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511화 (511/1,826)

§ 나는 될놈이다 511화

PD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방송이 나가고 나서, 반응은 정말 뜨거웠다.

최고 시청률을 큰 폭으로 갱신!

방송국 내에서도 화제가 될 정도로 큰 기록이었다.

그만큼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끄는 방송이었던 것이다.

게임에 관심 좀 있는 사람들, 이세연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시청자층이 되어주었다.

좋은 결과였다. 좋은 결과였지만…….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

PD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처음이었다. 방송하면서 그렇게 프로답지 못하게 굴었던 것은!

이대로 가면 영원히 퇴근하지 못하고 세트장에 머물러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던 것이다.

-저희 프로그램에도 잘 말해서 둘을 출연시킬 수 없을까요?

-둘 케미가 너무 좋네요. 기사 보셨죠? 이쯤 되면 둘만 나오면 대박은 보장된 거나 다름없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다른 프로그램 PD가 소개 좀 해달라고 말을 걸어왔지만,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추천했다가 나중에 멱살 잡히는 건 아니겠지?’

“왜 그렇게 멍하게 있나?”

“예?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쨌든 고생 많았어. 축하하네. 다음에도 혹시 다시 출연시킬 생각 없나? 정말 반응 좋을 것 같은데.”

은근하게 말하는 국장의 태도.

노골적으로 제시하는 건 아니었지만 의도는 뻔하게 보였다.

-어떻게든 한 번 더 출연시켜줘!

국장의 마음은 이해가 갔다. 이렇게 화제가 됐으니 방송국 입장에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보일 테니까.

PD도 뻣뻣한 사람이 아니었다. 적당히 아부하고 적당히 처세하는 직장인!

이럴 때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절대 안 됩니다!”

“?!”

날아갈 것 같은 상쾌한 미소!

그 정도로 PD는 둘과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다.

* * *

“크흠, 크흠, 아들아. 여기 앉아보렴.”

“……? 아버지, 길드 동맹이랑 싸우는 거면 안 도와드립니다. 알아서 하십쇼.”

“이 자식이……!”

물론 도와달라고 부른 건 아니었지만, 저렇게 선부터 긋는 얄미운 모습이 김태산의 성질을 건드렸다.

“그런 거 아니야, 인마!”

“그러면 뭡니까?”

“크흠, 그러니까…… 그게 말이야…….”

새삼스레 말하려고 하니 민망해지는 이 기분. 김태산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내, 윤희가 곁에 있다면 일이 귀찮아질 것이다.

다행히 윤희는 뉴스나 신문에 별 관심이 없어서 아직 모르고 있었지만……

“……너, 걔랑 사귀냐?”

“푸흡!”

이번에는 태현이 뿜을 차례였다. 김태산의 말에 이렇게 당황한 건 오랜만인 것 같았다.

“사귀는구나? 맞지? 자식…….”

김태산은 태현의 태도를 오해하고서 씩 웃었다.

저 누가 낳은 건지 궁금할 정도로 사악하고 냉정하고 빈틈없는 녀석도 자기 연애는 부끄러워하는구나!

“제가 누구랑 사귄다고요?”

“뭘 모르는 척이야? 네가 그런 거 뜰 사람이 누가 있겠어?”

“어…….”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질 않았다.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없는데요?”

“이세연! 이세연 말하는 거잖아! 왜 귀찮게 모르는 척을 하고 그래!”

퍽퍽!

김태산은 태현의 등을 퍽퍽 두드리며 말했다. 정작 듣는 태현보다 말하는 김태산이 더 쑥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아버지, 진짜 아프거든요?”

“그러니까 시치미를 떼지 말았어야지. 언제부터 사귀었냐? 판온 1에서 졌을 때부터?”

“그게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어떤 놈이 그런 헛소리를 해요?”

“여기 기사들이?”

김태산은 말과 함께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들을 가리켰다.

<김태현, 이세연과 불꽃 케미- 켠김에 끝까지에서 세계 기록 세워>

<프로게이머 열풍 다시 부나? 김태현-이세연 최고 시청률 돌파>

<불꽃 튀는 김태현-이세연 커플, 인연은 판온 1 때부터?>

“……정 변호사님 번호가 어디 있더라…….”

“야, 야! 원래 연예계 기사가 그런 거지 왜 고소를 하려고 그래!”

“명예훼손에 허위사실 유포하면 고소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허위사실이야 그렇다 쳐도 명예가 뭐가 훼손됐냐! 훼손되어도 이세연 명예가 훼손됐겠지!”

“아버지 제 아버지 맞습니까?”

“나도 가끔 네가 내 아들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한다.”

김태산과 태현은 잠시 서로 노려보았다.

그리고 다시 눈빛을 풀었다.

“그런데 진짜 아니야?”

“제가 사귀고 있었으면 제가 알고 있지 않았을까요?”

“녀석, 논리적이군. 어쨌든 이것도 기회라고, 이걸 이용해서 잘 해보는 게 어때? 이세연 그 애도 네가 마냥 싫은 것 같지는 않던데.”

김태산은 은근한 눈빛을 보내며 팔꿈치로 태현의 옆구리를 찌르려 들었다.

태현은 재빨리 피했다. 저건 정말로 아팠기 때문이었다.

“이세연이 절 싫어하지 않는다니. 아버지가 많이 늙으신 것 같습니다. 노안이…….”

“인마! 내가 너보다 연애에 대해서는 더 잘 알아!”

“대체 어떤 이유로요?”

“너, 결혼 해봤어?”

“…….”

세상에서 가장 유치한 말싸움!

안 그래도 이세연과 유치하게 말싸움하며 방송한 지 얼마나 됐다고, 김태산과 이렇게 말싸움을 하게 될 줄이야.

물론 태현은 이렇게 유치하게 싸우는 것에 대해서 어떤 부끄러움도 없었다.

“어머니 말로는 아버지가 연애 때 상당히 많이 부끄러운 짓을 하셨다고…….”

“……사, 사랑은 원래 부끄러운 거야.”

“좀 심하게 부끄러우셨던 것 같은데…….”

태현은 의심 가득한 눈빛을 김태산에게 보냈다. 많이 찔렸는지 김태산은 차마 마주 보지 못했다.

“어쨌든 이세연 정도면 너한테 감지덕지지! 학벌도 좋아, 집안도 좋아, 성격도 좋아.”

“학벌은 저도 좋고, 집안도 저도 좋고, 성격도 저도 좋고…….”

“……성격이라니 넌 양심이 없냐?”

“애초에 이세연 성격 별로 안 좋거든요? 걔가 얼마나 뒤끝이 심한데. 그보다 아버지는 이세연을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아시는 겁니까? 만나본 적도 별로 없을 텐데요.”

“궁금해서 이세연 나온 방송 재방송으로 찾아봤다.”

“…….”

방송에서 나온 이미지니 당연히 좋은 이미지만 나오지 않았겠는가.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다.”

“……?”

“이세연은 얼굴도 좋잖아! 어때, 이건 너도 반박할 수 없겠지!”

“……아버지 자식입니다.”

“흥. 그래 봤자 나한테는 통하지 않는다.”

태현도 차마 ‘저도 이세연만큼 얼굴 좋습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태현이라도 일말의 양심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우우웅-

그때 태현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김태산은 힐끗 쳐다보았다.

“이세연이니?”

“아뇨, 변호사 아저씨네요.”

“너, 너 진짜 고소하려고!?”

김태산은 깜짝 놀랐다.

물론 악질적인 명예훼손이나 그런 류라면 김태산이 앞장서서 ‘고소하자!’라고 했겠지만, 이건 고소할 정도가 아닌 것 같았다.

“네? 무슨 소리세요. 저 게임단 설립 때문에 상담 드렸었잖아요.”

“아…… 그랬었지…….”

김태산은 멋쩍은 태도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진짜 할 거냐?”

“대회 나가려면 게임단이 있어야 해요. 안 그러면 나갈 수 있는 대회가 엄청 줄거든요.”

“아니…… 그러면 그냥 다른 게임단에 들어가면 되잖아…….”

“뭐 딱히 끌리는 데가 없네요. 그리고 다른 게임단 들어가면 아무래도 거기에 맞춰야 할 일도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네가 대장 하고 싶어서 새로 만든다는 거지?”

“네!”

“……어디서부터 잘못 키운 걸까…….”

김태산은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뭔가 많이 잘못됐다.

“그래서 선수는 모았냐?”

“일단 되는 대로 모으고 있죠. 대부분 5명을 기준으로 잡고 있으니…….”

5:5 대회는 물론이고, 1:1 대회도 변형 룰로 5명 팀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무래도 게임단끼리 붙는 걸 원하고 있었으니까.

“던전 공략은 5명이서 힘들지 않나 싶은데…….”

“뭐 그게 실력이죠. 예, 아저씨.”

태현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김태산은 속으로 재수 없는 놈이라고 태현을 욕했다.

“네, 네. 관련 서류는 전부 다 보냈고요. 어…… 장소요? 아…… 네.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생각해 보겠습니다. 뭐 집이야 많으니 하나 골라서 쓰면 되겠죠.”

“…….”

김태산은 떨떠름한 얼굴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지금 무슨 대화를 하고 있는지 깨달은 것이다.

“게임단에 쓸 건물 찾는 거냐?”

“네.”

“지금 네 명의로 되어 있는 건물들에는 대부분 다 세입자 들어가 있는 거 알지?”

“아버지 건물은…….”

“꿈도 꾸지 마라.”

“쯧. 치사하시긴.”

“야! 그 건물들이면 됐지!”

건물을 줘도 치사하단 말을 듣다니. 김태산은 갑자기 억울해졌다.

“관리인한테 연락해서 물어봐라. 네 명의의 건물 중에서 지금 비어 있는 곳들 알려줄 거다. 그런데 너도 나가서 거기서 살 거냐?”

“네? 저는 별생각 없는데요.”

“지겨운 놈…….”

김태산은 중얼거렸다.

“방금 지겹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어머니한테…….”

“하하, 무슨 소리니 태현아. 나야 아들이랑 같이 사는 게 좋지! 서운해서 물어본 거란다!”

김태산은 입맛을 다셨다. 태현이 집을 나가서 독립하면 그는 오붓하게 아내와 살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태현은 이미 독립할 능력이 충분히 있지 않은가!

“게임단 명의가 거기로 들어갈 텐데, 안 쓰면 아깝긴 하니까…… 합숙 장소로 써도 괜찮을 거 같은데요.”

태현은 케인을 떠올렸다.

-흑흑, 김태현! 빨리 게임단 만들어서 나 좀 넣어줘! 집에서 보내는 눈빛이 아프다고!

만약 건물을 하나 빌려서 합숙하게 한다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케인은 가장 먼저 나설 것이다.

“너는 빼고?”

“저야 뭐 거기 가야 할 이유가 없으니…….”

“아들아.”

김태산은 진지하게 말했다. 어떻게든 태현을 내보내려는 속셈이었다.

“남자란 말이다, 독립을 해야…….”

“안 나갑니다.”

“젠장! 왜!”

“아니, 나가도 상관은 없긴 한데 아버지가 워낙 싫어하시니 나중에 이걸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이 자식이 진짜!”

김태산은 울컥해서 외쳤다.

* * *

떠들던 태현은 핸드폰에 연락이 온 걸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뭐냐, 이번에야말로 이세연이냐?”

“아뇨…… 다른 곳이요.”

“어딘데?”

“심부름센터요.”

“……응?”

심부름센터. 흥신소라고도 불리는, 돈만 주면 이것저것 시키는 일을 전부 해주는 곳!

“뭐 하고 다니는 거야?!”

“걱정 마세요. 여기 아버지 친구가 소개해 준 곳이니까요.”

“아, 그렇구나…… 라고 할 것 같냐! 뭔 일을 하고 다니는데 심부름센터에서 연락이 온 건데?! 너 설마 게임 상대 약점 잡으려고 고용했냐?!”

“……? 어떤 놈이 그런 짓을…… 헉, 아버지 그런 짓 하셨었군요?”

“…….”

괜히 짐작하다가 스스로의 부끄러운 과거만 털린 김태산이었다.

“아, 아니야.”

“잠깐 전화 좀 해야 하니까 조용히 해주세요.”

“인마……! 아오, 준식이 이놈은 변호사가 되어가지고 왜 이상한 회사를 소개시켜 준 거야!”

정준식 변호사가 들었다면 ‘이 자식은 자기도 예전에 이용해 놓고 뻔뻔한 거 봐’라고 따졌을 소리였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네. 듣고 있습니다.”

굵직하고 믿음직스러운 목소리. 정 변호사가 보장한 만큼, 이 회사의 능력은 탁월했다.

그리고 그걸 믿고 태현이 부탁한 일은…….

이다비 집의 조사와 감시였다.

김태산이 들었다면 ‘미친놈아, 뭘 하고 다니는 거야!’라고 날뛰었을 테지만, 김태산은 상황을 아직 몰랐기에 궁금한 눈빛만 보낼 뿐.

-저번에 보내주신 보고서는 잘 읽으셨습니까?

“네. 잘 읽었습니다. 그 주변 감시하고 있다가 무슨 일 생기면 연락 달라고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예. 사장님. 여기 문제가 조금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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