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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535화 (535/1,826)

§ 나는 될놈이다 535화

“하긴, 영지 얻는 게 그렇게 쉬울 리 없지.”

“…….”

퀘스트의 난이도를 몇 배는 올려놓은 주제에 저런 말을 하는 태현!

그러나 다른 플레이어들은 침묵했다.

지금 태현에게 밉보여서 좋을 게 없었으니까!

가장 먼저 손을 든 건 장쓰안이었다.

“저, 김태현?”

“그래. 말해봐라. 플레이어들을 멋대로 돌진시켜서 날 몇 배로 귀찮게 만든 장쓰안!”

악의가 펄펄 넘치는 설명. 그러나 장쓰안은 굴하지 않았다.

“그, 그건 그렇지만 어쨌든 잘 풀리지 않았어?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그건 네가 할 소리가 아니지.”

“맞아 이 자식들아! 이 꼴을 보라고!”

태현의 말을 듣던 케인이 울컥해서 끼어들었다.

케인은 이제 이 반인반마 종족 상태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해야 했다.

장쓰안은 별생각 없이, 순수한 뜻으로 말했다.

“그런데 넌 볼 때마다 험한 꼴을 겪는 거 같군.”

“……저놈 저거 이번 퀘스트에 방해만 됐는데 약속한 거 주지 말자!”

“어, 어? 아, 아니! 그게 나쁜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는데!”

“꺼져! 너도 마셔라! 너도 마시면 인정해 준다! 마셔! 마시라고!”

“그만해. 케인. 어쨌든 장쓰안 네가 비록 온갖 트롤링에 내 발목을 잡고 쑤닝이 스파이로 보낸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훼방을 놓았지만…….”

쿡쿡 찌르는 태현의 말.

장쓰안은 사람이 직접적으로 욕을 하지 않고도 이렇게 괴롭힐 수 있다는 걸 새롭게 배웠다.

“나는 한번 약속한 건 지킨다!”

“?”

-???

“?????”

경악하는 주변!

“왜 다들 놀라지?”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 받아. 제작법이다.”

제작법을 건네는 태현. 장쓰안은 받아들고 멈칫했다.

“크윽……!”

“너 우냐?”

“안, 안 운다.”

“이상하게 이 <차가운 울음의 검> 제작법을 받는 놈들은 맨날 울더라.”

장쓰안 포함해서 두 명이지만, 둘 다 받을 때 울기 직전이었다.

“그러면 난 이만 가본다.”

“그래. 잘 가라, 장쓰안.”

“잘 가세요, 장쓰안 씨.”

“잘 가라, 퀘스트 내내 한 거 없이 트롤링했지만 좋은 부분은 다 뺏어 먹은 놈아. 뭐? 전술의 신? 지휘의 천재?”

“…….”

호다닥!

장쓰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케인의 말이 살벌하게 날아왔던 것이다.

“그만하라니까.”

“나는 포로로 잡혀서 고생하는데……. 저 자식은……. 크흑! 원래 저기가 내 자리였어야 했다고!”

케인은 분통을 터뜨렸다.

원래라면 태현이 없을 때 지휘관의 역할은 케인이 맡았을 것이다.

지금 게시판에서 장쓰안의 이미지는 그야말로 상승 중이었다.

-장쓰안 생각보다 잘하더라? 호구인 줄 알았는데.

-야, 썩어도 랭커잖아. 근데 지휘 잘하는 건 의외였다. 랭커 중에서도 지휘 잘하는 놈들 드물던데.

랭커라고 수천 명이 넘는 전장을 빠르게 파악하고 지휘를 내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이번 퀘스트에서 장쓰안은 완벽에 가까운 겉모습을 보여줬다.

-근데 원래 그렇게 돌격하는 거야? 그런 식으로 무작정 돌격 명령만 내리는 건 처음 봤는데.

-다 계산하고 돌격 명령을 내렸겠지.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그런 것도 계산 안 하고 명령을 내렸겠어?

억울함에 몸부림치는 케인을,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달래줬다.

“괜찮아요, 괜찮아. 다음에 하면 되죠.”

“케인 님도 이미지 좋아요! 호ㄱ……. 아니, 랭커로!”

“너희 방금 나보고 호구라고 하려고 하지 않았냐?”

“아, 아닌데요?”

“아니긴 뭘 아냐! 예전부터 너희 길드원들이 날 쳐다보는 눈빛이 이상했어!”

울컥해서 길드원들의 손을 쳐내는 케인이었다.

“아니라까요. 저희가 얼마나 케인 님을 좋아하는데.”

“맞아요. 장쓰안 악플 달아드릴까요?”

“!”

케인은 눈빛을 빛냈다. 거절할 수 없는 사악한 속삭임!

“야. 그만해. 장쓰안은 나중에 또 써먹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태현은 케인의 뒤통수를 한 대 때리며 말했다.

“뭐? 어떻게?”

“언제나 방법은 만들어내면 나오는 법이지.”

장쓰안도 랭커고, 원하던 건 다 얻은 상태.

그런데도 태현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장쓰안을 부려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자신감에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새삼 반했다.

-역시 협박의 달인!

-아냐, 협박의 신이야!

-협박의 마에스트로! 배우고 싶다! 제자로 들여 달라고 하고 싶다!

그렇게 떠드는 사이, 헛기침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앨콧이었다.

“응? 넌 왜 여기 있냐? 안 가고?”

오크 부족들이 쪼개지고 악마화한 카라그가 최심부 요새를 점령한 이후, 플레이어들은 다 흩어졌다.

태현 파티도 퀘스트 정리만 하면 파워 워리어 길드원 같은 사람들은 보내고 다음 퀘스트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저, 그게 말이지……. 그러니까 말이야!”

“저, 저 사람 흉계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해요!”

머뭇거리는 앨콧을 보고 김세형은 공포에 질려 속삭였다. 태현에게만 들리게 말하려고 했지만, 주변이 조용해서 앨콧의 귀에도 들어갔다.

인상을 찌푸리고 김세형을 노려보는 앨콧!

‘저 자식 대체 나한테 뭔 원한이 있어서 계속 훼방만 놓는 거야?’

“힉! 노려본다! 노려보잖아! 저거 봐! 김태현 선배님. 저놈 위험한 놈이에요!”

앨콧은 김세형을 무시하고 입을 열었다.

저놈 상대하다가는 정말 끝도 없겠다!

“……저 파워 워리어 길마에게 말은 들었겠지만…….”

“?”

“?”

태현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뭔 말?

그 기색을 눈치챈 앨콧은 당황해서 외쳤다.

“잠깐, 말 안 전해줬어?!”

“아아. 그 말? 물론이지. 전해 들었어.”

뭔지는 모르겠지만 태현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너무 태연한 거짓말에 앨콧은 바로 넘어갔다.

“그, 그래. 어쨌든……. 우리 사이 이제 괜찮은 거 맞겠죠?”

“?”

“??”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앨콧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랭커는 왜 와서 ‘우리 사이 괜찮은 거지?’ 같은 의미심장한 대사를 던지는 걸까?

“저 사람 왜 저럽니까?”

“그러게? 뭐 하는 사람이길래?”

뒤에서 들리는 잡음은 무시하고, 태현은 대답해 줬다.

“물론이지. 우리 사이 아주 괜찮다. 무슨 사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그래! 좋아. 이만 안심하고 가보겠습니다. 생색내려고 하는 말은 아닌데 정말 고생이 많았다고요.”

“생색내려고 하는 말이 아니면 굳이 말할 필요 없는데.”

“……예……. 어쨌든 <카르바노그의 무딘 창>도 내버려 두고 열심히 했다는 걸 좀 알아줬으면 한다…….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콜록, 콜록!”

갑자기 사레라도 들린 것처럼 요란하게 기침을 해대는 에드안.

“뭐 잘못 먹었냐?”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앨콧도 장쓰안처럼 용건이 끝나자 후다닥 사라졌다. 그걸 본 에드안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태현 님. 있잖습니까.”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빨리 말해라.”

“그, 그게 이번에 제가 그 오크들의 목걸이도 훔쳐오고 공을 많이 세웠는데…….”

“그랬지.”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크 선조들의 해골 목걸이>. 대족장의 권위를 상징하는 무시무시한 아이템!

문제는 지금 이걸 써먹을 오크 부족들이 공중분해 되었다는 거였지만, 그걸 제외한 아이템 효과만 봐도 엄청난 아이템이었다.

특히 오크 종족 플레이어들이 이걸 보면 눈이 뒤집힐 것이다.

“원래 공을 세우면 그만한 죄는 상쇄되지 않습니까?”

“너 뭔 사고 쳤냐?”

바로 나오는 태현의 반응! 에드안은 움찔했다.

“아, 아니 큰 사고는 아니고요……. 그때 창고에서 훔치라고 하셨잖습니까…….”

“아. 그랬지. 잘 훔쳤지?”

카라그가 최심부 요새를 반파시켜버린 덕분에, 창고도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많이 아쉬웠지만 태현은 그래도 안심하고 있었다. 에드안을 시켜서 창고를 탈탈 털라고 했었으니까.

‘우르크 오크 부족의 보물창고를 털었으니 내 장비 새로 맞출 정도의 재료는 나왔겠지?’

“……여기요…….”

“??”

달랑 창 하나 꺼내 내미는 에드안. 태현은 설마 싶었다.

“하……. 하하. 농담이지. 그치?”

“…….”

“다른 건 다른 데에다 숨겨 놓은 거지? 그렇지? 보석이나 광석 주괴 같은 건 부피가 크니까…….”

털썩!

무릎 꿇는 에드안!

“……폭탄으로 만들어버린다!”

“으아아악!”

순간 태현도 평정심을 잃어버렸다.

* * *

에드안과 목숨을 건 술래잡기를 한 이후, 태현은 진정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 네가 무슨 죄냐. 널 믿은 내가 잘못이지.”

“…….”

“대도적이란 놈이 기껏 이거 하나 훔치다니……. 응? 이름이 <카르바노그의 무딘 창>?”

태현은 카르바노그란 이름을 보고 움찔했다.

슬픈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 신.

설마 이거 저주 아냐?

‘아, 아니. 이 상황은 카르바노그랑 상관이 없잖아. 그냥 에드안이 멍청한 짓 한 거고…….’

-확인.

카르바노그의 무딘 창:

내구력 ∞/∞, 공격력 0.

스킬 ‘카르바노그의 발목 공격’ 사용 가능.

카르바노그의 인정을 받아야 착용 가능.

카르바노그의 성물 중 하나인 카르바노그의 창이다. 비록 날이 무뎌져 있지만 그 힘은 여전히 남아 있다. 카르바노그의 인정을 받은 자만이 이 창을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아이템 등급: 전설

[당신은 카르바노그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카르바노그의 무딘 창>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라진 성물을 찾아준 것에 카르바노그가 기뻐합니다.]

[당신에 대해 카르바노그가 더욱 기대하기 시작합니다.]

“…….”

태현은 할 말을 잃었다. 이게 뭔 종교 권유도 아니고, 이제 주변 사람이 찾아오는 아이템으로 메시지가 뜬단 말인가.

‘무시한다!’

메시지창은 무시하고 태현은 아이템을 확인했다.

오랜만에 보는 내구력 무한대의 아이템. 그렇지만 공격력이 0이었다.

한마디로…….

예능용 아이템!

‘이런 건 보통 장난칠 때 쓰는 장비인데.’

판온에서 공격력 0인 장비들은 종종 있었다. 휘두르면 웃기는 소리가 나거나, 이상한 색깔의 빔이 나가거나 등등.

기계공학으로 만들 수 있는 장비 중에서도 그런 게 있었다.

문제는 이 장비가 그런 장비일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장비 자체도 카르바노그의 성물이었고, 무엇보다 아이템 등급이 무려 전설!

가장 높은 등급의 아이템이었다.

이쯤 되면 분명 뭔가 숨겨져 있다고 봐야 했다.

‘뭐 숨겨진 퀘스트를 깨면 강화가 되나? 아니, 근데 카르바노그 퀘스트 깨기 싫은데…….’

왠지 모르게 한번 깨기 시작하면 영원히 코 꿰일 것 같은 불길함!

-확인.

<카르바노그의 발목 공격>

상대방을 무조건 넘어뜨립니다.

“?”

<카르바노그의 발목 공격>은 패시브 스킬! 즉 이 창만 쓰면 언제든지 발동이 된다는 것이었다.

‘뭐지? 특이한데?’

“케인?”

“왜?”

태현의 부름에 케인은 순진무구한 눈동자로 다가왔다. 태현은 케인을 향해 창을 휘둘렀다.

“으억?!”

케인은 재빨리 피했지만 태현이 작정하고 찌르는 것보다 빠르게 반응할 수는 없었다.

샥-

살짝 어깨가 스친 케인.

데미지는 입지 않았지만…….

[넘어집니다!]

쿠당탕!

“?!?!?”

“오호. 이런 거군.”

태현은 감을 잡았다. 일단 창에 닿기만 하면 무조건 넘어뜨리는 장비!

‘생각보다 쓸 만한데?’

공격 시에는 넘어뜨리고→무기를 바꿔야 한다는 점에서 쓰기 애매했다.

차라리 태현 말고 다른 사람들이 쓸 수 있다면 넘겨줘서 쓰게 했을 텐데, 카르바노그의 인정은 태현만 받았으니 그것도 안 될 것이고.

즉 이 <카르바노그의 무딘 창>을 가장 잘 쓸 수 있는 곳은…….

도망칠 때!

‘한 대 먹이고 바로 돌아서서 튀고, 거리 좁히면 또 한 대 먹이고…….’

당하는 상대방이 얼마나 열이 받을지 벌써 상상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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