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527화
결국 태현은 꺾였다.
당사자가 그렇다는데!
“그래. 그러면 지금부터 판온에서 아이템이라도 찾아봐야겠다.”
“좋은 생각이에요!”
* * *
“앗! 안녕하세요! 헉! 영광입니다! 네! 네! 어디냐고요? 여기가 그러니까…… 네? 거짓말 아닌데요? 진, 진짠데…….”
“……?”
숙소에서 뒹굴거리고 있던 최상윤은 의아하다는 듯이 케인을 쳐다보았다.
뭔 전화길래 케인이 저러지?
“누구 전화야?”
“P, PD님이래! SBC 방송사!”
“그 사람이 왜?”
“방송 나올 생각 없냐고 하시는데?”
“관두는 게 좋지 않을까?”
“?!”
진지한 최상윤의 조언! 케인은 당황해서 되물었다.
“왜!”
“방송에 나오면 또 패션 가지고 욕을…….”
“…….”
케인은 반박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런 욕 몇 개 때문에 방송 출연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무슨 소리! 그 정도는 상관없어! 나갈 거야!”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최상윤은 마음대로 하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케인은 다시 핸드폰을 붙잡았다.
“네! 네. 김태현도 같이 나온다고요? 아, 숙소를…… 네! 주소 여기 맞아요! 아니, 진짜라고요! 어떻게 구했냐고요? 어, 김태현이 구했는데…….”
최상윤은 앞에 아무도 없는데 케인이 굽신거리며 전화를 하는 걸 지켜봤다.
전화가 끝나자, 궁금해진 최상윤이 물었다.
“근데 넌 왜 다른 게임단 제안을 거절한 거야? 물론 태현이가 만든 게임단이 어디 가서 꿀리지는 않겠지만 다른 곳 제안도 엄청 좋았을 텐데.”
“그게…… 안 오던데.”
“……?”
최상윤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안 왔다고?”
“응…….”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아니고?”
“내가 바보냐! 그런 걸 착각하게!”
* * *
“붉은 바위 요새가 함락되다니! 너희들은 뭘 하고 있었던 거냐! 이 도움 안 되는 놈들!”
-췩, 우리가 도와주러 가기도 전에 벌써 함락되어 있었…….
“그걸 말이라고! 이래서 오크 놈들은 싫다니까! 이런 무능한 놈들!”
몬로소는 펄쩍 뛰면서 오크 족장들을 비난했다.
오크 족장들은 몬로소를 노려보았지만 반발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요새는 함락 당했으니까.
그사이 접속한 태현은 은근슬쩍 끼어들었다.
“크윽…… 죄송합니다……! 모험가 놈들의 공격이 너무 악랄하고 집요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 오크 놈들아! 여기 내 부관은 직접 요새에 가서 싸웠는데 너희들은 뭘 하고 있었던 거냐!”
부족 전사들을 모아서 요새로 가려고 했던 오크 족장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너무 빠르게 함락당한 붉은 바위 요새!
내부에 첩자가 몰래 문이라도 열어준 게 아니라면 불가능한 상황!
그렇지만 몬로소는 항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움직여라! 다음 요새도 함락당하면 너희들을 가만히 두지 않겠다! 대족장님께서 너희들을 탓하고 계시니까!”
-취익, 대족장님을 뵙고 싶다. 뵙게 해다오.
“너희들한테 실망하셔서 못 나오신다! 가서 너희들 일이나 해라!”
‘이야. 잘하네.’
태현은 감탄했다. 저렇게 당당하게 사기를 칠 수 있다니.
이런 곳에서 배울 점을 찾는 태현이었다.
“<붉은 바위 요새>가 함락당한 이상 다음은 그 위에 있는 <강철의 대가 요새>다. 거기로 오크들을 불러 모아! 저 오합지졸 모험가들 상대로 이 무슨 추태냐!”
-췩, 알겠다.
오크 족장들은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몬로소의 말을 받아들였다.
일단은 틀린 구석이 없었으니까.
“몬로소 님. 지금 악마의 피를 마신 족장들은 어디 있습니까? 그들이라도 불러서 돕게 해야…… 모험가 놈들 기세가 만만치가 않습니다.”
“대족장처럼 지금 천막에 들어가서 쉬고 있다.”
“내보내면 안 됩니까?”
“안 돼. 겉모습이 완전히 달라져서 바로 눈치를 챈다고.”
“하하, 그렇군요.”
은근슬쩍 정보를 모아가는 태현.
‘그렇단 말이지?’
“저도 <강철의 대가 요새>로 가서 싸우겠습니다. 제 부하 몇 명도 불렀으니 곧 도착할 겁니다.”
“좋은 마음가짐이야, 역시 내가 부관으로 임명한 사람답다. 가서 막아라!”
“저, 몬로소 님. 에다오르는 언제 소환하실…….”
“지금은 무리지. 제물로 오크들을 바쳐야 하는데 그렇게 모을 시간이 없어. 모험가 놈들이 저 요새 앞마당에서 날뛰고 있다고 하잖아.”
“그렇군요.”
“……방금 웃은 거 같은데?”
“아닙니다. 분노로 얼굴을 찡그린 겁니다.”
* * *
“왔습니다! 태현 님.”
“왜 나까지……?”
자칭 대도적 에드안과 악마 대장장이 사루온.
둘은 도착해서 요새 밖 숲에서 태현과 만났다.
“에드안. 널 부른 이유는 간단하다. 사실 한 가지밖에 없지. 훔칠 게 있어서야.”
“후후,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사루온은 경멸하는 눈빛으로 에드안을 쳐다보았다.
처음에 불렀을 때도 도망치려고 하다가 갈락파드한테 붙잡힌 도둑놈!
품위 없는 이런 놈을 왜 같이 부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자, 저기 가서 대족장의 권위를 상징하는 해골 목걸이를 훔쳐와.”
“……네? 저기 오크 대족장이 있는 심장부 요새 아닙니까?”
“오. 용케 아는데?”
“저야 온갖 곳을 돌아다녔으니 이런 지리 정도야…… 아니, 잠깐만요. 태현 님! 저기로 들어가는 건 미친 짓입니다! 게다가 대족장의 목걸이라니. 대족장이 눈치챈다면 절 갈아 마실 겁니다!”
“괜찮아. 난 멀리 가 있을 테니까.”
“…….”
“농담이고, 지금 대족장은 정상이 아니야. 목걸이는 다른 놈이 갖고 있다. 몬로소라는 마법사인데, 별거 아닌 놈처럼 보여. 아마 별거 아닐 거야.”
“……정말입니까?”
에드안은 못 믿겠다는 듯이 되물었다.
다른 교단에서는 볼 수 없는 불신!
사루온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에드안을 구박할 정도였다.
“이 도둑놈. 교단을 이끄는 교황 앞에서 무슨 말버릇이냐? 교황이 무슨 시정잡배도 아니고 당연히 이런 걸로 거짓말을 안 하겠지. 그렇겠지?”
사루온은 말과 함께 태현을 쳐다보았다.
태현은 찔리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그렇지!”
“……?”
“방금 말 더듬으셨습니다! 말 더듬으셨다고요!”
“잘못 들었겠지. 어쨌든 네가 가서 잘 판단하고 알아서 갖고 나와라. 아, 그리고 저기 창고 있는데, 창고에서 뭐 좀 괜찮은 거 있으면 다 갖고 나와.”
“대족장이 있는데…….”
“……근데 그 대족장이 지금 정상이 아니니까 기회라고. 대족장 따르던 정예 놈들도 지금 대족장이 정상이 아니라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고 있어. 지금이 기회야!”
[고급 화술 스킬을……]
[교단 내 지위를……]
[높은 악명을……]
[이제까지 에드안에게 제안했던 도둑질들이 있어서…….]
[에드안의 설득에 성공합니다.]
“그렇다면 맡겨만 주십시오!”
“그래. 그래. 가서 좀 알뜰살뜰하게 챙겨와라. 내가 가져가려고 하니까 오크 놈들이 눈치 주더라.”
후다닥!
숲 사이로 사라지는 에드안. 태현은 사루온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나는 왜 불렀지?”
“아, 그게 별건 아닌데…….”
“……별거 아닌데 불렀다고? 지금 뛰어난 대장장이들에게 새로운 비전 폭탄에 대해 가르쳐주고 있었는데!”
“혹시나 해서 묻는데, 뭔 폭탄이지?”
“<그림자 잠입 폭탄>이라고, 악마 대장장이 사이에 내려오는 비전 중 하나지. 상대방의 그림자에 몰래 숨겨 넣는 폭탄으로 당하는 놈은 아무도 모르는…….”
“…….”
태현은 진지하게 사루온을 쫓아내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태현의 영지는 다른 도시에 비하면 부족하게 많은 영지였다.
그런 부족함을 받쳐주는 게, 다른 도시에 없는 특별한 것들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루온과 기계공학 대장장이 플레이어들은 너무…… 불길했다.
언젠가 ‘태현 님! 영지가 활활 타고 있습니다! 사고가 났나 봐요!’라는 말이 들려올 것만 같았다.
“……그 제작법은 나한테도 알려주고, 어쨌든 오늘 부른 이유는 에슬라 때문이다.”
“에슬라 님! 에슬라 님 때문에 불렀다고? 무슨 일이지?!”
“에슬라하고는 사실 관계가 없을 수도 있는데…….”
태현은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생각해보니 에슬라한테는 별문제 없고, 피 조금 뽑아서 일으킨 일이니 사루온은 별생각 없으려나?’
그러나 사루온의 반응은 격렬했다.
“이런…… 건방지고…… 같잖은 놈이……!”
분노로 부들부들 떠는 사루온!
“가서 죽이자! 죽여야 한다!”
“아니, 지금은 안 되고.”
“지금은 안 된다니! 저놈이 에슬라 님의 피를 이용하고 있다는데!”
“지금 가면 죽는다니까. 저기 오크들이 얼마나 많은데. 악마 레이드를 내가 다시 구경하고 싶지는 않다.”
태현은 간신히 사루온을 진정시켰다.
“자. 들어봐.”
“후욱, 후욱, 후욱…….”
“저놈이 에슬라 피를 오크들한테 먹인 다음 그걸로 부려먹으려는 계획 같은데. 네가 가면 저놈보다 네 말을 듣지 않을까? 일단은 네가 에슬라하고 가까운 악마잖아.”
“음…… 그럴듯하다. 확실히 가능성 있다.”
“……!”
사루온이 고개를 끄덕이자 태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계획의 조건 중 한 가지가 해결된 것이다.
“그렇지만 확인하려면 들어가야 할 텐데?”
“들어가면 되지 왜.”
“아니, 뛰어난 악마술사라면 내가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눈치챌 텐데?”
“……!”
태현은 아차 싶었다. 몬로소가 입이 가볍고 만만해 보여도, 저렇게 악마의 힘을 이용하고 소환할 자신이 있다는 점에서 악마술사로서의 능력은 확실했다.
그렇다면 사루온이 더 가까이 다가가면 들킬 게 분명했다.
“흠. 그러면…….”
“……?”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되겠군.”
“……그냥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사루온은 황당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아무것도 없는 울창한 숲 속에서 뭘 하고 있으라는 것이지?
“음, 그러면…… 고블린들이나 소개해 줄까?”
“……그냥 여기서 기다리고 있지. 고블린들은 좀…….”
‘같이 기계공학 하면서 고블린들은 싫어하나?’
태현은 의아해했지만 사루온이 싫다니 굳이 억지로 시키지는 않았다.
* * *
“미친 교황 같으니…….”
중얼거리던 에드안은 말하고 나서 혹시 몰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태현은 보이지 않았다.
“저걸 어떻게 훔치라는 거야?”
태현은 에드안에게 일을 맡기기 위해 몬로소를 형편없이 묘사했지만, 에드안은 한 눈에 알아봤다.
몬로소가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저 로브에 마법이 몇 개나 걸려 있다. 잘못 다가가면 은신 풀리고 죽겠군!’
에드안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태현이 에드안에게 이런 일을 시킨 이유는 하나였다.
에드안은 지가 알아서 불리하다 싶으면 잘 도망칠 놈이기 때문이었다.
충성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키서스 교단!
“창, 창고를 털면 되겠지?”
몬로소는 못 털더라도 창고를 털면 나름 해야 할 일은 한 셈 아니겠는가.
에드안은 그렇게 생각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 나는 시킨 일을 하고 있는 거야!”
다행히 창고는 오크 보초 몇 명이 돌아다니는 것 말고는 더 없어 보였다.
오크 대족장들이 이끄는 정예 부하들은 보이지 않았다.
에드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창고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과연 뭘 가져가야 잘 가져갔다고 소문이 날까?
‘저놈에게 대족장 목걸이 가져가는 건 무리일 테니까 여기서 최대한 벌충을…….’
툭-
창고 안을 돌아다니던 에드안은 뭔가 발에 차이는 걸 보고 시선을 내렸다.
녹슬고 볼품없는 창이었다.
“<카르바노그의 무딘 창>? 뭐 이런 약한 무기가…… 에이, 이건 별로겠군. 게다가 다른 신의 무기라니. 태현 님이 화를 내실지도 모르겠어.”
평소에는 그렇게 신실하지도 않던 에드안이었기에, 이럴 때라도 좀 신실한 티를 내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