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517화
태현 일행은 그렇게 이름 짓기를 마무리하고 일단 헤어졌다.
이것저것 떠드느라 시간을 많이 썼지만, 그들에게 가장 급한 건 판온이었다.
게다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퀘스트도 있지 않은가!
“캡슐 왔다! 내가 먼저 쓸 거야!”
뒤에서 신나서 방방 뛰는 케인은 무시하고, 태현은 이다비를 바래다주었다.
“그런데 태현 님.”
“……?”
“발표는 언제 할 거예요?”
“응? 뭔 발표?”
“……게임단 만드신 거 발표요…….”
“아, 그거 해야 하나? 별 생각 없었는데.”
“…….”
이다비는 ‘이 사람은 정말 왜 이럴까’ 하는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게임단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것.
그것은 홍보!
대회에서의 승리도 홍보의 일종이었다. 대회에서 맨날 패배하는 게임단은 이름 알릴 기회도 없으니까.
그렇지만 대회만 기회는 아니었다. 다른 활동으로도 홍보할 수 있었다.
방송에 나간다거나, 자선 활동을 한다거나, 구설수를 일으킨다거나…….
“마지막은 이상한데?”
“저도 말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어쨌든 다들 홍보할 기회가 없어서 만들려고 노력하는데 이런 거 발표 안 하는 건 말도 안 돼요! 발표해야죠! 기자들도 부르고!”
“우리가 게임단 만든 소식이 그렇게 관심을 끌 소식인가? 그냥 카X오톡 프로필에 <게임단 만들었습니다> 쓰면 안 되나?”
태현의 말은 가볍게 무시하고 이다비는 단호하게 말했다.
“……연락만 하면 사람들 우르르 몰려올 테니까, 꼭 하셔야 해요.”
“알겠어. 알겠어. 하면 되잖아.”
* * *
“이따가 보자고.”
“그래!”
새로 온 캡슐에 들어간 케인은 기분 좋게 눈을 감았다.
새로 시작한 숙소 생활.
뭔가 잘 풀리는 그런 기분!
‘아, 오늘 왠지 운이 좋을 거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
케인은 싱글벙글 웃으며 게임에 접속했다.
그리고…….
웅성웅성-
“아, 여기 진짜 길 복잡하네. 여기 지도 사야 하나?”
“경매장에서 팔아. 비싸긴 한데 사는 게 좋아. 간략하긴 해도 없는 것보단 낫거든.”
“아니 완전 도둑놈들이네. 자세한 지도도 아니면서 이 가격이야?”
투덜거리는 파티들.
한둘이 아니라 1분 간격으로 파티들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케인은 눈을 깜박였다.
‘내가 대도시 근처의 사냥터에서 껐나? 아닌데? 우르크 지역에서 껐는데?’
우르크 지역은 엄청나게 넓은 것에 비해 아직 플레이어들은 많지 않았다.
알려진 마을도 얼마 없는데 나오는 몬스터들의 수준은 높고, 거기에 얻을 게 딱히 없었던 것이다.
굳이 새로운 모험을 원한다면 이번에 투기장 대회로 유명해진 남쪽 프리카 대륙으로 가면 됐고.
그런데 지금 케인 주변은 마치 중앙 대륙의 왕국 근처 같았다.
10초 간격으로 파티 하나가 지나가는 활발함!
“이, 이건…….”
“대체 어떻게?”
같이 접속한 다른 일행들도 상황을 보고 경악했다. 케인은 손뼉을 쳤다. 이 상황을 깨달은 것이다.
“정답은 하나뿐이야.”
“……?”
“장쓰안 이 자식! 우리를 배신했구나!”
“뭐, 뭐라고?!”
가만히 있다가 범인으로 몰린 장쓰안은 기겁했다. 그는 양손을 흔들며 부정했다.
“아, 아니다! 내가 왜 그런 짓을 하겠냐!”
“할 이유야 넘쳐나지! 넌 원래 길드 동맹하고 친하고, 김태현한테 맺힌 것도 많을 테고, 지금 이렇게 우리한테 부려 먹히고 있는데…….”
“내가 부려 먹히고 있는 거였다고?!”
장쓰안은 충격받은 얼굴로 되물었다. 김태현이야 원래 좀 성격이 더러운 놈이었지만, 다른 파티원들은 그를 존경하고 떠받들어주고 있는 줄 알았는데?
“저놈을 매달자!”
그 순간 이다비가 입을 열었다.
“장쓰안 씨 때문이 아닌데요. 지금 우르크 지역에 퀘스트 뜬 것 때문에 이러나 봐요.”
“…….”
“…….”
순식간에 어색해지는 분위기. 모두 다 케인을 쳐다보았다.
-이 분위기 어쩔 거야?
장쓰안도 케인을 노려보았다.
“미, 미안…….”
“흥!”
케인이 내민 손을 장쓰안은 매몰차게 쳐냈다.
명백하게 삐진 얼굴!
“미안해! 난 몰랐지!”
“날 그렇게 보고 있었단 말이지!”
“아니라니까! 아니, 그냥 무심코 나온 말이야! 김태현한테 당한 놈들이 워낙 많다 보니까 그랬어!”
케인은 장쓰안을 달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김태현 그놈이 워낙 성격이 더럽잖아! 응? 네 잘못이 아니라, 그놈이 워낙 성격 더럽다 보니까 당한 사람들까지 성격 나빠지는 걸 많이 봐서 그래!”
“흥…….”
장쓰안은 여전히 화가 난 얼굴이었지만, 아까보다는 기세가 많이 죽어 있었다.
케인은 눈을 반짝였다.
‘역시 김태현 놈이 했던 말이 사실이었어!’
-사람은 원래 같은 걸 좋아할 때보다 같은 걸 싫어할 때 빨리 친해진다구.
태현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케인은 기세를 올렸다.
그걸 보면서 이다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녹화 기능 ON.
* * *
-김태현 백작 만세! 고블린 같은 남자!
-고블린의 심장, 고블린의 얼굴, 고블린의 혼을 가진 인간!
칭찬인지 욕인지 알기 힘든 환대를 받고 나서, 태현은 기분 좋게 밖으로 나왔다.
[<옛 땅굴 고블린 부족>이 아키서스를 믿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믿음은 아키서스 교단에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아키서스 교단의 사제들에게 폭탄 아이템 관련된 스킬이 추가됩니다.]
“……응?”
태현은 눈을 깜박였다. 사제들한테 뭐라고?
[<옛 땅굴 고블린 부족>이 아키서스 교단을 믿기 시작한 것 때문에 다른 교단들이 아키서스 교단을 수상쩍게 여깁니다.]
‘나보고 어쩌라고?!’
퀘스트가 떠서 했을 뿐인데, 그 결과 다른 교단들과의 사이가 안 좋아졌다.
보통 대륙의 교단 퀘스트와는 명백히 다른 결과물!
교단 퀘스트를 깨면 깰수록 다른 교단과 사이가 안 좋아지다니, 이건 꼭 사디ㅋ…….
‘아, 아니야. 사디크 교단은 대륙을 불태우려는 교단이고, 아키서스 교단은 그래도 크게 사고 친 건 없었잖아. 그치?’
태현은 애써 생각을 멈췄다. 여기서 더 생각하면 멈출 수 없을 것 같았다.
[부탁을 무시당한 카르바노그가 울기 시작합니다.]
[<카르바노그의 슬픈 마음> 저주를 받습니다.]
<카르바노그의 슬픈 마음>
토끼 계열 몬스터들이 당신을 탓하는 눈동자로 쳐다봅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나보고 진짜 어쩌라고?!?!’
무시하면 멈출 줄 알았는데, 이제 울기까지 하는 토끼 신!
페널티도 뭔 페널티 같지도 않은 페널티.
판온을 하면서 이렇게 당황스러웠던 건 처음인 것 같았다.
페널티가 부담스러우면 하라는 대로 퀘스트를 깨면 되고, 부담스럽지 않으면 무시하면 보통 사라졌는데, 계속해서 은근하게 쳐다보는 신!
‘아, 진짜 퀘스트 깨야 하나…… 크게 손해는 아니긴 한데…….’
대륙에 퍼진 토끼 저주를 잠재운 건 태현한테 원한 가득한, 탐험가 랭커 제카스 파티였다.
그들을 찾아서 족치는 건 태현에게도 나쁠 게 없었다.
문제는 난이도였다.
‘지금 할 게 많은 상황에서 그놈 쫓아다닐 시간이 없단 말이지…….’
탐험가 같은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가 작정하고 숨으면 태현도 찾기 힘들었다.
게다가 제카스는 태현하고 척을 진 이후부터 아주 용의주도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생방송도 거의 하지 않는 철저함!
태현을 상대하면서 빈틈을 보인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건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후…… 일단 이건 나중에 생각하자. 남은 퀘스트를 더 깨야지.’
하면 할수록 다른 교단들이 싫어하게 되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다.
이대로 갈 수밖에!
‘남은 건 해적 놈들인가, 으음. 지금 오크들 데리고 있고 아직 충성도랑 공포도 높으니 해적 놈들한테 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해적 놈들은 이렇게 쉽지는 않겠지.’
고블린이야 태현과 워낙 비슷한 점이 많아서 빨리 친해졌다.
-김태현 백작. 가장 고블린 같은 자네라면 이 제작서를 받을 자격이 있어.
[당신이 이제까지 했던 기계공학 스킬, 대장장이 기술 스킬 관련 업적들이 고블린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고블린 원로들의 비밀 제작서를 얻었습니다.]
고블린 원로들의 봉인된 비밀 제작서:
지금은 아무 고블린들도 만들지 않는, 봉인된 고블린 원로들의 비밀 제작서이다. 따라서 만들어 볼 경우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무엇이 만들어질지 알 수 없다.
[??? ?? ???의 제작법을 얻었습니다.]
뭔가 이름이 안 나와서 찜찜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기네들이 아끼는 비밀 제작서까지 주지 않았는가!
그에 비해 해적들에게서는 이런 환대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웅성웅성-
“으악. 길 잃었어. 이 지도 누가 만든 거야?”
“우리가 잘못 본 거겠지. 그 지도 <파워 워리어> 길드원이 만든 지도라고.”
“그런가? 하긴, 내가 잘못 본 거겠네. <파워 워리어> 길드가 거짓말을 할 리도 없고.”
“맞아. 맞아. <파워 워리어>잖아.”
“……?????”
지나가던 플레이어들이 이상한 소리를 한 건 그렇다 치고, 태현은 우르크 지역인데도 플레이어들이 많다는 것에 놀랐다.
원래 이렇게 많이 보일 곳이 아닌데도 플레이어들, 그것도 고렙 이상의 플레이어들이 보인다는 것은?
‘무슨 일이 생겼나?’
갑자기 이런 곳에서 무슨 일이 생길 이유는 많지 않았다. 태현은 깨달았다.
‘앨콧 이 자식이 뒤통수를 쳐?’
관대한 마음으로 이용해 먹기 위해 내버려 뒀더니 감히!
태현은 분노의 귓속말을 날렸다.
-넌 다음에 만나면 죽는다.
-??!?!?!?!?!?!?!
도망쳐서 행복해하던 앨콧은 당황했다. 왜?!
-내, 내가 뭘 했다고?
[현재 플레이어는 당신을 차단했…….]
-!?!?
변명도 듣지 않고 쿨하게 차단해 버리는 태현!
그러나 그 분노는 금세 풀렸다. 이다비에게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이다.
-퀘스트 때문에 플레이어들이 우르크 지역으로 오고 있나 봐요.
-뭔 퀘스트길래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와? 대형 퀘스트인가?
-네. 보시면 바로 이해 갈 거예요.
태현은 게시판을 열고 확인에 들어갔다. 이다비의 말답게 게시판은 지금 우르크 퀘스트로 뜨거웠다.
-우르크 퀘스트 도전하고 있으신 분? 같이 하려면 제 닉네임으로 초대 해주세요.
-혹시 우르크 지역에서 마을 같은 거 찾아서 퀘스트 깬 분 있으세요? 파티로 마을 입장 허락해 주시면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마을 찾기가 힘드네요.
-사이 안 좋던 사람이 있었는데, 갑자기 오해했는지 저한테 화를 내는데 어떻게 하죠? 귓속말도 차단해서 말할 방법이 없어요, ㅠㅠ.
-지금 우르크 퀘스트 도전하고 있는 길드 누구누구 있냐? 길드 동맹은 빠진 거 확실하지?
-길드 동맹은 어차피 못 받아.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정보를 교환하고 있는 게시판 상황!
태현은 퀘스트의 내용을 읽고 전율했다.
퀘스트를 낸 사람은 오스턴 왕국의 국왕.
퀘스트 목표는 오크 대족장 카라그의 목.
그리고 퀘스트 보상은 오스턴 왕국의 영지였다.
* * *
플레이어들이 이렇게 목숨 걸고 몰려올 만했다.
태현이 영지를 얻은 뒤로, 정식으로 영지를 수여받은 플레이어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보통 힘으로 영지를 점령하고 유지하는 게 보통!
그만큼 그 나라의 국왕에게 영지를 받을 정도의 퀘스트는 어려웠다.
보기도 힘들었고 깨는 건 더 힘든 퀘스트!
‘근데 하필 왜 오스턴 왕국에…….’
플레이어들이야 영지를 준다는 것에 눈이 뒤집히겠지만, 태현은 아니었다.
오스턴 왕국의 영지는…….
현재로서 좀 애매한 영지였다.
‘지금 오스턴 왕국은 길드 동맹, 오스턴 왕국, 기타 길드들로 갈려 있지.’
오스턴 왕국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길드 동맹은 신나게 영지를 점령했다.
지금도 기회만 생기면 공성전을 벌이는 중!
물론 오스턴 왕국이 그걸 그냥 내버려 둘 리는 없었다. 둘은 지금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