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532화
‘죽는다!’
케인은 순간 로그아웃을 직감했다. <아키서스의 노예> 패시브 스킬들은 이미 다 발동된 상황.
상황을 뒤집을 만한 카드가 아무것도 없었다.
태현도 몬로소를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오크 족장들은 ‘대족장님 취익!’ 이러느라 도울 생각이 없어 보였고…….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쾅, 쾅, 쾅-!
카라그의 공격은 점점 더 매서워졌다. 케인은 통째로 땅 깊숙이 파묻히고 있었다.
방패로 제대로 막아내는데 HP가 10% 넘게 깎이는 괴력!
[악마의 피가 발동합니다.]
[죽음을 앞두고 HP가 전부 회복합니다.]
“헉!”
케인이 죽다 살아나자, 피에 미친 카라그는 더욱 더 분노했다.
-크아악! 크아아악! 아들의 원수 놈!
-췩?
-취익, 방금 뭐라고 하셨지?
“아무 말도 아니야! 같이 공격하자고!”
케인은 다급하게 말했다. 오크 족장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매우 불길했다.
쾅!
“……?”
순간 뒤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들렸다. 기계공학 스킬을 몇 번이고 써온 태현은 소리만 듣고 알아차렸다.
이건 폭탄을 쓰는 소리!
“사루온!”
악마 대장장이, 사루온이 뒤늦게 도착한 것이다.
* * *
-뭐냐, 너는?
“이 하찮은 인간 놈이 감히 에슬라 님을 모욕해? 더러운 오크들에게 에슬라 님의 피를 마시게 했단 말이지!”
사루온은 분노해서 몬로소를 가리키며 외쳤다. 태현은 몬로소를 상대하며 당황해했다.
“야, 야! 지금 오크들 있잖아!”
“그래서 좋게 말해줬을 텐데?”
“그게 좋게 말해준 거냐?”
몰려온 오크 족장들과 전사들이 왠지 모르게 사루온을 노려보는 것 같았다.
태현은 슬쩍 한 걸음 물러섰다.
‘여차하면 모르는 사이인 척 해야겠다.’
역시 악마란 놈들을 같이 해서 좋을 게 없는 놈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악마 놈이 나타나서 깝죽대느냐. 죽고 싶지 않다면 썩 물러서라!
“이 악마도 아니었던 놈이 감히…….”
“야, 말싸움할 시간 있으면 빨리 저 대족장이나 뺏어와라.”
태현은 짜증 난다는 듯이 사루온에게 말했다.
지금 몬로소가 불러낸 대족장만 해도 상대하기 버거웠다.
실제로 잠깐 상대하고 있던 케인은 오크 족장들이 안 도와줘서 벌써 너덜너덜한 상태 아닌가.
조금만 더 지나면 아주 박살이 날 것 같았다.
“알고 있다, 자! 악마의 피를 먹은 미천한 오크여! 그 피의 진정한 주인을 따를 시간이다! 에슬라 님의 심복인 내 명령을 들어라!”
-뭐라고?!
사루온의 말에 몬로소는 경악했다.
설마 그 봉인된 고대 악마의 직속 부하인 악마가 여기 있었다니!
설마, 설마……!
-……카아아아악!
“달라진 거 없잖아!!”
카라그는 잠깐 멈칫했다가, 다시 괴성을 지르고는 케인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 * *
“어떻게 된 거냐?”
“그, 그러게? 원래 내 말을 들어야 정상인데…… 저 인간 놈이 생각보다 에슬라 님의 피를 많이 갖고 있었던 모양인데?”
“…….”
태현은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눈빛으로 사루온을 쳐다보았다.
‘이 도움 안 되는 놈 같으니.’
“사루온. 잠깐 이쪽으로 와봐. 내 손 좀 잡아볼래?”
“아, 아니. 섣불리 그러지 말자고.”
태현이 살아 있는 것을 폭탄으로 만드는 스킬을 갖고 있다는 건 사루온도 알고 있었다.
악마 대장장이인 만큼, 이런 상황에서 잘못 내밀었다가는 그대로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사루온은 다급히 설명을 시작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계획이 완전 실패한 건 아니다!”
“그래, 그래. 알겠어. 잠깐 이쪽으로 와보라고.”
“놈이 생각보다 악마의 피를 많이 갖고 있었던 모양이지만, 나는 에슬라 님의 직속 부하. 내 명령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계속해서 명령하면 이 반인반마들의 지배권은 넘어올 수밖에 없어!”
사루온의 말에 태현보다 몬로소가 당황했다.
-그런 계획을 숨기고 있었다니!
콰쾅! 퍼퍼퍽!
그러는 동안 케인은 다시 카라그에게 정신없이 두들겨 맞고 있었다.
[칭호:죽음에서 몇 번이고 살아난…….]
‘필요 없어 이딴 거!’
평소라면 좋아했을 칭호 보상도 지금은 전혀 기분 좋지 않았다.
“아, 뭐든 좋으니까 빨리 구해달라고 이 XXXX들아!”
케인은 울컥해서 외쳤다. 여기 있는 놈 중에서 그를 도와주려는 놈이 하나도 없었다!
“어쩌다 악마의 피를 받은 노예야, 내 말을 들어라! 너의 진정한 주인은 다른 곳에 있다!”
-내 노예야, 저 적의 말에 현혹되지 마라! 네 주인은 여기에 있다!
누가 주인이냐의 싸움!
사루온과 몬로소 주변이 붉게 물들어 떨리기 시작했다.
악마의 피가 공명하며 울리는 파동이었다.
[악마의 피에 미친 오크 대족장, 카라그가 혼란스러워합니다.]
-크아아아아!
카라그가 멈추고 괴롭다는 듯이 머리를 움켜잡았다.
“잘한다, 사루온. 계속 밀어붙여!”
“헉, 헉헉…….”
케인은 그사이 빠져나와서 거친 숨을 내쉬었다. 정말 죽는 줄 알았던 것이다.
“튀자! 튀는 거지?”
“아니, 잠깐만 보고 가자고.”
“야! 저거 진짜 세! 내가 방어 스킬 성공시켰는데 그 위로 두들겨 패서 때리는 놈은 처음 본다! 아무리 보스 몬스터라고 해도 그렇지 평타가 저러면 반칙 아니냐!?”
“널 특히 싫어해서 아닐까? 그보다 저놈이 우리 편으로 돌아서면 편하다고. 힘내라, 사루온!”
태현은 사루온을 응원했다. 대족장 카라그가 멈추고 괴로워하자, 다른 악마의 피를 마신 오크 족장들도 마찬가지로 멈췄다.
-취익, 대족장님께서 정신을 차리려는 건가?
-췩! 돌아와라! 족장들! 정신을 차려라!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마라!
오크들의 응원까지.
거기에 몬로소는 점점 당혹스러워하고, 사루온은 점점 의기양양해하고 있었다.
태현이 ‘어? 잘 풀리나 본데?’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크윽, 크으윽!
“하하! 이 미천한 인간 놈! 너 같은 게 에슬라 님의 피를 다룰 수 있을 줄 알았더냐!”
“오. 사루온. 뺏은 거야?”
“아니.”
“……?”
“뺏는 건 무리였다. 저놈의 지배력이 워낙 만만치 않아서.”
“……그러면?”
“그렇지만 저놈도 조종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말인즉…….”
[악마의 피에 미친 오크 대족장, 카라그가 폭주합니다.]
-이, 이 미친 악마 놈!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알고 있느냐!
몬로소는 경악해서 외쳤다. 사루온이 카라그의 지배권을 뺏지 못하자, 아예 아무도 조종하지 못하도록 폭주시켜버린 것이다.
이제 카라그는 아무도 통제할 수 없는 상태로 변해 버렸다.
“하하하! 너 같은 인간 놈이 멋대로 다루게 할 바에는 그냥 미치게 만들어버리겠다!”
“난 이 자식 모르는 사이입니다.”
오크들의 싸늘한 시선이 쏟아지자, 태현은 재빨리 변명했다.
* * *
그러거나 말거나 상황은 빠르게 진행되어갔다.
카라그와 악마의 피를 마신 오크 족장들은 점점 눈의 색이 검어지더니, 아까보다 더 섬뜩한 소리를 흘려대기 시작했다.
우웅- 우우웅-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악마의 파동!
-이런 미친 악마 같으니! 네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봐라!
“으하하하! 죽어라, 미천한 인간 놈! 어디서 악마의 피를!”
퍽!
태현은 사루온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개소리하지 말고 어떻게 할지나 생각하자고! 저거 어떻게 못 해?”
“폭주한 악마의 피는 누구도 돌릴 수 없지. 저놈은 이제 아무도 통제할 수 없는 괴물이 된 거다.”
“……너 진짜 잠깐만 이리 와봐라.”
“폭, 폭탄으로 쓰는 건 안 된다고 했을 텐데!”
후우우웁-
콰아아아아앙!
[대족장 카라그가 <지옥 악마의 숨결>을 사용합니다!]
-주인님! 저거 브레스입니다! 거의 드래곤 브레스 수준이에요!
-주인이여! 저건 아키서스의 가호가 있어도 위험하다! 피해야 한다!
위험하다고 판단했는지, 흑흑이와 용용이가 튀어나와 재빨리 태현을 붙잡았다.
“잠깐, 저 방향은! 안 돼!”
“저 방향에 뭐가 있길래?”
“오크 창고가 저기 있는데……! 젠장, 흑흑이! 케인을 챙겨!”
태현은 재빨리 용용이의 도움을 받아 카라그의 스킬 범위에서 벗어났다.
-취이익! 피해라! 피해!
다른 오크들도 상황이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는지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스킬이 작렬했다.
* * *
꽈르릉!
우르크 지역 오크들의 상징이었던, 최심부 요새.
그 최심부 요새는 거의 반파된 상태였다.
가운데에는 검붉은 악마 화염이 넘실거리면서 번지고 있었고, 그 사이 사이에는 악마처럼 변한 오크들이 눈을 부라리며 서 있었다.
카라그가 <지옥 악마의 숨결> 한 방으로 이렇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저 오크 놈, 어마어마하게 단련된 오크인가 보군. 아무리 악마의 피를 받아들였어도 이건 쉽지 않은데.”
사루온은 그 와중에 감탄하고 있었다.
“저건 그냥 버리고 가자.”
“그래! 저 도움 안 되는 놈!”
태현과 케인을 들은 사루온이 급히 대답했다.
“아, 아니. 에슬라 님이 이걸 보면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냥 도망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태현은 계산을 다시 세웠다.
원래 계획은 사루온의 힘을 빌려, 카라그나 족장들을 뺏어서 몬로소를 잡고 다른 오크들을 잡는 것이었다.
최심부 요새도 차지하고, 전리품도 차지하고, 경험치도 얻고…….
이렇게만 되면 일반적인 퀘스트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보상을 얻을 수 있었다.
‘근데 지금 상황을 보니 글렀군.’
카라그의 지배권을 뺏는 것도 실패, 전리품을 보관해 두는 창고도 박살…….
게다가 카라그나 같이 타락한 오크들이 너무 강해 보였다.
그에 비해 멀쩡한 오크들은 ‘대족장님! 돌아오세요!’만 외치고 돕지는 않으니…….
‘그냥 튈까?’
여기까지 1초.
‘그냥 튀어야겠다.’
여기까지 2초.
태현은 이런 부분에서는 냉정했다. 다른 플레이어들과 달리 본전에 집착하지 않았다.
“좋아! 튀자!”
탁!
-……어디를 가려고, 이 마탑의 개자식아?
[<악마의 영원한 증오>가 주변에 퍼져나갑니다.]
[몬로소를 쓰러뜨리기 전에는 나갈 수 없습니다.]
다른 놈은 보내도 너는 못 보낸다!
몬로소의 새파랗게 타오르는 증오가 태현에게 집중되었다.
“아, 자식. 더럽게 소심하기는. 원한은 잊어야 하는 걸 못 배웠냐?”
“……누가 악마인지 모르겠군.”
사루온은 중얼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무기를 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 싸울 수밖에 없었다.
-오늘 여기가 네 무덤이 될 거다, 배신자!
“몬로소. 상황파악을 잘했어야지. 다른 건 몰라도 그냥 떠나려는 우리를 붙잡다니. 아까처럼 너한테 유리한 상황 같냐?”
태현은 몬로소를 비웃었다.
아까야 카라그나 오크들이 몬로소의 수중에 있었지만, 이제 그들은 알아서 폭주하고 있었다.
즉 몬로소를 지켜줄 놈들은 없다는 것!
힘을 모아서 몬로소만 집중적으로 죽이면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었다.
-흥, 악마의 피를 받은 날 네깟 놈이…….
“저놈만 잡으면 된다! 잡아서 조져! 오크들! 저기 네 대족장과 족장들을 타락시킨 놈이 있다! 잡아서 죽여라! 저놈을 잡아서 죽이면 너희 대족장과 족장들이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르고 없을지도 모르지! 가라!”
-……?!
사방팔방에 있는 놈들은 모두 다 끌어들이려고 하는 태현을 보며, 몬로소는 기겁했다.
하도 열 받게 해서 실수를 한 것이다. 지금 상황은 태현과 싸울 때가 아니었다.
-잠, 잠깐…….
“늦었어. 인마. 대족장 카라그! 네 아들을 죽인 계획을 짠 놈이 저기 있다!”
태현은 먹힐지 안 먹힐지는 모르겠지만 카라그에게도 화술 스킬을 시도했다.
아까 케인을 죽어라 후려친 거 보면 의외로 먹힐지도?
-내가 언제 그런 계획을……!
“몬로소 님, 왜 그러십니까! 저번에 그렇게 자랑을 하셔놓고!”
-빠드득!
몬로소의 반쯤 악마로 변한 육체가 파르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