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541화
그 정보 요청 글을 봤을 때, ‘이딴 걸 누가 알겠어?’ 하며 다들 넘겼었다.
더 놀라운 건 이 정보 요청 글에 <거래완료>가 떴다는 점이었다.
-님아비다이 님이 판매에 성공했습니다.
-구매자분이 매우 만족합니다.
* * *
-주인님. 누가 쫓아오는데요?
“뭐?”
태현은 멈칫했다. 이런 면에서 흑흑이는 매우 예리한 감각을 보여주었다.
“근데 넌 용케 이런 걸 잘 알아챈다?”
태현은 의아해했다.
흑흑이 말고 다른 놈들, 그러니까 최상윤 같은 플레이어나 태현도 눈치를 못 챈 걸 보면 상대는 은신 스킬에 꽤 많은 투자를 한 플레이어였다.
근데 혼자서 먼저 눈치채다니!
-그야 사악한 기운이 느껴져서…… 악명이 높은 상대는 제 앞에서 은신해 봤자 의미가 없습니다.
“…….”
악명 스탯이 높으면 은신이고 뭐고 흑흑이에게 먼저 발각되는 것이다.
태현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상황에서 사디크 교단에 흑흑이 같은 마수가 있었다면 태현은 바로 들킬 수밖에 없었으니까.
“야. 누가 쫓아온대.”
“뭐!? 어떤 미친놈이?! 제정신이 아닌가?!”
최상윤은 기겁해서 외쳤다.
세상에 쫓아올 놈이 없어서 태현을 쫓아오다니!
“……아니, 나 쫓아올 수도 있지 않냐?”
-헤헤. 주인님. 제가 이렇게 뛰어난…….
“조용히 하고 있어.”
-……넵.
누군가 쫓아온다고 해서 꼭 태현을 노리는 상대라는 법은 없었다.
그렇지만 노려지고 있는 게 태현이라면, 일단 태현을 공격하려는 상대라고 보는 게 좋았다.
그게 가장 가능성 높았으니까!
“태현이를 노리는 거겠지?”
“김태현을 노리는 거겠지.”
“제 생각에도 태현 님을 노리는 것 같은…….”
“시꺼.”
* * *
“앗! 던전 들어간다! 거봐! 내가 뭐라고 그랬어! 김태현만 따라다녀도 엄청 남는 장사라고 했잖아!”
“저 던전 무슨 던전인데? 별로 대단해 보이는 던전 같지는 않은데…….”
“잠깐. 저 던전 공개된 던전인데? 여기 지도에도 나와 있잖아.”
약탈자 플레이어 중 한 명이 <파워 워리어> 길드가 만들어서 판매한 우르크 지역 지도를 꺼냈다.
거기에는 지금 태현 일행이 들어간 던전이 나와 있었다.
[방랑 오크 부족의 무너진 요새]
요새 형태의, 별로 어렵지 않은 난이도의 던전이었다.
레벨 100만 넘으면 무난히 파티 하나로 깰 수 있었다.
김태현 일행이 들어가기에는 아무래도 수준이 안 맞는 던전!
그러나 약탈자 플레이어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런 멍청한 놈 같으니. 김태현이 그런 만만한 던전에 들어가겠어?”
“그러면?”
“저 던전에 숨겨진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해!”
“……!”
다른 사람들은 ‘어? 그럴듯한데?’하는 표정을 지었다.
김태현 일행이 아무것도 아닌 던전에 들어가는 건 그들이 생각해도 뭔가 좀 이상했던 것이다.
“설, 설마 숨겨진 히든 던전?!”
“그럴 수도 있어! 저기 입구가 있는 거지!”
던전 안에 또 다른 히든 던전의 입구가 있는 형식!
판온에서 그런 형식의 던전은 종종 있었다.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기대감으로 눈빛을 반짝였다.
‘이대로 쫓아가기만 하면…….’
‘숨겨진 던전의 입구를 찾아낼 수 있어!’
‘그러면 대박이야!’
“가자! 가자!!”
* * *
“계속 쫓아오는데?”
“역시. 태현 님을 쫓아오는 게…….”
“맞아. 태현이를 노리는 게 아니고서야 저렇게 끝까지 쫓아올 리 없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을 노리는 게 아니라면 저렇게 던전 안까지 쫓아올 리 없었다.
옆에서 떠드는 말은 무시하고 태현은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합 맞춰보려는데 왜 자꾸 이상한 놈들이 따라붙는 거야? 시간도 촉박한데.”
“그야 네가 했던 짓들이…… 억!”
태현은 번개 같은 동작으로 <카르바노그의 무딘 창>을 케인에게 찔러넣었다.
우당탕!
몇 번이고 반복한 덕분에 이제 눈을 감고도 무기를 바꿔서 찔러 넣을 수 있었다.
[카르바노그가 쓰러진 아키서스의 노예를 비웃습니다.]
“뭐야?!?!”
케인은 이상한 메시지창이 뜨는 걸 보고 어이가 없어 외쳤다.
뭔 놈의 아이템이 이렇게 사람에게 쓸데없이 굴욕감을 주는 거지?
* * *
“김, 김태현이 케인 공격하는데?”
“뭐? 무슨 헛소리야. 그냥 장난치는 거 아니고?”
“아니야! 케인이 자빠졌다고!”
약탈자 플레이어 중, 은신 위주로 캐릭터를 키운 플레이어가 정찰을 맡고 있었다.
기본 은신 스킬 레벨도 높고, <어둠 속에 숨기>나 <소음 삭제> 같은 스킬로 은신 능력을 뻥튀기 가능하며, 착용하고 있는 <이반코 도적 세트>도 은신 능력을 올려주는 장비 세트였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들킬까 봐 최대한 거리를 두고 따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가장 앞에서 정찰하고 있던 플레이어가 보고를 한 것이다.
김태현이 케인을 공격하고 있다고!
“쓰러질 정도면 장난은 아닌 것 같은데?”
“맞아. 어느 정도 데미지 입지 않는 이상 쓰러지지는 않잖아. 내구도도 닳는데 그런 장난을 하겠어?”
그러는 와중, 태현은 쓰러지는 케인을 다시 한번 찔러서 쓰러뜨렸다.
“헉! 진짜 공격하는 거 맞다니까?!”
“김태현이 왜 케인을 공격하는 건데?! 둘이 친하다며!”
“케, 케인이 뭔가 실수를 해서 벌주는 거 아닐까? 김태현 그놈 성격이 지X맞다던데…….”
“아까는 성격 좋아졌다면서?”
“성격 좋아진 놈도 열 받는 일 있으면 화낼 수 있지! 그게 내 책임이냐?”
“야, 싸우는 건 나중에 하고. 어쩌지? 계속 따라가? 잘못 걸렸다가 우리까지 당하는 거 아냐?”
* * *
“역시 이상한데. 보통 놈들이 아닌가?”
쓰러진 케인이 일어나는 동안, 태현은 생각에 잠겼다.
원래 이렇게 케인이 쓰러진 걸 보면 먼저 공격을 해야 정상이었다. 빈틈으로 보일 테니까.
그렇지만 쫓아오고 있는 놈들은 공격을 하지 않았다.
정말 신중한 게 분명했다.
“어쩔 수 없군. 이쪽에서 먼저 가보자.”
“괜찮겠어?”
“이런 던전에서 시간 끄는 것보단 낫겠지. 그리고 함정을 파고 있어도 빠져나갈 정도 자신은 있고. 케인. 앞으로!”
“……왜 나야…….”
투덜거렸지만 케인은 앞장서서 움직였다. 탱커인 그의 역할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걸 본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기겁했다.
“여기로 오잖아?!”
“야, 야! 어쩔 거야?”
“아직 들켰다는 보장은 없어! 침착해!”
“잘 지나가던 놈들이 왜 여기로 오겠어! 들킨 게 분명해! 저거 봐! 우리 쪽으로 오고 있잖아!”
“튀, 튈까?”
“튀면 더 수상해! 아까 말한 대로 준비해! 알겠지?”
“알겠어! 간다!”
그들이 떠드는 것도 모르는 채, 케인은 긴장한 얼굴로 접근했다.
기습한다면 바로 반격한다!
“반…….”
“……?!”
“반갑습니다, 케인 님!”
“……???”
케인이 다가오자마자 호다닥 튀어나오며 넙죽 엎드리는 플레이어들!
원래라면 케인은 ‘하하 무슨 오해가 있었나’ 하면서 오해를 풀었겠지만, 케인은 이제 그러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너무 많이 당해 왔던 것이다.
“어디서 수작질이야! 움직이지 마라!”
“네?!”
“그렇게 날 방심시켜 놓고 공격할 생각이겠지! 이 사악한 놈들!”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케인이 시끄럽게 떠들자 뒤에서 천천히 따라가고 있던 태현 일행이 물었다.
“뭐야? 어떻게 됐어?”
“이 자식들이 날 방심시키려고 함정을 팠어! 내 앞에서 넙죽 엎드렸다고!”
“……??”
최상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걸…… 함정이라고 할 수 있나?”
“이해해주자. 케인은 워낙 많이 당했으니까.”
졸지에 함정을 판 약탈자로 몰리게 된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기를 쓰고 변명을 시작했다.
물론 약탈자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정말 순수한 마음이었던 것이다.
“케인 님! 저 모르시겠습니까! 레드존 길드 때 같이 다녔던 주벨입니다! 주벨!”
“……?!”
케인은 오랜만에 듣는 길드 이름에 눈을 깜박였다. 뭐라고?
“저요! 저! 주벨!”
“주벨?!”
“네! 케인 님! 저예요!”
케인이 알아보는 모습을 보여주자, 다른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감탄과 질투의 눈빛을 보냈다.
‘정말 케인의 길드에 있었던 놈 맞구나!’
‘구라인 줄 알았는데.’
‘부럽다. 그런 허접한 길드 들어가 있었던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케인이 들었다면 멱살을 잡았을 생각들!
그러거나 말거나 주벨과 케인은 반가워서 서로 손을 잡았다.
“케인 님! 그때 길드가 망하고서 얼마나 슬펐는지 모릅니다! 흑흑! 케인 님을 따라갔어야 했는데!”
“흑흑! 그런 일이 있었지! 그때는 정말!”
“그래도 케인 님이 이렇게 잘 된 걸 보니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먼 거리에서나마 응원하고 있었는데!”
“너 이 자식! 감동이잖아!”
케인이 울컥한 표정으로 주벨을 껴안자, 주벨은 ‘됐다!’ 싶었다. 저 표정을 보니 거의 넘어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때 케인 님이 <장비 추적의 저주>에 당해서 장비들을 잃어버렸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응?”
케인은 순간 멈칫했다. 뭔가 위화감을 느꼈던 것이다.
“왜, 왜 그러세요?”
“내가 <장비 추적의 저주>에 당해서 장비들 잃어버린 건 어떻게 알았지?”
케인은 태현한테 길드가 박살 나고 나서, 복수를 하겠다고 설치다가 남은 길드원들에게 PK를 당해 도주한 경험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장비 추적의 저주> 스크롤을 맞은 탓에 장비를 다 벗어 던지고 튀었어야 했던 것이다.
케인이 길드원들한테 배신당했다는 건 알아도, 저렇게 자세하게 아는 건 좀 이상했다.
“네? 들, 들어서…….”
“그걸 어떻게 들었냐고. 그때 이미 길드 박살 나 있었는데. 길드원들 다 나갔었잖아.”
“아, 그, 그게 그러니까…… 나중에 그놈들이 자랑하는 걸 들었…….”
주벨이 급하게 변명했지만 케인은 이미 의심을 굳힌 상태였다.
“너 이 자식 그 새끼들이랑 한 패였었지?!”
“컥! 커헉! 아닙니다! 아니에요!”
“아니긴 뭘 아냐! 이게 누구를 호구로 보고!!! 지금 다시 나타난 건 뭐냐? 어? 뜯어낼 자신이 있어서 나온 거냐?”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길마님! 사과드리려고 온 거예요!”
“뭐? 사과? 했다는 건 인정하는 거네?”
‘아차.’
주벨은 아차 싶었다.
“그, 그런 게 아니라 그때 길드원으로서 못 도와드린 걸…….”
“개소리하지 마! 네가 그런 놈일 리 없어! 왜냐하면……!”
케인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
“레드존 길드에 그런 기특한 놈은 한 명도 없었다고!”
“…….”
“…….”
“…….”
* * *
뒤늦게 도착해서 상황 설명을 들은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그러면 케인을 쫓아온 거였어? 이 자식…… 그래놓고 내가 원한산 놈이 많다는 소리나 해?”
“나, 나야 몰랐지.”
“그보다 레드존 길드라니. 그런 이름이었나?”
“네가 부쉈잖아!”
“내가 부순 길드가 한둘이어야 기억하지. 어쨌든 케인 쫓아온 거면 네가 알아서 해라.”
“죽여도 되겠지?!”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이지.”
훈훈한 둘의 대화를 들은 주벨은 기겁해서 외쳤다.
“케인 님! 케인 님! 아니에요! 용서해 주십쇼! 케인 님은 그때보다 훨씬 더 잘나가시잖습니까!”
“시끄러.”
“그냥 케인 님 정도 되는 분은 어느 던전에서 어떻게 깨실지 보고 싶어서 따라온 거였습니다! 순수한 마음으로요!”
붕붕붕-
케인은 대답 대신 무기를 빙글빙글 돌렸다.
마치 목 날리기 직전 망나니 같은 자세!
“내가 그때 말이야, 얼마나 개고생을 한 줄 아냐? 장비 다 벗고서 김태현한테 가서 목숨만 살려달라고…… 얼마나 굴욕이었는지 아느냐 이 말이야! 어!”
“그, 그래서 이렇게 잘되셨으니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
“논리적인데?”
뒤에서 듣던 최상윤은 감탄했다. 반박할 수 없는 논리!
물론 케인에게 그런 논리가 와 닿을 리 없었다.
“죽여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