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508화
악마술사 몬로소.
지금 흉계를 꾸미고 있는 마법사 NPC의 이름이었다.
진심으로 악마를 믿거나 숭배하는 다른 악마술사와 달리, 몬로소는 악마를 그저 부릴 수 있는 수단으로 생각했다.
대륙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
우르크 지역의 오크들에게 접근한 것도 부하들을 모으기 위한 방법이었다.
크게 다친 대족장을 일으켜 세우면 그만큼 그의 위치가 올라갈 테니까.
물론 대족장을 깨운 건 멀쩡한 방법이 아니었다.
봉인된 고대 악마의 피:
마시게 될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흉악한 고대 악마의 피다. 제정신이 달린 사람이라면 마시지 않을 것이다.
악마의 피를 먹여서 부상을 회복시킨 것이다.
덕분에 대족장 카라그는 정신을 차리고서도 움직이지 못하고, 몬로소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었다.
“에다오르를 소환하려면 보통 제물로는 안 되겠지. 오크들을 얼마나 제물로 바쳐야 하나…….”
-주인님. 그래도 보내신 악마를 확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너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아서 걱정됩니다.
“알겠다. 혹시 모르니 다른 오크들을 보내서 확인하도록 하지. 새로 나타난 마법사의 정체가 수상하기도 하니 말이다. 설마 마탑에서 보낸 마법사는 아니겠지?”
마탑에서 보내지는 않았지만 마탑 출신이기는 했다.
-마탑 출신 마법사와 원한이 있으십니까?
“그놈들은 사사건건 이런 일들을 방해하는 놈들이다. 내가 그놈들에게 얼마나 많은 원한이…… 아니다. 어차피 이제는 그놈들이 와봤자 할 수 있는 게 없겠지. 여기 오크들은 이미 내 손 안에 있고, 곧 있으면 더 강력한 악마들도 부릴 수 있게 될 테니까!”
* * *
“헉, 이런 폭탄이! 가져가도 되나?”
-물론이지. 가져가도 된다!
[<고블린 세 명이 만든 1+1+1 폭탄>을 얻었습니다.]
“이 마차 신기하게 생겼는데, 어떻게 만드는 거지?”
-물론 알려줘야지!
[<고블린 특제 강철 마차>의 제작법을 얻었습니다.]
[고급 대장장이 기술 스킬, 고급 기계공학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고블린 특제 강철 마차>를 바로 만들 수 있습니다.]
다른 대장장이들이 봤다면 부러워서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이런 아이템 제작법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자기가 처음부터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고 만들거나, 아니면 제작법을 갖고 있는 NPC한테 가서 퀘스트를 깨야 했다.
그런데 태현은 말 한마디로 얻어내고 있었으니…….
-김태현 백작. 여기에 아키서스 신전을 지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어디에 짓든 짓기만 하면 좋…… 잠깐, 여기는 좀 아니지 않나?”
흉흉하게 생긴 폭탄들.
그 폭탄들을 쌓아놓은 창고 옆을 가리키는 고블린들!
-어째서? 여기가 가장 좋은 장소잖아?
“……왜?”
고블린들의 사고방식은 단순했다.
폭탄이 많이 있는 곳=가장 좋은 곳.
태현에 대한 친밀도가 워낙 높아 이런 친절을 베풀어주는 것이다.
물론 태현에게는 불길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아키서스 신전이 폭발에 휘말려 날아갑니다. 신성 스탯이 대폭락합니다!
같은 메시지창이 눈앞에 아른아른!
“아, 아니. 그래도…… 나 같이 오늘 처음 온 사람이 저렇게 좋은 자리를 쓰면 좀 미안하잖아. 신전은 좀 더 안 좋은 곳에 놔도…….”
-아니다! 김태현 백작! 오늘 처음 봤지만 우리는 알 수 있다!
“뭘?”
-그대는 본질적으로 고블린이다!
“……그, 그래. 고맙다.”
넌 고블린 같은 놈이야!
칭찬이긴 한데 기분 미묘한 칭찬!
-그러니 여기에 설치하겠다.
“……그래…….”
장소가 찜찜하긴 해도, 기본적으로 고블린들은 뛰어난 대장장이들이었다.
드워프와는 방향성이 다를 뿐.
덕분에 신전 건물을 짓느라 고생하지 않아도 됐다.
뚝딱뚝딱!
[고블린 풍 아키서스 신전이 건설되고 있습니다.]
[카르바노그가 서운해합니다.]
[고블린들 중 아키서스의 사제 역할을 맡을 고블린들을 골라 주십시오. 그들은 다른 고블린들에게 아키서스의 신앙을 전파할 것입니다.]
“음…… 폭탄 가장 잘 다루는 고블린들 손 좀 들어봐.”
고블린들이 손을 들었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희들이 사제다.”
귀찮아서 대충 고른 태현!
[고블린들 중에서 아키서스의 사제를 고르는 방법을 정했습니다. 앞으로 고블린들은 기계공학 스킬이 높은 고블린들을 사제로 뽑을 것입니다.]
태현이 신경 쓰고 있는 건 우르크의 오크 부족들이었다.
아마 무조건 싸워야 할 상대!
그 많은 숫자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동맹을 최대한 많이 늘려놓는 게 좋았다.
고블린들의 이런 기계공학 스킬들은 오크들도 무서워했다.
불안정하고 괴상하지만, 제대로 터지면 효과 하나는 확실한 스킬!
[<고블린 특제 강철 골렘>을 발견했습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고블린 특제 개틀링 석궁>을 발견했습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고블린의 대마력 로켓>을 발견했습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칭호:신기술의 탐구자를 얻었습니다.]
칭호:신기술의 탐구자
당신은 다른 모험가들이 접하지 못한 다양한 제작법들을 알아냈습니다.
새로운 제작법을 얻을 때 추가 보너스.
‘대장장이의 천국이군.’
그냥 안을 걸어 다니면서 구경만 해도 스킬이 오르는 마법!
태현은 영지에 있는 가브리엘과 다른 대장장이들을 데리고 올까 생각했다.
그들도 여기를 구경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잘 어울릴 것 같기도 하고…….
오싹!
순간 태현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꼈다. 왠지 모르게, 이들을 만나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 * *
“흑흑, 다 해냈다.”
“앨콧 씨, 근데 진짜 그냥 가는 겁니까?”
“아 좀 닥치라니…… 잠깐, 너 나한테 앨콧 님이라고 하지 않았냐?”
“원래 씨라고 했던 거 같은데요.”
추한 모습으로 인해 사라진 존경심!
원래라면 불같이 화를 냈겠지만, 앨콧은 그러지 않았다.
너무 행복했던 것이다.
‘풀려났다…… 풀려났다고!’
온갖 잡 퀘스트를 다 끝내고 돌아가자, 태현은 정말로 선선히 보내줬다.
믿지 못하고 몇 번이고 되물었던 앨콧!
‘살아남은 자가 강한 거다. 즉 내가 강한 거다!’
“자. 이제 김태현한테서 살아남았으니…….”
“살아남았다고요?”
“아, 아니. 갈라졌으니까…… 내 퀘스트로 돌아가자고.”
“오크 부락은 이제 못 돌아가잖습니까.”
변장이 들통 난 덕분에 오크 부락 내 평판은 엄청나게 하락한 상태였다.
가봤자 좋은 꼴을 못 볼 게 분명했다.
“어쩔 수 없지. 다른 부족이라도 찾아서 도움을 받을 수밖에.”
“그냥 다른 퀘스트 깨면 안 될까요?”
“너 이 자식. 왜 이렇게 투덜대는 거야?”
파스스-
“……?”
떠나려던 둘 앞에, 갑자기 파티 하나가 튀어나왔다.
“…….”
장쓰안이 포함된, 케인 일행이었다.
“길 잃은 거 맞죠?”
“아, 아니라니까!”
“길 잃은 거 맞는 것 같은데…….”
“아니라니까! 제대로 가고 있어! 여기가 분명…… 어?”
가장 먼저 서로를 눈치챈 건 장쓰안과 앨콧이었다.
“장쓰안!”
“앨콧!”
“정말로 여기 있었다고?!”
“……?”
앨콧의 말을 들은 이다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정말로 여기 있었다니.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거죠?”
이다비의 말에 케인은 장쓰안을 의심하듯이 쳐다보았다.
“너 이 자식…… 설마 떠벌리고 다닌 거냐?”
“아, 아니다. 내가 왜 그런 짓을 하나! 나는 그런 서투른 짓은 하지 않는다!”
사실 원인을 굳이 따져보면 이다비 때문이었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알 방법이 없었다.
‘그보다 지금 앨콧이 문제인데.’
‘길드 동맹 랭커지?’
‘역시 싸움 붙으려나? 그래도 우리는 랭커가 두 명이니 유리하겠지. 저쪽이 지원 부르기 전에 빠르게 끝내고 가자고.’
빠르게 의사를 교환하는 케인 일행. 케인은 바로 쇠사슬을 쓸 준비를 했다.
일단 끌고 보자!
그 낌새를 앨콧이 눈치 못 챌 리 없었다.
“잠깐!”
“……?”
“나는 너희와 싸울 생각이 없다!”
“……??”
“뭐 잘못 먹었나, 앨콧?”
장쓰안은 이해가 가지 않아서 물었다. 앨콧이라면 호전적이기로 유명한 랭커 아닌가.
게다가 암살자 직업이니, 여기서 치고 빠지기로 싸운다면 숫자가 불리해도 해볼 만한 싸움일 텐데?
“흥, 너희 같은 놈들이 내 생각을 알 리가 없지! 나는 이만 가겠다!”
후다닥!
앨콧은 빠르게 도망쳤다. 장쓰안과 케인은 굳이 쫓지 않았다. 함정일 수도 있었으니까.
“왜 도망간 거지?”
“두 분을 보고 도망간 거 아닐까요?”
“그, 그런가? 헤헤…….”
“크흐흠. 크흠.”
케인과 장쓰안은 멋쩍은 얼굴로 기분 좋음을 숨겼다.
케인이야 원래 이런 칭찬에 굶주려 있는 사람이지만, 장쓰안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런 반응이라는 건…….
이번 퀘스트에서 정말 힘들었던 게 분명했다.
“그런데 김태현은 지금 잘하고 있으려나?”
“아무리 선배님이라고 해도 고블린 부족은 힘드실 겁니다.”
정수혁이 진지하게 걱정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크 부족은 오크 종족이면 일단 들어갈 수 있고, 원시 인간 부족은 뛰어난 마법을 보여주면 들어갈 수 있는데, 고블린들은 일단 공격부터 하고 보는 놈들입니다.”
“그래?”
“하지만 선배님이라면! 분명 뭔가 해결책을 내실 거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 그래.”
별생각 없이 물었다가 뜨거운 찬양을 듣게 된 케인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붉은 바다 무법자 부족>도 퀘스트를 깨긴 해야 하는데. 얘네는 어떻게 해야 하려나.”
“해적 부족이니까 악명이 높은 사람이 접근하기 쉽습니다.”
“악명이 가장 높은 건…….”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김태현이겠지.”
“역시 태현 님이겠죠?”
“김태현 선배님이…….”
서로 스탯 확인을 안 해도 드는 확신!
태현보다 악명 스탯이 높을 사람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 * *
“으음…… 폭탄들을 다 갖고 가서 오크들 마을 밑에 설치한 다음 날려버리면…… 아냐, 기회는 한 번밖에 없을 텐데 그걸로는 약해. 더 강한 거 없나?”
“무슨 혼잣말을 그렇게 하십니까?”
“아. 고민 좀 하고 있었어요.”
김 매니저는 태현이 고민 좀 하고 있었다는 말에 가슴을 탕 치며 말했다.
“고민이 있으면 저한테 상담하셔도 좋습니다. 이래 봬도 연예계에서 구른 지 십 년이 넘은 사람입니다.”
“아, 딱히 방송 고민은 아니었는데요.”
“……그래요?”
태현이 나갈 방송에 대해 긴장한 줄 알았는데, 아니라는 말에 김 매니저는 당황했다.
“그러면 무슨 고민입니까?”
“폭탄을 어디에 설치해야 가장 효과적일지…….”
끼이이이익-
김 매니저는 기겁해서 브레이크를 밟았다.
“예?!”
“오크들을 상대해야 하거든요.”
“아…… 판온 이야기였군요…….”
김 매니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판온은 참 대단한 게임 같습니다. 남녀노소 다 같이 즐기는 게임이 흔하지 않잖습니까.”
“그렇죠.”
“저번에 대표님 따라갔다가 만난 피디분이 있는데, 그분이 판온을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흠칫!
태현은 순간 흠칫 몸을 떨었다. <혼자 사는 인간들>의 PD가 떠올랐던 것이다.
-태현 씨, 안녕하세요. 저번에 만난…….
판온을 같이하자고 장문의 문자를 보내오던 그 사람!
이세연에게 화살을 돌린 것도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표님 조카분도 판온에서 그렇게 잘 나가시고.”
‘대표님 조카? 아, 이세연.’
“참 여러모로 재밌는 게임입니다. 그렇죠?”
“그렇죠. 이세연은 따로 오는 거죠?”
“아, 오늘은 좀 피곤하다고 하셔서 가는 길에 들러서 태우고 갈 생각입니다. 같이 타고 가셔도 괜찮으시죠?”
“하하. 물론 괜찮죠.”
태현은 괜찮았다. 이세연도 괜찮다고 할 것이다.
물론 김 매니저에게도 괜찮을지는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