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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510화 (510/1,826)

§ 나는 될놈이다 510화

태현은 순간 존댓말을 하는 걸 잊고 이세연에게 항의했다. 그러나 이세연은 뻔뻔했다.

태현을 상대할 때면 이상하게 두꺼워지는 얼굴 두께!

“어머, 무슨 소리시죠? 이것도 전략 중 하나 아닌가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시는 분이 설마 이건 안 된다고 하실 생각? 억울하시면…… 아시죠?”

“…….”

태현의 입가가 씰룩거렸다. 오랜만에 당한 일격!

“하, 하하…… 뭐 그렇게 해보던가. 그 전략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으니까.”

“무슨 약점입니까?”

듣고 있던 PD가 궁금해져서 물었다.

“나보다 느릴 수밖에 없다는 약점이죠!”

“……이, 이거 딱히 두 분 중 누가 먼저 깨야 하는 건 아닌데……?”

당연한 의문이었지만, 둘 다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점점 불타오르는 둘!

파파파파파팍-

이세연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면 태현은 그냥 속도만 늦춰도 됐다. 그러면 이세연은 함정을 보고 외울 수 없을 테니까.

그렇지만 태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세연을 상대하면서 그런 쪼잔한 짓을 할 필요가 있나. 전력으로 간다!’

정공법!

어차피 한 타임 따라오는 게 늦을 수밖에 없다면 유리한 건 태현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강한 믿음. 태현의 눈빛에서 불꽃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이렇게 되자 초조한 건 PD였다.

“PD님. PD님. 지금 한 시간도 안 됐는데 김태현 벌써 후반부예요! 이러다가 한 시간 안팎으로 깨겠는데요?!”

“알, 알고 있어.”

스태프의 말에 PD는 초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떻게 한다? 어떻게 하지?’

고민하던 PD는 결심을 굳혔다.

그는 언제나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방해하지 않겠다는 말을 한 적은 없었잖아!’

이 게임은 한순간의 방심과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왔다.

게임 끝나기 직전까지 올라갔어도 실수하면 밑으로 떨어져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구조!

‘한 번만, 한 번만 노리면 된다!’

“커험험, 여러분. 열심히 하시는데 마실 거라도?”

은근슬쩍 말 걸기.

게임에 집중하려는 사람들은 이런 방해 공작을 제일 싫어했다.

집중을 깨뜨리기 때문이었다.

“커피? 녹차? 콜라? 사이다?”

치사하게 계속 종류를 늘어놓으며 분위기를 산만하게 만드려는 PD!

그걸 본 스태프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PD의 자리는 정말 무섭구나.’

“와, 음료도 줘요? 이세연이 엄청 겁줘서 걱정했는데, 이 프로그램 생각보다 되게 친절하네요?”

‘너만 그런 거야!’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동시에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와서 피눈물을 흘리는데 태현은 혼자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원래 이런 음료도 출연자가 뭐라도 해야 주는 서비스!

“그래서 뭐 마시겠어요, 김태현 선수? 하하, 서비스니까 신경 쓰지 마시고…… 콜라? 커피? 역시 콜라인가? 아니면 사이다가 더 낫나?”

“전 아이스 아메리카노 뜨겁게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뜨겁…… 응?”

이세연은 어이없다는 듯이 태현을 타박했다.

“이상한 거 주문하지 마.”

“네? 무슨 소리시죠 이세연 씨? 이런 날씨에 커피 차갑게 먹으면 배탈 나니까 한 소린데요?”

“…….”

계속 떠드는데도 흔들림 없는 둘.

PD는 산만하게 만드는 방해 작전은 실패했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방법!’

노골적이면 들킬 테니, 은근하게 신경 쓰이는 방법으로…….

“내가 들고 갈 테니까 쟁반 줘봐.”

PD는 음료를 받아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노리는 건 지금 성적이 가장 좋은 태현.

‘슬쩍, 슬쩍 툭 치는 거다. 그것만으로 신경이 흐트러질 수 있어! 결정적인 순간을 노려서……!’

그 순간 태현이 몸을 빙글 돌렸다.

그러자 정확히 PD의 급소를 가격하는 태현의 팔꿈치!

퍽!

“커헉!”

“아, 죄송합니다. 뒤에서 살기가 느껴져서. 뒤에 있는 줄 몰랐네요. 다가오지 마세요. 제가 게임 할 때는 정신이 팔려서 이런 거 신경 못 쓰거든요.”

“어억…… 넵…….”

자기가 잘못한 거라 뭐라고 말도 못 하고, PD는 비틀거리며 음료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물러섰다.

“괜, 괜찮으세요?”

“나, 나는 괜찮으니까…… 어떻게든…… 방해를 해봐!”

PD가 누워서 쉬는 동안 다른 스태프가 나섰다.

“여러분! 말씀드리는 걸 잊었는데, 찬스가 있어요!”

“바로 깨고 집에 갈 찬스 말입니까?”

“……그게 아니라, 친구를 불러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그런 찬스인데…… 친구 부르시면 저희가 음식도 시켜드릴게요!”

“전 배 안 고파서 됐습니다.”

“저도 괜찮아요.”

‘크윽!’

보통 여기서 오래 게임을 하다 보면 배가 고파서 이런 찬스에 매달리기 마련이었다.

그렇지만 둘은 아니었다.

딱 봐도 금세 나갈 것 같은 분위기!

“찬스 쓰셔야죠! 안 쓰면 아깝잖아요!”

“근데 전 친구가 없어서.”

“…….”

태현의 말에 이세연까지 포함된 모든 사람들이 태현을 빤히 쳐다보았다.

“어…… 이세연 씨는 친구 아닌가요?”

“이세연은 친구가 아니라…….”

태현의 말에 이세연은 살짝 상처 받은 표정을 지었다.

‘와, 너무하네. 판온 1 때부터 알아왔으면 나름 오래 알아온 거 아니야? 대회 때 누가 도와줬는데…….’

“라이벌이나 숙적에 가깝죠.”

“……뭘 좀 아네!”

“……??”

탁탁!

태현은 갑자기 기분 좋아진 얼굴로 그의 어깨를 두드리는 이세연을 보고 의아해했다. 쟤는 왜 갑자기 저러지?

“앗. 그런 거였군!”

“……??”

“기분 좋아진 척을 하면서 내 어깨를 쳐서 방해할 생각이었군?”

“……이런 개…….”

누워 있던 PD는 귀를 의심했다. 잘못 들은 거겠지?

“네 방해 공작에는 당하지 않는다, 이세연. 그 방해 공작은 이미 내가 생각했던 거거든.”

“그런 걸 생각했었어……?”

이세연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지만 이미 확신한 태현은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그런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이세연! 그리고 난 이미…… 끝냈지!”

타타탁- 탁!

태현은 말과 함께 마지막 점프를 했다. 그러자 화면 속 캐릭터가 위로 솟구치며 엔딩 크레딧이 나오기 시작했다.

클리어!

“1, 1시간 12분……!”

스태프들은 경악한 목소리로 외쳤다. 처음 시도하는 게임에서 세계 기록을 세우다니!

게임 잘한다, 잘한다 말은 들었어도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리고 아직 충격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있던 PD는 누워 있는 상태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크흑흑…… 이젠 정말 끝이야……!”

“PD님! 아직 기회가 있어요! 정신 차리세요!”

“김태현과 이세연을 불러놓고 한 시간 만에 끝내다니…… 이건 시말서로도 모자라…… 나라는 사람이 이런 실수를 하다니…….”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 PD. 스태프들은 그를 달래기 위해 애썼다.

“아직 이세연 씨가 있어요! 이세연 씨만 남아 있으면 방송 분량 뽑을 수 있다구요!”

“맞아요! 그걸로도 재밌게 만들 수 있어요!”

“그, 그런가?”

PD는 살짝 기운을 회복했다. 그러나 그때 이세연이 말했다.

“클리어!”

1시간 15분!

태현의 플레이를 거의 따라가면서 완벽하게 맵을 숙지한 이세연이었다.

시간 차이가 거의 없을 수밖에 없었다.

“크허어억!”

“PD님!!”

기운을 회복하려던 PD는 다시 쓰러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휘파람을 불며 외투를 걸쳐 입었다.

“그럼 이제 가도 되죠?”

“잠, 잠깐…….”

“다음에 뵈요! 언제 뵐지는 모르겠지만!”

탁-

“……?”

태현은 세트장을 나가려다가 멈칫했다. 이세연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넌 왜 안 나가?”

“응? 다시 해서 기록 세우려고.”

“……치사하지 않냐?!”

“어머, 무슨 소리세요? 기록 세우기 위해서 다시 도전하는 건 흔한 일이지 않나요?”

이대로 나가면 태현이 이긴 게 된다. 이세연은 남아서 태현의 기록을 깰 게 분명했다.

그리고 이세연은 충분히 가능했다.

‘이미 맵은 다 파악하고 있겠지.’

태현은 이세연의 능력을 믿었다. 첫 번째 시도였으니까 태현 뒤에서 따라왔지, 이제는 동등하게 따라붙을 것이다.

어지간하면 기록은 깨진다!

“좋아.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

태현도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세연은 그걸 보고 혀를 찼다.

“왜 안 가?”

“하하, 무슨 소리시죠? 전 이 게임이 재밌어서 더 해보려고 하는 건데요?”

파지직!

둘 사이에 다시 튀는 불꽃.

그걸 본 스태프들이 PD에게 말했다.

“PD님,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는데요?”

벌떡!

그러자 시체처럼 누워있던 PD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역시 난 둘을 믿고 있었어!”

“…….”

* * *

엎치락뒤치락.

태현이 앞서가다가, 다시 이세연이 기록을 깨고, 또 태현이 기록을 깨고…….

‘우리 지금 <켠김에 끝까지> 찍는 거야, 아니면 <세계 기네스 도전> 찍는 거야?’

‘몰라, 재밌다니까 그냥 찍는 거지.’

처음에 스태프들은 방송이 연장되는 것에 기뻐했다. 일단은 분량이 보장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아직 둘의 무서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 * *

“으하암…….”

“언제까지 하는 거야?”

“지금 김태현이 13초 앞선 상태야.”

“또? 아까는 이세연이었잖아.”

“그냥 적당히 하고 가자…… 이제 분량도 다 뽑았는데…….”

“PD님. PD님이 말 좀 걸어보세요.”

“뭐라고?”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겠냐고…….”

PD는 ‘좀 더 찍으면 안 돼?’라고 말하려다가 멈칫했다.

스태프들의 눈망울이 너무 애처로웠던 것이다.

-우리도 퇴근 좀 합시다! 집에 가족이 있는데!

“……알겠어. 말하면 되잖아!”

PD는 아쉽다는 듯이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아직 체력이 있었고, 더 찍어도 괜찮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저기, 이세연 선수. 슬슬 그만해야 하지 않…….”

“잠깐만요. 이 기록만 깨고요.”

“아니, 스태프들도 퇴근을 해야 해서…….”

“이 프로그램 원래 깰 때까지 다 못 가는 거 아니었어요? 이 정도는 괜찮은 줄 알았는데요.”

“게임 깨셨잖습니까!”

“기록 1위를 깨야 진정한 의미로 깬 거죠.”

“…….”

“퇴근하셔도 괜찮아요. 전 이 기록 깨고 갈 거니까요.”

‘이런 사람이었나?!’

평소에 전혀 보여주지 않던 이세연의 낯선 모습. PD는 방향을 바꿔 태현을 노렸다.

“김태현 선수, 김태현 선수는 집에 가실 생각 없으십니까?”

“이세연 먼저 일어나면 가죠.”

먼저 갔다가 이세연이 기록 1위 찍는 건 못 보겠다!

“…….”

“먼저들 퇴근하시면 되지 않아요?”

“아니, 그래도 여기 세트장이 있는데…… 저희들만 갈 수는…….”

‘제발 좀 집에 가라!’

‘이틀째 다 되어가잖아!’

스태프들은 마음속으로 외쳤다.

* * *

타탁, 타타탁-

또 하루가 지났다.

“김태현 선수, 이세연 선수.”

“말하세요. 듣고 있습니다.”

“지금 집중 중이니까 조용히 좀 해주실래요?”

퀭한 눈빛의 PD. 그러나 둘은 PD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털썩-

“?!”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퇴근 좀 합시다!”

결국 무릎을 꿇는 PD!

그걸 본 스태프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이세연, 지금 털썩 소리 났는데 뭐야? 무슨 일이야?”

“몰라. 네가 봐. 이거 깨느라 바빠.”

시선도 안 돌리는 둘!

“아 진짜! 그만 좀 하라고요! 집에 좀 갑시다!!”

PD는 울컥해서 컴퓨터의 전원을 뽑아버렸다.

* * *

“정말 훌륭해! 최고 시청률을 찍을 줄이야. 둘을 데려오면 찍을 수 있다고 괜히 호언장담한 게 아니었어!”

“하, 하하…… 감사합니다…….”

“자네, 그런데 이상하게 피곤해 보이는데?”

“괜, 괜찮습니다.”

“이번 방송에는 자네 역할도 컸어. 난 보면서 감탄했다니까? 어쩌면 저렇게 약방의 감초처럼 탁탁 들어갈까? 연기자 해도 되겠어!”

‘연기가 아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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