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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501화 (501/1,826)

§ 나는 될놈이다 501화

쑤닝은 근엄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안 웃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쑤닝은 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지? 장쓰안 그놈이 무슨 퀘스트를 깨는지 좀 궁금한데.”

“글쎄요? 물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놈이 얼마나 잘난 척을 하는지 아냐?”

“…….”

“연락만 하면 잘난 척에, 게다가 대회 때 봤지? 내가 경고를 했는데도 무시했다가 그 꼴 당했잖아. 멍청한 놈. 그러면 정신을 좀 차려야지 그러고 나서도…… 됐다. 내가 말을 말지.”

쑤닝은 질린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그래도 나름 인연이 있고, 태현이라는 적도 있어서 장쓰안을 도와주려고 했던 쑤닝이었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군…… 에랑스 왕국 근처는 아닌 거 같은데.”

“뭔가 되게 정글? 열대우림? 같은 곳이네요. 애들한테 물어볼까요? 아는 놈들 나올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게 좋겠군. ……잠깐만. 잠깐만.”

“……?”

“그 영상 다시 좀 돌려봐.”

무언가 위화감을 느낀 쑤닝은 다시 동영상을 돌려보았다.

장쓰안이 오크한테 맞고, 떨어져 나가고…….

“여기 신발 끝이 나오잖아. 영상에.”

“그런데요?”

“……이 신발 끝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쑤닝 님, 판온에 같은 신발이 몇 개인데 당연히 어디서 봤을 수밖에 없겠죠…… 게다가 비슷한 게 한둘이 아닌데요.”

“그게 아니라!”

쑤닝은 날카롭게 반응했다. 그 모습에 길드원은 입을 다물었다.

“이 신발…… 어디서 봤더라…… 그래! 그 김태현 놈의 노예인 케인 놈의 신발이다!”

“노예요?”

길드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케인이라면 그 유명한 한국의 랭커 아닌가.

김태현과 우정으로 유명했지, 딱히 노예 같아 보이지는…….

“김태현 놈한테는 노예 아니면 적밖에 없어! 그런 놈이라고.”

“아, 예.”

쑤닝이 태현 이야기를 할 때면 한 시간 정도는 욕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길드원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만요, 쑤닝 님. 이게 케인의 신발이면 지금 장쓰안과 케인…… 그러니까 김태현이 같이 행동한다는 겁니까? 그게 말이 되나요?”

“……확실히 그건 좀 말이 안 되긴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장쓰안 같은 자존심 덩어리가 그를 엿 먹인 태현과 같이 움직일 것 같지는 않았다.

“같은 신발 아닐까요, 역시?”

“……아니야! 느낌이 다르다고!”

‘다른 사람들이 쑤닝 님이 김태현만 관련되면 약간 사람이 맛이 간 것처럼 행동한다던데, 진짜였군.’

길드원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 쑤닝은 약간 맛이 간 것 같았다.

“좋아. 장쓰안에게 연락해 봐야지.”

-장쓰안.

-너도 날 놀리려고 연락한 거겠지! 끊어라, 이 개자식아!

뚝-

“……이 자식이?”

쑤닝은 발끈했다. 친절하게 안부를 물으려고 한 그의 선의를 이렇게 무시해?

그러나 장쓰안도 나름 사정이 있었다.

올라간 동영상 때문에 사방에서 귓속말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장쓰안 입장에서는 부끄러움으로 죽을 것 같은 상황!

오죽했으면 케인이 토닥거릴 정도였다.

-야, 내가 레드존이라는 길드를 운영하다가 망해봐서 아는데 쪽팔림이라는 게 지금은 심해도 오래 가질 않아요. 시간이 가면…….

진심 담긴 위로!

물론 쑤닝이 그런 상황을 알 리 없었다.

“쑤닝 님. 애들 중에 여기가 어딘지 알겠다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우르크 지역이라는데요.”

“뭐? 우르크 지역? 우리도 지금 거기 가 있는 길드원 좀 있지 않나?”

“랭커 앨콧이 거기서 퀘스트 깨고 있죠.”

“아, 그놈.”

“앨콧 싫어하십니까?”

암살자 랭커 앨콧. 랭커인 만큼 나름 유명한 플레이어였다.

“싫어하는 건 아니고, 오단 성 공방전 때 암살자라는 놈이 김태현 무섭다고 구석에만 처박혀 있었으니까 꼴사나워서 그렇지.”

“김태현 무서워서가 아니라 상황을 보고 움직이려고 하셨다는데요.”

“그걸 믿냐? 당연히 변명이지. 게다가 그놈은 판온 1 때도 김태현한테 당한 적 있는 놈이라고.”

“헉, 정말이십니까?”

“이건 어디 가서 퍼뜨리고 다니지 마. 앨콧이 이거 말하면 엄청 화낼 테니까. 어쨌든 앨콧이 거기 있다 이건가…… 연락해서 장쓰안 보이면 좀 말해달라고 해줘.”

“예.”

설마 장쓰안이 태현과 같이 다닐까? 싶었지만 쑤닝은 겸손해졌다.

세상에는 정말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는 법이다.

예를 들어 김태현이 장쓰안의 어떤 약점을 쥐고 사악하게 협박해서…….

‘아니, 그런 게 있나? 장쓰안이 바보도 아니고…….’

* * *

“야, 야. 기분 풀어.”

“…….”

“여기 올라가는 게 얼마나 명예인데. 남들은 여기 올라가고 싶어도 못 올라가.”

“비웃는 거잖나!!”

“아니야, 이건 비웃는 것처럼 보여도 다 애정 섞인 웃음이라니까? 네가 자연스럽게 넘어가면 다들 더 좋아할걸? 솔직히 장쓰안, 넌 다 좋은데 너무 차갑고 도도하고 다가가기 힘든 이미지가 있었어.”

“그, 그래? 그런가?”

“그래! 그게 네 약점이었던 거지. 원래 사람들은 너무 완벽하고 닿을 수 없는 사람보다는 적당히 빈틈 있고 인간적인 사람을 좋아하거든! 저기 김태현 봐라. 저렇게 성격이 더러운데도 인기는 많잖아.”

“그렇군. 확실히…….”

“그치? 그치? 이제 기분 풀고 같이 다니는 거다?”

“흥. 알겠다.”

장쓰안이 기분을 풀자 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본 태현은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케인이 저렇게 말을 잘했나?”

“서당 개도 삼 년이면…… 앗. 이건 말하지 말아주세요.”

“내가 뭐 하러 말하겠니. 자. 모두 계획은 다 기억하고 있겠지? 장쓰안. 너도 잘 기억하라고. 새 팻말 목에 걸기 싫으면.”

움찔!

장쓰안의 어깨가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그만큼 굴욕적이었던 것이다.

“선배님이 저 오크 부락에 가셔서 사악한 마법사인 척하고 접근하시는 동안, 저희는 여기서 은신하고 기다리겠습니다. 맞지요?”

“그래. 만약의 상황 생기면 나와서 돕고, 근데 어지간하면 내가 알아서 빠져나올 거야.”

여기가 오크 대족장의 본거지도 아니고, 태현이 위험할 일은 없어 보였다.

“그러면 간다!”

* * *

쾅쾅쾅!

태현은 자신 있게 오크 부락의 정문을 두드렸다.

정문이라고 해봤자 주변을 빙 둘러싼 조잡한 목책 사이의 문일 뿐이었다.

태현 정도의 노련한 플레이어는 이런 겉모습만 보고서 이 마을이 어느 정도의 마을일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만만하지.’

“취익, 어떤 놈이…… 누구냐!”

“췩! 침입자다! 공격을…….”

“잠깐!”

태현은 지팡이로 바닥을 내리치며 크게 외쳤다.

“……?”

“췩, 저 마법사가 우리보고 잠깐이라고 한 거냐? 우리가 왜 들어야 하는 거지?”

“나는 마법사다. 물론 오크 종족이 아니지. 그렇지만 나는 너희들에게 커다란 도움이 될 수 있다!”

“취익…… 도움?”

“췩, 무슨 도움? 두개골 깨는 데에 지팡이로 도와준다는 건가?”

오크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웬 마법사가 나타나서 도와준다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멍청한 놈들! 너희들한테도 주술사가 있을 텐데!”

“취익, 오크 주술사 있다. 우리 부락에는 없지만. 더 큰 부락에 있다.”

“췩, 오크 주술사 강하다. 엄청나게 큰 힘 부린다.”

“그래. 난 그런 오크 주술사보다 더 강한 마법사다.”

“취이익, 정말인가?”

“그럼. 그럼. 너희, 대족장 소식은 들었냐?”

“췩, 대족장님, 깨어나셨다. 웬 마법사가 도와줬다고 들었다.”

“그래. 위대한 대족장님을 깨운 마법사는 도움이 되냐, 안 되냐?”

“취익. 된다.”

“그러면 나도?”

“취이익…… 된다?”

“그래. 그거지. 문 열어.”

[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설득에 보너스를 받습니다.]

[칭호:흑마법사 학파의 계승자를 갖고 있습니다. 오크들이 당신을 대할 때 더욱 두려워합니다.]

[칭호:……]

[…….]

[악명 스탯이 엄청나게 높습니다! 오크들이 당신을 호의적으로 대합니다.]

이제까지 태현이 해왔던 모든 것들.

그런 것들이 종합되어서…….

“취익! 저 사악하고 오싹한 기운! 틀림없다! 내가 대족장님을 깨운 마법사를 봐서 안다! 비슷한 마법사다!”

“췩! 그렇다면 강할 게 틀림없다! 우리한테 도움이 된다!”

우르르 달려 나온 오크들은 태현을 둘러싸고 수군거리더니 환영의 뜻으로 태현을 격하게 껴안았다.

‘윽, 냄새가…….’

쓸데없이 생생한 판온 시스템!

그러는 와중에도 태현은 정보를 수집했다.

‘나랑 비슷하다고? 그러면 역시 흑마법사인가?’

세상에 공짜란 없었다.

웬 마법사가 갑자기 나타나서 오크 대족장을 치료하고 깨웠다면, 그건 그 마법사가 정말 선량해서라기보다는 수상한 꿍꿍이가 있어서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좋아. 좋아. 그러면 여기서 좀 머물러도 되겠지?”

환영의 포옹이 끝나고, 태현은 안심하고 말했다.

확실하게 설득 성공한 상황.

이제 이 조그만 부락을 거점으로 다른 퀘스트들을 진행할 수 있었다.

“취익, 안 된다!”

“……응? 잘못 말한 거지?”

“췩. 아니다. 너 같은 마법사는 더 큰 곳으로 보내야 한다! 더 많은 오크들을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

태현은 슬슬 깨닫기 시작했다.

뭔가 생각했던 것과 일이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

“아, 아니. 난 일단 여기서 너희들을 도우면서 소박한 행복을 느껴보고 싶은데…….”

“췩! 아니다! 큰 물고기는 큰 바다에서 뛰어놀아야 숨이 막히지 않는 법이다! 다른 오크들도 위대한 마법의 힘을 느껴야 한다!”

“너희들은 오크 주제에 뭐 이리 이타적이냐?”

“취익, 뭐라고?”

“아냐. 아무것도.”

[설득에 실패했습니다.]

설마 오크 상대로 설득에 실패할 줄이야!

보아하니 오크들은 단단히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태현 정도 되는 사악한 마법사라면 더 큰 부락에 보내야 한다고!

‘여기는 뭐 오크 부족들끼리 경쟁을 안 하나? 젠장…….’

사실 여기 있는 오크 부락은 원래 커다란 오크 부족의 일원이었고, 그래서 그 오크 부족에 태현을 데리고 가려고 하는 것이었지만…….

태현이 그걸 알 방법은 없었다.

* * *

“김태현이 너무 안 나오는데? 설마 무슨 일이 생겼나?”

“아무리 그래도 태현 님이 이런 곳에서…….”

“훗,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다. 내가 오크한테 맞아서 뒤로 넘어질 줄 누가 알았겠나?”

장쓰안이 은근슬쩍 끼어들어서 자기가 한 실수를 변호했지만 다들 무시했다.

“원래라면 바로 나와서 우리들을 들여보내 줘야 하는데…….”

설득에 성공하면 태현의 조수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부락 안으로 들여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태현이 나오질 않았다.

췩! 마법사! 마법사! 마법사!

“……?”

취익! 더 크게! 위대한! 마법사! 사악한! 마법사!

“????”

태현 일행은 눈을 깜박였다. 저 멀리 오크들의 부락에서 웬 거대하고 못생긴 가마가 나오고 있었다.

동물의 뼈로 만든 투박한 가마!

그리고 그 가마 위에는 태현이 시무룩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

-어떻게 된 거야?!

-일이 너무…… 잘 풀려가지고…….

태현은 입맛을 다시며 설명했다.

원래 이 부락 정도만으로 만족하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더 큰 부족에 가서 실력을 보여주게 되었다는 것!

-그, 그래도 되는 거 맞아? 위험하지 않나? 지금이라도 튀는 게…….

-에이, 이미 벌인 판. 얻은 기회를 버리는 것도 아깝지. 이렇게 된 이상 그 큰 부족에 가서 실력 보여주고 거기서 자리 잡는다.

어떻게 보면 잘된 일이었다.

작은 부락이 아닌, 큰 부족의 마을은 아이템도 많고 NPC도 많고 뭐든 더 많을 테니까.

거기를 본거지로 삼는다면 일은 더 쉬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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