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523화
태현이 그런 생각을 하는지 꿈에도 모르는 채, 몬로소는 태현을 응원했다.
“가라! 가서 놈들을 막아라!”
“예!”
* * *
“어, 내가?”
“네.”
이다비는 단호하게 말했다. 장쓰안은 듣고도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왜 나지? 김태현 일행 중에 나보다 더 적당한 사람들 많을 텐데?”
“아니에요! 이번 일은 장쓰안 씨가 담당자예요. 딱 맞는다고요!”
단호한 이다비!
그 단호한 기세에 장쓰안은 한 걸음 물러섰다.
‘어라? 정말 그런가?’
여기 모인 플레이어들. 그리고 그 플레이어들을 모아서 이끄는 것.
장쓰안은 그런 역할에 자신이 없었다.
원래라면 ‘하찮은 놈들을 이끄는 건 나 같은 사람의 역할이겠지’ 하면서 이끌었겠지만, 최근 들어 사라진 자신감!
“태현 님도 장쓰안 씨가 딱 맞는다고 하셨어요.”
“뭐? 진짜?”
“네!”
“그, 그러면야…… 으음…… 한 번 해보도록 할까…….”
머뭇거리던 장쓰안은 결국 홀라당 넘어갔다. 그걸 본 다른 사람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저거 왜 저렇게 쉬워?’
그러는 사이 이다비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태현이 없는 상황에서, 일 처리는 다 그녀의 몫이었다.
어떻게든 굴러가게 만들어야 한다!
‘케인 씨는 왜 멋대로 설치다가 잡혀가서 일의 난이도를…….’
투덜거려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다비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빠르게 움직였다.
-우르크 지역에 있는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전부 집합!
-네? 지금 지도 만들고 있는데요? 요즘 지도가 잘 팔린다고요.
-너 지도 만들기 스킬 초급이잖아?
-뭐 어때, 내가 볼 것도 아닌데.
-…….
훈훈한 길드원들의 대화.
물론 이다비는 무시하고 말했다.
-시끄럽고 우르크 지역에 있는 사람 전부 모여. 모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방송 참가 불가’ 형벌과 ‘김태현 퀘스트 참가 불가’ 형벌을 내리겠다.
-헉! 안, 안 돼요! 그것만은!
-제발! 그것만은!!
질겁하는 길드원들!
이제는 다른 나라 플레이어들도 정기적으로 구독하는 <파워 워리어 길드 방송>과, 퀘스트 중에서 가장 많이 남는 퀘스트라는 일명 <김태현 퀘스트>!
김태현 따라다니면서 퀘스트 했던 사람들은 차를 한 대씩 새로 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그 정도로 대박 퀘스트만 골라 하는 태현!
-너희들이 해줘야 할 일이 있어.
-이번 일은 무슨 일입니까?
-바람잡이.
-……우리 길드도 좀 커지고 요즘은 이미지도 괜찮아졌는데 언제까지 이런 일만 해야…….
-야, 근데 우리 길드 이미지는 왜 좋아진 거냐? 난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우리가 뭐 딱히 다른 거 한 게 없잖아.
-멍청한 놈. 그게 다 길마님께서 이리 뛰고 저리 뛰셔서 그렇게 된 거 아니냐!
-헉, 충성충성충성!
-배부른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모여! 이런 일도 아무나 못 하는 거야.
이다비의 명령에 숙련된 파워 워리어의 정예들이 근처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에 맞춰, 장쓰안이 말을 시작했다.
“들어라, 하찮은 놈들아!”
“……?”
“……???”
“……?????”
태현이 부탁했다는 말에 돌아온 자신감!
이다비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저런 사람들을 데리고 진행해야 한다는 게 벌써부터 답답해지고 있었다.
‘태현 님은 이런 사람들 데리고 어떻게 퀘스트를 했던 거지?’
태현 본인이 이런 사람들보다 더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이다비였다.
“지금 케인이 이 자리에는 없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케인보다 모든 면에서 더 뛰어난 내가 있으니…….”
“뭐라는 거야, 이 자식아!”
“케인이나 불러와!”
“맞아! 우린 케인 님이 불러서 온 거라고!”
충격에 빠졌던 플레이어들은 제정신을 차리고 장쓰안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장쓰안이 누군지는 알지만, 처음부터 다짜고짜 저렇게 나오는데 기분 좋게 받아들일 사람은 없었다.
한 명이 욕을 하자 다른 사람들도 욕을 하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퍼져갔다.
“어, 어? 아니…… 내가 해주겠다는데! 진짜로? 너희 후회 안 하겠어?”
“아 케인이나 불러오라고!!”
케인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감격의 눈물을 흘렸겠지만, 아쉽게도 케인은 이 자리에 없었다.
“케인한테 져서 대회도 못 나간 놈이 뭔 잘난 척이야!”
“뭐, 뭐라고? 이…… 그건 비겁하게 사전 공작을…….”
-어휴. 시작해.
-예!
대화가 점점 추해지자 이다비는 바로 명령을 내렸다.
“장쓰안 님! 장쓰안 님이잖아! 전 따라가겠습니다!”
“……?”
“앗! <검은 지하 유적>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깬 장쓰안 님!”
“……???”
장쓰안을 욕하던 사람들은 갑자기 튀어나오는 장쓰안 팬들의 모습에 당황했다.
“그쪽 왜 그래요? 저 거만한 놈이 뭐가 좋다고?”
“아니, 케인 님이 좋긴 하지만 지금 일 있으셔서 갔다는데 어떡해요? 저 사람이라도 데리고 해야지. 안 그러면 퀘스트 자체가 진행이 안 될걸요? 지금 여기서 가장 앞장서서 퀘스트 진행할 랭커 있어요?”
“없지만…….”
“다른 랭커들은 다 이끄는 길드 있거나 자기 파티 있어서 자기들끼리만 논다고요. 장쓰안이라도 감지덕지지.”
“그런……!”
“그런가?”
“그럴듯한데?”
교묘하게 여론을 조작하는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플레이어들 사이에 끼어서 어떨 때는 이성적으로, 어떨 때는 감정적으로 설득하는 그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어느새 장쓰안을 반대하던 사람들도 ‘어쩔 수 없지’ 하는 식으로 돌아섰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그 틈을 타 목소리를 높였다.
“장쓰안! 장쓰안!”
“역시……! 세상은 아직 정의가 있었군. 내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니!”
숨겨진 뒷얘기를 모르는 장쓰안은 그저 감격했다.
아까까진 난리 치던 놈들도 그가 이렇게 진심을 담아서 소리치니 받아들여 주는구나!
역시 진심은 통하는 거야!
‘오늘 난 한 가지를 배웠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야지!’
장쓰안을 보던 이다비는 속으로 생각했다.
‘왠지 모르게 더 크게 사고를 칠 것 같은 예감이…….’
* * *
짝짝짝짝짝-
태현 일행은 연설을 마치고 내려온 장쓰안에게 박수를 쳐주었다.
일단은 더 부추겨서 잘 써먹어야 하니까!
“장쓰안! 장쓰안! 장쓰안!”
“하, 하하. 뭘 이런 걸 갖고 쑥스럽게…….”
그러자 멈추는 박수 소리. 장쓰안은 바로 말했다.
“좀 더 쳐줬으면 좋겠는데.”
“……장쓰안! 장쓰안!”
‘어휴, 귀찮은 놈.’
칭찬에 목마른 장쓰안!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계획을…….”
“흠, 흠흠.”
“지금 전해 들은 바로는 <붉은 바위 요새>로 바로 공격을 해달라고…….”
“크흐흠! 크흠!”
“아, 누구야! 지금 이다비 씨가 설명하는데! 조용히 안 해?!”
짜증 내던 김세형은 멈칫했다. 못 보던 얼굴이 그들 뒤에 서 있었던 것이다.
“……?”
“누구……?”
“힉! 앨콧!!”
가장 먼저 알아본 건 김세형이었다.
노리던 아이템 못 뜬 아이도 시비 걸릴까 봐 그 울음을 멈춘다던 앨콧!
한 번 시비 붙으면 리스폰 지점에서 기다리다가 계속 죽여서 게임을 접게 만든다던 앨콧!
하여튼 성격 더러운 일화는 더럽게 많이 돌아다니는 그 앨콧!
그걸 잘 알고 있던 김세형이었기에 가장 먼저 겁을 먹었다.
‘난, 난 죽었다!’
앨콧인지도 모르고 성질부터 냈으니, 앨콧이 바로 공격을…….
하지 않았다.
“……?”
“앨콧이라면 길드 동맹 소속 랭커죠?”
“그렇지.”
“그러면 적이네요. 장쓰안 씨. 처리를!”
“……내가 뭔가 부려 먹히는 기분인데…….”
“기분 탓이에요, 기분 탓! 가라, 장쓰안!”
“아니! 잠깐!”
앨콧은 손을 뻗어서 그들을 말렸다.
“난 너희와 싸우려고 온 게 아니야!”
“싸우려고 온 게 아니라 그냥 일방적으로 죽이고 아이템을 뺏으러 온 게 분명해! 죽여! 장쓰안! 빨리 죽이라고! 암살자 직업인 앨콧이 한 번 숨으면 정말 처치가 곤란해져! 저놈은 숨만 쉬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필사적으로 외치는 김세형!
앨콧은 그 모습을 보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를 보고 저렇게 겁을 먹고 떠는 건 고마웠다. 애초에 저런 모습을 원해서 암살자 직업을 했었으니까.
‘근데 왜 하필 지금 같은 상황에…….’
지금은 협상하러 온 상황. 저런 말은 전혀 도움 되지 않았다.
‘헉, 설마 저놈. 내가 협상 못 하도록 방해하려고 저러는 건가?’
앨콧은 흠칫했다. 김태현과 같이 다니는 놈들이니 그 정도 사악한 꿍꿍이는 가지고 있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게다가 이 근처에는 김태현에게 호의적인 플레이어들이 우글거렸다.
싸움이 벌어지면 그들이 어느 편에 설 것인지는 명확!
“아니라고 했잖아!”
“히익!”
앨콧이 울컥해서 외치자 겁을 먹은 김세형. 그 모습에 앨콧은 아차 싶었다.
지금 잘 보여야 하는 상황인데……!
“후. 말을 좀 들어달라고.”
“말해보세요. 듣고 있으니까.”
“그게…… 너희들을 도와주려고 왔지.”
“개소리.”
“그걸 누가 믿어요.”
“그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장쓰안, 이다비, 정수혁의 냉정한 반응! 그 모습에 앨콧은 다시 한번 울컥했다.
“야! 이것들이…….”
“저, 저거! 본색 드러낸다 저거! 죽여야 한다 저거!”
“…….”
이제 슬슬 김세형이 더 얄밉게 느껴지는 앨콧이었다.
“장쓰안! 넌 날 알잖아!”
“알지. 은신하다가 뒤통수치고 아이템 뺏어먹는 게 너 아니었나?”
“…….”
평소 행적이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앨콧은 할 말이 없었다.
솔직히 앨콧 본인도 앨콧 같은 놈이 도와주겠다고 오면 수상해할 테니까.
“더 이상 다가오지 마라. 다가오면 공격한다.”
“쉭쉭! 저리 가라 쉭쉭!”
빠드득!
앨콧은 이를 갈았다. 이딴 놈들한테 아쉬워서 부탁을 해야 한다는 게 배알이 뒤틀릴 지경!
“그러니까…… 뿌드득…… 내 말을…… 까드득…… 좀 들어보라고…… 까득!”
사이사이 들리는 이 가는 소리!
그나마 책임자인 이다비가 냉정하게 물었다.
“그냥 도와준다는 거 이쪽에서는 못 믿겠는 것도 아시겠죠? 길드 동맹 소속 랭커가 와서 도와준다고 해도 수상할 뿐이라고요.”
장쓰안은 그 옆에서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앨콧은 어이가 없어서 장쓰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놈은! 저놈은 길드 동맹 소속 아니더라도 길드 동맹하고 엄청 친한 놈이라고!”
“장쓰안 씨는 사정이 있거든요.”
“나도 사정이 있어!”
“무슨 사정인데요?”
“어, 그게…….”
앨콧은 말끝을 흐렸다. 이 주변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내가 김태현을 엄청 무서워하는데, 김태현하고 나 사이에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아. 김태현이 갑자기 날 죽인다고 협박을 해가지고…… 내가 한 게 아닌데! 내 결백을 증명해야 해! 김태현 패거리인 너희들이라면 도와줄 수 있겠지?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저놈 지금 꾸미려고 하는 거 같다. 그냥 공격하자.”
“장쓰안 너 이 자식! 쑤닝한테 다 이를 거다!”
“뭐, 뭐? 난 쑤닝한테 빚진 거 없다. 말하고 싶으면 말해! 난 100% 떳떳해!”
둘의 추한 말싸움은 멈추게 하고, 이다비는 앨콧만 따로 불렀다.
“다른 사람 들을까 봐 말 못 한 거면 지금 말하세요. 듣고 생각할 테니까.”
“그게…… 음…… 그러니까…….”
결국 앨콧은 털어놓았다. 듣던 이다비는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 가서 절대 말하지 마라! 말했다가는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보이는 대로 족족 죽여 버릴…….”
“딱히 상관없는데요.”
“?!”
사망 페널티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만 모인 게 파워 워리어 길드였다.
그러나 앨콧은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
‘이, 이 여자…… 김태현하고 같이 다니더니, 역시 김태현 같은 사람이었군!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같으니!’
지금 상황을 이끄는 것도 그렇고, 앨콧은 이다비가 갑자기 엄청나게 무섭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