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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537화 (537/1,826)

§ 나는 될놈이다 537화

투닥거리는 둘이었지만, 일에서는 호흡이 지나치게 잘 맞았다.

덕분에 촬영장의 다른 스태프들만 신이 났다.

“그래요! 그런 눈빛으로! 좀 더 그윽하게!”

“아주 좋아! 좀 더 가까이! 어깨에 손 올리고!!!”

자기 눈앞에서 만들어지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 될 거라는 걸 알았을 때, 흥분하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사진작가가 아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태현은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게임 중계하나?”

“원, 원래 저런 사람은 아닌데.”

“나도 원래는 착하고 선량한 사람인데 이상하게 판온 하는 놈들은 오해 많이 하더라.”

“그건 아니야.”

단호하게 대답하는 이세연!

“서로 노려보지 말고 다정하게! 팔짱 끼워줄 수 있죠?! 아, 좋아요! 아주 좋아요! 바로 그거예요! 아니, 멱살은 잡지 말고!”

좀 있으면 아주 결혼식을 올리라고 할 것 같은 사진작가의 태도에 태현과 이세연은 소심한 반항을 했다.

서로 멱살잡이!

“아냐. 아주 좋아.”

“……?!”

“이런 컨셉도 나쁘지 않겠어. 둘한테 잘 어울리잖아? 아주 처음부터 저랬던 것처럼.”

“듣, 듣고 보니…… 좋아요! 이대로 가겠습니다!”

“……??!”

이세연의 멱살을 잡고 있던 태현은 당황해서 물었다.

“패, 패션계에서는 원래 이런 포즈가 있나?”

“아니. 그건 아닐걸.”

* * *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집에 간다!

마지막 촬영까지 끝나자 태현의 목소리는 이세연이 소름 돋을 정도로 친절한 목소리였다.

케인이 들었다면 ‘헉, 저건 뭔가를 노리고 있는 목소리!’라고 몸을 떨었을 것!

“어디 가?”

“뭐? 끝난 거 아니야? 옷 갈아입으러 가는데?”

‘촬영 끝났습니다!’라고 했으니 끝 아닌가?

태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순진무구한 모습에 이세연은 웃었다.

사악하게!

“……왜 그렇게 웃지?”

“촬영 하나 더 있어.”

프로스다스 화보의 명물.

그건…… 판온 게임 내 복장 그대로 입고 찍는 촬영이었다!

처음에는 반 장난식으로, ‘판온과 공식으로 계약을 맺었는데 어떻게 좀 더 드러내 방법이 없을까요?’ 하면서 시작한 촬영이었다.

판온 내 장비와 똑같이 만들어서 입는 컨셉 촬영.

문제는 그게 엄청나게 화제를 모았다는 점이었다.

화보가 나올 때마다 사람들이 ‘이번에도 따로 실리나요?’라고 물어오니, 아예 프로스다스 측에서는 시즌 화보 촬영 때마다 정식으로 컨셉 촬영을 넣기로 결정했다.

“잠, 잠깐. 현실은 게임 밖에 있다며?”

“갑옷이나 입으시죠. 김태현 씨. 프로라면 어떤 옷을 입어도 소화할 수 있어야지!”

“난 프로가 아니니까 괜찮지 않을까?”

“어디서 도망치려고!”

뒤로 물러서려던 태현은 멈칫했다.

“잠깐, 이거 왜 대장장이 복장이야? 그리고…… 야, 이거 판온 1 때 복장이잖아!”

“어? 그러네?”

이세연도 몰랐는지 눈을 깜박였다. 이세연은 자기의 옷을 확인했다.

“아, 이거 1때 내가 입었던 장비들이잖아?”

“와…… 이세연…… 생각보다 훨씬 더 치사하다…….”

“……??”

“판온 2에서 날 못 이기니까 판온 1때 사진을 찍으려고 해?”

“아니거든!? 무슨 망상을 하는 거야?!”

이세연은 기겁을 하고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이미 태현은 ‘와 정말 사람이 어떻게 그러냐’ 하는 눈빛이었다.

“아니라니까! 내가 그 정도 사람으로 보여?!”

“사람은 원래 자꾸 당하다보면 본색이 나온다더라.”

“당하긴 누가 당해! 난 너한테 진 적 없거든?”

“대회 성적도 내가 더 좋고…….”

“같은 팀인데 성적 비교하는 의미가 있어?!”

“뭐, 아마 관계자들이 추억팔이하려고 준비한 거겠지.”

이세연을 놀릴 만큼 놀린 태현은 바로 태도를 바꿨다. 그걸 본 이세연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잠깐, 왜 지팡이를 들지? 그거 실제 나무로 만든 거라 맞으면 꽤 아플 거 같은데.”

“이리 와!”

둘이 촬영장 가장자리에서 추격전을 하는 동안, 스태프들과 김 팀장은 마지막 촬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가면 되겠지?”

“네. 그런데 저 두 사람은 뭐 하는 거죠?”

“하하. 사이가 좋으니까 저러는 거겠지. 이동팔 대표님이 둘이 참 친하다고 했는데 그 말이 사실이었나 보군.”

“지금 저 둘 지팡이하고 망치로 칼싸움하는 거 같은데…….”

“촬영 전에 그 정도 장난은 할 수 있지.”

“진, 진심으로 하는 것 같은데요?”

* * *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각각 네크로맨서 장비와 대장장이 장비로 차려입은 둘은 고개를 숙였다.

결국 싸우다가 부숴먹은 지팡이와 망치!

“괜찮아요. 괜찮아. 어차피 다른 것들 많으니까요.”

다른 촬영도 빠르게, 잘 끝났기에 스태프들은 별로 화도 내지 않았다.

넉넉한 미소만 지어보일 뿐!

디자이너 한 명이 다가와서 태현에게 말을 걸었다.

“어때요, 김태현 선수. 판온 1때 입었던 장비 그대로죠?”

“네. 신기하네요. 이렇게 세세하게 구현할 줄은 몰랐는데.”

“제가 판온 1때 김태현 선수 팬이었거든요. 헤헤.”

“아, 그랬어요?”

“이 장비를 가장 좋아했어요! 직접 디자인할 기회가 생겨서 참 좋았는데…….”

“저도 추억이 떠오르네요. 이 장비 얻으려고 길드 세 개 정도를 털었던 것 같은데…….”

“…….”

디자이너는 못 들은 척했다. 추억의 장비에 저런 이야기가 있었다는 건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뒷이야기는 둘째 치고, 촬영은 빠르고 완벽하게 진행되었다.

이미 처음 촬영에서 요령을 익힌 태현과 몇 번이고 화보 촬영을 한 경험이 있는 이세연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처럼 알아듣는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밤 10시가 되기 전에 모든 작업이 끝!

“수고하셨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둘은 깔끔하게 인사를 하고 촬영장을 나설 수 있었다.

“오늘 고생 많았어.”

“뭐, 뭐야? 무슨 속셈으로.”

“……그냥 칭찬한 거거든?”

태현은 여전히 못 믿겠다는 듯이 의심쩍은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이세연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쉽게도 사람이 너무 많았다. 주먹을 날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고생 많았고 들어가. 빨리 들어가. 가능하면 내가 뒤돈 사이에 사라져줬으면 더 좋고.”

“현실은 게임 밖에 있어요, 이세연 씨. 텔레포트 없거든요.”

“함께해서 더러웠고 앞으로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하고 싶은데 못 한다는 게 정말 아쉽다. 응!”

“응? 왜?”

“그건 삼촌…… 아니, 대표님한테 물어보고!”

태현은 자신이 모르는 사이 물밑에서 무언가 진행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잠깐, 설마 방송 또 같이 나가야 해?”

“눈치는 좋네. 그래. 아마 그럴걸.”

“싫은데…….”

“누군 좋은 줄 알아! 아, 진짜!”

결국 폭발한 이세연은 가방을 휘둘러서 근접 공격을 시전했다. 태현은 거리를 벌려 재빨리 반경에서 벗어났다.

“맞다.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었는데 까먹었어.”

“……지금 이렇게 성질 긁어놓고 이제 와서 물어볼 게 있다니. 정말 그 뻔뻔함은 대단해.”

“칭찬 고마워. 어쨌든 별건 아니고…….”

태현은 설명을 시작했다.

-내가 아는 여자애가 있는데, 곧 있으면 걔 생일이라 선물을 주려고 떠봤거든? 근데 요즘 판온 아이템 선물이 유행이라는 거야.

“????”

이세연은 그 말을 듣고 당황했다.

그게 정말이란 말인가?

“너도 일단 나랑 동갑이잖아? 그래서 혹시 이게 맞나 물어보려고. 정말 이런 게 유행인가?”

“‘일단’은 왜 붙이는데? 그리고 그게 유행이냐면…….”

이세연은 머뭇거렸다.

왜냐하면 그녀도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일-게임-일-게임-일-게임을 반복하는 워커홀릭!

태현보다 훨씬 더 타이트하게 스케줄을 잡고 사는 그녀다 보니, 요즘 사람들에게 저런 게 유행하는지 확신이 잘 서지 않았다.

게다가 이세연의 주변인들은 다…….

‘근처 사람들은 다 연예인이라 참고가 안 될 거 같은데…… 하연이가 뭐 달라고 했지? 잠깐, 하연이도 판온 아이템 달라고 했었지?’

이세연은 파이브 걸즈의 하연을 떠올렸다. 케인과 같이 판온을 하고 나서부터 판온에 부쩍 관심을 가지던 후배.

그녀는 분명 ‘언니! 생일 선물은 판온 장비로 주세요! 좋은 걸로!’라고 했었다.

“……그럴지도 모르겠네?”

“진짜?!”

태현은 당황했다. 정말 이게 유행이란 말인가?

“음…… 너까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유행은 정말 알 수가 없군. 뭐가 좋으려나?”

“좋은 장비가 어떨까?”

“확실히…….”

옆에 매니저가 있었다면 ‘아니, 그건 진짜 아닌 거 같은데요’ 하고 말했을 것이다.

하다못해 다른 아무나라도!

그러나 지금은 바보 둘밖에 없었고, 아무도 지적해 줄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선물은 당사자가 좋다면 좋은 거니까.”

“아, 그건 본인이 직접 말한 거니까 상관없어.”

“그래? 그러면 된 거 아냐?”

이다비가 모르는 곳에서 그녀의 무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질문을 듣던 이세연은 궁금해져서 물었다.

“그런데 네가 그렇게 선물을 줄 정도의 사람이라니. 누구야?”

“아, 나 이것저것 많이 도와주는 애인데 얘가 최근에 일이 좀 있어서…… 선물 주면 좀 낫겠지.”

“너, 너 그런 생각도 할 줄 알았어?!”

이세연은 깜짝 놀랐다.

태현에게 저런 따뜻한 마음이 있었단 말인가!

“말했잖아. 나도 원래는 착하고 선량한 사람인데 이상하게 판온 하는 놈들은 오해 많이 한다고.”

“…….”

이세연은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나저나 요즘 나한테 상담하는 사람들이 많네.”

“응? 누가?”

“넌 말해줘도 모를걸.”

이세연은 그렇게 말하고서 차에 올라탔다.

“맞다. 곧 있으면 발표날 거야.”

“뭔 발표?”

“보면 알 테니까 그때까지 기대하고 있어.”

“그러니까 뭔 발표?”

“네가 오늘 너무 얄미워서 그냥 발표 나올 때까지 안 알려줄래.”

“……하, 하나도 안 궁금하거든?”

“아, 네. 그러시겠죠.”

이세연은 그렇게 말하고 손을 흔들었다. 태현은 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 * *

“백지수표를 써놨네.”

“……!”

이세연은 깜짝 놀랐다. 지금 그녀 눈앞에 있는 사람은 그녀 상상을 벗어난 인물이었다.

유성그룹의 회장!

아무리 판온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판온 프로게이머들의 입지가 엄청나게 커졌다지만, 그룹 회장이 이렇게 직접 그녀를 부를 줄이야?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이세연 선수. 내가 직접 관심을 가지고 찾아봤네. 집안이 법조인 집안이시더군.”

“아, 네. 저 빼고 다 ‘사’ 자 직업이시죠.”

“이세연 선수도 마법사니 ‘사’ 자 직업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나?”

“……???”

“커, 커험. 아무것도 아니야.”

유회장은 순간 태현을 저주했다. 따라다니다가 이상한 농담 습관이 옮은 것이다.

“집안 좋고 성격 좋고 실력 좋고…….”

“프로게이머 선수에 집안 좋은 건 별로 상관이 없지 않나요?”

“뭐든 좋으면 더 좋은 거지. 어쨌든 이세연 선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나는 유성그룹 게임단을 부활시킬 생각이야. 그리고 그 게임단의 리더로 그쪽을 원하네!”

“제안은 정말 감사합니다만…….”

이세연은 머뭇거렸다. 부모님이 들으면 기뻐서 등짝을 때릴 소식이었다.

-유성그룹과 인연을 맺다니! 널 프로 게이머로 키우길 잘했구나!

언제나 법조인들에게 재벌은 좋은 고객이었던 것이다.

“……지금 선약을 한 곳이 있어서요.”

“알고 있네! 그리고 우리 쪽 사람이 그쪽에 가서 교섭을 했지. 이미 이야기가 다 끝났네. 우리 쪽으로 와도 상관없어!”

“……?!”

이세연은 다시 한번 놀랐다.

아무리 그녀가 판온 쪽에서는 탑 클래스의 선수라지만, 대체 이 정도의 정성이라니?

이건 아무리 유성그룹이어도 타산이 맞지 않았다. 회장 본인이 판온에 미쳐서 취미로 하는 게 아니라면!

‘근데 그럴 리는 없잖아? 대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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