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99화
김세형은 누군가한테 묻고 싶었다.
우리 어디 가는 거냐고.
왜 가는 거냐고.
그래서 김세형은 두리번거렸다. 물어볼 사람을 찾아.
태현은…… 아직 무서웠고.
정수혁은…….
‘물었다가는 김태현한테 곧바로 전달할 거 같아!’
악의가 없다는 게 더 무서웠다.
정수혁과 같이 지내면서 김세형은 몇 가지 정수혁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정수혁 같은 놈이 가장 무서운 놈이라는 것을!
케인은…….
‘앗. 케인이잖아? 물, 물어봐도 될까? 괜히 별로 안 친한데 말 걸었다가 화내는 거 아니야? 아니, 그래도 처음 본 사이도 아닌데…….’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케인은 앞으로 걸어가 버렸다.
‘그래. 묻지 말자. 왠지 표정도 엄청 안 좋아 보이는데.’
“……?”
그러던 사이 김세형은 처음 보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어? 누구지? 대회에서 본 것 같은데…….’
“뭘 그렇게 보는 거지?”
“네?”
“하긴, 나 같은 랭커를 만나는 일은 적겠지. 마음껏 봐도 좋다! 이런 허락은 쉽게 해주는 게 아니니 감사하도록.”
“아니, 뭔 미친…….”
김세형의 입에서 자동반사적으로 반응이 튀어나왔다.
그 말에 장쓰안은 인상을 썼다.
“이 내가 관대하게 베풀어줬는데도 건방지게 그게 무슨 태도야?”
“뭔 헛소리야. 그리고 랭커는 저기도 있잖아. 많이 봤거든?! 누굴 랭커도 못 본 촌놈으로 아냐!”
장쓰안과 김세형이 말다툼을 하자 앞에서 가던 태현이 고개를 돌렸다.
“야. 장쓰안. 너, 왜 우리 파티원한테 시비냐?”
“시비라니. 이 녀석이 주제를 모르고…….”
“아 됐고. 퀘스트 도우러 왔는데 방해할 거면 돌아가! 너 없어도 되니까.”
“…….”
칼같이 말을 자르고 장쓰안을 구박하는 태현!
장쓰안은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살면서 그한테 저렇게 구는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아니, 김태현. 상황을 내가 설명하잖…….”
“아 시끄럽고. 돌아갈 거야, 말 거야?”
“너, 너로서도 내 힘이 필요할 텐데? 그래서 날 부른 거 아닌가?”
장쓰안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태현의 말꼬리를 붙잡았다.
“딱히 네 힘이 필요했다기보다는…… 레벨 높고 HP 많고 앞에서 좀 두들겨 맞아도 아쉽지 않을 사람이 필요한 거였는데…… 뭐 너 없으면 아쉬운 대로 케인 시키지. 자꾸 시끄럽게 떠들 거면 집에 가라.”
“……!”
“……!”
숨겨진 진실.
이번에는 두 명이 충격을 받았다.
장쓰안과 케인이.
‘그, 그런 거였나?!’
‘아니, 잘못은 저놈이 했는데 왜 내가?!’
장쓰안은 휘청거렸다. 판온에서 상태 이상도 안 걸렸는데 휘청거리다니. 그만큼 충격을 받은 것이다.
“아, 아니. 김태현이 그럴 리가 없지…… 저건 분명 나하고 협상에서 우위에 서려고 하는 허세가 분명해.”
“죄송한데 그런 거 아니니까 그냥 조용히 퀘스트 끝내시고 제작법 받아가시는 게 좋을 거예요…….”
이다비가 안쓰럽다는 듯이 장쓰안에게 말하고 앞으로 가버렸다.
그리고 케인이 와서 장쓰안을 달래기 시작했다.
“야, 야. 그래도 다른 놈이랑 너하고 비교가 되겠냐? 네가 훨씬 더 대단하지.”
“그, 그렇지? 내가 더 대단하지?”
“그럼, 그럼~ 장쓰안 같은 랭커가 우리 파티에 또 있겠어? 김태현이 저렇게 보여도 네 능력을 얼마나 탐냈는데! 대회 때도 네 칭찬을 그렇게 했어! 저 녀석 어떻게 상대하냐고!”
“후, 후후…… 역시 그럴 줄 알았다.”
장쓰안은 벌떡 일어섰다. 그 모습에 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김세형도 마찬가지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 때문에 괜히 우는 줄 알았네.’
‘다행이군. 나 대신 총알받이 할 놈이 안 떠나서.’
케인은 들으면 성질을 내겠지만, 케인은 닮아가고 있었다.
태현의 모습을!
이다비는 태현에게 물었다.
“저 장쓰안이라는 사람, 생각보다 좀 많이 깨는데 괜찮나요?”
“뭐 랭커고 대회 나왔으니 실력은 확실한 사람이지.”
“근데 하는 게 좀…….”
“하는 짓으로 따지자면 케인도 좀 그렇잖아? 근데 할 일은 잘 하니까.”
이다비는 뒤를 쳐다보았다. 케인이 장쓰안 옆에서 장쓰안을 살살 달래주는 게 보였다.
‘뭐 하는 거야?’
“……그렇긴 하지만요!”
“원래 랭커 중에 이상한 놈들 많아. 판온 1때 랭커 중에 이상한 놈들 이야기해주면 놀랄걸? 저놈 정도면 무난한 편이지. 그냥 너무 잘나가서 자뻑에 취한 거 정도잖아.”
사실 판온 1때 랭커들이 들으면 ‘야 제일 이상한 게 너였어 이 또라이 XXX야!’라고 항의했을 테지만, 여기는 둘밖에 없었다.
“그렇게 들으니까 또 그렇긴 하네요.”
“그리고 이용해 먹기도 더 좋고.”
“그러네요!”
태현의 말을 들으니 장쓰안의 장점이 새로 보였다.
약간 사회생활 능력은 모자라지만 이용할 곳 많은 친구!
* * *
“저만 따라오시면 됩니다. 선배님.”
“오, 이렇게 험한 길로 가는 이유가 있나?”
지금 일행은 탈것도 다 집어넣고서 험준한 산의 좁은 길을 빙 돌아가고 있었다.
“예! 우르크 지역은 워낙 거대 야생 몬스터들이 많아서 하늘도 안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야생 드레이크 무리나 와이번 무리라도 습격해온다면 위험하지 않습니까. 선배님의 탈것인 그 드래곤들도 있는데 말입니다.”
-저런 착한 마법사가 있다니! 사디크적으로는 점수가 낮지만 뭘 좀 아는 마법사입니다. 그렇죠, 주인님. 마법의 조종자인 블랙 드래곤이 저런 하찮은 것들과 육탄전을 벌여서야…….
-주인이여, 만약 날게 되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내가 더 튼튼하니 날 타는 게 나을 것 같다.
동시에 말하는 흑흑이와 용용이.
확실히 흑흑이보다는 용용이가 더 물리 방어력 면에서 나았다. 그걸 알기에 둘 다 저렇게 말한 것이다.
-좋아. 만약의 상황이 되면 흑흑이를 타자.
-……네? 주인님? 헷갈리신 거죠?
-너 재수 없어.
-…….
태현은 흑흑이의 입을 다물게 한 다음 다시 정수혁의 말을 경청했다.
먼저 온 정수혁의 말이니, 천금 같은 가치가 있는 정보였다.
“그렇군. 여기는 하늘도 위험하다 이건가…….”
지금은 평화로워 보였지만, 하늘에 먹잇감이 나오는 순간 순식간에 몬스터들이 나타난다.
그런 곳도 판온에는 많았다. 태현은 금세 알아차렸다.
“그렇다는 건 이 길은 안전하다는 거겠군.”
“예. 선배님. 제가 공적치 포인트를 쌓고 친해진 인간 부족에게 안 비밀 길입니다. 이 근처 길에는 별다른 몬스터가 나오지 않습니다. 쭉 가면 골짜기가 나오는데, 그 골짜기에는 안전하게 휴식할 수 있는 마을이 있어서 쉴 수 있습니다.”
“아주 잘했다. 수혁아.”
“선배님!”
“…….”
서로 뜨거운 눈빛을 보내는 두 선후배를 본 김세형과 케인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그냥 앞으로 갈까?”
“그, 그러죠.”
갑자기 김세형은 케인과 친해진 기분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친해진 기분!
[험난한 우르크 지역의 샛길을 통과했습니다.]
[체력이 1 오릅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보너스 메시지창은 덤이었다.
타타탓-
“야, 장쓰안. 너 왜 그렇게 서둘러서 가냐? 같이 가야지.”
“이 길은 안전한 길, 이 길 끝에 있는 골짜기도 안전한 골짜기, 그렇다면 이런 곳에서 느긋하게 있고 싶은 생각은 없다. 먼저 앞장서서 가도록 하지.”
장쓰안은 싫다는 듯이 수풀과 진흙을 발로 털어냈다.
가상현실게임인 만큼, 이런 환경도 실제 그대로 느껴지는 것이다.
“괜찮냐?”
“괜찮겠지. 안전하다잖아.”
길도 안전하고, 장쓰안이 멍청한 짓을 할 수준의 플레이어도 아니고, 그리고 무엇보다 습격을 당해서 죽어도…….
‘뭐 내 일 아니니까.’
태현이 그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장쓰안은 앞장서서 샛길을 나아갔다.
“취이익!”
“응? 오크군.”
그리고 장쓰안을 맞이한 건 늑대를 탄 오크 전사들이었다.
장쓰안은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말했다.
“오크 마을이라니. 냄새야 좀 나겠지만 어쩔 수 없지. 비키라고. 안으로 들어가서 좀 쉴 테니…….”
“취익, 죽어라, 인간.”
퍼어억!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기습을 당했습니다! 상태 이상 <기절>에 빠집니다.]
[오소카 독에 걸렸습니다. 저항에 성공합니다.]
[오크들의 사기가…….]
이것저것 뜨는 메시지창.
그러나 장쓰안은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뒤로 넘어져서 구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격!
‘이 오크들이 감히……!’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다행히 그가 혼자 먼저 와서 망정이지…….
“…….”
“…….”
“…….”
일어선 장쓰안은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뒤늦게 온 일행이 빤히 장쓰안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 지금 오크한테 맞고서 넘어진 거 맞지? 그치?”
“야. 쉿. 장쓰안이 얼마나 부끄러워하겠냐.”
“그런 배려를 할 거면 목소리를 줄여야 하지 않나요?”
“괜찮아. 지금 꼴 보니까 몇 대 맞은 것 같은데 잘 들리지도 않을 거야.”
“…….”
장쓰안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뜨거운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언제나 여유 있게, 멋지게 적을 쓰러뜨리던 그와는 거리가 먼 감정!
“취익! 취익! 저 인간 놈 약해 빠졌다! 끝내 버려라!”
“저 인간 놈 동료 왔다! 같이 잡자 취익!”
오크들은 장쓰안의 마음도 모르고 도발했다.
“크아아아아!”
분노한 장쓰안은 검을 뽑고 덤벼들었다.
“취, 취익! 인간 놈, 기세 무섭다!”
“췩! 당황하지 마라!”
* * *
“후욱, 후욱…….”
장쓰안은 과연 랭커다웠다. 오크들한테 기습을 당해 한 번 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도움 하나 받지 않고 오크들을 쓸어버렸다.
“봤냐? 봤지? 어? 봤겠지?!”
장쓰안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뒤의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러나 ‘와! 대단해!’ 같은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쟤 말투가 어째 케인 말투 같은데? 폼 잡던 말투 어디 갔어?
-기분 탓이겠지. 이해해 줘라. 좀 민망할 테니까.
수군거리며 떠드는 일행!
자존심을 회복하지 못한 장쓰안은 울컥해서 정수혁을 가리키며 따졌다.
“애초에 너! 네가 제대로 된 정보를 가지고 오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다! 이 길에는 적이 없다고 했잖아!”
“어디서 수혁이 탓이야? 몬스터 안 나온댔지 오크 안 나온댔냐?”
“아, 아니. 선배님. 제 잘못인 것 같습니…….”
“쉿! 넌 잘못 없다!”
-오크가 몬스터 아닙니까?
-쉿. 너 그렇게 떠들다가 너도 몹으로 취급받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난 직접 당해봤다.
-……!
“그리고 판온 상황이야 언제나 시시각각 바뀌는 건데 그걸 알고 대비해야지. 애초에 오크가 눈 부라리고 있는데 거기에다가 손 흔들면서 다가간 놈이 바보 아니냐! 너 판온 하루 이틀 해?”
“뭐, 뭐라고?!”
가재는 게 편이라고, 태현은 정수혁의 손을 들어줬다.
그리고 사실 논리도 맞았다. 초보자면 모를까 장쓰안 정도 되는 랭커가 ‘하하 상대 오크가 NPC인 줄 알아서 기습당했네~’라고 말한다면 보통 게시판에 올라갔다.
‘이번 주의 가장 웃긴 판온 순간들’ 같은 제목으로!
“크윽…… 크으윽!”
할 말이 없어진 장쓰안은 분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반드시 저놈들을 실력으로 무릎 꿇리고 말겠다! 장쓰안 님 대단해요가 입에서 나오게 해주고야 말겠어!’
어느새 원래 목표를 잊어버린 장쓰안이었다.
“이건…… 될 거 같아요!”
“뭐가 될 거 같아?”
이다비가 중얼거리자 태현이 궁금해져서 물었다.
“방금 찍었던 영상, <이번 주의 가장 웃긴 판온 순간들>에 제보하면 올라갈 수 있을 거 같아요. 거기 상금 나오거든요.”
“아주 좋은 생각이다. 꼭 올려.”
태현은 친절하게 이다비를 응원해줬다.
파티원들의 활약은 널리 널리 알려야 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