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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538화 (538/1,826)

§ 나는 될놈이다 538화

“너무…… 과분한 제안인데요.”

이세연은 당혹스러웠다.

그녀는 좋은 제안을 받는다고 덥석 ‘헤헤 감사합니다’ 받아들이는 케인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너무 좋은 제안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다!

이세연이 왜 당혹스러워하는지 이해한 유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 회장도 걸물이었다. 이세연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백지수표에, 게임단 운영, 진행, 훈련 등 관련해서 모든 전권을 맡기고…….”

“거기에 저희 집안을 꺼내신 건, 유성그룹의 일을 맡길 수도 있다는 건가요?”

“부정하지 않겠네.”

어쩌면 프로게이머로서의 제안보다 훨씬 더 커다란 돈이 걸린 제안이라고 볼 수 있었다.

“……정말 너무 과한데요. 저는 너무 과한 제안은 받는 게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흠…….”

유 회장은 잠깐 고민했다. 이세연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가?

힘과 권력으로 대할 상대가 있고, 진심으로 대해야 할 상대가 있었다.

이세연은 후자였다.

“후…… 좋네. 이유를 말해주지. 대신 어디 가서 절대로 말하면 안 되네.”

“저는 어디 가서 다른 사람들의 비밀을 말할 정도로 예의가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안심하셔도 괜찮아요.”

“……!”

유 회장은 순간 감동을 받았다.

맨날 김태현 같은 놈만 상대하다가, 이세연처럼 깍듯하고 올바르고 품성 바르고…… 하여간 여러모로 대비되는 상대를 만난 것이다.

세상에는 이런 젊은이들도 있구나!

‘하긴 김태현 그놈이 유난히 싸가지가 없…….’

“회장님?”

“아, 크허험. 미안하네. 잠깐 생각을 하느라…… 그래. 이유를 말하기로 했었지. 나는 요즘…… 판온을 하네.”

“……네?”

“판온을 한다고!”

유 회장은 살짝 붉어진 얼굴로 외쳤다.

“아, 그, 그러셨군요. 요즘은 많은 분들이 판온을 하시니까…….”

이세연은 유 회장이 가볍게 판온을 즐기나 싶었다. 나이 많은 분들도 가상 스포츠를 체험하는 용도로 많이들 쓰니까.

“그래. 김태현 그놈하고 같이 플레이를 했었는데…….”

“풉!”

이세연은 깜짝 놀라서 작게 뿜었다.

“아, 죄, 죄송해요.”

“아니야. 놀랄 만도 하지.”

김태현과 같이 다닌다는 건 단순한 의미가 아니었다.

김태현은 언제나 대형 퀘스트들만 깨고 다니는 최상위 랭커.

그런 김태현과 같이 다닐 정도의 실력이 된다는 걸 의미했다.

‘이 회장님 레벨이 몇이야?!’

“그놈하고 같이 다니면서, 판온이 참 재밌다는 걸 알게 됐는데…….”

“아, 네.”

‘생각보다 훨씬 더 하드 게이머셨네.’

“그러면서 대회도 보고 말이야.”

“…….”

점점 손자 이야기하는 할아버지 같은 느낌을 풍기는 유 회장!

“재미를 느껴서 유성그룹 게임단을 다시 부활시켜볼까 했네.”

“아, 한 번 해체됐었죠.”

E스포츠 역사에 길이 남을 연패 기록을 남긴 후 해체!

“그때는 내가 게임의 재미를 몰랐었네. 지금은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어.”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는 유 회장!

그걸 보고 이세연은 놀랐다. 보통 이런 걸 인정하는 사람은 드물었던 것이다.

“아, 아니요. 그 정도로 연패를 했으면 해체할 법도…… 아차.”

“……어쨌든 그런데 그놈이!”

“네?”

“아. 이야기를 건너뛰었군. 그런 재미를 알게 되어서 나도 게임단을 다시 부활시켜 보고 싶어졌네. 진심으로 응원해 보고 싶었단 말이야.”

“…….”

설마 정말 회장 본인이 판온에 미쳐서 취미로 지원하는 경우라니.

이세연은 표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애썼다.

“한 번 해체했었던 게임단을 다시 만드는 건 새로 만드는 것보다 더 번거롭지. 예전의 실패 정도는 잊을 정도의 강렬한 충격이 있어야 해. 난 그래서 김태현 선수나 그쪽 같은 스타 선수를 데려오려고 했네. 김태현 그놈하고는 이야기가 나름 잘 됐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김태현 선수는 독자적으로 게임단을 만들었잖아요?”

“그렇지! 난 농담인 줄 알았는데!”

유 회장은 분통을 터뜨렸다.

“내 마음을 알겠나? 내가 그렇게 눈독을 들이고 있었는데 매몰차게 거절을 하고 가버렸어!”

“……그 마음 잘 알아요!”

드물게 이세연도 큰 소리를 냈다.

동병상련!

판온 1 때 그런 명승부를 펼쳐놓고 길드 가입 제안을 거절하고 접은 김태현!

“그 자식은 원래 그렇다니까요!”

“그렇지! 그놈은 정말 그런 놈이야!”

“심심하면 사람 속이나 뒤집고!”

“맞아!”

서로 싫어하는 것을 이야기할 때 사람은 빠르게 친해진다!

이세연과 유 회장은 마치 십 년 넘은 친구처럼 태현의 욕을 계속했다.

“이세연 선수. 내가 이세연 선수를 겉으로 원하는 이유는 새로 부활할 게임단을 이끌어줄 스타 플레이어를 원하기 때문일세. 그렇지만 정말로 원하는 이유는 김태현 그놈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고 싶어서야!”

“회장님……!”

이세연은 오랜만에 피가 끓는 걸 느꼈다. 두 사람은 굳게 악수했다.

탁!

“그 제안, 받아들이겠어요!”

이로써 유성 게임단의 부활은 확실하게 결정되었다.

다른 게임단보다 늦게 움직였기에 스타 플레이어들을 많이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이세연이라는 걸출한 선수와 유성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강력한 다크호스!

“다음 해 초에 열릴 새로운 판온 대회. 그 대회를 노려주게. 그 대회에서 뭔가를 보여주게!”

“네!”

“아, 그리고 우리 손녀가 이세연 선수 팬인데, 혹시 사인 좀 해줄 수 있을까?”

“네?”

* * *

-허허, 꼭 내 손녀라서 하는 말은 아닌데 내 손녀는 성격도 착하고 공부도 잘하고…… 이번에 수능을 봤는데 만점을 받았다지?

몇 마디에서 느껴지는, 손녀에 대한 무한한 애정!

팔불출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유 회장에게, 이세연은 뜨뜻미지근한 시선을 던졌다.

-아, 네. 잘됐네요.

-그렇지?

-손녀분은 어느 대학을 가시기로 했나요?

-그야 한국대학교지. 한국 최고의 대학교 아닌가.

-그렇죠. 반갑네요. 저도 한국대학교를 다녔…… 앗. 그러고 보니 무슨 과를 다니기로 했나요?

-……국어국문학과.

-네?

-국, 국어국문학과…….

-손녀분이 원하신 건가요?

-그렇다네.

유 회장의 얼굴에서는 숨길 수 없는 아쉬움이 드러났다. 그러나 이세연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자기가 원하는 걸 하는 건 좋은 거죠. 잘됐네요.

유 회장은 순간 이세연의 뒤에서 후광이 잠깐 번쩍이는 걸 느꼈다.

속물적으로 생각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그, 그렇긴 한데…… 그렇긴 한데 말이야…… 어쨌든 그건 이미 끝난 일이니 중요하지 않고, 실은 손녀가 그쪽 팬이어서 말이야. 한 번 만나줄 수 있나?

-물론이죠.

이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는 약간 걱정을 하면서.

‘괜찮으려나?’

유성그룹의 손녀에, 회장이 저렇게 오냐오냐하면서 키웠다면 성격이 살짝 걱정됐다.

그렇지만 이세연은 스스로를 가다듬었다.

그 험한 연예계에서도 살아남은 그녀였다. 까다로운 사람 몇 명 정도야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었다. 하물며 상대가 연하라면 더더욱.

“아, 아, 안, 안녕하세요!”

“……?!”

그러나 유지수는 이세연이 걱정했던 것과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팬, 팬이었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착하고 좋은 아이!

덕분에 이세연은 유지수와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유지수는 정말로 판온 팬이었는지 이것저것 물어왔다.

-판온 1에서 네크로맨서였다고 하셨는데 어떤 식으로 언데드 운용을 하셨어요?

-원거리 직업이 다수를 상대할 때는 어떤 식으로 싸워야 하나요?

-김, 김태현 선수랑 판온 1에서 붙은 적이 있다고 했는데 어떤 선수였나요?

-김태현 선수가 뭘 좋아하나요?

-김태현 선수에 대해서 아는 게 있으면 더…….

-저번에 기사 보니까 김태현 선수랑 그, 그런 사이라고 하던데 진짜인가요?

“절대 아니거든요?”

-앗, 죄송합니다.

도중에 한 번 정색한 것 말고는 대부분 즐거운 대화였다.

-게임단의 리더로 대회를 준비한다고 하셨는데, 어떤 대회를 노리실 거예요?

‘정말 판온을 좋아하는구나.’

유지수에게 호감이 생긴 이세연은 이것저것 가르쳐주었다.

“괜찮으면 판온 같이 할래요? 제 길드에 받아줄 수 있는데.”

“아, 아니요. 이미 들어간 길드가 있어요. 신세를 많이 졌거든요!”

소수정예로 운용되는 이세연의 길드는 판온의 모든 플레이어들이 들어가길 꿈꾸는 길드였다.

……한 명 빼고!

그런 길드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자길 챙겨준 사람을 위해 조심스럽게 거절하는 유지수를 본 이세연은 기분이 좋아졌다.

사람이 이래야지!

* * *

“이세연 씨. 궁금한 게 있는데요…….”

“편하게 물어보세요.”

“그, 원하는 사람이 있는데…….”

“아, 게임 이야기인가요?”

“네? 네!”

유지수가 부끄러워하면서 말하자 이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판온 내에서 길드원 섭외는 일상이었다.

일류 길드는 다른 길드의 길드원들을 빼 오는 기술도 일류!

길드장의 능력 중 하나는 길드원을 유지하고, 길드원들을 모으는 능력이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죠.”

이세연은 단호하게 말했다.

“수단과…… 방법을요? 그건 좀…….”

“아니에요! 그렇게 무르게 나오는 건 패배자들이나 하는 방법이에요.”

이세연은 말하다가 ‘이제 곧 스무 살 될 애한테 이런 소리를 해도 되나?’ 싶었지만, 그냥 하기로 마음먹었다.

원래 이런 세상의 진리는 빨리 알면 알수록 좋았으니까!

“룰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모두 한다! 이게 승리의 방법이에요. 제가 판온 1에서 1위를 찍을 수 있었던 건 이런 점에서 철저했기 때문이에요.”

“……그렇군요!”

유지수는 눈빛을 반짝였다. 이세연은 순간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꼈다.

‘응? 뭐지?’

뭔가 퀘스트를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해서 나중에 나올 보스 몬스터를 만들어버린 기분!

“어, 어쨌든 원하는 상대방을 길드에 넣고 싶으면 상대방을 먼저 파악해야 해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건 그다음이죠.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뭘 원하는지? 약점이 뭔지?”

“약점도요?”

“약점을 써먹을 때도 있거든요. 하여튼 철저하게 조사해서 방법을 짜는 거죠.”

“이런 방법들을 쓰면 상대를 무조건 손에 넣을 수 있나요?”

“거의…… 그렇죠? 무조건이라는 건 없으니까요.”

뭔 짓을 해도 말을 안 듣는 상대가 가끔 있기 마련이었다.

* * *

“아, 왜 귀가 간지럽지?”

“누군가 네 욕을 하는 게 아닐까?”

“너무 그럴듯해서 지적하기 힘들군. 어쨌든 애들아! 모여 봐라!”

촬영을 끝내고 돌아온 태현은 숙소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케인, 최상윤, 정수혁은 우르르 몰려왔다.

“이다비는?”

“불렀어. 곧 올 거야.”

“아니. 이 시간에 사람을 부르면 좀 그렇지 않아?”

케인은 용감하게 손을 들고 지적했다. 벌써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

“시끄럽고. 내가 한 가지 놓치고 있던 걸 깨달았다.”

“……?”

“뭡니까, 선배님?”

“우리는…… 연습을 안 하고 있었어.”

“…….”

“…….”

“……그, 그러네?”

얼빠진 케인의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펴졌다. 최상윤이 믿지 못하겠다는 태도로 물었다.

“어, 나 빼놓고 너희들이 일단 먼저 하고 있었던 거 아니었어?”

“퀘스트하느라 바빴지.”

“야, 야! 뭐 이런 무너져가는 팀에 사람을 부른 거야?!”

“아직 안 무너졌다. 어쨌든 스케줄을 보자고. 내년 초에 던전 클리어 대회가 있고, 내년 중순부터는 팀별 투기장 프로 리그, 그리고 내년 말에 개인전 대회.”

전부 다 판온 제작사에서 지원하는 공식 세계 대회.

어마어마한 판온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대회 일정이었다.

“지금 들어보니 다른 게임단들은 전부 출전하더라도 중점을 두고 있는 대회들이 있다고 하더라고.”

“우리도 그래야 하겠지?”

“음. 일단 개인전은 빼고…….”

“…….”

“…….”

“…….”

태현의 말에 다른 셋은 시무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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