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530화
“아, 저리 가라고. 좀.”
안 그래도 폭탄 될까 봐 심란한 상황에서 부채질을 하니, 장쓰안 입장에서는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앨콧은 투덜거리며 물러섰다. ‘치사한 놈!’이란 말을 남기고.
* * *
사실 지금 장쓰안보다 더 고민이 많은 건 태현이었다.
요새 안에 갇힌 플레이어들은 ‘와! 김태현도 왔네! 신난다!’ 하면서 대부분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었다.
한 방 먹여주기는 했지만 여전히 오크 대군에게 포위당한 상태인 것이다.
“공중으로 튀면 안 되…… 와, 미친.”
태현은 공중을 보고 중얼거렸다.
-까아아아악!
오크 와이번 라이더!
와이번을 타고 있는 오크 투사들이 요새 근처를 맴돌기 시작했다.
“쏴! 쏴서 떨어뜨려!”
파파파파팍!
플레이어 중 궁수들이 요새 위에 서서 쏘아댔지만, 와이번들은 재빨리 물러서서 피해냈다.
-주인님. 공중은 무리일 것 같습니다.
흑흑이의 냉정한 판단. 물론 이 상황에서 말을 꺼내는 이유는 하나였다.
그러니까 날 내보내지 마라!
“녀석. 왜 스스로의 능력을 한계 지으려고 하니?”
-…….
오싹!
흑흑이는 오랜만에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주인님은 절 너무 싫어하십니다! 흑흑!
“아냐, 인마. 널 싫어했다면 벌써 해체해서 요리 재료로 썼겠지.”
-…….
눈물 작전이 조금도 통하지 않는 태현. 흑흑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거 진짜 사디크의 화신 아냐?
“어쩐다…… 방법이…… 이 오크들을 돌려보내거나 할 방법이…….”
태현은 생각에 잠겼다. 그사이 공격은 시작되고 있었다.
쿠르르르릉-
조잡하지만 거대한 공성 병기를 앞에 내세우고, 뒤에서 따라 뛰어들어 오는 오크 전사들.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온갖 주술로 버프를 걸어주고 원거리 공격을 퍼붓는 오크 주술사와 궁수들.
“쏴! 쏴!”
“아니, 뭐 이렇게 많아?!”
“많으면 좋지! 오늘 레벨 120 찍겠다!”
움찔!
멀리서 들리는 플레이어들의 목소리에 태현은 입맛을 다셨다.
‘레벨 업을 하긴 해야 하는데…….’
이번 퀘스트를 어떻게 끝내느냐에 따라 레벨 업이 달려 있었다.
‘아키서스 교단 전도하고, 동시에 오크 부족들 처리해야 하고…… 으. 머리가 아프군.’
콰콰쾅!
“저 투석기 부숴! 저거 내버려 두면 골치 아프다!”
“내, 내가 가서 부수고 오겠다!”
“앗! 장쓰안 님!”
“저 희생정신이라니……!”
“야, 장쓰안! 너 왜 그래! 너 그런 놈 아니잖아!”
뒤에서 들리는 소리는 무시하고 태현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나오는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 * *
“족장님들을 뵈러 왔습니다.”
-췩! 마법사. 뭐하는 거냐? 지금은 바쁘다. 네가 몬로소의 부관이더라도…….
“지금 당장 뵙게 해주십시오!”
-취익…… 알겠다!
[고급 화술 스킬을…….]
[……설득에 성공합니다.]
태현은 오크 족장을 만나는 걸 허락받았다. 부관 자리에 화술 스킬까지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오크 족장들은 태현을 보자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명백한 이방인 취급!
-췩, 뭐냐?
“족장님! 저는 오늘 제 정의로운 마음과 뜨거운 심장으로 몬로소를 고발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
-???
-주인님????
-주인이여????
흑흑이와 용용이가 둘 다 당황할 정도의 발언!
같이 짝짜꿍해놓고 뭔 소리?
-췩! 무슨 소리냐, 그게?!
-취익. 일단 들어보도록 하자고, 뼈 부족 족장!
자리에 있던 족장들은 태현의 고발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몇 명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재촉했다.
태현은 최대한 간절하고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크흑…… 저는 몬로소에게 협박당해서, 그 밑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명예롭게 싸우는 오크들을 보니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몬로소 그놈은 대족장을 속여서 타락시킨 다음 자기 손아귀에 넣고 멋대로 부려먹고 있습니다!”
-……!
-!!!!!
태현이 던진 말. 그 충격은 대단했다.
자리에 있던 오크 족장들은 벌떡 일어서며 분노했다.
-췩! 그 말이 사실인가!
-취이이익! 몬로소 이 찢어 죽일 놈! 어쩐지 수상하다 했는데!
-췩! 잠깐, 저 인간 놈의 말이 사실인지 어떻게 알지?
“믿어주십시오! 제가 한낱 인간이지만 저는 위대한 오크 부족의 대족장 카라그 님을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카라그 님이 이런 모욕을 당하다니!”
카라그를 사디크의 화염으로 지져서 일어나지 못하게 만든 태현이 할 소리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오크 족장들은 태현의 뜨거운 웅변에 감동하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오크 족장들은 마찬가지로 몬로소의 계략에 빠진 겁니다!”
-췩! 지금 당장 돌아간다! 몬로소 놈을 찢어 죽여야 한다!
-췩! 맞다! 몬로소를 찢어 죽이자!!
오크 족장들은 대분노!
태현은 그걸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퀘스트 한 번 깨기 더럽게 힘들었다.
‘젠장, 몬로소랑은 아직 사이좋게 지내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나…… 일단 몬로소 죽인 다음 오크 부족들끼리 어떻게든 분열시켜보자.’
이간질할 생각부터 하는 태현이었다.
* * *
“오크들이 성벽 타고 오른다!”
“찔러서 떨어뜨려!”
“무리야! 너무 많아!”
인해전술로 재미를 본 플레이어들이었지만, 진정한 인해전술이 뭔지 제대로 경험하고 있었다.
죽이고 죽여도 계속 밀려 들어오는 오크 대군!
마치 디펜스 게임을 하는 기분이었다.
요새 벽 위에서 오크들을 밀어내려고 해도, 공성 병기와 화살들이 수백 개 넘게 날아왔다.
하나하나는 약해도 공격이 워낙 많으니 어떻게 견뎌낼 수가 없었다.
“뚫렸다! 동쪽 벽 뚫렸어!”
“가서 막아! 사제님들! 저기 지원 좀요!”
“무리예요! 여기도 지금 올라오고 있다고요!”
“장쓰안 님! 어떻게 하죠?!”
“버텨라! 버텨!”
“뭐래?”
“버티래!”
“아니, 이 상황에서 그냥 버티라고? 진짜? 뭐 후퇴해야 하는 거 아니야?”
“생각이 있으니까 하는 거겠지!”
“확실히 장쓰안이라면…… 헉! 오크들이 물러선다!”
플레이어들은 경악했다.
마치 썰물처럼 오크들이 우르르 후퇴하기 시작한 것이다.
“쫓아가서 공격해 볼까?”
“미쳤냐? 가만히 있어. 다시 공격하면 어쩌려고.”
장쓰안은 후퇴하는 오크들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든 살았구나!
“장쓰안! 장쓰안! 장쓰안!”
“우리의 영웅! 장쓰안!”
“……그, 그만! 그만!”
장쓰안은 양심의 가책 때문에 더 이상 칭찬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런 태도가 플레이어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겸손하기까지!”
“우리가 오해하고 있었어! 재수 없는 놈인 줄 알았는데!”
짝짝짝-
그걸 본 앨콧이 옆에서 말했다.
“너 이런 놈이었냐? 진짜 신기한데?”
“…….”
* * *
-췩! 몬로소를! 죽이자!
-취이익! 몬로소를! 죽여야 한다!
성난 파도처럼 최심부로 향하는 오크 군세.
각 오크 부족들의 부족장들이 앞장섰고, 그 옆에는 태현이 있었다.
“사실 저번에 대족장님께서 다치신 것도 그 몬로소 놈이 계획한 겁니다.”
-취이이이익! 그런 사악한 놈이!!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대족장님께서 다치셨겠습니까? 그때 있던 놈들도 몬로소의 수하였던 거죠.”
-취익! 찢어 죽일 놈!
“그 대족장님의 아들을 죽인 케인이란 놈도 몬로소의 수하입니다.”
-췩!!!!
-췩, 그러고 보니 케인이란 놈이 잡혔다고 들었는데?!
“그놈을 몬로소가 데리고 갔습니다. 자기 부하니까 챙기려고 그런 거겠죠.”
[오크들의 분노가 최대치에 달합니다.]
[오크들이 <끓어오르는 피의 광폭화> 상태에 빠집니다.]
[모든 부상과 상태 이상이 회복됩니다.]
[…….]
[…….]
[모든 능력치가 100% 일시적으로 향상됩니다.]
‘응?’
태현은 의아해했다.
지금 곧 몬로소를 죽이러 가는 건 맞긴 한데, 이건 너무 강해진 거 아닌가?
오크들이 다혈질이고 잘 화를 내는 종족인 건 알고 있었다.
분노하면 여러 버프가 들어가는 것도.
그런데 이 정도로 버프가 걸릴 줄이야.
‘어, 너무 분노하게 만들었나?’
한쪽이 너무 강해지면 태현에게 좋을 게 없었다.
오크 부족들이 진실을 알아차리면 그 분노가 누구에게 향하겠는가?
콰드득! 콰득!
오크들이 들고 있던 무기가 박살 나는 걸 보고 태현은 기겁했다.
무시무시한 분노 버프 효과!
* * *
“뭐야? 왜 돌아오는 거지? 부관! 설마 또 요새를 잃었나?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 인원으로…….”
멀리서 다가오는 족장들과 태현을 본 몬로소는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러나 돌아온 건 도끼였다.
콰직!
-췩! 죽어라, 마법사!
“컥!”
바로 머리부터 내려찍고 시작하는 호쾌한 오크 식 인사!
몬로소는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이, 이게 뭔…… 미친 거냐? 이 목걸이가 안 보이냐?!”
-췩! 네가 대족장님을 속여서 목걸이를 뺏은 걸 알고 있다! 어디서 뻔뻔하게 그 목걸이를!
-취익! 그 목걸이는 오크의 것. 너 같은 잡놈이 가질 게 아니다! 죽여라!
“이것들이 미쳤나! 부관! 막아라!”
“…….”
그러나 태현은 시선을 돌렸다. 오크 족장들은 신이 나서 외쳤다.
-췩! 이놈은 네 악행을 고발했다! 오크의 마음을 가진 이놈이 네 악행이 얼마나 뻔뻔했는지 고발했단 말이다!
“뭐, 뭐? 그럴 리가 없다! 같이…….”
“몬로소! 네 악행의 대가를 받을 때다!”
“…….”
몬로소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표정이었다.
원래 태현은 그냥 뒤에서 있다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을 생각이었지만, 지금 대화를 보니 끼지 않으면 몬로소가 태현을 물귀신처럼 끌고 갈 것 같았다.
여기서 잘라내야 할 때!
“대족장의 아들을 함정에 빠뜨려서 죽인 죄!”
“……?”
“그것도 모자라서 대족장을 불의 함정에 빠뜨려서 죽이려고 한 죄!”
“……???”
“다친 대족장에게 악마의 피를 먹여 네 노예로 만들려고 한 죄!”
“아니, 그건 내가 했지만…….”
“저 봐! 저 봐! 저놈이 저렇게 사악한 짓입니다!”
“나머지는 무슨 개소리를…….”
“그리고 오크들을 제물로 바쳐 악마를 소환하려고 했던 죄!”
앞에는 자기가 했던 일들을 끼워 넣고, 뒤에는 진짜 몬로소가 한 일을 놓아서 반박하기 어렵게 만드는 태현!
이번 기회에 오크들과의 빚을 아예 청산할 생각이었다.
-췩, 몬로소. 변명할 필요 없다. 남자라면 당당히 죽어라.
-취익, 널 찢어서 사지를 뿌려놓겠다.
몬로소는 상황을 깨달았다. 몬로소는 태현을 노려보았다.
역시 이 상황에서 가장 얄미운 놈은 태현!
“역시 마탑 놈하고는 상종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모르겠는데요.”
“오냐, 내가 네놈만큼은 반드시 죽여주마!”
“아니, 널 죽이려는 건 오크들인데 왜 나한테 화를 내?”
태현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몬로소는 결심한 것 같았다. 태현은 재빨리 외쳤다.
“저 사악한 놈이 무슨 짓을 하기 전에 죽여야 합니다! 지금 당장!”
-췩, 알겠다! 가자!
달려드는 오크 족장들.
몬로소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마셨다.
그 순간…….
콰드득! 콰득!
-췩! 공격이?!
오크들의 무기가 몬로소의 몸에서 튕겨 나갔다.
몬로소의 몸이 붉게 물들더니,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
태현은 슬쩍 뒤로 물러서려고 했다. 그렇지만 이미 뒤에는 오크 족장들이 데려온 전사들이 있었다.
-췩, 왜 그러나?
“아냐. 아무것도.”
꿈틀거리던 몬로소는 기괴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 한 번 죽일 수 있다면 해봐라. 나와라! 내 노예들아. 주인이 위험한 상황이다!
쾅!
그 말에 대족장의 천막이 펄럭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