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542화
“히익!”
케인이 무기를 치켜들자 주벨은 납작 엎드렸다.
그 순간!
케인에게 메시지창이 떴다.
[방랑 오크 부족들이 당신을 알아봅니다.]
[뻔뻔하게 그들의 요새에 찾아온 당신의 모습에 오크들이 매우 분노합니다!]
“……?!”
지금 그들이 있는 던전은 <방랑 오크 부족의 무너진 요새>. 거기서 방랑 오크 부족이 케인을 알아봤다는 건…….
“뭐야?!”
-취익! 대족장님의 원수! 감히 여기를 들어오다니! 우리가 모두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너는 용서할 수 없다!
“잠, 잠깐만!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
쿠르르릉!
요새 통로의 벽이 갑자기 좁혀져 오더니, 통로의 바닥에서는 기묘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뭐임?! 도대체 뭐임?!”
자리에 있던 약탈자 플레이어들도, 태현 일행도 당황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미 몇 번이고 클리어한 던전에서 이런 변화가 일어날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
이 자리에서 가장 기계공학 스킬과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높은 태현에게는 다른 메시지창이 떴다.
[방랑 오크 부족들이 무너진 요새에 숨겨진 함정을 전부 가동시켰습니다.]
[요새가 완전히 무너집니다. 피하십시오!]
“…….”
어디로 피할 곳이 없었다. 태현은 케인을 쳐다보며 말했다.
“너 이 자식…….”
“이건 나 때문은 아니지!!”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자리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모두 바닥 아래로 떨어졌다.
* * *
[던전:<두 종족이 맞서 싸웠던 잊혀진 지하광산>에 입장하셨습니다. 당분간 로그아웃이 제한됩니다. 로그아웃 시 던전에서 강제로 퇴장당하며, 페널티가 부여됩니다.]
[던전에 처음으로 입장했습니다. 보너스로…….]
“재수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태현은 중얼거리며 바닥에 착지했다. 상황을 파악한 것이다.
꽤 많은 플레이어들이 이미 클리어한 던전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건 들어 본 적도 없었다.
그렇다는 건?
태현 일행이 숨겨진 히든 던전의 조건을 만족시킨 게 분명했다.
‘아마 케인이나 나나 우르크 지역 오크들한테 악명이 엄청 높아서겠지…….’
다들 쉽게 깬 일반 던전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한 게 탈이었다. 이름에 ‘오크’가 들어갔을 때부터 긴장을 좀 했어야 했는데!
“윽!”
“억!”
“컥!”
약탈자 플레이어들도 짧게 비명을 지르며 착지했다.
당황했지만 던전 메시지창을 읽은 그들은 무릎을 치며 외쳤다.
“역시! 김태현이야! 숨겨진 던전이 있었다니까! 내가 뭐라고 그랬냐! 김태현이 이런 무난한 던전에 그냥 들어갈 리 없다고 했잖아!”
“정, 정말이네? 진짜 히든 던전에 들어왔어! 대단해!”
“…….”
태현은 빤히 그들을 쳐다보았다. 히든 던전에 들어온 게 얼마나 놀라웠는지, 지금 옆에 태현과 케인이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눈치를 못 채고 있었다.
툭툭-
“……?”
“이제 대화는 끝났으니 아까 하던 거 마저 해도 되겠지? 응?”
살기를 팍팍 뿌리며 주벨에게 말을 거는 케인!
한 손으로 묵직한 중병기를 돌리는 폼이 당장에라도 토막을 낼 폼이었다.
“잠깐, 잠깐. 케인. 물론 저놈들이 뭐 주워 먹을 거 없나 하고 쫓아온 놈들이고, 그중 하나는 예전 길드 때 널 PK해서 벗겨 먹은 놈이긴 하지만 이렇게 공격을 하는 건 너무 심하잖아.”
“……너, 지금 말하고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드냐?!”
케인은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 심했다!
-지금 모르는 던전에 들어왔잖아.
-그래서?
-그러면 한 명이라도 더 있는 게 좋지.
-…….
한마디로 총알받이로 쓰겠다는 것!
케인은 감탄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빠르게 남을 벗겨 먹을 판단을 하다니.
‘이 자식은 정말 남 엿 먹이는 데에는 프로야!’
-너 속으로 이상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 아니야. 어쨌든 알겠어! 네 말대로 하는 게 좋을 거 같다!
케인은 재빨리 동의했다. 돌아서서 주벨을 노려보며, 케인은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PK를 한 다음 리스폰 지역에 찾아가서 또 PK를 하고 그다음에 다시 PK를 하고 싶지만……! 김태현이 저렇게 말해주니 참아준다! 흥!”
“……?!?!”
케인의 말에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어리둥절했다.
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김태현이 말해서 살려준다는데?”
“정말 김태현 때문임?”
“아니, 김태현이 둥글어졌다잖아…….”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혼란에 빠져 떠드는 동안, 태현은 던전을 훑어보았다.
<방랑 오크 부족의 무너진 요새>는 지상에 있던 던전.
그에 비해 지금 던전은 지하에 있는 던전.
‘<두 종족이 맞서 싸웠던 잊혀진 지하광산>이라니. 두 종족이면…… 오크랑…… 고블린인가? 두 종족이 맞서 싸울 정도면 뭐가 있지?’
“태현 님, 태현 님!”
쿡쿡-
이다비가 태현의 옆구리를 찔렀다.
“……?”
“여기 보세요. 광맥이에요!”
“……!”
이다비가 가리킨 곳에는 철을 캘 수 있는 철 광맥들이 있었다.
[고급 대장장이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매우 질 좋은 고급 철 광맥을 발견했습니다.]
대장장이 기술을 고급까지 찍은 덕분에, 채굴 스킬이 낮아도 광맥의 질을 파악하는 게 가능했다.
‘뭐야? 광맥이 왜 이렇게 많아?’
판온 1에서 대장장이였던 태현은 질 좋은 광맥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았다.
한 번 나오면 근처에 있던 길드들이 독점하기 위해 그 주변을 점령하는 일도 흔했다.
[고급 대장장이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매우 질 좋은 고급 흑철 광맥을 발견했습니다.]
[고급 대장장이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매우 질 좋은 고급 은 광맥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다른 플레이어들이 여길 발견하면 눈이 돌아가겠는데?’
이렇게 질 좋은 광맥들이 많다니.
대장장이 플레이어들뿐만 아니라 다른 플레이어들도 눈이 뒤집혀서 달려들 게 분명했다.
“캘까요?”
“너 채굴 스킬이 있었나?”
“당연하죠. 상인 직업인데!”
“상인 직업은 보통 채굴 스킬 안 키우는데.”
“태현 님이 그런 소리를 하시면 좀…….”
잡캐 수준으로 스킬 트리를 다양하게 키우는 태현이 할 소리는 아니었다.
이다비는 능숙하게 곡괭이를 꺼내 광맥을 향해 휘두르기 시작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깡, 깡-
“곡괭이 남는 거 있으면 빌려줄래?”
“채굴 스킬 있으세요?”
“안 올리긴 했는데, 다른 스킬들로 커버될 거야.”
태현은 곡괭이를 들고 광맥 앞에 다가섰다.
채굴 스킬은 안 올렸지만, 고급 대장장이 기술 스킬은 어느 정도 보너스를 줬다.
거기에 무지막지한 행운 스탯과 아키서스의 화신 직업 스킬들까지.
깡, 깡, 깡-
[매우 질 좋은 고급 철광석(4)을 얻었습니다.]
[매우 질 좋은 고급 철광석(3)을 얻었습니다.]
“……?”
“태현 님. 보세요. 난타 스킬! 이거 하면 광석이 두 개나 세 개까지 나와요!”
“……어, 어?”
이다비는 곡괭이가 여러 개로 나눠지는 화려한 스킬을 보여주었다.
중급 채굴 스킬을 찍어야 얻을 수 있는 <곡괭이 난타> 스킬!
한 광맥에서 더 많은 광석을 캐낼 수 있는 쏠쏠한 스킬이었다.
어지간한 광부 직업에게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다비!
그녀 스스로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뿌듯한 모습이었다.
“반응이 왜 그래요? 멋지지 않아요? 광석 2개나 3개씩 캐기가 얼마나 힘든데!”
“……너무 멋져서 잠시 할 말을 잃었어.”
“그런 거였나요?”
이다비는 아하하 하고 웃더니 다시 곡괭이를 휘둘렀다. 태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몇 개 캤는지는 말해주지 말아야겠다.’
어째 판온 1에서보다 판온 2가 더 채굴 효율이 좋은 기분이었다.
“어, 저기, 김태현 님?”
“왜 부르냐?”
“……던전 탐험 안 갑니까?”
“아. 가야지. 케인! 얘네들 데리고 한 바퀴 돌고 와라.”
무슨 강아지 산책시키는 느낌으로 약탈자 플레이어들을 다루는 태현!
케인은 옳다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좋지! 내가 데리고 갔다 올게!”
“……같, 같이 가주시면 안 될까요? 저 길마 놈…… 아니, 케인 님이 태현 님 없는 자리에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데…….”
“무슨 소리야 인마! 날 못 믿냐?”
“네! 못 믿습니다!”
“……너 이리 와봐라.”
속마음을 드러내는 주벨의 모습에 케인이 울컥했다.
“난 지금 이거 캐야 해서 못 가.”
“아니 던전이 있는데 태현 님 정도 되는 분이 왜…… 그냥 이 사람 시키죠? 잘하잖아요.”
카카카캉!
이다비는 신들린 곡괭이질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최상윤은 고개를 저었다. 판온 1에서부터 같이 했기에, 태현이 이런 걸 절대 지나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됐어. 우리끼리 가자고. 태현아. 이렇게 다녀오면 되지?”
“어. 쟤네를 앞에 세우는 거 잊지 말고.”
“그래. 그래.”
“어라? 왜 저희를 앞에 세우죠?”
“그야 너희들이 든든하니까 그렇지. 가자.”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뭔가 이상해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깨닫기 전에 최상윤, 케인, 정수혁이 그들의 등을 떠밀었다.
* * *
깡! 깡!
“이런. 곡괭이 내구도 다 됐네요.”
“줘봐. 내가 수리해 줄게.”
태현은 친절하게 이다비의 곡괭이를 수리해 줬다.
‘그러고 보니 내 장비는 내구도가 거의 안 닳아서 수리 스킬을 한동안 못 올렸군…….’
자기 장비 수리하는 것도 대장장이 플레이어에게는 쏠쏠한 부수입이었다.
그러나 태현에게는 그런 일이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감사합니다! ……잠깐, 태현 님 아까부터 곡괭이 하나만 쓰고 있지 않아요?”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이다비가 물었다.
이런 채굴을 하다 보면 내구도가 빠르게 하락하기 마련인데, 태현은 이상하게 곡괭이 하나를 그대로 쓰고 있었다.
행운 스탯 덕분!
“고급 대장장이 기술 덕분이지.”
“그렇군요. 고급 대장장이 기술…… 어? 언제 고급 찍으셨죠?”
태현은 못 들은 척 곡괭이를 계속 휘둘렀다.
깡-!
“여기는 대충 다 털었네. 리젠되려면 멀었으니 다른 곳 가자.”
“아까 먼저 보낸 분들은 괜찮겠죠?”
“귓속말 없는 거 보니까 괜찮겠지.”
“이런 이야기 하면 꼭 귓속말 오던데…….”
“……불길하니까 그러지 말자.”
태현은 갑자기 오싹해졌다. 케인이 ‘야! 김태현! 망했어! 어떡해!’ 이러면서 귓속말을 보낼 것 같은 기분!
“광맥이 이쪽에 있나…… 좋아. <신의 예지>!”
<신의 예지> 스킬로 길이 나타났다. 그 길은 광맥이 있는 쪽이 아닌, 막혀 있는 벽으로 향해 있었다.
“응?”
“왜 그러세요?”
“이 뒤에 뭐가 있나 본데…….”
“채굴 스킬 중급인 제 눈으로 봤을 때 이 벽은 깨기 힘들어 보이…….”
꽈르릉!
태현은 <고대의 망치>를 들고 냅다 휘둘러서 벽을 박살 내버렸다.
“응?”
“……아무것도 아니에요!”
[옛 오크 대장장이들의 숨겨진 비밀 창고를 발견했습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오릅니다.]
[채굴 스킬이 오릅니다.]
“……!”
“……!”
태현과 이다비는 서로 마주 보았다. 이 메시지창은…….
“대, 대박……!”
“진정해. 아직 뭐가 있을지 모르잖아. 쓰레기 같은 게 있을 수도 있다고.”
“그렇죠. 그렇죠……!”
침착하게 이다비를 달래며, 태현은 안으로 들어갔다.
두근두근-
덜컥!
이다비의 발에 굴러다니던 상자들이 채였다. 태현은 기계공학 스킬로 함정이 있나 확인한 후 열었다.
[매우 질 좋은 고급 철 주괴를 얻었습니다.]
[질 좋은 중급 철 주괴를 얻었습니다.]
[옛 오크식 강철 중갑옷을 얻었…….]
오크들이 이 주변에서 채굴하고 정련한 다음 여기에 보관한 게 분명했다!
태현은 나지막하게 휘파람을 불었다. 이걸로 뭘 할지 순식간에 몇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태현 님. 이것 좀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