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545화
사실, 지금까지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는 제작 직업 플레이어들에게는 나름 묘한 인기가 있었지만, 전투 직업 플레이어들에게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전투 직업 플레이어들에게는 딱히 매력이 없었던 것이다.
가끔 이 영지에 있는 미친놈ㄷ…… 아니,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이나 강화를 파는 대장장이들에게 찾아와서 스킬을 부탁할 때 아니면 올 일이 드물었던 것!
그렇지만 영지에서 나눠주기 시작한 무료 요리들은 전투 직업 플레이어들도 고민하게 만들 정도였다.
너무 효율이 좋았던 것이다.
-비카:요즘 아탈리 왕국 던전 도는데,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를 거점으로 할까 고민 중이에요. 혹시 아탈리 왕국에서 사냥하시는 분 있으면 조언 부탁드려요.
-님아닝쑤:<절망과 슬픔의 골짜기> 구립니다. 다른 영지가 훨씬 더 시설 좋습니다. 오스턴 왕국이 더 좋습니다. 여러분들도 거기 가는 게 좋습니다.
-자베프:예전에는 그랬는데, 요즘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 엄청 좋아졌어요. 지금 그 근처에서 뛰는 플레이어들은 골짜기 거점으로 하는 게 거의 정석처럼 됐는데, 이게 거기서 푸는 요리 때문이거든요. 요리에 무슨 약을 탔는지 효율이 미쳤어요. 요리 최대한 먹고 던전 뺑뺑이 치면 다른 던전 몇 개 깨는 것보다 훨씬 더 효율이 높게 나옵니다. 불편한 거 감수하고 거점 삼을 만해요.
-세만어리워워파:맞음. 게다가 다들 놓치고 넘어가는 게 있는데, 골짜기 근처는 세금이 엄청 낮음. 계속 던전 돌다 보면 차이가 꽤 큼.
-님아비다이:맞아요. 그리고 영지 지금 시설 계속 건설하고 있고, 다른 영지에는 없는 독특한 건물들도 많아요. 아키서스 교단이라는 프리미엄이 장난 아니거든요!
그 결과, 아탈리 왕국의 전투 직업 플레이어들에게는 골짜기를 들리는 게 거의 정석적인 사냥법이 되었다.
골짜기를 거점으로 삼고→교단에 가입한 다음→사냥 나갈 때 요리를 최대한으로 먹어치워서 버프를 미친 듯이 중첩시킨 후→버프 시간 한계까지 사냥만 한다!
아키서스 교단의 요리가 불러일으킨 나비효과였다.
갈락파드도 예상치 못한 효과!
“전투 직업을 가진 모험가들이 왜 이렇게 많아졌지?”
“그러게?”
“흠. 이것은 분명 아키서스 님의 커다란 뜻일 것이다! 오오! 아키서스 님을 경배하라!”
“……광신도 샊…….”
“뭐라고 했지?”
“아무것도 아니야!”
펠마스는 투덜거리다가 들켜서 황급히 말을 돌렸다.
교단에 가입한 전투 직업 플레이어들이 늘어나자,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과가 하나 더 생겨났다.
그건 바로 사디크 교단이었다.
* * *
“공적치 포인트 쌓였는데 뭐하지?”
“축복받아서 뭐 만들어.”
“아니, 어차피 요리 먹는 걸로도 충분한데…… 그리고 사냥 갈 때 아키서스 사제 데리고 갈 수도 있잖아. 좀 다른 곳에 쓰고 싶은데.”
“축복받아서 뭐 만들라니까.”
“나 전투 직업이야 이 자식들아!”
“축복받아서 뭐 만드는 게 좋을 거야.”
“……!!”
그제야 플레이어는 주변 친구들이 약간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맛이 간 도박 중독자의 눈!
“너도 제작을 해보자, 친구야!”
“안 쓸 거면 포인트 좀 빌려주라! 나 만들 거 하나 있는데!”
“저리 꺼져! 이것들이 미쳤나!”
친구들을 밀치고, 전투 직업 플레이어는 다른 보상을 찾았다.
‘그래. 스킬은 어떨까?’
교단 스킬!
다른 교단에서도 종종 나오는 보상이었다.
‘아키서스 교단 스킬이 뭐가 있지? 김태현이 쓰는 거 하나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김태현의 화려한 전투 영상을 떠올리며, 플레이어는 얻을 수 있는 보상 스킬들 목록을 켰다.
두근두근!
<아키서스의 하급 분노>
<아키서스의 하급 이간질>
<아키서스의 하급 얄팍한 저주>
<……>
‘……김, 김태현이 이런 걸 쓰지는 않을 거 같은데…….’
뭔가 좀 환상이 많이 깨지는 스킬들!
축복 계열 스킬도 있었는데 전투 직업인 그가 쓸만한 건 아니었다.
그러던 도중 그는 이상한 걸 발견했다.
<사디크의 불타는 피>
<사디크의 하급 화염:검>
<사디크의 하급 화염:방패>
<사디크의 이글거리는 피부>
<……>
“?????”
처음에는 버그가 난 줄 알았다. 그러나 다시 봐도 스킬 목록은 그대로였다.
‘왜 아키서스 교단 스킬 보상에 사디크 스킬들이 있냐?!’
아무리 놀라도 대답해 줄 사람은 없었다.
결국 그 플레이어는 호기심에 사디크 스킬 하나를 보상으로 선택했다.
[<사디크의 불타는 피> 스킬을 보상으로 받았습니다. 공적치 포인트가 감소합니다.]
‘진짜 된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키서스 교단 내 명성이 올라갑니다.]
[사디크 교단이 교단의 스킬을 훔친 당신에게 분노합니다. 사디크 교단의 NPC를 만날 경우 페널티를 받습니다.]
“…….”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길래 사디크 교단의 스킬을 훔칠 수 있었는지 궁금해지는 메시지창!
그렇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사디크 교단의 스킬을 정말 배울 수가 있다는 것!
그게 중요했다.
‘어? 이거 엄청 좋은 거 아닌가?’
사디크 교단처럼 대륙에서 악신 취급받는 교단은 스킬들이 강력한 대신, 믿는 것에 페널티가 붙었다.
악명이 높아진다거나, 도시에 들어갈 때 천대를 받는다거나, 심하면 현상금이 걸리거나!
각오를 한 플레이어만이 악신 교단을 믿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아키서스 교단은 딱히 악신 취급받는 교단이 아니었다.
즉 사디크 교단의 페널티 없이 사디크 교단의 스킬을 배울 수 있다는 것!
“……!”
그 사실을 깨달은 플레이어는 전율했다.
“같잖은 아키서스 스킬 보상 받을 때가 아니었어! 사디크다! 사디크 스킬을 배우는 거야!”
“자네 방금 뭐라고 했나?”
“헉! 죄송합니다.”
생각 없이 말했다가 아키서스 사제들의 눈총을 받은 플레이어는 고개를 숙였다.
* * *
“아니, 이 미친놈들이. 사디크 믿으라고 할 때는 안 믿다가 왜 이제 와서 믿는 거야!!”
버포드는 갑자기 일어난 사디크 교단 붐에 어이가 없어서 투덜거렸다.
지금 그는 갈락파드에게 받은 퀘스트를 깨고 있었다.
사디크 교단에서 아키서스 교단으로 넘어온 이상 보상이 적어도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는 퀘스트!
아쉽긴 해도 그렇게 크게 불만은 없었다.
망한 사디크 교단에서 넘어온 것만으로 솔직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사디크 교단에서 조금만 더 잘했으면 낫지 않았을까?
조금만 더 플레이어들이 많이 왔으면, 그래서 좀 더 잘 싸웠으면…….
“……아오! 저것들 진짜!”
버포드는 울컥해서 투덜거렸다.
눈앞의 광경이 버포드의 속을 뒤집어놓고 있었다.
바로 그의 눈앞인, 아키서스 신전 앞뜰에서 사디크 교단의 스킬을 배워서 수련하는 플레이어들!
사디크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나름 세심하게 지도하고, 플레이어들은 ‘오옷! 이런 스킬이 있었다니! 사디크 교단 대단해!’ 하면서 감탄하고 있었다.
이렇게 좋아할 거면 좀 진작 사디크 교단에 들어왔으면 서로 좋지 않았겠는가!!
“저 사람 왜 이렇게 우리를 노려보는 거죠?”
“무시하십시오. 저건 패배자입니다. 자, 다음은 사디크의 화염 가호를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사디크 성기사들과 사제들은 버포드를 무시했다.
그의 부하였지만, 아키서스 교단에 들어온 이후로는 거의 잡상인 취급!
“버포드. 시킨 퀘스트는 다 했나?”
“아, 아니요. 갈락파드 님. 지금 하러 가려고…….”
“이놈! 그런데 여기서 게으름을 부리고 있다니! 아직 혼이 덜 났구나!”
“아닙니다! 지금 하러 가려고…….”
갈락파드의 잔소리가 시작되면 한 시간은 기본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귀중한 시간을 게임 속 NPC한테 들으면서 날려야 하는 것이다.
“너희 사디크 놈들은 항상 말이 많다! 여긴 아키서스 교단이야. 너희들처럼 게을러터져서는 결코 아키서스 님만큼 위대해질 수 없다는 걸 모르겠나!”
“…….”
결국 버포드는 한 시간이나 갈락파드에게 설교를 듣고 풀려날 수 있었다.
[갈락파드에게 따끔한 설교를 들었습니다. 교단 내 명성이 오릅니다.]
[신성이 오릅니다.]
‘이딴 거 필요 없어……!’
버포드는 울상을 지으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사디크 교단의 스킬을 처음부터 배운 정통 사디크 플레이어인 그는 이렇게 고생하는데, 웬 듣도 보도 못한 뉴비들이 사디크 교단의 스킬들을 쏙쏙 배워먹고 페널티도 없이 잘나가는 걸 보니 속이 뒤틀렸다.
툭툭-
“저기요…….”
“……?”
버포드는 고개를 돌렸다. 처음 보는 플레이어들이 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사디크 성기사라고 들었는데, 맞나요?”
“이제는 사디크 성기사는 아니고 아키서스…… 어쨌든 뭐 대충 맞다고 치고, 왜 불러요?”
“저희도 이번에 사디크 스킬 받았는데 같이 파티하실래요? 아무래도 저희보다 많이 아시니까 가르침을 받고 싶어서요.”
“무…….”
버포드가 갑자기 파르르 떨자 말을 건 플레이어들은 당황했다.
실례되는 소리였나?
“물론이지!!!!”
“…….”
“같이 합시다! 이래 봬도 내가 사디크 정통 후계자란 말이야! 플레이어 중에서 사디크 스킬을 가장 잘 아는 건 나라고! 저기 요즘 겉핥기로 배운 놈들은 비교할 수도 없다고!”
“아, 네…….”
버포드는 신이 나서 플레이어들을 이끌고 필드로 나갔다.
* * *
그 결과, 지금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는 전투 직업 플레이어들도 꽤 숫자가 많아진 상태였다.
엄청난 발전!
[영지를 거점으로 한 플레이어의 숫자가 늘었습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영지의 영향력이 확대됩니다.]
[다른 영지의 영주들이 당신을 주목합니다.]
[영지의 병력을 늘릴 수 있습니다.]
[……]
[……]
이 모든 게 요리 때문에 시작되었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건 물론 태현도 그랬다.
영지에 무슨 변화가 일어난 지 파악 못 한 채, 갈락파드의 행동 때문에 골치 아파할 뿐!
“아, 이 자식 진짜…… 어차피 영지에 한 번 가려고 했는데 바로 가야겠네.”
“무료 음식 취소하시게요?”
태현은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러기는 너무 늦었지.”
“네?”
“원래 사람들은 공짜로 받던 거라도 다시 가져가면 화를 낸다고. 이미 시작한 이상 취소하면 괜히 역효과만 날걸.”
무료로 요리를 풀어주는 것에 익숙해진 이상, 그걸 취소하면 플레이어들은 불만을 품을 게 분명했다.
아무리 사정을 설명해 봤자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다.
태현은 이런 원리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냥 시작한 이상 진행은 계속 해야지. 멈추려면 다른 방법을 써서 멈추든가 해야 하는데…….”
“예를 들어 어떤 방법이요?”
“식재료를 좀 형편없는 걸로 바꿔치기하면…….”
“…….”
“그게 더 귀찮긴 하겠군. 젠장. 갈락파드 이 자식, 쓸데없는 짓을 해서.”
아무래도 교단을 이끌고 교단의 세력을 관리해야 하다 보니, 플레이어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더 늘리지는 못해도 더 줄일 수는 없다!
태현은 아직 전투 직업 플레이어들까지 영지로 우르르 몰려든 걸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해적 부족 퀘스트를 깨고 갈까 했는데 먼저 가야겠군. 어차피 아이템도 한 번 만들어야 하니 잘됐나…….”
태현은 입맛이 썼다.
이놈의 영지는 어떻게 된 게 얻고 나서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는 기분!
‘다른 놈들 영지 운영하는 글 보면 뭔가 되게 잘 굴러가던데 왜 내 영지는 이러지?’
아무리 생각해도 <아키서스>라는 이름에 뭔가 마가 낀 것 같았다. 그것밖에 이유가 없었다.
멀쩡한 사람도 들어오면 약간 이상해지는 아키서스 교단!
둘이 떠드는 사이, 멀리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 으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
태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케인이지 저거?”
“케인 씨가 또 케인짓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