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96화
“이 인간이 감히?”
장쓰안의 눈매가 사납게 변했다.
무시하던 촌동네 NPC가 이렇게 발목을 잡으니, 안 그래도 치밀었던 짜증이 폭발하려고 했다.
장쓰안에게 타이럼은 별로 강하지 않은 왕국에 있는 초보자들의 도시나 마찬가지였던 것!
“안 그래도 짜증이 나는데 감히…….”
장쓰안은 구렌달을 몇 대 패주고 가려고 검을 들었다. 그 순간 화살이 날아왔다.
퍽!
[저항에 실패합니다.]
[사베 독이 묻은 화살을 맞았습니다. 상태 이상 <마비>에 빠집니다.]
‘……!’
장쓰안은 놀랐다. 생각했던 것보다 공격이 매서웠던 것이다.
‘뭐야? 레벨이 몇인 거지?’
“저놈이다!”
“잡아라!”
“쳇!”
장쓰안은 구렌달을 패려던 것을 멈추고 재빨리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이미 타이럼 사냥꾼들은 곳곳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놓치지 마!”
“포위망을 펼쳐라!”
‘흥. 그냥 빠져나가면 그만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장쓰안은 탈것을 꺼냈다. 눈부신 갈기와 털을 가진 말이 나왔다.
그리고…….
퍽! 퍼퍼퍼퍽!
-히히히힝!
구슬픈 비명과 함께 말이 쓰러졌다. 타이럼 사냥꾼들이 말을 집중적으로 사격해서 쓰러뜨린 것이다.
“이, 이, 이것들이……!”
그제야 장쓰안은 그가 타이럼 사냥꾼들을 너무 얕봤다는 걸 깨달았다.
공격력도 그렇고, 레벨도 그렇고, 싸우는 방식까지. 절대 약한 NPC들이 아니었다.
이런 곳일 줄이야!
“김태현……!!”
* * *
“그런데…….”
“……?”
“결국 네 녀석은 어디 가기로 마음먹은 거냐?”
유 회장은 은근슬쩍 물었다. 태현이 어느 게임단에 들어갔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지금 업계에서는 소문만 무성했다.
-김태현이 뉴욕 라이온즈의 파격적인 제안을 거절했다더라!
-그보다 더 좋은 제안을 받았다더라!
-아니, 그보다 더 좋은 제안을 받을 수가 있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아마 김태현은 애국심 때문에 국내 게임단을 고른 게 분명하다!
등등.
이런 소문들만 돌자 유 회장도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김태현은 과연 어디로 들어갈 것일까?!
‘유성그룹의 게임단은 아직 준비 단계이기는 하지만…….’
유 회장은 그렇게 생각하며 태현을 힐끗 쳐다보았다.
준비 단계긴 하지만 유성그룹의 게임단은 국내 다른 게임단보다 훨씬 더 강력한 지원을 업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룹 회장이 이렇게 본격적으로 나서서 지원하는 게임단은 없는 것!
만약 태현이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면, 은근슬쩍 조언해 주는 척하면서 유성그룹의 게임단에 넣는 것도…….
“네? 별생각 없는데요.”
“뭐? 뭐라고?”
유 회장은 귀를 의심했다. 별생각이 없다고?
“아니, 별생각이 없으면 어떻게 하려고! 이 길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진지하게 마주 보고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워야지!”
유 회장의 뜨거운 조언에, 태현은 수상하다는 눈빛으로 유 회장을 쳐다보았다.
“……어르신 왜 이리 관심이 많으시죠? 뭐 게임단이라도 차리실 겁니까?”
“컥, 커헉. 콜록.”
태현의 말에 유 회장은 사레가 들었다. 콜록대는 유 회장을 보며 태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농담한 거였는데 그렇게 반응하실 것까지야…….”
“그딴 농담은 하지 마!”
“어쨌든 꼭 게임단에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중요한 건 자기 실력이지.”
“…….”
말이야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었지만, 태현의 말에는 커다란 허점이 있었다.
“네 녀석 말이 맞긴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지.”
“……?”
“게임단에 안 들어가면 대회 출전은 어떻게 할 거냐? 출전 자격 자체를 얻기가 힘들 텐데.”
“아. 확실히 그건 그렇군요.”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열릴 수많은 판온 대회들.
이런 대회들에 초대받기 위해서는 그럴듯한 이름이 필요했다.
보통 유명 프로게임단들은 이런 이름값을 갖고 있었다.
이제까지 쌓아온 실적과 거기 들어가 있는 선수들이 실력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그런 게임단에 들어가지 못한 아마추어 팀들은 치열한 예선을 뚫어야 하거나, 아예 참가가 불가능할 수도 있었다.
‘확실히 내 이름만으로는 좀 힘들려나? 내가 대회 우승을 하긴 했지만 우승 멤버에서 대부분이 다 바뀌었을 테니…….’
“그래, 잘 알아들었군. 아무리 네가 독불장군처럼 하고 싶다고 해도 세상에는 안 되는 게 있는 법이야. 그런 의미로 내가 한 가지 좋은 걸 알려주려고 하는데…….”
“흠…… 제가 게임단을 하나 만들면 되겠네요.”
“……뭐???”
유 회장은 슬슬 보청기를 해야 하나 싶었다. 오늘 몇 번이나 헛소리를 듣는 거지?
“정식으로 프로게임단을 만들면 대회 출전하기도 훨씬 더 수월할 거 아닙니까.”
“이, 이놈이…… 프로게임단 하나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아느냐! 무슨 애들 장난인 줄 아는 건 아니겠지?”
“유성그룹 프로게임단을 생각하니 어르신 말씀이 정말 진실 되게 들리긴 하네요.”
“…….”
유 회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니, 이놈이?
“……유, 유성그룹 프로게임단은 지금 이야기랑은 상관이 없잖아……!”
아픈 곳을 찔린 유 회장은 말을 더듬었다. 안 좋은 성적만을 거둬서 해체된 (구) 유성그룹의 프로게임단!
“근데 그렇게 힘든가요?”
“당연하지. 그걸 말이라고 하고 있냐?”
“어르신도 딱히 직접 하시진 않고 그냥 사람 불러서 시키고 그러셨을 것 같은데…….”
“…….”
정확하게 맞았다. 아니, 사실 그게 당연한 거였다.
그룹 회장이 계열사 밑의 프로게임단 하나를 일일이 확인할 리는 없지 않은가.
“내가 직접 안 했어도 얼마나 힘든지는 안다.”
“호, 주로 어떤 게 힘들죠?”
“운영할 사람도 사람이지만 비용도 그렇고…… 절대로 개인이 운영할 수준은 아니야!”
“근데 그건 유성그룹 규모의 프로게임단이니까 사람 많이 들어가고 비용 많이 들어간 거지, 제가 차리면 소규모로 돌아갈 텐데 별로 안 들어가지 않나요? 적게 잡으면 대충 1년에 10억, 넉넉하게 잡아도 20~30억이면 충분하지 않나?”
명문 프로게임단은 그만큼 유지하는 비용도 어마어마했다. 각종 소속 건물들부터 시작해서 직원들까지.
그에 비해 태현이 차리게 된다면 정말 태현이나 몇몇 선수들 위주로 돌아가는 소규모 프로게임단이 될 게 분명했다.
지금도 판온은 벌써 우후죽순으로 작은 프로게임단들이 나오고 있었다.
그중 대부분은 자금 부족과 인지도 부족으로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지만, 태현은 상황이 달랐다.
‘그 정도야 충분히 쓸 수 있지.’
‘이, 이놈 진짜 할 생각이야……!’
유 회장은 경악했다.
태현이 다른 게임단에 제안을 받아서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만, 설마 자기가 직접 차려서 운영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전자일 경우에는 더 좋은 제안으로 빼 올 수 있었지만, 후자일 경우에는 그게 불가능하지 않은가!
“저…… 두 분? 슬슬 진행을 하고 싶은데요…….”
“아.”
그제야 유 회장과 태현은 고개를 들었다. 시상식 자리에서 둘이 계속 고개를 숙이고 소곤거렸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뭔 이야기를 저렇게 하나’ 싶은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부, 부러운 자식……!’
그리고 도동수는 태현을 질투의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
* * *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했어?”
“아, 회장님께서 게임단 들어가기 싫으면 게임단을 만들어보라던데?”
유 회장이 들었다면 ‘내가 언제 그런 소리를 했어!’라고 따졌겠지만, 이 자리에는 유 회장이 없었다.
태현은 자기 좋은 대로 대화를 해석했다. 그 말에 이세연은 놀란 눈빛이었다.
직접 차리다니.
“직접 차리게?”
“못 할 것도 없지. 조금 귀찮기는 하겠지만…… 왜, 무리일 거 같아?”
“아니. 돈만 되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너 돈은 있지?”
“있지.”
“선수는?”
“음, 뭐 그건 지금부터 생각해 봐야지.”
그러면서 태현은 케인을 슬쩍 쳐다보았다. 구하기 쉬운 선수 한 명이 보였다.
“무슨 생각하는지 뻔히 보인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됐고, 대회는? 무슨 대회를 노릴 거야?”
“응?”
“……‘응?’이라니. 너 설마…… 무슨 대회를 노릴지 생각도 안 한 건 아니지?”
“어허, 프로 선수라면 무릇 나가는 모든 대회에 최선을 다해야…….”
“그런 일반론은 됐고! 전략적으로!”
“뭔 대회가 있는지 알고 그런 전략을 정해?”
“……너 메일 안 받았어?”
이세연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물었다.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한테는 판온 회사 측에서 보낸 편지가 왔다.
앞으로의 대회 구상과 계획이 길게 적혀 있는 편지!
“아. 그거. 물론 받았지.”
“안 받았구나. 거기 보면 구상하고 있는 대회 몇 개 나왔잖아.”
이세연은 손가락을 접으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단 기존 대회로 흥행이 보장된, 5:5 투기장 대회.
거기에 전통적으로 판온에서 인기 있는 1:1 투기장 대회.
투기장 대회와는 성격이 다른, 던전 공략 대회.
“다들 이런 거 보면서 뭘 노릴지 머리 굴리고 있는데 몰랐어?”
“알고 있었다니까? 그런데 던전 공략 대회는 뭐지?
“말이라도 못하면…… 말 그대로야. 던전 공략하는 거. 두 팀이 들어가서 누가 먼저 공략하느냐.”
“아. 그런 건가.”
판온에서 투기장 잘하는 사람만 유명한 건 아니었다.
던전 공략도 투기장만큼, 아니, 어떻게 보면 투기장보다 더 인기가 많은 컨텐츠였다.
지금도 판온에서는 하루에 수백 개가 넘는 던전들이 나오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 던전을 깨기 위해 파티를 만들었다.
그러다 보면 몇몇 던전은 ‘현재 플레이어 실력으로는 클리어 불가능!’이라는 말이 나오기 마련.
이렇게 악명이 쌓인 던전은 어느 파티가 먼저 클리어하느냐가 매우 중요해졌다.
첫 번째로 클리어하는 순간 보상과 명성을 차지하는 것!
판온 1 때도 이렇게 던전을 전문적으로 공략하는 팀은 많았다. 제카스 같은 탐험가 직업들은 이런 부분에서 활약하기 좋았다.
“너도 판온 1때 던전 공략 많이 했잖아?”
“그렇긴 한데, 난 던전을 공략하기보다는 던전에 숨어서 던전을 공략하던 파티를 공략했지.”
“……어쨌든 대충 이렇다고.”
이세연은 태현의 말은 무시하고 자기 할 말만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은 알겠어?”
“다 도전해도 될 거 같은데?”
“자신감 넘치네. 하고 싶으면 해봐. 네 자유지?”
이세연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넌 뭘 노리고 있는데?”
“난 물론 1:1 대회를 기대하고 있지.”
이세연은 그렇게 말하며 태현을 쳐다보았다. 왠지 모르게 살기 넘치는 눈빛이었다.
“왜 날 노려보는 것 같지?”
“기분 탓일 거야.”
* * *
즐거운 회식 시간.
대회에서 우승하고, 좋은 목적으로 기부도 했고…….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 여기 계시는 거야?”
케인은 태현에게 속삭이듯이 물었다. 옆에 김태산이 우중충한 얼굴로 앉아 있었던 것이다.
이다비가 변호하듯이 대답했다.
“그래도 그냥 보낼 수는 없잖아요.”
“아니, 그냥 보내도 됐는데.”
태현의 말에 김태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 아하하…… 태현 님은 농담도 참…….”
“농담 아닌…… 읍읍!”
“고기 잘 구워졌네요! 좀 드세요!”
이다비는 잽싸게 태현의 입에 고기를 집어넣었다. 안 그래도 싸늘한 분위기를 태현이 더 싸늘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아까 이세연 씨하고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신 거예요? 회장님하고도 이야기를 많이 하시던데…….”
“읍읍 읍읍읍.”
“……다 드시고 이야기하세요.”
태현은 고기를 씹어 삼킨 후 입을 열었다.
“아, 회장님이 게임단 만들 생각 없냐던데.”
“네?!”
“뭐?!”
“뭐라고?!”
김태산이 반응하자, 다른 셋은 빤히 김태산을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김태산은 어색하게 눈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