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546화
이다비가 중얼거리는 걸 들으며, 태현은 냉정하게 말했다.
“케인, 너도 이제 좀 침착하게 상황에 대응하는 법을 배워야지. 언제까지 그렇게 칠칠치 못하게…… 헉, 저거 뭐야?!”
“…….”
이다비의 시선이 아프게 느껴졌지만, 태현이 이렇게 놀라는 데에도 이유가 있었다.
케인 일행의 뒤에서 쫓아오는 게 워낙 기상천외하게 생겼던 것이다.
-침입자. 포착 완료. 제거. 제거. 삐삐빅!
[옛 고블린 추적 파괴 골렘을 발견했습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고급 기계공학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옛 고블린 추적 파괴 골렘>의 제작법을 완전히 파악하는 데 성공합니다!]
삐걱거리면서 반쯤 부서졌지만, 통로를 꽉 채우고서 입에서 빔을 내뿜는 고블린 특제 골렘의 충격은 대단했다.
실제로 케인과 일행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치고 있었으니까!
“너희 뭐 하냐? 왜 안 잡고 도망쳐?”
“그, 그게……!”
* * *
“함정이군. 가라.”
“크흑!”
“또 함정이군. 다시 가라.”
“크윽! 너무하잖……!”
“크하하하하! 시끄럽다! 시끄러!”
“…….”
권력의 맛에 취해서 날뛰는 케인.
그리고 그런 케인을 ‘저 자식 위험한 거 아니야?’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정수혁과 최상윤.
“야. 야. 케인. 우리 이 던전 처음이고, 이 던전 어떤 던전인지 파악하려고 온 거잖아.”
“으하하! 그래서 파악하고 있잖아!”
“그건 파악이 아니라 그냥 괴롭히는 것 아닙니까?”
“김태현은 이렇게 파악한다고!”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니까 그냥 우리 방식대로 하지 않을래?”
둘의 말에도 케인은 멈추지 않았다.
“가라! 앞으로 전진! 후퇴는 없다! 도망치는 놈은 사형이다! 으하하하!”
약탈자 플레이어들을 사정없이 몰아붙이며 던전을 전진하는 케인!
뒤에서 남은 둘은 수군거렸다.
“얘 진짜 미친 거 같은데?”
“어떻게 하죠? 선배님께 말씀드릴까요?”
“일단 좀 더 보자고. 아직은 크게 문제없으니까…….”
케인이 뒤에서 날뛰면 날뛸수록, 약탈자 플레이어들의 팀워크는 진하고 끈끈하게 변했다.
“내가 먼저 달려들어서 어그로를 끌 테니까 그사이에 너희들이 딜을 넣는 거야!”
“좋아. 내 스크롤을 너한테 써줄게! 10초만 버텨!”
“지금 간다! 바로 지금!”
태현이 봤다면 ‘아니, 팀워크 다지려고 왔는데 왜 다른 놈들이 다지고 있어?’라고 황당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진지했다.
[HP가 10% 미만인 상태에서 계속해서 싸웠습니다. 체력이 오릅니다.]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고 검을 휘두르는 데 성공합니다. 검술 스킬이 오릅니다.]
[지구력이……]
[민첩이……]
정작 스탯이나 스킬을 올려야 하는 케인은 안 올리고, 약탈자 플레이어들만 쭉쭉 성장을 하는 상황!
“헉, 헉헉…….”
“야. 잠깐만. 나, 검술 중급 3이야! 언제 이렇게 올랐지?”
“그러게? 나도 지금 레벨업 했어.”
“헉, 이게 김태현 따라다니면 나온다는 그건가?”
-케인은 김태현 따라다니면서 랭커 됐다더라.
-어떤 길드의 길드원들은 김태현하고 한 번 같이 다녔는데 대박 났다더라.
흔하게 돌아다니는 소문!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태현의 뒤를 쫓아 던전에 온 것도 그 소문 때문 아니었는가.
태현이 노리는 대박의 콩고물이라도 주워 먹기 위해서!
“……근데 이건 아닌 거 같은데.”
“……그렇지? 김태현은 아예 여기 없고 저 미친놈만…….”
그래도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아직 그렇게까지는 이성을 잃지 않고 있었다.
“휴식 끝! 움직여! 이 자식들아! 움직여!”
“아오, 저 새끼…….”
“담가 버릴까?”
“아니, 그런데 우리가 이길 수 있나?”
예전에도 케인은 레드존 길드의 길마였다.
즉 약탈자 플레이어 중에서도 잘나가는 편이었다는 것!
그런데 안 보는 사이 태현과 같이 다니면서 랭커 중에서도 손꼽히는(소문에 따르자면) 랭커가 되어 있었다.
솔직히 이길 자신이 잘 안 나는 것!
“잠깐. 여기 접근 금지라고 쓰여 있는데?”
“전진!”
“아니, 접근 금지라고 쓰여 있다고!!”
“전진!!”
“아오, 저 미친 새끼!”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아무리 저항해도 케인을 막을 수는 없었다.
-기이잉! 기이잉!
뭔가 거대한 기계 장치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요란한 경보음이 들렸다.
“……??”
[<옛 고블린 추적 파괴 골렘>이 깨어납니다.]
[<옛 고블린 전투 승리 골렘>이 깨어납니다.]
[<옛 고블린 요새 수호 골렘>이 깨어납니다.]
-침입자. 발견. 제거.
-오크들은 죽어야 한다.
“우리 오크 아닌데?!”
덩치 큰 기계 골렘들은 화끈하게 대답했다.
콰아앙!
빔으로!
[<옛 고블린 전투 승리 골렘>의 <불안정한 고블린 빔포>가 발사됩니다.]
“으아아악!”
재수 없는 약탈자 플레이어 한 명이 그대로 로그아웃 당했다.
심지어 탱커 역할을 하고 있는 플레이어였는데!
“…….”
“…….”
그 순간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서걱!
최상윤은 재빨리 벽을 차고 올라 강력한 스킬을 골렘에게 박아 넣었다.
[<고블린식 외부 장갑>으로 인해 물리 피해가 50% 흡수됩니다.]
-위험도 상승. 타겟 고정.
순식간에 최상윤에게 집중되는 골렘들의 시야!
그걸 본 최상윤은 혀를 찼다.
“……튀자!”
“뭐?!”
“튀어, 이 멍청한 자식들아! 이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하려고!”
아무리 최상윤이 랭커라도 지원도 없는 이 상황에서 여기 이 골렘들을 다 썰어 넘길 수는 없었다.
물리 방어력에 특화된 데다가 한 방 한 방 데미지가 묵직한 준 보스급 몬스터들!
잘못하다가는 여기서 전멸할 수 있었다.
“그래도 속도가 좀 느린 게 약점이야! 도망치면 돼!”
“그, 그렇군! 정수혁! 마법으로 저놈들의 발을 묶어줘!”
“알겠습니다!”
“잠깐, 케인! 정수혁의 마법은……!”
최상윤은 기겁해서 케인을 말리려고 들었다. 정수혁의 마법은 분명……!
-카흘라단의 번개!
[<아키서스의 마법>으로 다른 마법이 추가로 발동됩니다.]
-질풍의 발걸음!
[<질풍의 발걸음>으로 <옛 고블린 추적 파괴 골렘>의 이동 속도가 빨라집니다.]
[<질풍의 발걸음>으로…….]
“…….”
“…….”
“……으아아아아!”
케인은 비명을 지르며 달려나갔다.
최상윤은 뒤통수를 한 대 때릴까 하다가 말았다.
* * *
“어떻게 좀 해줘! 김태현!”
“아이고…….”
태현은 한숨을 쉬며 나섰다. 간단한 설명만으로도 저 골렘이 어떤 타입의 몬스터인지는 감이 왔다.
물리 방어 높고 한 방 한 방 데미지가 높고…….
‘근데 왜 이동속도까지 빠르지? 보통 이동속도는 느리지 않나?’
물론 이동속도가 빨라도 상관은 없었다. 태현은 잡을 자신이 있었다.
‘먼저 통로 가장 앞에 있는 놈에게 다가가서 다리 관절에 폭딜을 넣고…… 보아하니 저 빔은 회피 가능한 거 같은데. 다른 공격은 나한테 데미지 줄지도 모르니까 빠르게 집어넣고 무력화시켜야겠다.’
태현은 방금까지 강화를 하고 있던 <고대의 망치>를 집어 들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골렘을 보면 ‘힉! 골렘이다! 조심해!’ 하고 떨었지만, 태현은 아니었다.
골렘 학살자!
-삐비빅. 고블린 대장장이 발견. 고블린 대장장이 발견.
“……?”
“……??”
“우리 중에 고블린이 있었나?”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칭호:경지에 오른 기계공학……]
[칭호:철거의 달인……]
[칭호:신기술의 탐구자……]
[……]
[<옛 고블린 추적 파괴 골렘>이 당신의 부하로 들어옵니다.]
[<옛 고블린 전투 승리 골렘>이 당신의 부하로……]
[…….]
“?!?!”
“뭐 이런 미친…….”
죽어라 빔을 피해 달려왔던 케인은 눈앞의 상황에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차이는 너무 심하잖아!
* * *
“이야, 케인이 이런 짓도 하고. 아주 잘했어.”
“크헤헤. 내가 이럴 줄 알고 끌고 왔…….”
“개소리는 1절만 하자.”
“……응.”
“흠…… 근데 고장이 많이 나긴 했군. 수리를 좀 해야 하나…… 어쨌든 잘됐네. 역시 착하게 살면 자다가도 떡이 굴러온다고…….”
“……?”
“……??”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좋아. 남은 것도 챙기러 가자!”
태현은 휘파람을 불며 이동했다. 고블린 골렘들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그 뒤를 따랐다.
“이거 왜 이렇게 느려? 아까는 더 빨랐던 것 같은데.”
“크흠. 크흐음.”
태현 일행은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아까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건드렸던 곳에 도착하자, 오크들의 광석을 건진 곳과는 다른 분위기의 장소가 그들을 맞이했다.
“여긴 고블린들이 있었나 본데? 진짜 고블린들하고 오크가 싸웠었나…….”
-가동. 가동.
“으아아악!”
“진정해. 인마.”
아까 시달린 덕분에 소리부터 지르고 보는 케인!
태현은 그에게 핀잔을 주며 남은 골렘들을 확인했다.
“30기 정도? 음. 이걸 어떻게 하지.”
“들고 다니자! 네크로맨서처럼!”
“헉! 그거 좋은 생각 같습니다!”
케인의 의견에 정수혁이 눈빛을 빛내며 찬성했다.
네크로맨서의 멋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강력한 소환수들을 군대처럼 거느리고 다니는 위엄 아니겠는가!
“아냐. 느려서 불편할 것 같아.”
“…….”
“…….”
시무룩해지는 둘!
“네크로맨서야 소환수 이동속도 올려주는 스킬에, 소환수 소환하거나 이동시키는 여러 스킬이 있으니까 이런 걸 운용할 수 있는 거지. 그런 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나는 뭐 수리나 개조만 할 수 있으니…… 음. 역시 영지에 가져다 놓는 게 낫겠지? 어차피 영지 한 번 가기도 해야 하고.”
“영지는 왜?”
“그런 사정이 있다.”
빠득!
태현은 말하면서 이를 갈았다. 지금도 영지의 식량은 거덜이 나고 있을 것이다.
“좋아. 있는 거 다 챙기고 나가볼까?”
“저기요…….”
“……?”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쭈뼛쭈뼛 손을 들었다.
“저희는 그럼 이만 가봐도 될까요?”
“하하하…….”
“하하하……?”
태현이 웃자 약탈자 플레이어들도 따라 웃었다.
“너희, 여기 위치 올려서 팔 거지?”
“네? 아닙니다! 저희가 감히 어떻게 그런 짓을!”
“아니야. 팔 거 같아. 분명히 팔겠지!”
“정말로 아닙니다! 크흑! 저희의 진심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아. 시끄럽고.”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태현.
“너희가 그 손해를 어떻게 메꿔야 하나 고민을 해봤지.”
‘지금 이제까지 함정은 우리가 다 몸으로 해체했는데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냐?!’
‘뭐 저런 악독한 놈이…….’
‘쉿. 다 들리겠다.’
“그 결과 좋은 생각이 하나 났다.”
“……??”
좋은 생각이라고 했지만 전혀 좋게 들리지 않는 신기한 현상!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보니까 너희들은 길드가 없군.”
“네……? 그렇죠?”
“저희는 자유로운 걸 추구하는 사람들이라…….”
“레드존 길드 있던 놈이 말은 잘해요.”
케인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래. 그래. 하지만 너희들의 마음속에는 커다랗고 안정된 길드 안에 들어가서 가족 같은 길드원들과 함께 플레이를 하고 싶은 욕망이 있을 거야. 나도 안다.”
“???”
“??????”
그들도 처음 듣는 그들의 욕망!
“아니, 저희는 그런 거 필요 없는데…….”
“쉿. 잠깐만 들어보자.”
“왜 그래?”
“무슨 말인지는 들어봐도 늦지 않잖아! 커다랗고 안정된 길드라니. 저 말을 듣고도 눈치 못 챘냐?”
“뭔데?”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떠드는 걸 본 태현은 ‘어?’ 싶었다.
이놈들, 역시 약탈자 플레이어들답게 눈치를 챘나?
“우리를 거기 넣어서 써먹으려는 거야! 우리가 필요한 거지! 우리도 케인처럼 될 수 있다고!”
“그런……! 엄청난 기회잖아!”
헛발질을 하는 약탈자 플레이어들이었다.
‘눈치 못 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