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95화
보고 있던 선수들은 경악했다.
저 소형 요새 알박기는 날빌 중의 날빌이었다.
실패할 경우 매우 불리해지는 만큼, 어지간해서는 쓰지 않았다.
실제로 프로들 사이에서 이런 날빌을 쓰는 건 ‘무례하다’는 말이 나오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으니까.
상대를 얕잡아본 게 아니라면 거의 쓰지 않는다!
그러나 태현은 당당하게 쓰고 있었다.
그것도 자기 아버지 상대로!
‘저거 예전에 선수 한 명이 대회에서 썼다가 영원히 화해 못 한 걸로 아는데.’
‘나도 친구한테 저거 한 번 썼다가 그 친구랑 멱살 잡고 싸웠었어.’
‘김태현 저놈…… 정말 대단하다!’
여러 의미로 대단한 태현!
김태산은 아직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공격 유닛을 뽑는 건물은 안 짓고 앞마당으로 내려가 자원을 모으는 데에 집중하고 있는 상태.
보고 있던 선수들은 탄성을 내뱉으며 눈을 감았다.
아, 망했구나!
“……?”
김태산은 그제야 오싹함을 느꼈다.
“!!”
멀리서 달려오는 유닛들!
김태산은 순간 눈을 의심했다. 봤음에도 불구하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저, 저건…….
‘이, 이놈 자식이…… 결승전에서 이런 걸 써?!’
물론 김태산도 날빌을 쓰긴 썼지만 설마 모든 사람들이 다 보고 있는 결승전에서 태현이 이런 날빌을 쓸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게다가 이 소형 요새 알박기는 날빌 중에서 가장 날로 먹는 날빌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 걸 쓰다니!
타타타탁-
김태산은 재빨리 막으려고 들었다. 일꾼들이 우르르 달려 나와 태현의 유닛을 견제하려고 들었지만, 컨트롤에서는 태현이 김태산을 압도했다.
게다가 인간 진영의 일꾼은 버그 진영의 일꾼보다 더 튼튼했다.
김태산이 어, 어 하는 사이 태현은 빠르게 전략을 완성시켜 나갔다.
요새가 완성되고, 궁수 유닛들이 안으로 들어가자, 김태산의 유닛이 터져나갔다.
“…….”
“아직 안 끝났어! 앞마당은 포기하면 돼! 손해가 크지만 뒤로 물러서서 확장하면 승산이…….”
“?????”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던 선수들은 깜짝 놀랐다.
다른 선수가 말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유 회장이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회, 회장님이 왜?’
‘뭐야? 뭐야?’
‘판타지 크래프트 좋아하셨나?’
유 회장은 비통하게 외쳤다. 김태산이 포기하고 경기를 던진 것이다.
“안 돼……!”
* * *
김태산의 뺨이 딱딱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를 악문 것이다.
굴욕적인 패배!
정정당당하게 싸운 것도 아니라, 시작하자마자 5분 만에 날빌에 당해서 졌으니 김태산 성격에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후우…….”
김태산은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아직 첫 경기를 했을 뿐.
남은 경기를 잘 치르면 된다. 이렇게 화를 내게 만드는 것도 태현의 전략일 가능성이 컸다.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어…….’
과연 태현은 두 번째 경기에서는 어떻게 나올 것인가?
첫 번째 경기에 쓴 날빌을 다시 쓰지는 않을 테고…….
‘그렇다면 다시 한번 자원을 모으는 전략으로 가자. 물량을 모아서…….’
* * *
선수들은 차마 화면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김태산과 태현의 화면을 둘 다 볼 수 있었기에,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안, 안 돼……!’
‘김태산 씨! 한 번 더 가고 있어요……!’
1경기 때와 똑같은 전략으로 덤비는 태현!
그걸 뒤늦게 깨달은 김태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 이, 이, 자식이 진짜……!!’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두 번째 경기에서도 이걸 들고 올 줄은 몰랐다!
‘저거 사람 맞냐?’
‘김태현 아직 독립 안 했다고 들었는데, 집에 가서 어떻게 얼굴 맞대려고 저러는 거지?’
수군거리는 선수들의 말은 무시하고, 태현은 냉정하고 침착하게 움직였다.
1경기 때와 똑같은 패배!
-……어…… 그러니까 말이죠…… 이게 참…….
1경기 때는 나름 말을 하던 해설가들도 뭐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3경기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3경기가 시작되었다.
“…….”
“…….”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진 홀!
태현만 여유로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독한 놈!’
‘3경기도 똑같은 전략으로 나오다니……!’
3경기도 태현은 똑같은 전략으로 나왔다.
이쯤 되자 김태산도 최대한 수비에 나섰지만, 태현은 교묘한 컨트롤로 김태산을 제압하고 요새를 알박기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
-김, 김태현 선수가 김태산 선수를 꺾었습니다. 3:0! 이야, 대단한데요?
-김태산 선수도 졌지만 나쁜 기분은 아닐 겁니다. 무엇보다 아들이잖습니까. 하하하…….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해설가들은 최대한 입을 놀렸다.
벌떡!
김태산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
“???”
자리에서 일어선 김태산을 보고 사람들은 ‘악수나 포옹이라도 하려고 그러나?’라고 생각했다.
터벅터벅-
태현을 향해 걸어가는 김태산.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달리, 태현은 바로 상황을 깨달았다.
후다닥!
몸을 돌려 뒤로 도망치는 태현!
“너, 이 자식 거기 서!!”
“?!?!!?”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지금 뭐 하는 거지?
김태산은 눈이 뒤집혀서 태현을 쫓아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태현은 거리를 벌린 뒤였다.
“야! 거기 서!”
“아버지 같으면 서겠습니까!”
순식간에 홀 밖으로 사라지는 둘!
“…….”
“…….”
남은 사람들 사이에 침묵이 맴돌았다. 방금 그들이 뭘 본 거지?
-하, 하하…….
그러나 해설가는 프로였다. 프로 중의 프로!
이런 싸늘한 분위기에서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두 분이 개그를 준비해 오셨군요!
-네, 네! 재미있는 개그였습니다.
‘개그?’
‘아니, 아무리 봐도 진심이었는데…….’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믿기지는 않았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여줬다.
상황은 수습해야 하니까!
짝짝짝짝-
다들 박수를 쳤다.
“후…….”
유 회장은 깊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절망이 섞인 한숨이었다.
“회장님…….”
“됐네. 없던 셈 치지.”
이렇게 판을 벌였는데도 얻은 게 없다니!
결국 이 대회에서 이득을 본 건 태현밖에 없었다.
상금은 상금대로 받고, 기부했다는 명예와, 오토바이는 다시 본인이 가져가게 될 테니…….
‘이 김씨 부자들…… 정말…….’
유 회장은 만약 다음에 대회를 열게 된다면, 그냥 부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 *
앞으로 나가서 유 회장과 악수하고 상금을 받는 태현. 태현은 왠지 모르게 땀에 젖어 있었다.
“헉, 헉…….”
그리고 그건 김태산도 마찬가지였다.
진심으로 상대를 잡기 위해, 상대를 피하기 위해 뛰어다녔던 둘!
“이, 이놈 자식…… 좀 적당히 잡혀줄 것이지…….”
“…….”
케인과 이다비는 슬슬 김태산과 거리를 벌렸다. 아무리 봐도 불똥이 곧 튀길 것 같았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태현은 사진을 찍었다. 기사에 유성 그룹 자선대회를 알리기 위한 사진들이었다.
“그래서 만족하냐? 응?”
“오토바이 안 만들어도 되니 그건 좀 편하네요. 만들기 귀찮았는데.”
“내가 다시는 네놈을 대회에 부르나 봐라.”
“에이, 너무 그러지 마세요. 대회에 나온 이상 최선을 다해야죠.”
유 회장과 태현은 입 모양을 움직이지 않고 작은 목소리로 떠들었다.
“어차피 다른 대회에 가서도 잘 할 놈이 내가 연 대회에 와서 깽판을 놓다니…….”
유 회장의 말에 태현은 살짝 미안한 감정을 느꼈다.
“에이, 그래도 대회는 흥행했잖습니까. 분위기도 좋아요. 보세요.”
“흥.”
유 회장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지만, 태현의 말에는 반박할 수 없었다.
실제로 대회는 제대로 흥행한 것이다.
다른 직원들의 말을 들어보니, 보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울 정도였다.
이 정도 관심을 받는 자선대회는 드물었다.
자선대회의 목적을 봤을 때 대회는 분명 성공적이었다.
유 회장이 원하는 걸 못 얻어서 그렇지!
태현은 유 회장의 태도를 보고 확신했다.
‘역시 오토바이를 얻고 싶으셨군…….’
태현 정도 되는 사람이 이런 걸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처음에는 ‘설마 회장님이 이거 때문에 이렇게 일을 벌였겠어?’ 싶었는데, 점점 확신이 갔다.
그리고 돈 많은 사람이 정말 쓸데없는 걸 위해 돈을 낭비하는 건 많이 봐왔었다.
주로 아버지에게서!
‘이 정도 대회는 어르신한테는 푼돈일 테니 뭐…….’
사실 귀찮기는 했지만 오토바이 정도는 다시 만들 수 있었다. 유 회장이 저렇게 원하는데 뭐 그리 어렵겠는가.
그러나 태현은 그냥 줄 생각이 없었다.
‘어쨌든 이걸로 잘 써먹을 수 있겠군!’
이제 유 회장은 판온에서 초보가 아닌, 나름 막대한 자금과 인맥을 가진 플레이어였다.
얼마든지 도움을 뜯어낼…… 아니, 빌릴 수 있었다.
이때 태현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다른 곳에 또 다른 호구가 한 명 더 있다는 것을.
* * *
“구렌달, 토끼를 잡아 왔다. 이제 말하도록!”
“자네 말투가 영 불쾌하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말해주도록 하지.”
타이럼 시의 대장장이, 구렌달은 짜증 섞인 얼굴로 장쓰안을 쳐다보았다.
NPC들의 인공지능은 정교했다.
플레이어가 공손하게 나오면 보너스가 붙고, 건방지게 나오면 페널티가 붙었다.
물론 장쓰안도 그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장쓰안은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
퀘스트 때문에 타이럼 시 같은 곳까지 온 게 이미 충분히 짜증 났던 것이다.
‘이 내가 이런 곳까지 와야 하다니!’
게다가 구렌달한테 말을 걸었더니 ‘나한테 질문하려면 저 밖의 사냥꾼들한테 인정받고 오라고’ 하고 거절했다.
사냥꾼들한테 갔더니 ‘우리한테 인정받고 싶으면 토끼 잡고 오라고’라는 말을 들었다.
사람을 빙빙 돌리는 퀘스트!
짜증 났지만 장쓰안은 참고 다 해냈다.
이제 대답의 시간!
“좋아. 뭘 물어보고 싶은가?”
“<차가운 울음의 검>의 제작법을 원한다!”
“후후…… <차가운 울음의 검>. 그 검을 찾으러 온 건가…….”
“!”
구렌달의 태도가 뭔가 아는 것처럼 보이자, 장쓰안은 속으로 기뻐했다.
그래도 그 검은 바위단의 놈이 거짓말하지는 않았구나!
“그렇지만 한발 늦었군.”
“……뭐?”
“그 제작법은 내 우수한 제자한테 넘겼다. 후후. 내 제자가 얼마나 대단한 줄 아나? 대륙의 위기를 몇 번이나 막아낸…….”
“……그런 대장장이 NPC가 있나?”
“대장장이는 아니지. 김태현 백작이거든.”
“……뭐??”
장쓰안은 귀를 의심했다. 잘못 들었나?
“김태현 백작, 모르나? 쯔쯔. 태도만 건방진 게 아니라 머리도 나쁜…….”
“닥쳐, 이 냄새 나는 인간아! 김태현을 모를 리가 있나! 그놈이 왜 네 제자야!”
“나한테 배웠으니 제자지.”
“그, 그놈이 제작법을 갖고 있다고?”
“그래.”
“…….”
장쓰안은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끝이란 말인가?
절대 그럴 수는 없다!
“제작법을 기억하고 있거나 남은 건 없나?”
당황한 장쓰안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러나 구렌달은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기억해 내! 기억해 내라고!”
장쓰안은 울컥해서 검에 손을 가져갔다.
[구렌달을 협박합니다.]
[초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페널티를 받습니다.]
[구렌달이 협박에 저항해냅니다.]
그러나 협박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장쓰안은 화술 스킬과 거리가 먼 캐릭터였다.
“감히 이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
구렌달이 재빨리 옆에 걸린 뿔나팔을 들고 불기 시작했다.
뿌우우우-
[구렌달이 타이럼 사냥꾼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합니다.]
[도망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