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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507화 (507/1,826)

§ 나는 될놈이다 507화

앨콧이 경악하는 사이, 땅굴 벽에서 고블린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가죽옷에 주렁주렁 폭탄을 매달고 있는 고블린!

[고급 기계공학 스킬로 고블린들이 당신에게 호의를…….]

[칭호 <위대한 파괴자>로 고블린들이 당신에게 호의를…….]

[이제까지 부순 것들로 인해 고블린들이 당신에게 호의를…….]

[이제까지 만든 폭탄들로 인해 고블린들이…….]

[…….]

우르르 뜨는 메시지창들.

이 정도면 거의 첫눈에 반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나타난 고블린은 태현을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신경 쓰인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흐, 흠! 말해보라고! 잘 말하면 들어주지 못할 것도 없으니까!

“……???”

“??????”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당황스러워했다.

‘뭘 했는데 고블린이 저런 태도지? 직업 특성인가?’

‘아니, 저렇게 보여도 여기 고블린 부족들이 호락호락한 놈들이 아닌데…… 조심하세요. 협상 실패할 겁니다.’

길드원은 소곤거리듯이 앨콧에게 말했다. 앨콧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블린이 뭘 잘못 먹었길래 저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한 가지는 확실했다.

우르크 지역의 부족들은 다 까다로운 놈들이라는 것을!

왜 앨콧과 길드 동맹의 길드원들이 오크 부락에 찾아왔겠는가?

그나마 말이 통하는 게 오크 부락이었기 때문!

원시 인간 부족은 찾아갔더니 ‘히히. 마법 발싸! 아키서스 만세!’ 하면서 쫓아내고, 고블린 부족은 ‘침입자다! 침입자! 대포 발싸!’ 하면서 쫓아내고…….

우르크 지역 남쪽 바다에 있는 해적 부족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나마 오크 부락들은 같은 오크 종족이기만 하면 의외로 선선히 들여보내 줬다.

물론 거기서 또 퀘스트를 깨며 공적치 포인트를 올려야 무슨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었지만.

어쨌든 앨콧과 길드원은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음 공격이 시작되면 무조건 도망친다!

김태현이고 뭐고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총알받이로 죽게 생긴 것이다.

‘김태현만 제치면 다른 놈들은 별거 없으니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면…… 김태현도 고블린 상대해야 하니까 안 쫓아오겠지? 제발 쫓아오지 마라! 징그러운 놈아!’

앨콧은 필사적으로 도주 경로를 짜고 있었다. 그걸 본 길드원은 감탄했다.

‘역시 앨콧 님. 싸울 생각으로 가득하군! 아까 대포도 그렇고, 공격이 시작되면 그사이 김태현을 공격하려는 게 분명해!’

둘이 다른 생각을 하는 동안, 태현은 입을 열었다.

“내가 오크들을 데리고 온 게 수상해 보이겠지만 오해다! 이 오크들은 그냥 내 심부름을 도와주는 놈들이고, 나는 너희들과 협상하기 위해서 왔다.”

-무슨 협상? 우리한테서 뭘 원하는 거냐?

“너희들이 아키서스를 믿기를 원한다.”

-너는 뭘 줄 수 있고?

“어, 그건 딱히 생각 안 해봤는데. 뭘 원하는데?”

듣고 있던 앨콧은 무심코 소리쳤다.

“미쳤냐, 김태현!!!”

“너 아까 심한 말 못 하고 성격 약해서 다른 길드원들 못 다룬다고 하지 않았냐? 지금 보니까 말 잘하는 거 같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지금 설득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그딴 설득에 넘어가는 NPC가 어디 있어!”

-설득력 있는 제안이군, 인간. 거절할 수가 없겠어!

-들어와라, 들어와!

“…….”

앨콧은 눈을 깜박였다. 지금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버그인가? 버그지?”

“현실도피 하지 마라.”

* * *

-그래서 인간, 자기소개 좀 해봐라.

땅굴 통로 안으로 안내받은 태현 일행.

다른 일행들은 머스킷을 든 고블린들이 눈을 부라리며 감시하고 있었지만, 태현은 아니었다.

화기애애한 태도로 태현을 둘러싼 고블린들!

-자. 자. 자기소개 하기 전에 이 음료도 마셔라. 목이 마르겠군.

-저런, 음료만 마시면 쓰나. 배도 고플 텐데 이것도 먹어봐!

[<땅굴 고블린들의 건강 음료>를 마셨습니다. 체력이 영구적으로 1 오릅니다.]

[<땅굴 고블린들의 건강식>을 먹었습니다. 체력이 영구적으로 1 오릅니다.]

-잘 먹네, 잘 먹어!

-더 먹으라고!

“아니. 별로…….”

-츄라이 츄라이!

억지로 음식을 계속 갖고 오는 고블린들!

옆에서 보고 있던 길드원은 갑자기 할머니 생각이 났다.

매번 볼 때마다 ‘넌 어떻게 이렇게 삐쩍 말랐냐’고 하시며 배가 터질 때까지 음식을 갖고 왔던 할머니!

‘잠깐. 지금 왜 이게 떠오른 거지?’

덕분에 태현은 포만감 메시지창까지 보고 나서야 자기소개를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김태현인데…….”

-이름부터 고귀하군!

-아주 좋은 뜻이 담긴 이름이 분명해. 저 얼굴을 봐. 아주 사악하고 폭탄 잘 터뜨릴 거 같이 생긴 얼굴이잖아!

“백작 작위를 갖고 있고…….”

-핏줄도 고귀해!

-폭탄 터뜨린 이야기도 해줘!

태현이 무슨 말만 하면 까르륵 웃으며 반응을 보여주는 고블린들!

아이돌을 만난 아이돌 팬 같은 반응이었다.

[<옛 땅굴 고블린 부족> 내 당신의 평판이 최고치에 도달합니다.]

[고블린들이 당신을 완전히 친구로 받아들입니다.]

‘…….’

태현도 당황할 정도로 빠른 진행!

이렇게 쉬운 퀘스트는 살다 살다 처음 하는 기분이었다.

태현은 살짝 고민하다가 말을 꺼내봤다.

“저기, 아키서스 믿을 생각 있나?”

-그게 뭐지?

“신인데. 믿으면 폭탄 터뜨릴 때 도움 좀 될 거야.”

-우리의 친구 김태현 백작이 믿으라고 한다면 믿어야지!

-맞아 맞아!

[<옛 땅굴 고블린 부족>이 아키서스를 믿기 시작합니다.]

[아키서스 교단의 영향력이 오릅니다.]

[다른 교단들이 아키서스 교단을 점점 더 신경 쓰고 있습니다.]

[신성 스탯이 오릅니다.]

[카르바노그가 서운해합니다.]

‘이렇게 쉽게 해결되…… 응?’

태현은 순간 메시지창을 잘못 봤나 했다.

[카르바노그가 서운해합니다.]

물론 제대로 본 거 맞았다.

‘아니, 왜 자꾸 나오는 거야?!’

그러는 사이, 고블린들은 태현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김태현 백작. 우리가 지금 거대한 붉은 독수리의 깃털이 필요한데…….

<거대한 붉은 독수리의 깃털-옛 땅굴 고블린 부족 퀘스트>

옛 땅굴 고블린 부족들은…….

-김태현 백작! 새로 대포를 만들려고 하는데…….

<가장 크고 아름다운 대포를 위해-옛 땅굴 고블린 부족 퀘스트>

옛 땅굴 고블린 부족들은…….

하도 높은 친밀도와 평판 덕분에, 고블린들은 태현에게 우르르 몰려와 부탁하려고 들었다.

이미 원하는 걸 얻은 상황이기에 얼굴에 철판을 깔고 다 거절해도 되긴 했다.

그렇지만 태현은 그러지 않았다.

든든한 일꾼들이 있었으니까.

“물론 다 해줘야지!”

-역시 김태현 백작이야! 세상을 불태울 남자지!

“쟤네들이!”

“……응?”

구석에서 고블린들 눈총을 받고 있던 길드원과 앨콧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 그들을 부른 거 같았는데?

“야, 오크들 데리고 나가서 여기 있는 퀘스트들 다 해와.”

“…….”

앨콧은 울컥했지만, 태현의 얼굴을 다시 한번 보고 나니 분노 조절이 절로 됐다.

-앨콧 님. 김태현이 말하는 거 보니까, 우리들만 밖으로 보낼 거 같은데…… 그때 도망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안 돼.

길드원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었지만…….

앨콧은 그럴 수가 없었다.

뼈 속 깊숙이 각인된 공포!

-헉, 앨콧 님. 역시……! 김태현을 죽이기 전까지는 그냥 갈 수 없다는 겁니까?

-…….

둘이 그렇게 떠드는 동안, 태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퀘스트들을 다 해오면…….”

“……?”

앨콧은 태현의 뒷말에 뭐가 나올지 떠올렸다.

‘다 해오면? 죽이지 않는다? 아이템을 덜 뺏겠다? 살려준다?’

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선택지들!

그러나 태현의 대답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풀어주지.”

“!?!?!?!?”

“왜, 싫어?”

“아, 아니! 좋지! 엄청 좋지!”

-앨콧 님?

-너 닥치고 있어! 끼어들면 너부터 죽일 거야!

길드원의 입을 다물게 하고, 앨콧은 눈을 빛내며 태현을 쳐다보았다.

“정말 풀어주는 거지?”

“그래, 그래. 열심히 했으니까 이것만 다 하면 가서 네 퀘스트 해라.”

“열심히 하겠어! 가자!”

“아니, 앨콧 님…….”

“가자고, 이 자식아!”

“헉, 네!”

둘은 신이 나서 오크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걸 본 태현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귀찮은 일들을 떠넘길 수 있어서 잘 됐군.’

케인이 있었다면 ‘정말 풀어줄 거야?’라고 물어봤을 것이다.

물론 태현의 대답은 ‘그래’였다.

‘저놈이 뭐 하는 놈인지는 몰라도 착한 놈 같지는 않고…….’

태현 같은 사람이 앨콧의 정체를 눈치 못 챌 리 없었다. 딱 봐도 다른 길드원들이 설설 기는데, 평화주의자는 무슨…….

태현을 공격하려던 건 앨콧이 지시한 게 맞았다.

‘근데 진짜 <아키서스의 저주> 한 방 맞았다고 저렇게 겁에 질리나? 이해가 안 가는군.’

다른 건 다 파악했지만, 왜 앨콧이 태현만 마주 보면 벌벌 떠는지는 태현도 짐작이 가지 않았다.

‘길드 동맹 내에 나에 관한 무서운 소문이 퍼졌나?’

어쨌든 앨콧이 어떤 놈인지와 상관없이, 태현은 앨콧을 풀어줄 생각이었다.

물론 친절하고 관대한 마음으로 풀어주는 건 아니었다.

‘원래 이런 건 길게 봐야지.’

태현이 약속을 어기고 앨콧을 공격한다면?

길드 동맹 내에 ‘김태현한테 당했다! 역시 그 자식은 절대로 봐주지 않는 사악한 놈이야!’라고 소문이 퍼질 것이다.

그렇지만 태현이 앨콧을 그냥 풀어준다면?

길드 동맹 내에는 ‘어? 김태현한테 항복하니까 목숨은 살려주네?’라고 소문이 퍼질 것이다.

이런 것들이 쌓이면 나중에 길드 동맹과 맞붙었을 때 도망치거나 항복하는 놈들이 늘어날 것이고, 그만큼 태현은 편해졌다.

‘길드 동맹 쪽에 소식은 아까 전해졌을 거고, 분명 몇 놈은 찾아올 텐데…… 미리 대비해 놔야겠군.’

“저기, 여기 함정들 좀 봐도 되나?”

-물론이지 김태현 백작!

태현이 고블린들의 아이템을 보고 싶어 하자, 고블린들은 신이 나서 태현을 잡아끌었다.

그러나 태현은 한 가지 놓치고 있었다.

겁먹은 앨콧이 길드 동맹 쪽에 소식 자체를 전달하지 않았다는 것을!

설마 아무리 겁을 먹어도 그렇지, 귓속말 하나면 몰래 보낼 수 있는데 그걸 말하지 않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 * *

“이놈은 왜 돌아오지 않는 거지?”

-…….

“됐다. 그깟 하찮은 놈은 없어도 되니까.”

어두침침한 방 안.

대족장 카라그가 쉬고 있는 침실이었다.

그 침실에 마법사가 한 명 서 있었다. 마법사가 소환한 악마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마법사를 감히 쳐다보지 못했다.

“내 계획은 거의 성공했다. 너희들도 알고 있겠지.”

-예! 주인님!

“많은 악마들이 이 대륙으로 넘어오고 싶어 하지. 그렇지만 난 그놈들이 좋아할 짓을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원하는 건 나한테 충실하게 복종할 악마! 불리한 계약이라도 받아들일 악마다.”

-…….

“그런 악마를 불러내고 찾아와라. 이미 여기 오크들은 내 손아귀에 들어왔다. 힘! 강력한 힘! 힘만 있으면 된다. 조금만 더 있으면 내 왕국을 세울 수 있다!”

-예, 알겠습니다!

-주인님. 강력한 악마는 보통 불리한 계약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만,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은 악마가 하나 있습니다.

“오. 그게 누구냐?”

-대륙으로 소환되었다가 인간에게 퇴치당한 덕분에 힘이 약해진, 에다오르라는 악마입니다.

“에다오르! 그 악마가 계약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가능성은 높다고 생각합니다. 에다오르의 상황은 별로 좋지 않으니 말입니다!

“좋다. 에다오르를 불러내겠다. 오크들을 데리고 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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