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502화
태현의 계획을 들은 이다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방금도 부락에 들어가서 자리 잡으려다가 위로 보내진 거 아닌가요? 만약에 큰 부족의 마을로 갔는데 또 대단하다고 위로 보내지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
자리에 있던 일행의 얼굴이 굳었다.
* * *
“아, 짜증 나게…….”
“왜 그러십니까?”
“쑤닝, 이 자식은 지가 뭐라고 명령이야?”
암살자 랭커, 앨콧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주변에 있던 앨콧의 파티원들은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앨콧을 쳐다보았다.
앨콧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질 더러운 것으로 유명한 앨콧!
랭커여서 길드 내 위치도 높은데, 성질까지 더러우니 주변 사람들은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왜 또 이러신대?’
‘쑤닝 님이 귓속말 보냈나 봐.’
“저, 그래도 쑤닝 님이 지금 길드 동맹 안에서 무시하기 힘든 사람인데…….”
“아, 그걸 누가 몰라? 너 지금 나 가르치냐?”
“아, 아닙니다.”
“이 짜식이 말이야. 원하는 게 있으면 자기가 직접 와서 부탁을 해야지. 안 그래도 저번 퀘스트 애매하게 끝나서 기분 찜찜한데 얻다 대고 명령이야?”
“…….”
“…….”
다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괜히 말을 꺼냈다가 앨콧한테 화풀이를 당하면 손해였으니까.
“에이 씨, 진짜…….”
앨콧은 계속 투덜거렸다.
안 그래도 길드 동맹 내에서 쑤닝이 점점 올라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렇게 직접 시키니 그게 더 확 와 닿았다.
그렇다고 거절하기도 애매한 부탁이고…….
“변신 물약 마셔야 할 시간입니다.”
“아, 벌써 시간이…… 내놔봐.”
앨콧은 길드원이 내민 물약을 마셨다. 판온에는 맛있는 음식만 있는 게 아니었다. 맛없는 것들도 많았다.
지금 마시는 변신 물약도 그중 하나!
앨콧의 얼굴이 사정없이 찡그려졌다.
“으윽…….”
[오크 변신 물약을 마셨습니다. 효과가 지속됩니다.]
지금 앨콧과 길드원들은 우르크 지역에 와있었다.
그것도 오크들의 마을에!
앨콧이 데리고 온 길드원들은 애초에 종족 오크를 고른 플레이어들이었다.
그렇지만 앨콧은 아니었기에 이렇게 계속 변신 물약을 마셔줘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오크들이 당장 ‘취익! 저거 인간이다! 저거 죽여야 한다!’라고 달려들 테니까!
“이거 정말 더럽게 맛없네. 길드의 연금술사 애들은 뭐 이딴 포션을 만드냐? 맛도 좀 신경 써야 하는 거 아냐?”
“하, 하하…… 그러게요.”
“너희들도 마셔.”
“아니, 저희는 마실 필요 없는데요?”
“나 혼자 이런 거 마시기 억울하잖아! 너희들도 마셔! 자!”
마치 억지로 술을 권하는 상사처럼, 앨콧은 오크 변신 포션을 길드원들에게 먹이려고 들었다.
“그, 그렇게 말하셔도…… 그렇게 마시기 싫으시면 그냥 다른 방법을 찾아볼까요?”
“그걸 말이라고 하냐?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이러고 있는 거잖아!”
앨콧은 짜증 난다는 듯이 길드원들을 쳐다보았다.
“내가 몇 번을 말하냐. 어? 너희들은 왜 그렇게 생각이 없어! 여기 우르크 지역에 있는 오크 마을들은 오크 아니면 들어갈 수가 없다고. 그런데 무슨…….”
췩! 위대한! 마법사! 만세! 취익!
“?”
“??”
앨콧과 길드원들은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서 수상쩍은 가마를 타고 오는 수상쩍은 마법사가 있었다.
“또 마법사야?”
“여기 뭔가 수상하지 않습니까? 그 대족장 카라그를 치료하고 깨운 것도 마법사라고 하던데. 오크 놈들 주술사가 아니라.”
“그렇긴 하지. 그렇지만 거기 신경 쓸 시간 없다. 카라그가 낫든 말든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퀘스트나 하자고.”
앨콧의 말에 길드원들은 서로 쳐다보았다.
‘우리가 아니라 네 퀘스트잖아…….’
‘오크 종족이라고 지가 데리고 와놓고…….’
물론 속으로만 삼키는 불평!
“그래서 보고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냐?”
“최, 최선을 다해서 찾고 있습니다!”
앨콧이 찾고 있는 아이템은 우르크 지역에 있었다.
그렇지만 우르크 지역은 넓고, 사나운 몬스터부터 시작해서 적대적인 부족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런 이들과 일일이 싸워가면서 찾는 건 무리였다.
그래서 앨콧이 생각해낸 방법이 오크들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오크로 잠입해서 부족에 들어간 다음, 부족 내에서 위치를 올려 오크들을 부려먹는다!
‘내가 생각했지만 정말 완벽한 계획이군.’
앨콧은 스스로의 계획에 취할 것 같았다.
* * *
“취익! 마법사! 이분이 족장님이다. 인사드려라!”
태현은 앞의 의자에 앉아 있는 덩치 큰 오크를 쳐다보았다. 덩치 큰 오크는 못 믿겠다는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췩, 나는 마법사 따위는 믿지 않는다. 나는 전통적인 주술이 더 좋다.”
“취익! 아닙니다, 족장님! 이 마법사의 실력은 주술사보다 더 뛰어납니다! 췩! 잘 이용하면 부족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넓은 천막 안에서, 태현을 데리고 온 오크가 침을 튀기며 설득에 나섰다.
그러자 족장이 태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췩, 마법사, 넌 뭘 할 수 있지?”
“……그러게?”
“취익, 뭐라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하. 뭔가 보여드리죠.”
태현은 그제야 오크들한테 뭘 보여줄지 생각해 놓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만약 보여준다면, 확실하게 오크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나 엄청나게 강한 충격을 주는 걸 보여줘야 했다.
유령 언데드 소환 같은 건 임팩트가 적었고, 역시 이럴 때 가장 좋은 건…….
‘<행운 전환> 쓰고 <어둠의 화살> 써야겠군.’
파괴적이고 사악한 마법의 위력만큼 오크들에게 확실하게 와 닿는 것도 없을 것이다.
-행운 전환.
[행운이 힘으로 전환됩니다.]
“……우기기.”
[다시 굴립니다.]
[행운이 힘으로 전환됩니다.]
‘저주받았나?’
“…….”
“췩, 왜 그러지?”
등에서 땀이 났지만 태현은 당황하지 않고 바로 움직였다.
한 번 한 일, 두 번은 못 하겠는가!
“하하하! 하하하하! 자! 보십시오. 이것이 진정한 흑마법의 힘!”
-어둠의 화살!
태현은 말과 함께 땅바닥을 주먹으로 후려갈겼다.
쿠르르르르르릉!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 같은 굉장한 효과였다. 주변의 땅이 울리며 소리를 만들어냈다.
“취이익! 이게 무슨!”
“췩! 굉장하다!”
[오크들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부족 내 당신의 평가가 오릅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취익! 저건 말도 안 됩니다!”
“췩! 족장님! 저놈은 무슨 속임수를 쓰고 있는 겁니다!”
족장 왼쪽에 있던 오크 전사들은 감탄했지만, 오른쪽에 있던 오크 주술사들은 태현을 수상쩍게 여겼다.
“췩! 족장님. 저 마법은 흑마법사들이 쓰는 간단한 화살 마법인데, 어떻게 저런 위력이 나온단 말입니까! 저놈이 악마에게 영혼을 판 게 아니라면 속임수를 쓰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주인님. 저놈 상당히 예리합니다.
-그래. 나도 보고 있어.
-주인님이 악마에게 영혼을 판 것까지 눈치채다니…….
-……흑흑아. 오크들한테 바쳐지고 싶니?
흑흑이의 입을 다물게 하고, 태현은 오크 주술사들을 마주 보았다.
이런 말싸움이야말로 태현의 장기!
고급 화술 스킬을 가진 태현을 이길 오크 주술사들이 여기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마법 스킬이나 높겠지 화술 스킬까지 올렸겠는가!
“하하! 오크 주술사들의 수준이 이 정도인가!”
“췩! 뭐라고?”
“취익! 건방지다!”
“내가 못 할 말을 했나! 내 마법의 위력이 높다고 속임수라고 하다니. 그냥 너희들의 실력이 낮다고 인정하지 그러냐! 저 위대하시고 강력하신 대족장님의 부상을 치료한 게 누구지? 오크 주술사들이냐, 아니면 마법사냐!”
“취익……!”
태현의 말에 오크 주술사들은 분한 듯이 입을 다물었다.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말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오크 주술사들 내에서 당신의 평가가 내려갑니다.]
“췩, 주술사들은 마법사를 질투하는 일은 그만두도록. 명예롭지 않은 일이다, 취익.”
족장까지 태현의 편을 들어줬다.
그러나 오크 주술사들은 끈질겼다.
“취익, 족장님, 정체 모를 외부인은 하나면 족합니다. 췩, 저 마법사가 강력한 마법을 쓸 수 있다지만 그게 부족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
“췩! 맞습니다! 대족장님의 부상을 치료한 것처럼 부족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데리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주술사들의 항의에 족장은 내키지 않는 얼굴로 대답했다.
“췩, 저 마법의 위력만으로 충분하지 않나?”
“취익! 저 마법이 강하다고 해봤자 사악한 힘! 저 정도는 저희도 힘을 모으면 낼 수 있습니다, 췩!”
“췩! 부족에 도움이 되야 합니다!”
<오크들 사이에서 인정받기-줄락 마을 퀘스트>
줄락 마을의 오크 족장과 전사들은 당신의 사악함과 힘에 매료되었다.
그렇지만 현명한 오크 주술사들은 당신의 수상쩍음을 눈치채고 결사반대에 나섰다.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강력한 마법뿐만이 아닌, 오크 부족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보상:?, ???, 줄락 마을 내 공적치 포인트, 줄락 마을 내 평가 상승.
쓸 수 있는 마법의 가짓수가 적은 태현에게는 곤란한 퀘스트!
태현은 어떻게든 피해 보려고 애를 썼다.
“이 정도 마법이면 됐지. 뭘 더 바라는 거냐? 질투가 추하지 않나!”
“췩! 부족에 도움이 된다는 것만 보여주면 된다! 우리는 질투 안 한다!”
“취익! 우리는 부족 전사들을 강하게 만들고 무기에 주술을 걸 수 있다! 너도 그런 걸 보여줘라!”
힘으로 안 되자 오크 주술사들은 다른 부분에서 공격을 해오고 있었다.
망설이던 태현은 주술사들의 말을 듣고 멈칫했다.
‘잠깐, 부족 전사들을 강하게 만들고, 무기를 강하게 만들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생각해 보니 별로 어렵지 않았다.
태현이 마법 스킬은 부족해도 다른 스킬들은 많지 않은가!
“좋다! 보여주지!”
방법이 떠오르자 태현에게 여유가 돌아왔다.
그러자 이 상황에서 어떻게 더 뜯어먹어야 잘 뜯어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족장님. 제 마법을 펼치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준비를 마치기 위한 도움을 요청합니다!”
“췩! 혼자서 해야…….”
“취익! 시끄럽다. 주술사들! 너희들은 명예도 모르나!”
오크 주술사들이 방해하려고 했지만, 이것까지 봐줄 수는 없다고 봤는지 족장이 화를 냈다.
“췩. 마법사. 원하는 만큼 전사들을 데리고 가서 명령해도 좋다! 나도 그 결과를 보고 싶다, 취익!”
‘좋았어.’
태현은 올라가는 입가를 애써 참았다.
이제 오크 전사들을 이끌고, 마법에 쓸 재료를 모은다는 핑계로 우르크 지역을 돌아다니면 됐다.
그러는 와중에 다른 부족들 위치도 찾고 아키서스를 믿게 할 방법도 찾으면……!
‘완벽하군.’
* * *
“저놈 좋군.”
“췩, 너, 와라, 마법사, 도와라.”
“저놈도 좋은데?”
“취익, 너도 와라.”
태현이 손가락으로 오크 전사를 가리키면, 족장이 붙여준 오크 부관이 오크들을 불러냈다.
태현은 신이 나서 닥치는 대로 오크들을 불러냈다.
퀘스트 덕분에 공적치 포인트를 안 쓰고도 이렇게 오크들을 부려먹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쓸 수 있을 때 팍팍 쓴다!
“저놈도 좋아 보이는데?”
“……취익, 저 늙은이가?”
바닥에 드러누워서 쉬고 있는 비쩍 마른 오크 노인까지 지목하자, 오크 부관은 황당하다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늙을수록 강해지고 지혜로워지는 거야. 데리고 가자.”
“취익…… 마법사의 생각은 잘 모르겠다. 알겠다.”
-주인님. 주인님.
-너 한마디만 더 하면 저기 오크 가게에 연금술 재료로 팔아버린다.
-…….
-주인이여. 주인이여.
-왜, 용용아?
명백한 차별대우!
흑흑이는 속으로 태현을 욕했다.
-저 오크, 오크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