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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539화 (539/1,826)

§ 나는 될놈이다 539화

그들을 무시하는 태현의 모습에 케인은 소심하게 손을 들었다.

“그, 그래도 포기할 거까지는 없지 않냐? 우리가 이길 수도 있잖아.”

“그야 너나 상윤이는 가능성이 있긴 하겠는데…….”

아직 개인전 대회 형식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판온 제작사가 공식적으로 대회를 개최하기로 하고, 팀별 투기장 프로리그도 방식을 꽤 바꾸기로 했다고 들었다.

즉, 아직 아무도 어떤 식으로 대회가 굴러갈지는 알 수 없는 상황!

그래도 몇 가지 사실은 확실했다.

“먼저 개인전 대회는 팀 투기장 대회처럼 프로 리그식으로 가지는 않을 거야. 그건 공식적으로 발표했으니까.”

케인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물었다.

“근데 왜?”

“그야 판온 1 때 성대하게 말아먹은 적이 있었으니까 그랬겠지.”

판온 1에서도 여러 대회가 나왔었다.

판온 1도 판온 2만큼은 못해도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지만, 대회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1:1은 골수팬들만 좋아하는 거기도 했고, 하다 보면 좀 비슷비슷한 장면만 나오기도 했지. 밸런스도 그렇고…….”

최상윤의 설명에 태현은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래서 개인전은 토너먼트식으로, 대회 한 번을 여는 식으로 진행하는 걸 거야. 바꾸지는 않겠지. 문제는 이 개인전의 형식인데, 난 아마 팀 투기장처럼 밸런스 맞추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

태현의 진지한 말에 다른 사람들은 귀를 쫑긋 기울였다.

“그건 왜지?”

“발표 보면 대충 느낌이 와. ‘꼭 컨트롤에만 구애되는 게 아닌’이나 ‘다양한 변수들을 넣고 싶다’거나…… 이러려면 아이템, 장비를 제한 걸고 레벨 제한 걸면 안 되지. 개인전은 리그 형식이 아니라 토너먼트 형식인 만큼, 화려하고 변수 많은 대회를 원하는 게 분명해.”

태현은 냉정하게 분석을 계속했다. 다른 사람들은 감탄했다.

‘대회? 그게 먹는 건가?’ 같은 무신경한 태도를 보여주던 태현이었는데 가장 심도 있게 분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 왔어요!”

“어? 벌써?”

“집중해. 케인.”

“알, 알겠어.”

태현은 케인을 한 번 구박하고 설명을 이어갔다.

“어쨌든 이런 식의 완전 허용 개인전이면, 우리가 이길 가능성이 좀 많이…… 줄어들지.”

이다비, 정수혁은 1:1에서 변수가 너무 많았다.

정수혁도 마법 잘못 터지면 자폭하고 딱 좋았고, 이다비는 상인 직업이고…….

“그래서 기대하지 말라고 한 거다. 물론 포기는 안 해. 가능성이 하나 있으니까.”

“뭐? 어떤 가능성?”

“개인전 대회도 결국 게임단끼리 붙잖아. 5명, 5명을 1:1 5번 하는 식으로.”

“그렇지?”

“이 5번의 대회 선수가 처음부터 정해져 있고 더 많은 승수를 거두는 팀이 이기는 거면 우리가 많이 불리하지. 그렇지만 선수가 정해져 있지 않고, 이긴 선수는 계속해서 싸울 수 있다면 좀 해볼 만할 거야.”

“응? 어떻게?”

“네가 쟤네 둘 몫까지 해주면 되잖아.”

“어, 내, 내가?”

케인은 말을 더듬었다. 이렇게 믿어주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부담 백배!

“농담이야. 너나 나나 상윤이가 나눠서 해야지. 어쨌든 개인전 대회는 대충 이 정도야. 가장 늦게 열리는 대회기도 하니까 신경을 나중에 써도 된다고 생각해. 팀 투기장 대회 준비도 지금 당장 급한 건 아니니까 나중에 합을 맞춰보고, 역시 가장 급한 건 내년 초에 있는 던전 클리어 대회인데…….”

던전 클리어 대회.

각각 팀이 한 던전을 얼마나 빨리 깰 수 있느냐를 겨루는 대회!

판온에서 던전 클리어는 언제나 인기 있는 컨텐츠였다.

실제로 개인 방송이나 공식 방송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컨텐츠 중 하나가 던전 클리어!

가지각색의 던전을 다양한 플레이어들의 조합으로 깨나간다.

새롭고 어려운 던전일수록 보는 사람들의 재미는 몇 배로 뛰었다.

그 인기를 알아차린 판온 제작사 측에서 이번 기회에 공식 대회로 지정한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정석적인 방법으로 던전 클리어를 하는 파티가 아니라는 점이지.”

그랬다.

태현 일행은 정석적인 방법으로 던전 클리어를 하는 대다수의 파티와는 거리가 멀었다.

애초에 조합부터가 딜러-힐러-탱커의 조합이 아닌 상황!

“여기서 던전 클리어 좀 자신 있는 사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최상윤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나도 솔플 위주라, 솔플로 깰 수 있는 던전만 깼는데…….”

솔플에는 한계가 있었다.

안 그래도 어려운 던전을 혼자서 공격하다니.

정보를 얻고, 솔플로 깰 수 있는 던전만 노리는 게 일반적이었다.

아직 아무도 공략하지 못한 던전을 클리어하는 건 더욱더 무리!

케인도 뻘쭘한 태도로 말했다.

“나, 나도 너랑 같이 다니기 전에는, 그 뭐시냐, PVP 위주라서…….”

“애들 삥 뜯고 다녔다고?”

“…….”

최상윤과 달리, 케인도 다른 의미로 던전 클리어의 기회가 없었다.

“이다비는?”

“저희 길드는 나름 던전 클리어를 하긴 하는데…….”

이다비는 머뭇거렸다. 파워 워리어 길드도 나름 던전 클리어와 인연이 깊은 길드였다.

-<성기사이즈킹> 길드만이 공략에 성공한 <마의 칠인 던전>! 그 독점 공략법을 판매합니다! 파격적 세일! 길마님이 미쳤어요!

-<도시 지하 드워프 던전>의 다른 출입 경로를 팝니다! 길드가 독점해서 들어갈 수 없었다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파워 워리어 길드도 역시 정석적인 공략법과는 거리가 먼 길드!

다른 길드 혼자 알아낸 공략법을 훔쳐내서 팔거나, 다른 길드가 독점하고 있는 던전의 입장법을 찾아내서 팔거나…….

“이야, 대단한데?”

“그건 다른 의미로 대단하다.”

태현과 최상윤은 감탄했다.

길드가 독점하고 있는 공략법을 알아내는 것도, 던전의 공략법을 파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듣기에는 쉬워 보여도 엄청난 노하우가 필요했다.

“그, 그 정도까지는…….”

이다비는 얼굴을 붉히면서 쑥스러워했다. 그걸 본 케인은 기가 막히다는 듯이 따졌다.

“야! 내가 레드존 길드 이끌고 다니면서 PVP 한 거랑 쟤가 파워 워리어 길드 이끌고 한 거랑 뭐가 다른데?!”

“당연히 다르지.”

“엄청 다르지 않나?”

“케인 씨. 제가 보기에도 그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

케인은 조용히 쭈그러들었다. 구석에 박힌 케인은 무시하고, 남은 사람들은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일단 길드 안에 길드원을 심거나, 아니면 길드원 한 명을 매수하는 방법을 써요. 어떤 길드냐에 따라 방법이 갈리는데…….”

“오호. 더 말해봐.”

태현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이다비의 노하우를 전해 들었다.

태현도 배울 점이 많은 파워 워리어 길드!

그걸 본 최상윤은 속으로 생각했다.

‘둘이 아주 죽이 잘 맞는다.’

사기꾼 콤비!

* * *

“그런데 태현 님은 던전 클리어로 유명하지 않았나요?”

“맞아. 너 판온 1 때 공략 불가능했던 던전 몇 개 깼었잖아?”

대장장이라는 비전투 직업으로 랭커를 사냥한 덕분에 묻혀 버렸지만, 태현은 공략 불가능한 던전 몇 개를 깬 것으로도 유명했다.

대장장이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장비가 필요했고, 태현이 좋은 장비를 얻기 위해 했던 짓들은 상상을 초월했다.

“음…… 그렇긴 한데 말이지. 그건 판온 1 때 일이었던 데다가, 나도 정석적인 방법으로 깬 적이 드물어서…….”

정보를 모으고 균형 맞는 파티를 만들어서 도전!

……을 하기에는 태현은 솔플이었고, 적도 많았다.

“네가 깬 던전 중에 그…… <수인족 왕의 지하 미궁> 있지 않았어? 석 달 동안 아무도 못 깼던 그 미궁. 나름 유명한 던전 공략 파티가 그거 깨려다가 세 번 죽어가지고 게임 접었잖아.”

“아. 그거. 던전 위에서 땅 파서 들어갔어. 내가 그때 대장장이여서 곡괭이 스킬이 최고급 9였나 그랬을걸.”

“…….”

“…….”

이다비와 최상윤은 생각지도 못한 진실에 당황스러워했다.

이, 이런 진실인 줄은 몰랐는데?

“……그, 그러면 <붉은 눈 리치의 안식처>는? 그거 마법 방어를 200% 버프 받고 들어간 마법사가 마법에 즉사 당했잖아. 거기는 플레이어 수준으로 절대 공략 불가능하다고 했었는데.”

“아, 그거. 거기 참 좋았지. 끌고 오면 무조건 죽어 나가니까. 그래서 죽일 놈들 있으면 거기로 끌어들였거든. 포탈 하나 새로 파가지고. 근데 다섯 파티인가 여섯 파티가 전멸하고 나니까 마법이 잠깐 멈추더라고. 궁금해서 잠깐 들어갔더니 깨지더라.”

“…….”

“…….”

둘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환상이 깨질 것 같았던 것이다.

“어쨌든 나도 정석적인 방법으로는 안 해봐서 말이야. 대회에서 이런 방법을 쓸 수는 없잖아.”

“그렇지!”

대회에서 다른 길드원들을 꼬셔서 미끼로 쓰거나, 던전 밖으로 나가서 다른 입구를 찾거나 하는 방법을 쓸 수는 없었다.

“어쨌든 한 번 해보면서 합을 맞춰볼 수밖에 없겠지.”

김태현, 케인, 최상윤, 이다비, 정수혁.

근거리 딜러, 탱커, 근거리 딜러, 비전투 직업, 원거리 딜러.

힐러 따위는 넣지 않는 화끈한 조합!

“……야, 힐러는?”

“안 맞으면서 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되겠냐?!”

여기서 유일하게 제정신인 최상윤이 발끈했다.

* * *

“퀘스트는 무산됐지만 난 운이 좋았다.”

“…….”

앨콧의 말에 길드원들은 침묵했다.

-우리가 폭발에 전멸했는데 뭔 자기 혼자 운이 좋대?

-자기는 안 죽었으니까 운이 좋다는 거지.

-아니, 우리 원수나 갚아줄 것이지 왜 김태현하고 같이 퀘스트를 깬 거야?

-몰라. 대를 위해 소를 버렸다는데 변명 같아.

-다른 길드원들도 수군거리더라. 김태현하고 뭐 관계 있냐고.

-내 생각에는 쫀 거 같은데.

-뭐? 아무리 그래도 앨콧인데……

“너희 왜 말이 없냐?!”

앨콧은 길드원들이 침묵하자 발끈했다.

원래 앨콧처럼 다른 사람에게 욕을 들을 일이 많은 사람은 이런 감각이 예민하게 발달했다.

잠깐 조용하다는 건 이들이 귓속말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

“아, 아니요. 저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앨콧 님이 김태현 그 자식을 죽여주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뭐 앨콧 님도 생각이 있었겠죠. 그렇겠죠. 네.”

“…….”

아무리 앨콧이라도 이런 상황에서 역으로 화를 낼 만큼 뻔뻔하지는 않았다.

그건 김태현만이 가능한 안면철판신공이었다.

“멍청한 놈들! 그게 다 깊은 계획이…….”

“…….”

“됐다. 내가 말해서 뭐하겠냐.”

앨콧은 ‘뭔가 있다’는 태도를 보여주기 위해 말을 멈췄다. 그러나 길드원들은 더 이상 속지 않았다.

‘그나저나 <카르바노그의 무딘 창>을 찾아야 하는데…… 설마 카라그가 갖고 있는 거 아니야?’

생각만 해도 오싹했다.

태현 일행이 도망치고 나서, 몇몇 겁 없는 랭커가 카라그를 잡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일격에 전멸했다.

정말로 일격에!

아무리 보스 몬스터고, 정보가 없었다지만, 랭커를 일격에 잡다니.

절대 지금 잡을 수 있는 놈이 아니었다.

‘으…… 파이토스 교단 퀘스트를 포기하는 건 너무 아까운데.’

앨콧은 더 찾아봐야 할지, 아니면 포기하고 다른 퀘스트를 깨야 할지 고민했다.

지금 그가 깨고 있는 건 직업 퀘스트가 아니었다.

성기사와 망치의 신, 파이토스 교단의 퀘스트였다.

암살자 계열 직업인 앨콧이 파이토스 교단을 믿고 있다는 건 얼핏 보면 이상한 일이었지만, 자기 직업과 다른 계열의 신을 믿는 건 판온에서 은근히 흔한 일이었다.

교단마다 특성이 있었고 앨콧은 파이토스 교단의 특성을 원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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