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516화
케인이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태현은 주변을 둘러보며 구상을 하고 있었다.
‘펜트하우스보다 방 수는 적지만 대충 지내는 데 문제는 없겠군.’
펜트하우스보다 작은 거지 무려 90평이 넘는 집이었다.
지금 인원보다 몇 배가 더 몰려와도 지내는 데에는 상관이 없었다.
‘여기는 캡슐 놓고, 이 방은 각자 지내는 용도로 쓰고…….’
“야, 김태현! 옷은 어따 놓으면 돼? 행거 어디 있어?”
“방 안쪽 보면 드레스룸 따로 있다.”
“…….”
케인은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비명을 질렀다.
“욕실이 방에?!”
케인을 시작으로, 정수혁과 최상윤까지 숙소에 찾아오기 시작했다.
하이팰리스를 숙소로 정했다는 태현의 말에 최상윤은 결국 올 게 왔다는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네가 돈지랄을 하기로 마음먹었구나!”
“남는 건물이 없어서 고른 건데.”
“……어쨌든 간에!”
최상윤은 케인과도 악수했다. 서글서글하게 생긴 훈남의 모습에, 케인은 움츠러드는 걸 느꼈다.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패배감!
“안녕하세요?”
“안, 안녕하세요.”
‘그러고 보니 이 사람은 판온에서 무슨 플레이어지?’
케인은 속으로 궁금해했다. 최상윤은 웃으면서 말했다.
“방송에서 많이 봤습니다. 태현이랑 같이 다녔으니…… 흠흠. 고생이 많으셨겠…….”
울컥!
갑자기 케인은 뭔가 울컥하는 걸 느꼈다. 진심으로 ‘고생 많았겠다’ 하는 눈빛인 최상윤.
다른 건 몰라도 게임 같이 하면 같이 하는 사람 엄청 고생시키는 게 태현이라는 걸 최상윤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왜, 왜 눈물이 나려고 하는 거지?’
* * *
“월급은 이 정도고, 다음과 같은 활동을 할 때 게임단 소속으로 활동하고…….”
“잠깐, 벌써 스폰서 구했어?”
최상윤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보통 후원하는 기업이 붙지 않고 개인들이 모여서 시작하는 게임단은 처음에는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돈줄이 붙기 전까지는 월급이고 숙소고 뭐고 자기들끼리 알아서 버틸 수밖에 없는 것!
“아니, 내 돈으로 할 건데.”
“아. 응. 그래.”
최상윤은 ‘그, 그러면 되겠네’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만 먹으면 게임단 몇 개는 운영할 수 있는 게 김태현 가족!
“선배님, 그런데 저 같은 사람이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네가 뭐 어때서 그래. 자신감을 가져. 저기 케인을 보라고.”
태현은 케인을 가리켰다.
지금 다들 탁자에 앉아서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동안, 케인은 막 도착한 여동생한테 자랑을 늘어놓고 있었다.
-봐! 내가 거짓말 한 게 아니잖아! 날 뭘로 보고!
-그런데 오빠, 지금 저기서 진지한 이야기 하는 거 아니야?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돼?
-헉! 김, 김태현. 나 빼놓고 진행하면 안 되지!
“네가 빠져놓고 뭐라는 거야?”
케인은 후다닥 달려왔다. 케인의 여동생, 김예리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빠가 신세 많이 지고 있습니다.”
“동생이 똑 부러졌네. 누구랑은 다르게.”
“야, 나 옆에 있거든?”
여동생 칭찬에 케인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여동생이 얼마나 그를 갈구는지…….
“넌 고3이 수능도 얼마 안 남았으면서 왜 이러고 있어? 빨리 가! 훠이훠이!”
“고3이야?”
태현은 갑자기 유지수 생각이 났다. 유지수도 지금 수능을 준비하고 있을 테니, 케인의 여동생은 유지수랑 동갑인 것이다.
“네. 그런데 저는 준비 다 해서 괜찮아요.”
“오, 진짜? 어디 노리는데?”
“한국대 교육학과요.”
“와…….”
태현은 케인의 여동생을 한 번 보고, 케인을 다시 쳐다보았다.
‘같은 부모님일 텐데 어디서 이렇게 차이가…….’
“너, 지금 속으로 내 욕했지?”
“자식. 많이 예리해졌군.”
태현은 살짝 감탄했다. 케인 주제에 이 정도의 눈치라니.
“네 동생은 공부 되게 잘하나 보다?”
“그야 나는…… 적성이 게임이고…….”
말하던 케인은 멈칫했다. 생각해 보니 태현도 한국대 학생 아니었나?
‘세상은 불공평해!’
“저, 이거…….”
“……?”
김예리는 들고 온 음료수 선물세트를 꺼내 건넸다.
“오빠가 신세를 많이 지는 것 같아서 갖고 왔어요.”
“……!!”
태현과 정수혁은 놀라서 김예리를 쳐다보았다.
이런 마음 씀씀이라니! 말도 안 돼!
그러자 케인이 초조해져서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나, 나는 볼펜 갖고 왔…….”
“……그냥 집어넣어라.”
“……응…….”
* * *
김예리는 케인의 동생이었지만 정말 야무진 학생이었다.
김예리는 게임단의 대우나 이후 활동, 계획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왔다.
제대로 계약서도 안 읽고 도장 찍은 케인과는 정반대되는 모습!
“그런데 김예리 씨는 판온에 관심이 있나? 상당히 예리한 질문을 하네. 누군가하고는 다르게…….”
“편하게 불러주셔도 돼요. 그리고 판온은 안 해봤어요. 그냥 오빠가 그걸로 적성을 정해서, 이것저것 알아봤어요. 알다시피 오빠는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저지르는 경우가 많아서…….”
“정말……!”
“말도 안 돼……!”
“그만 좀 해, 이 자식들아!”
여동생이 무슨 말만 해도 자기랑 비교하자 케인이 울컥해서 외쳤다.
그때 이다비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응? 누구세요?”
“케인 여동생. 여동생인데 엄청 야무진 사람이야.”
“네? 정말요?”
깔끔한 설명!
케인은 반쯤 포기했다. 한숨을 한 번 푹 쉰 케인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어? 이다비. 너 여기 와본 적 있냐? 안 신기해?”
“네? 아, 그게…….”
자기는 이 넓고 화려한 공간을 보자마자 신기해했는데, 이다비는 별로 놀라지도 않고 익숙한 태도로 들어온 것이다.
그러자 태현이 핀잔을 줬다.
“너 빼고 신기해한 사람 없다.”
“그, 그러냐…….”
이다비는 이 위에 산다고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여동생이라니…….’
이다비는 신기하다는 듯이 김예리를 쳐다보았다. 얼마나 똑 부러졌길래 오자마자 저런 설명을?
“여기 보면 스폰서가…… 만약 방송에 나가거나 개인 방송 같은 건…… 그러네요. 어차피 오빠는 못 할 거 같고…….”
자세하고 치밀하게 물어오는 여동생!
“와!”
“그치? 그치?”
태현은 이다비한테 ‘그거 봐라’라는 태도로 말했다. 이다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정말…… 여동생이…….”
“아니에요. 그냥 오빠가 신경을 안 써서 제가 신경을 쓰는 거지, 저도 평범한 고등학생이에요.”
“보통 평범한 고등학생은 그렇게 자기소개를 안 하지만…… 그래, 뭐 알겠어.”
“진짜예요. 이거 다 물어보면 다른 것도 물어보려고 했었거든요.”
“예를 들어서 뭐?”
김예리의 얼굴에 순간 짓궂음이 맴돌았다.
“저희 반 남자애들이 궁금해하던데, 이세연 씨랑 사귀시나요?”
“아, 맞다 그거! 나도 그거 물어보려고 했…… 아니. 미안. 그냥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야.”
케인은 화살이 돌려진 데다가 태현을 공격할 기회가 오자 신이 나서 끼어들었다.
그러나 태현과 눈이 마주치자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안 사귀는데.”
“정말요? 다들 김태현 오빠 욕하더라고요. 평소에는 김태현 오빠 팬인 애들인데.”
평소에는 태현의 팬이었지만, 이세연과 열애 기사가 터지자 학생들은 배신감에 떨었다.
-형이 그러면 안 되죠! 형! 게임만 잘하셔도 되잖아요!
-그렇게 다 가지셔야 했어요!?
오랜 팬이고 뭐고 없는 배신감!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원래 판온 1 때부터 난 팬보다 안티가 더 많았어.”
“그보다 내 이야기는 없었어?”
“오빠 좋아하는 애들도 꽤 있어.”
“정말?! 네가 내 동생인 거 아니까 뭐래?”
케인은 눈을 반짝이며 좋아했다. 그러나 김예리는 냉정하게 말했다.
“난 오빠가 케인인 거 애들한테 말 안 하고 다녀.”
“왜, 왜? 내가 부끄러워서?”
“……그렇게 말하면 이제 부끄러워질 거 같아. 그래서가 아니라 말하면 애들이 귀찮게 할 테니까.”
이다비는 태현과 눈빛을 교환했다.
‘정말 똑 부러지네요.’
‘그치?’
* * *
“방송 출연 자유, 개인 방송도 자유, 어디서 광고를 찍든 말든 마음대로…… 야, 네가 사장인 건 알겠는데 이렇게 마음대로 해도 돼?”
최상윤은 혀를 내두르며 물었다.
태현이 만든 게임단의 계약 조건은 압도적으로 파격적이었다.
보통 게임단에 들어가는 선수들은 게임단의 지원을 받는 대신 이런저런 제약을 달게 됐다.
방송 출연이나 광고, 심지어는 개인 방송까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태현은 아무런 제약을 달지 않았다.
“뭐, 하고 싶으면 하던가. 난 신경 안 써. 대신 내가 원하면 바로 쫓아낼 수 있으니까. 쫓겨나기 싫으면 알아서 조심하겠지. 사고 치지 마.”
순간 자리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힐끗 케인을 향했다가 돌아왔다.
“왜, 왜 나를 봐?”
“파워 워리어 활동은 괜찮나요?”
“마음대로 해.”
“게임단 선수들 등장시켜도 되나요?”
“마음대로 해. 애초에 너도 선수잖아.”
“네?! 저도요?!”
“그러면 내가 왜 너한테 그걸 다 설명했겠어?”
태현은 뭔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듯이 이다비를 쳐다보았다. 케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 이다비한테 언제 설명 따로 했어?”
“……어쨌든 너도 선수로 뛸 거야.”
“저, 저 상인 직업인데요……?”
“태현이가 저러는 거 보니 무슨 생각이 있는 거겠죠.”
최상윤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태현은 쓰레기 같은 직업도 써먹을 방법을 찾는 데에는 도사였다.
이른바 쓰레기 직업 전문가!
“근데 우리 게임단 이름 뭐야?”
“그건 지금부터 정해야 해.”
“…….”
“서류에는 임시로 다른 이름 올려놓긴 했는데 그대로 갈 거 아니니까. 좋은 생각 있는 사람?”
번쩍!
정수혁이 손을 들었다.
“오. 수혁이. 뭐 좋은 생각 있니?”
“선배님께서 만드셨으니 <김태현 게임단> 어떻습니까!”
“…….”
“그건 좀 아니지 않냐?”
“맞아.”
“아니, 괜찮은 거 같은데요?”
“……?!”
이다비만 혼자 찬성!
태현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보통 대회나 중계에서 ‘게임단’은 빼고 말할 테니…….
-아, 팀 김태현! 또 졌어요! 팀 김태현이 이걸로 최하위를 차지합니다! 아무리 김태현 선수가 혼자 열심히 해도 다른 선수들이 도와주질 않으니 한계가 있네요! 팀 김태현! 이걸로 꼴찌입니다!
오싹!
“……아냐, 다른 걸로 하자. 그건 좀 아니야!”
순간 불길한 미래를 본 태현은 재빨리 방향을 틀었다.
“좀 무난한 이름 짓자고. 들어도 나랑 별 상관없는 거 같은 이름.”
“……?”
“……??”
“왜 상관없는 이름을?”
“그건 중요하지 않아. 빨리 정하기나 하자고.”
“무난한 이름이라면…… 알파벳이지 역시. 일단 K를 넣자! 김태현도 K 들어가고 내 닉네임도 K로 시작하잖아! 그리고 K하면 역시 KING 느낌 나서 좋지 않아?”
“어, 오빠 닉네임 그 성경에서 나오는 카인에서 따온 거 아니었어?”
“맞는데?”
‘……그러면 C 아닌가?’
그렇지만 케인의 여동생은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압도적 배려!
이미 다른 사람들은 눈빛으로 ‘와 저 나이에 아직도 저런 중2병 넘치는 닉네임을 짓다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다음은 L! Lezend의 L이지!”
‘Z가 아니라 G야……!’
“그러면 대충 합치면 KL? 나중에 뜻 물어볼 때 설명하긴 좋겠네.”
“어? 진짜 이걸로 갈 거야?”
케인은 자기가 말해놓고서도 태현이 선선히 받아들여 주자 당황했다.
정말 이렇게 대충 짓는다고?
“뭐 우리가 후원받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이 팀 이름의 장점이 하나 있지.”
“……?”
“팀 성적 안 좋으면 K는 케인의 K라고 할 수 있으니까.”
“…….”
“그러고 보니 L로 시작하는 단어 중에서 lapin이란 단어도 있지 않았나?”
“그게 무슨 뜻인데?”
“하하. 나중에 성적 안 좋아지면 찾아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