소> 건물을 추천합니다.]
‘……아무리 봐도 이름이 이상한데.’
사디크를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이름!
[현재 영지의 식량 사정은 매우 풍족합니다. 다만 <아키서스 교단의 일일 요리 제공> 이벤트가 지속될 경우 식량이 빠르게 바닥날 수 있습니다.]
[건설되고 있는 건물들의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투기장은…… 다음 달이면 완성되려나…….”
쓸데없는 이벤트,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태현의 동상 같은 것만 안 만들었어도 진작에 완성됐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미 지나간 일인 것을!
‘일단 골렘 수리해서 영지에 배치하고, 고블린 부족이 준 아이템 제작서 확인해 보고, 내 무기 쓸 거 만들기 시작해 봐야지…….’
태현은 기운을 차렸다.
일단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골렘 수리.
공짜로 얻은 부하들인 만큼 알뜰하게 잘 써 먹어줄 생각이었다.
지금이야 영지가 평화롭지만, 언제 어디서 태현의 적이 공격해 들어올지 몰랐다.
솔직히 적이 너무 많아서 누가 먼저 들어올지 짐작도 안 갔다. 어느 날 영지가 불타고 있어도 태현은 전혀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현재 영지의 군사력은 C등급입니다.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은 아키서스 성기사, 아키서스 사제, 상단의 용병, 민병대입니다.]
“C인 게 용하다. D 나와도 안 이상하군.”
태현은 투덜거렸다. 다른 영지에 있는 기사단과 비교하면 너무 형편없었다.
‘한 번 더 써먹을 수 있는 귀족 기사단이 있고, 플레이어들도 동원할 수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슬아슬한 건 변하지 않았다.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
군사력 : C등급
경제력 : D등급
기술력 : B+등급
종교력 : A등급
발전도 : C등급
영지 골드 : 12,183
…….
‘골드는 또 어쩌다가 이렇게 됐나…….’
태현은 한숨을 쉬며 갖고 있던 골드를 영지 창고에 쏟아부었다.
먹어도 먹어도 계속 먹는, 돈 먹는 하마 같은 영지!
태현이 자기 장비를 자급자족하는 플레이어여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파산을 해도 벌써 세 번은 했을 것이다.
온갖 방식으로 번 골드를 다 영지에 꼬라박고 있는 것이다.
‘좋아. 골렘부터 수리해 보자. 일단 대장장이들부터 불러봐야지.’
그리고 태현은 이 결정을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
* * *
“저, 저, 저, 저희한테 이 골렘을 주신다고요?”
“난 준다고 한 번도 말한 적 없는데.”
“크흐흑! 정말 감동입니다, 태현 님! 저희를 아껴주고 사랑해 주시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니, 그런 적 없는데.”
자기들 좋을 대로 알아듣고 기뻐하는 기계공학 대장장이들!
태현은 이들을 대할 때면 왠지 모를 답답함을 느껴야 했다.
뭔가 나중에 크게 사고를 칠 것 같은 불길함!
“너희들한테 몇 기씩 나눠줄 테니까, 알아서 수리하고 좀 고쳐봐.”
태현 혼자서 다 수리하면 좋겠지만, 시간도 부족하고, 어쨌든 이들은 영지의 전력 중 하나였다.
좀 많이 미친놈들이었지만 그래도 태현에게 아낌없이 충성하는 이들이 흔한가!
퍼주고 키워줘야 했다.
‘아, 근데 왜 이렇게 불길할까…….’
“안심하십시오! 저희가 최선을 다해! 수리하고 개조하겠습니다!”
“개조하란 말은 안 했거든?”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개조하겠습니다!”
“너희 일부러 그러는 거냐? 응?”
태현이 그러거나 말거나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은 시시덕거리며 골렘에 달려들었다.
-여기다가 역병 폭탄을…….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다!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태현은 무시하고 움직였다. 할 일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