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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529화 (529/1,826)

§ 나는 될놈이다 529화

그러나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초반에 오크 요새에서 쏟아지는 맹공을 받고 로그아웃 당한 플레이어들은 이 자리에 없었으니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상한 장쓰안의 전략이었지만, 아무도 지적하지 않고 넘어간 것이다.

“장쓰안! 장쓰안!”

“다음에도 장쓰안이 지휘를 하면 순식간에 이기겠네!”

“맞아!”

‘너희들……!’

장쓰안은 뭉클해졌다.

평생 거만하게 살아온 장쓰안이었다. 이런 식으로 생각지도 못하게 칭찬을 받자 마음이 뭉클했다.

“썩어도 랭커지, 역시!”

“김태현한테 그렇게 당해서 호구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대단하잖아!”

“어떤 자식이야?!”

장쓰안은 울컥해서 화를 냈다. 이 좋은 칭찬하는 시간에 감히!

* * *

“이 기세를 몰아서 쭉쭉 갑시다!”

“맞아요! 오크들 보니까 별거 아니네!”

자리에 모인 플레이어들의 분위기는 열광적이었다.

대형 길드이 주도한 게 아닌, 플레이어들끼리만 모여서 두 개의 요새 공성전을 빠르게 성공시켰다.

즐거울 수밖에 없는 분위기!

아무도 패배를 걱정하지 않았다. 그 분위기에 장쓰안도 전염되었다.

아, 뭔가 잘되나 보다!

“그래! 지금 여기서 이러지 말고 다음 공격을 준비하자!”

“와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이다비는 중얼거렸다.

“불안한데…….”

“왜 그러십니까?”

“지금 이긴 게 정상적으로 이긴 게 아닌데 다들 저러잖아.”

“말릴까요?”

“가서 말린다고 들을 분위기가 아니니까…… 계속 잘 풀려야 하는데. 만약 일이 꼬이면…….”

“꼬이면?”

“장쓰안이 가장 먼저 매달리지 않을까?”

“……그러면 저희는 괜찮겠네요?”

“그렇긴 하겠네. 거리를 두면.”

슬슬-

이다비와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신나서 플레이어들과 떠드는 장쓰안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 * *

‘도와주러 왔는데 알아서 잘하잖아? 뭐야, 장쓰안 녀석. 생각보다 머리가 좋았나?’

요새에 있던 오크들을 방해하러 왔던 태현이었지만, 플레이어들끼리 알아서 잘하자 할 일이 없어졌다.

“응?”

그 순간, 남쪽 언덕에서 뭔가 녹색으로 우글거리는 것들이 보였다.

‘꼭 오크처럼 생긴 것들이…… 오크잖아?!’

엄청난 기세로 몰려오고 있는 오크 전사들!

규모로 봤을 때 이 근처에 있는 부족 하나가 통째로 온 것 같은 수준이었다.

지금 요새에 있는 플레이어들의 규모와 맞먹는 수준!

‘그래도 요새 안에 있고, 플레이어들이 유리하겠지?’

같은 레벨의 플레이어와 몬스터가 붙으면 어지간히 발컨이 아닌 이상 플레이어가 유리했다.

장비도 그렇고, 스킬도 그렇고, 스탯도 그렇고…….

지금 요새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대부분이 레벨 100은 넘긴 고렙 플레이어들이었다.

평범한 오크 전사들보다는 강할 게 분명!

-취이이익! 북을 울려라! 침입자 놈들에게 죽음을!

“??!?!”

남쪽 언덕에서 오크들이 오고 있는데 왜 동쪽 산에서도 오크들의 소리가?!

태현은 기겁해서 고개를 돌렸다.

이건…….

-췩! 저기 요새에 모험가 놈들이 있다! 죽이러 가자!

-취이익! 뼈 갑옷 부족 여기 왔다!

-취익! 녹색 피 부족 여기 왔다!

-췩! 침입자들에게 죽음을!

사방팔방에서 나타나는 오크 지원군들. 부족 하나가 온 게 아니었다.

플레이어들이 요새 두 개를 뚫고 최심부 앞까지 진격하자, 이 근처에 있던 오크 부족들이 전부 몰려온 것이다.

‘미친……!’

플레이어들의 숫자와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의 물량!

<강철의 대가> 요새 근처에 오크 반, 수풀 반일 정도로 오크가 많았다.

* * *

“어, 어……?”

“뭐임? 도대체 뭐임??”

태현이 먼저 봤지만, 요새 안의 플레이어들도 금세 상황을 알아차렸다.

시력이 좋은 궁수 플레이어들이 가장 먼저 보고 말을 전해준 것이다.

“포, 포위됐…….”

“아, 아직 아냐! 저기 뒤에는 길이 있으니까…….”

-취익! 우리 부족 여기 왔다!

“이제 포위됐네.”

“괜, 괜찮아! 요새가 있잖아!”

“장쓰안도 있고…… 장쓰안? 장쓰안?”

“어, 어?”

장쓰안은 혼이 빠진 표정을 지었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플레이어들은 그걸 보고 수군거렸다.

“방금 엄청 당황하지 않았냐?”

“아, 아닐 거야. 이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겠지? 우르크 지역에 들어와서 퀘스트 하는데 설마…….”

“맞아. 장쓰안이 그것도 모를 리가…….”

“물론이다. 당연히 예측하고 있었다!”

“역시!”

“장쓰안이야!”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러면?”

“이…… 일단…….”

장쓰안은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는 기분을 느꼈다. 수십 가지 생각이 한 번에 지나가고, 무의식적으로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

“돌격?”

“……돌격?”

“진짜로?”

“뭐, 장쓰안이 한 말이니까…….”

플레이어들은 의아해했지만, 아직까지는 장쓰안을 믿고 있었다.

끼이이익-

“저 미친놈들은 왜 요새 문을 여는 거야?!”

태현은 기겁했다.

지금 태현은 어떻게 저 요새 플레이어들을 도울까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여기 있는 플레이어들이 전멸이라도 한다면, 우르크 지역 퀘스트는 끝장이라고 봐야 했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겁이 나서 도망칠 테고, 부활한 플레이어들도 더 이상 모이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갈 테니까.

이 전력을 최대한 아껴야 오크들과 싸움을 붙일…… 아니, 오크들과 싸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장쓰안, 미쳤냐?! 수비를 해도 모자랄 상황에 뭐하는 거야!

-어, 어? 다시 불러야 하나?

-미친놈아! 지금 성문 열고 돌격하는데 어떻게 다시 불러!

-미리 말해줬어야지!

-오크들이 사방에서 몰려오는데 성문 열고 돌격하지 말라는 것도 말해줘야 하냐?!

“가자! 가자!”

말을 탄 플레이어들이 앞장서서 돌격을 시도했다.

탈것을 탄 상태에서의 공격은 여러 가지 보너스가 붙었다.

-취익? 저놈들 뭐냐?

-췩, 겁이 없다, 모험가 놈들!

“야, 너무 많은 거 같은데? 진짜 괜찮은 거 맞냐?”

“어, 좀…….”

돌격하던 플레이어들은 막상 앞에 오크들의 숫자를 눈으로 확인하자 흠칫했다.

많아도 너무 많았던 것!

탁!

“비켜, 이 자식아.”

“어?!”

갑자기 옆에서 튀어나온 태현!

말을 타고 있던 플레이어는 어, 어 하는 사이에 말을 빼앗겼다.

“멈추지 마라! 저 정도 오크들은 한 번에 돌격하면 뚫어낼 수 있다!”

“어? 저건…….”

“김태현! 김태현이잖아!!!”

변장을 풀고 나타난 태현.

그 모습에 돌격하던 플레이어들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태현에게 말을 뺏겨서 뒤에 밀려나 있던 플레이어도.

“김태현?!”

“아, 시끄러. 작게 말해.”

“앗, 네, 죄송합니다.”

플레이어는 말을 뺏겼는데도 항의 한 번 하지 않았다.

눈빛에는 존경과 흠모가 가득!

‘역시 김태현이야! 과감해!’

‘등 뒤가 이상하게 찜찜한데.’

“김태현이다!!! 김태현!!!”

스타 플레이어가 한 번 나타나면 자리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냥 레벨만 높은 랭커는 할 수 없는 일.

온갖 퀘스트와 대회에서 불가능한 일들을 해냄으로써 명성을 얻은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와라! 가자!”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고급 전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파티의 돌격에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가혹한 채찍질, 직감과 행운의 지휘!

원래 갖고 있던 채찍질 스킬과 전술 스킬 고급을 찍고 나서 얻은 <직감과 행운의 지휘>까지.

[직감과 행운의 지휘가 가장 올바른 길을 알려줍니다.]

[파티의 상태에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대지 정령의 분노!

-파도치는 정령의 저주!

콰르르르릉!

달려드는 플레이어들 위로, 오크 주술사들의 주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파괴적인 마법은 아니지만, 오크 주술사들은 온갖 종류의 디버프 스킬들을 능숙하게 사용했다.

지금 싸우기 직전에 저런 디버프를 당하면 엄청나게 불리해졌다.

[이동 속도가 내려갑니다.]

[물리 방어력이 내려갑니다.]

[……]

태현은 바로 대응했다.

-화신의 함성!

[<화신의 함성>을 사용했습니다. 모든 상태 이상이 해제됩니다!]

“와아아아아! 김태현! 김태현!”

디버프가 풀리는 걸 본 플레이어들은 열광했다.

그들은 가장 앞에서 미친 듯이 말을 몰고 있는 태현의 등만을 죽어라 쫓아 달렸다.

[칭호:비정한 지휘관을……]

[칭호:공포를 모르는 자를……]

[칭호:풍차에 돌진하는……]

오크 부족에 직격하기 3초 전.

태현은 손을 들고 스킬을 사용했다.

-아키서스의 축복!

* * *

기적에 가까운 돌격이었다.

성문을 열고 몰려드는 오크들에게 다짜고짜 돌격을 했는데도 플레이어 한 명 다치지 않고 무사히 돌아온 것이다.

그것도 덤벼오는 오크 전사들을 박살 내놓고!

[오크들의 사기가 대하락합니다.]

[참가한 플레이어들의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칭호:돌격 생존자를 얻었습니다.]

별생각 없이 참가했다가 ‘어? 뭐야? 너무 많은데?’ ‘어? 김태현이 왜 갑자기 나와?’ ‘어?? 어???? 뭔가 되는 거 같은데?’ 같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겪은 플레이어들은 기뻐했다.

생각지도 못한 보상들이 몰려나온 것이다.

“와, 저걸 살려서 나오네.”

“인간인가?”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방금 멀리서 본 장면에 질린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태현이 날뛰는 걸 동영상으로 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실제로 보니 충격이 몇 배는 컸다.

저렇게 수천 명이 넘게 있는 전장에서 혼자 힘으로 상황을 바꾸다니.

돌격하는 기병에 접근해서 말을 뺏어 탄 다음 지휘를 해서 능숙하게 오크들을 휘젓고 나오는…….

하여튼 어마어마하게 굉장한 장면!

“이거 올리면 <이번 주의 가장 대단한 판온 순간들>에 확실하게 들어가겠다.”

“야! 나도 올리려고 했는데!”

길드원들의 대화를 듣던 이다비가 조용히 끼어들었다.

“애들아?”

“네? 길마님?”

“내가 올릴 거야.”

“…….”

‘치, 치사해!’

* * *

“역시 장쓰안! 태현 님이 있는 걸 알고 돌격하라고 한 거군요!”

“난 갑자기 돌격하라길래 미친 줄 알았어!”

몰려들어서 장쓰안을 칭찬하는 플레이어들.

심지어 앨콧마저 옆에서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너, 이런 재주도 있었냐?”

“…….”

장쓰안은 화를 낼 여유도 없었다. 이미 귓속말로 태현한테 욕을 푸짐하게 얻어먹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케인보다 못한 놈! 야! 케인도 그런 돌격은 안 한다! 돌았냐! 어? 돌았냐?!

-미, 미안하다…….

-미안하다는 말만 하면 다냐! 앞으로는 너 숨 쉬는 것도 나한테 보고하고 숨 쉬어라. 이상한 짓 하지 말고 요새 안에서 버티고만 있어! 뭐 하고 싶은 거 있으면 이다비한테 다 물어보고 해! 또 한 번 돌격하면 널 생체 폭탄으로 써버릴 테니까!

-…….

진심 100%인 협박!

장쓰안은 태현이 케인을 폭탄으로 쓴 걸 본 적이 있었다.

그걸 당한다니!

‘그건 절대 안 돼……!’

“자! 자! 이제 한 방 먹여줬으니 수비할 때다! 모두 다 요새를 수비할 준비를 하자고!”

“네! 장쓰안 님!”

기분 좋게 한 방 먹여준 덕분에, 플레이어들은 장쓰안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요새의 수비를 준비했다. 주변의 오크들이 빽빽하게 포위망을 만드는데도 겁을 먹은 표정이 아니었다.

“야, 장쓰안.”

“……?”

앨콧이 은근한 표정으로 장쓰안의 옆구리를 찔렀다.

“근데 김태현 어디 갔냐? 나 이야기할 게 좀 있어서…….”

“……몰라, 이 자식아.”

“이게 좋게 말을 꺼냈는데도 이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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