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522화
[오크 부족 사이에 당신의 악명이 더 높아집니다.]
[더 이상 악명이 오를 수 없습니다. 어린 오크들은 당신의 얼굴만 봐도 오줌을 지릴 겁니다.]
“……?”
케인을 두들겨 패던 태현은 메시지창에 멈칫했다. 뭘 했다고?
“야, 나 HP! HP! 위험해!”
“걱정 마. 포션 줄게.”
“아니, 그냥 그만 패라고!”
“그래서…… 어쩌다 잡혔냐? 응?”
태현은 한숨을 쉬고 케인 앞에 앉았다. 계획을 짠 지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틀어놓다니.
이 도움 안 되는 놈!
태현의 눈빛을 느꼈는지 케인은 급히 변명을 시작했다.
“아, 아니.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너도 상황을 들으면 이해할 거야.”
“전혀 이해할 것 같지 않지만 일단 말해봐.”
“그러니까 그게…….”
상황 설명.
케인은 최대한 그에게 유리하게 설명했다.
물론 대기하고 있던 정예 암살자들이 하나하나가 보스급 고렙 NPC기는 했지만, 케인 이야기만 들으면 무슨 오크 군대에게 포위당한 것으로 오해할 것 같았다.
“……근데 다른 놈들은 어디 가고 너 혼자 잡혔냐?”
그리고 태현은 바로 케인 이야기의 허점을 찔렀다.
“그, 그건…….”
“너 이 자식. 다른 놈들이 띄워준다고 신나서 앞에서 먼저 가다가 잡힌 거지?”
“헉, 그걸 어떻게!”
“아오, 이 자식은 진짜!”
“야. 나 HP! 진짜 위험해! 네가 때리면 치명타 터진다고!”
케인은 필사적으로 외쳤다. 태현은 들었던 손을 멈췄다.
“끙…… 너 때문에 계획이 꼬였잖아.”
“어? 뭔 계획? 다른 부족들 설득해서 아키서스 믿게 만들려는 게 계획 아니었어?”
“그것도 있는데 플레이어들 모인 김에 여기 오크 부족들 공격시킬 생각이었지. 내버려 두면 얘네들이 누굴 노리겠냐.”
케인은 그 말에 눈을 깜박였다.
“너하고 나?”
“그래. 인마. 네가 플레이어들 모았다길래 너한테 좀 시키려고 했는데 그새 잡혀 오냐?”
“아, 아니. 나도 나름 잘해보려고 한 건데…….”
“시꺼.”
“응…….”
“네가 잡혀갔으니 모였던 플레이어들은 다 흩어졌겠네?”
“아니. 장쓰안이 대신 이끌고 있다는데. 나보다는 못하겠지만…….”
마지막 말은 무시하고, 태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다 흩어지지는 않았구나!
“잘됐네. 장쓰안이면 너보다 나을지도.”
“야! 그건 아니지!”
“장쓰안을 잘 꼬드겨서 공격을 시켜야겠어.”
“장쓰안 그놈이 잘하겠냐! 그놈이 얼마나 뻣뻣하고 거만한 놈인데!”
“뭐, 사람은 바뀌기 마련이지. 그리고 뻣뻣하고 거만해도 애들 모아서 이끄는 거 정도는 할 수 있을 테니까.”
“진짜?”
“……에이, 그래도 이다비랑 다른 애들도 있는데…….”
“진짜??”
“시끄러, 이 자식아. 이게 다 네가 잡혀 온 거 때문이잖아!”
“컥!”
태현도 솔직히 확신은 안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장쓰안에게 맡길 수밖에!
“그보다 문제는 너야.”
“……?”
“널 어떻게 빼내느냐가 문제인데…… 널 그냥 빼내면 오크들이 그냥 넘어가겠냐? 대족장의 아들을 잃은 원한이 있는데?”
“그건 네가 한 짓이잖아!!”
“하하. 그런 사소한 일은 넘어가고. 어쨌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
이세연이었다면 케인을 언데드로 변신시킬 방법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태현에게는 그런 방법이 없었다.
‘변장이라도 시켜야 하나?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위험할 거 같은데.’
태현 본인이면 몰라도 화술 스킬이 거의 없는 케인이 변장해서 잘 넘어갈 거 같지 않았다.
몬로소가 호구 같아 보여도 나름 저렇게 능력이 있는 호구 아닌가.
뚜벅뚜벅-
“……!”
“……!!!”
밖에서 다가오는 걸음 소리. 태현은 일단 케인한테 주먹부터 날렸다.
퍽!
“컥! 치, 치명타가 또…….”
“이 자식! 불란 말이야! 모험가 놈들이 어디로 오고 있는 거냐!”
“제발 그만! 멈추면 모든 걸 말하겠습니다!”
천막의 입구를 들추고 몬로소가 들어왔다. 몬로소는 케인을 보고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고 있군. 그런데 마법은 안 쓰나?”
“하하. 마법을 쓰기 전에 적당히 두들겨 줘야지 쓰기 편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마법을 쓸 가치도 없는 놈한테는 쓰기도 아깝고요.”
“그 말도 맞는 말이군. 이걸 주려고 왔지.”
“……?”
“착, 착각하지 말라고. 꼭 자네가 좋아서 주는 건 아니니까!”
“…….”
맞고 있던 케인도, 때리고 있던 태현도 순간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저 아저씨가 왜 저래?
[<악마술사가 정제한 악마의 피>를 얻었습니다.]
“……!”
“저놈이 자꾸 반항하면 이걸 먹이라고.”
몬로소가 꺼낸 아이템은 <봉인된 고대 악마의 피>를 정제한 아이템이었다.
대족장이야 워낙 강력한 오크니 저 원액을 통째로 먹였지만, 케인 정도의 모험가라면 정제한 악마의 피로도 충분하리라!
“이걸 마시면 어떻게 됩니까?”
“일단 몸이 검붉게 변하면서 악마의 피가 흐르게 되지. 더 강해지고, 상처도 사라지고, 엄청나게 강력해지는 거야.”
“부작용도 있지 않습니까?”
“이성을 잃게 되지.”
“…….”
“그리고 그 피의 주인, 즉 악마의 말에만 따르게 돼. 그렇지만 여기에는 피의 주인이 없으니, <봉인된 고대 악마의 피>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내 말을 따르게 되는 거지. 어떤가?”
“정말 완벽하십니다! 그런데 이 봉인된 고대 악마의 피는 어디서 나셨습니까?”
“그게…… 누구였더라…… 어차피 봉인되고 잊혀진 악마여서 이름에는 신경 안 쓰고 있었는데. 에…….”
태현은 움찔했다.
설마…….
“에슬라, 였던 거 같군. 그놈의 피지.”
“……!!”
* * *
에슬라.
태현이 대륙에 퍼진 역병 저주를 해결하기 위해 들어간 던전에서 만난 봉인된 악마였다.
에슬라는 태현에게 그의 봉인을 풀어달라는 퀘스트를 내주었고, 태현은 그걸 받아들였다.
악마들의 주무기 세 개.
그 대가는 태현과의 동맹!
지금 태현의 영지에서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미친ㄴ…… 아니, 악마 대장장이 사루온이 에슬라의 부하였다.
‘세상 좁다더니 여기서 이름이 나오나?’
생각해 보니 악마들은 대부분 마계에 있고, 대륙으로 나오는 건 극소수일 테니, 대륙에 봉인된 악마가 그렇게 많을 리 없었다.
‘에슬라 이놈은 나름 고대 악마란 놈이 피나 뽑히고 말이야…….’
태현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에슬라 입장에서는 억울할 소리였다.
봉인됐는데 어쩌란 말인가!
어쨌든 몬로소가 입을 가볍게 놀린 덕분에 태현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먼저 한 것은 영지에 연락을 보내는 것이었다.
-야, 에드안이랑 사루온. 우르크 지역으로 오라고 해라!
대도적 에드안과 악마 대장장이 사루온.
둘 다 지금 태현의 계획에서는 필요한 이들!
가브리엘은 태현의 귓속말을 듣고 펄쩍 뛰었다.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가겠습니다!
-그리고 에드안은 튈 수도 있으니까 부르기 전에 갈락파드 먼저 불러서 같이 가라!
-……어? 에드안은 태현 님 부하 아니었습니까?
-부하긴 부하인데 어쨌든 같이 데리고 가!
신뢰라고는 조금도 없는 아키서스 교단!
* * *
“야, 야. 이거 나 안 먹일 거지? 그치?”
“음…… 근데 이거 안 먹이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잖아?”
“야!!”
“어쩐다? 일단 널 가둬놓고 움직여야 하나?”
“그, 그래. 그게 낫지! 나 여기 좋아! 여기서도 잘 지낼 수 있어! 스킬 연습하면서 있을게!”
케인은 필사적으로 외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악마의 피를 마시면 엄청 개고생할 게 분명!
기껏 <아키서스의 노예>라는 괴상망측한 직업에 적응했는데, <악마 피를 가진 노예> 같은 직업으로 바뀐다면 정말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진짜? 여기 있어도 괜찮겠어?”
“물론이지!”
“알겠어. 포로 상태는 풀어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알아서 행동하고. 네 목숨 네가 부지해라. 들키면 아마…….”
“아, 아마 뭐?”
“너도 알면서 왜 그래. 오크들이 널 죽이겠지. 괜찮아. 페널티 받고 부활하면 되지. 물론 이 근처라서 오크들이 또 쫓아오겠지만.”
“안 돼!”
“어쨌든 너 고문해서 정보 좀 알아냈다고 하러 가야겠다. 잘 있어.”
태현은 케인을 내버려 두고 밖으로 나왔다. 몬로소에게 ‘모험가들이 어디로 오고 있습니다!’라고 선동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췩! 그걸 어떻게 믿나!”
“취익! 외부인이 제대로 정보를 얻어냈을 리 없다! 췩!”
대족장 밑의 직속 부하들, 그리고 족장들은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몬로소의 말이야 어쩔 수 없이 들어도 태현의 말은 듣고 싶지 않다는 태도였다.
“아니, 지금 이놈이 얼마나 개XX처럼 고문을 잘했는데! 저 잡힌 모험가는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있어!”
‘……칭찬이지?’
태현은 미묘한 기분을 느꼈지만 가만히 있었다.
“췩. 몬로소! 만약 <붉은 바위 요새>로 모험가들이 오지 않는다면 당신도 이제 지휘를 우리한테 맡기고…….”
“췩! <붉은 바위 요새>에 공격이다! 지금 당장 지원을!”
“…….”
몬로소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오크들을 쳐다보았다.
사실 이건 간단했다.
태현이 장쓰안에게 ‘야, 애들 선동해서 붉은 바위 요새 공격해라’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짜고 치는 고스톱!
“봐라! 이놈들. 대족장에게 전권을 받은 내 말을 무시하다니!”
“췩, 알겠다. 몬로소. 그만 떠들어라.”
“취익! 우리 모두가 널 인정하는 건 아니다! 그걸 알아줬으면 좋겠군!”
오크 족장들은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물러섰다. 그걸 본 태현은 몬로소에게 속삭였다.
“그냥…… 다 피를 먹여버리죠?”
“……!!!”
작게 끝날 사고도 크게 만드는 것.
그것이 태현이었다.
* * *
“안, 안 돼! 그랬다가는 뒷감당이 어렵다고. 내가 얼마나 공들여서 하고 있는지 아나?”
몬로소는 순간 혹한 표정이었지만 금세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태현의 말은 악마처럼 계속 몬로소에게 스며들었다.
“에이, 인생은 한 방! 어느 순간에는 크게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 건방지게 나대는 족장 놈들을 보십쇼. 몬로소 님을 무시하고 있는 겁니다. 오크가 아니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그, 그렇긴 하지…… 하지만 저놈들 모두에게 피를 마시게 하면…… 그 밑의 부하들이 반란을 일으킬지도…….”
“아니라니까요! 오크 놈들은 그렇게 머리를 굴리지 못할 겁니다! 일단 마시게만 하면 끝! 끝이라니까요!”
“그…… 그래?”
악마의 피가 에슬라의 피라는 걸 알게 된 태현은 거침이 없었다.
더 마시게 해라! 더!
“어쨌든 몬로소 님! 저는 지금 <붉은 바위 요새>로 가서 오크들을 돕겠습니다!”
“아니, 굳이 네가 갈 필요가 있나? 어차피 오크들이…….”
“아닙니다! 모험가 놈들은 절대 얕볼 수 없는 놈들. 저라도 가서 지원을 해야 합니다. 몬로소 님이 직접 가실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녀석……! 내가 왜 너를 이제야 알았는지 모르겠다!”
[악마술사 몬로소가 당신의 충성심에 감동해 부관 자리를 수여합니다.]
[우르크 지역 오크 대부족의 부관 자리를 받았습니다. 오크들에게 보여줄 경우 지위를 인정받습니다.]
어떻게 된 게, 나쁜 놈들 세력에만 가면 그 실력과 지위를 인정받는 태현이었다.
악마들 군세에서도 그랬고, 오스턴 왕국 반란군에서도 그랬고…….
“감사합니다, 몬로소 님! 저도 왜 이제야 몬로소 님을 만나게 되었는지 아쉽습니다! 그딴 마탑의 쓰레기들이 아닌 몬로소 님을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얼싸안는 두 흑마법사!
태현은 살짝 고민했다.
‘지금 훔칠까? 에이, 됐다. 괜히 지금 해서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지. 어차피 앞으로 훔칠 기회도 많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