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509화
30분 후.
김 매니저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나름 연예계에서 잔뼈가 굵은 그였지만, 이렇게 살벌한 분위기는 처음!
‘이, 이게 무슨?!’
공격을 먼저 시작한 것은 이세연이었다.
-와, 평소에도 그렇게 메이크업 하고 다니는 게 어때? 엄청 선량해 보이는데?
태현을 상대로 선공을 양보하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
이세연은 가차 없이 선공을 가했다. 그러나 태현은 냉정했다.
-난 원래 선량해서. 그러고 보니 장쓰안이 너 욕하더라. 대회에서 비겁한 수 쓴다고.
-네가 하자고 한 거잖아!
-왜 그러세요, 팀장님? 팀장님이 책임을 지셔야죠. 그게 팀장이라는 자리 아닙니까.
-말은 더럽게 안 들어놓고……!
‘이, 이세연 씨가 원래 저런 성격이었나?’
김 매니저는 당황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평소의 이세연과 이미지가 달라도 너무 달랐던 것이다.
평소의 이세연의 이미지?
쿨하고, 냉정하고, 흔들리지 않고, 언제 어디에서나 프로답고, 모든 면에서 완벽하고…….
그런데 지금의 모습은?
‘유…… 유치해!’
태현이야 원래 좀 저런 성격이긴 했어도, 이세연까지 저럴 줄은 몰랐다.
순간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깐, 누가 날 욕한 기분이 들었는데.”
“……?!”
김 매니저는 흠칫 몸을 떨었다. 이런 부분에서는 짐승 수준의 예리함을 보여주는 태현!
“그런 사람이 한둘이겠어?”
“그렇지.”
“케인 씨 아닐까?”
“그럴 가능성이 있긴 하지. 요즘 좀 많이 부려먹고 있긴 하거든.”
“또 누구를 부려먹고 있는데?”
“일단 케인이랑…….”
이세연은 태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음료수를 꺼내 목을 적셨다. 급하게 달려오느라 목이 말랐다.
“이다비도 있고.”
“아. 이다비 씨. 그 사람 성격 참 좋더라. 네 친구들 중에서 가장 착한 거 같아.”
“하하. 그건 네 착각일걸.”
“……?”
“그리고 수혁이랑, 호ㄱ…… 아니, 수혁이 친구랑, 장쓰안 정도인가.”
“그래, 그래…… 응?”
이세연은 방금 그녀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누구라고?”
“수혁이 몰라? 신컨으로 한 번 유명해졌었…….”
“아니, 그 사람 말고! 뒤에! 뒤에 명백히 이상한 사람이 있었잖아!”
“수혁이 친구?”
“장쓰안!!”
“아. 장쓰안. 응. 와서 화해했어.”
“쿨럭, 쿨럭!”
이세연은 마시던 음료수를 잘못 삼키고 사레가 들려서 콜록댔다.
태현은 이세연의 등을 두드리면서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다.
“쯧쯧. 목이 말라도 그렇지 좀 천천히 마셔야지. 왜 이렇게 급하게 마셔?”
“급…… 급하게 마셔서 이런 거 아니거든……?”
이세연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대체 장쓰안과 어떻게 화해했는데?”
“네가 다 시켰다고 했는데.”
“…….”
“농담이야.”
“그런 얼굴로 농담하지 마…….”
“뭐, 진심을 털어놓고 이야기하니까 이해해 주던데. 왜 다른 놈들은 이러지 못하는지 모르겠어. 판온 1때부터 쫓아오는 놈들이 많아서 골치 아프다니까.”
“네가 한 짓을 생각해 보라고 하고 싶은데…… 어차피 안 듣겠지. 그보다 어떻게 협박한 거야?”
태현이 화해했다는 말은 조금도 믿지 않는 이세연이었다.
* * *
“이야, 두 분을 이렇게 만날 수 있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판온 파티는 같이 안 할 겁니다. 아니, 이세연이 대신해 줄 거예요.”
“네? 그게 무슨 소리죠?”
<켠김에 끝까지>를 맡은 PD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에 태현은 안도했다.
‘판온 같이 해달라고 쫓아다니지는 않겠군.’
“하하,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두 분을 모시게 되어서 정말로, 정말로 기쁩니다. 제가 또 두 분 팬이거든요.”
사근사근하고 친절해 보이는 PD의 모습. 그러나 이세연의 표정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방심하지 마. 저 사람 장난 아니니까.
-응? 뭐야, 이상한 사람인가?
-아니, 이상한 사람은 아닌데…… 방송 들어가면 절대 타협 없는 사람이거든.
방송 프로그램 <켠김에 끝까지>의 컨셉은 간단했다.
초대받은 사람에게 게임을 하나 골라서 던져 주고, 그 게임을 클리어할 때까지 집에 보내주지 않는다!
보통 어느 정도 타협이 있기 마련인데, 이 프로그램은 정말로 집에 보내주지 않았다.
그런 끈질김이 방송의 인기 요소 중 하나였다.
-뭐 깨고 나가면 되지.
-아, 예. 그러시겠죠.
“두 분 사이가 참 좋으시네요? 하긴, 같이 팀으로 활동하셨을 정도니…….”
“아닌데요?”
“아닌데요.”
“앗, 예. 죄송합니다.”
둘이 정색하고 말하자 PD는 당황해서 고개를 숙였다.
‘무, 무서워!’
* * *
세트장을 준비하고, MC가 간단하게 소개를 하며 분위기를 띄워 올리는 동안, PD는 태현에게 말을 걸었다.
이세연이야 방송의 프로였지만 태현은 출연한 방송이 많지 않았다.
긴장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동팔 대표님이 잘 봐달라고 했으니 신경을 써줘야지. 게다가 그 김태현이잖아!’
국내 프로게이머 중 인기와 인지도만으로 따지면 1위를 다투는 게 태현이었다.
그런 태현이 방송에 나와 준다면 그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마음 같아서는 고정 계약을 맺고서 프로그램을 하나 더 만들고 싶을 정도지만, 그건 김태현 선수가 싫어하니 어쩔 수 없지.’
PD가 보기에 태현의 이름을 하나 넣은 프로그램을 진행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다른 프로게이머 중에는 게임만 잘하지 방송 센스는 영 없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태현은 아니었다.
타고난 재능!
간단한 대화만 해도 분위기를 재밌게 만드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태현이었다.
“너무 긴장하실 필요 없습니다. 간단하게 게임만 하시면 되니까요. 다른 방송보다 훨씬 편한 게 이 방송이죠!”
물론 아니었다.
평균 시청률도 높고, 고정 시청자도 많은 <켠김에 끝까지>였지만, 연예인 중 출연을 피하는 사람들이 많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정말 깨기 전까지는 안 내보내 주는 엄격함!
-집에 가고 싶어요! 집에 가게 해주세요!
-흑흑, 다시는 게임 같은 거 안 할 거야!
이렇게 괴로워하는 모습이 방송의 재미 중 하나!
즉, 출연자들이 괴로워하면 괴로워할수록 방송은 재밌어지는 것이다.
‘후후…… 김태현 선수! 원한은 없지만 최대한 괴로워해 주시죠……! 이걸 위해 불렀으니까!’
PD는 김태현과 이세연이 게임을 깨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상상만 해도 시청률이 팍팍 뛸 것 같은 아름다운 모습!
그러나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김태현과 이세연이 어느 정도의 선수인지를.
그리고 그 둘을 붙여 놓으면 둘이 얼마나 경쟁심이 폭발하는지!
* * *
“그러고 보니 두 분은 같은 팀으로 출전하셨는데, 두 분 중 어느 분이 더 게임을 잘하시나요?”
MC는 정말 별 생각 없이 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대답은 동시에 튀어나왔다.
“저죠.”
“전데요?”
“…….”
파지직!
순간 이세연과 태현 사이에 불꽃이 튀었다. MC는 분명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뭐, 뭐지?’
“하하. 이번 대회 MVP가 누구였는지 보면 누가 가장 잘했는지 나오지 않을까요?”
“대회 MVP는 팀에서 가장 활약하기 좋은 선수한테 유리하잖아요? 그보다는 좀 더 객관적인 결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자면 판온 1에서 1:1 결과 같은 거?”
“판온 1이 언제 때 일인데 아직까지 그걸 들고 오시다니. 자랑할 게 그거밖에 없으신가요? 하하.”
방송이라고 나름 서로 존대하지만, 눈빛은 서로 잡아먹을 것 같았다.
MC는 당황한 눈빛으로 구원 요청을 보냈다.
-어, 어떻게 하죠? 일단 멈추게 하고 다시 찍을까요? 이러다 싸우면…….
-아냐! 계속 찍어! 이런 걸 원했어!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지만 PD는 신이 났다. 딱 봐도 재밌는 상황 아닌가.
경쟁심 넘치는 두 선수!
‘요즘은 이런 케미 터지는 캐릭터들이 유행이지!’
그냥 나와서 ‘하하 아니에요, 이세연 선수가 더 잘해요’, ‘무슨 소리에요, 김태현 선수가 더 잘하죠. 까르륵’ 이렇게 말한다면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겸손한 이미지야 관리가 됐겠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자, 그, 그러면 두 분 다 게임 시작하시죠!”
그러나 MC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말을 돌렸다.
둘의 대화를 가까이서 보면 정말 살벌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이 게임 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아뇨.”
“안 해봤어요.”
게임 <항아리 오르기 2>.
항아리 안에 들어간 남자가 막대기 하나만을 이용해 지형지물을 올라가는 단순한 게임이었다.
이런 단순한 게임이 왜 이번 방송에 골라졌냐면…….
‘더럽게 어렵기 때문이지!’
PD는 속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전작 <항아리 오르기>도 까다로운 조작법과 쓸데없이 짜증 나는 물리 엔진으로 엄청난 난이도를 자랑하는 게임이었다.
게다가 도중에 떨어지면 올라왔던 지형지물 밑으로 추락해,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하는 구조까지!
그런데 <항아리 오르기 2>는 더 난이도를 올리고 함정까지 추가했다.
나름 게임 좀 한다는 사람들도 평균 클리어까지 24시간이 넘게 걸리고, 이 게임만 판 사람들이 기록을 세우기 위해서 계속 도전을 하고 있었지만 3시간 밑으로 진입을 못 하고 있었다.
‘이미 확인은 끝내놨지. 둘 다 이 게임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처음 하는 둘이라면 아무리 못해도 12시간은 넘게 걸릴 것이다.
이것도 둘을 엄청나게 고평가해 준 것!
“음…… 특이한 게임이네. 올라가는데 웬 함정?”
“윽, 함정은 싫은데.”
“왜?”
“어떤 사람이 게임에서 몸에 함정을 설치하고 다녀서 아닐까?”
“저런, 그런 사람이 있어?”
“…….”
각자 컴퓨터 하나씩을 잡고 게임에 도전하는 상황.
그런데도 쉬지 않고 입은 떠들고 있었다.
보는 사람들이 더 조마조마할 정도!
‘집중 안 하냐?!’
그러나 그런 생각들은 둘을 몰라서 하는 이야기였다. 둘은 떠들면서도 언제나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거 근데 진짜 깨면 집에 가도 되나요?”
“네? 물론이죠. 저희는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습니다.”
PD는 가슴을 탕탕 치며 말했다. 그 모습에 태현은 잘됐다는 듯이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면 사양하지 않고 빠르게 끝내고 집에 가겠습니다. 원망하지 마세요.”
“하하. 물론이죠!”
PD는 말과 동시에 손짓했다.
-이 장면 자막으로 넣어!
나중에 태현이 고통받으면 고통받을수록, 방금 한 말이 웃기게 보일 것이다.
타타타탁-
“어…… 어?”
PD는 눈을 의심했다.
방금까지 초반 부분에서 머뭇거리며 잘 움직이지도 못하던 태현이, 갑자기 빠르게 앞으로 튀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컨트롤!
‘아, 아니…… 그래도 게임을 하나도 모르니 도중에 있는 지형이나 함정에 걸릴 수밖에 없지! 하나만 걸려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 이 게임이다. 저렇게 빠른 건 예상 밖이었지만 오히려 더 쉽게 걸릴지도…….’
“아. 함정이군.”
“?!”
PD는 분명히 보았다. 태현이 함정이 나오기도 전에 반응하고 피한 것을!
“방, 방금 어떻게 하신 거죠?”
“뭐가요?”
태현은 PD의 질문에 멈추지도 않고 계속 움직였다.
“방금 함정…… 알고 계셨던 겁니까?”
“아뇨.”
“근데 어떻게 피하신 거죠?”
“아. 여기 함정 작동되기 전에 지형이 살짝 변하더라고요. 그거 보고 피했죠.”
“?????”
아무리 봐도 그런 변화는 없었다.
‘눈에 뭐 초고속 카메라라도 달고 다니는 거야?!’
PD를 당황하게 한 건 태현뿐만이 아니었다. 이세연도 무시무시한 속도로 따라붙고 있었다.
‘이쪽은 또 뭐야?!’
“이세연 씨는 어떻게 함정을 피하신 겁니까?!”
“김태현 화면 보고 나온 함정 외웠는데요.”
“야, 치사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