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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494화 (494/1,826)

§ 나는 될놈이다 494화

‘저기 갔다가는 분명 뒤집어쓴다!’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케인은 재빨리 주변 테이블에 빈자리를 찾아 냉큼 앉았다.

“…….”

“…….”

그리고 나서야 케인은 깨달았다. 테이블에 누가 앉아 있는지.

도동수였다.

“…….”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침묵! 서로가 서로의 눈을 쳐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커험, 커험…… 잘, 잘 지냈냐?”

케인은 말을 꺼내고서 후회했다. 이 무슨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애인 같은 대사!

도동수도 어이없어하는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도동수는 일단 대답을 했다.

그도 이 어색한 침묵이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다.

“잘…… 잘 지냈지.”

“그, 그래.”

그리고 다시 침묵.

서로 딱히 할 이야기가 없었던 것이다.

‘뭐, 할 이야기가 있나? 판온 이야기라도 할까? 아니다. 판온 이야기하면 김태현 나올 텐데 별로 좋은 생각 같지는 않고…….’

‘이 자식은 왜 여기 앉은 거야? 김태현이랑 같은 팀인 놈이 너무 뻔뻔한 거 아냐? 아오, 꺼지라고 하고 싶은데 눈치 보여서 꺼지라고 말도 못 하겠고…….’

도동수는 입맛을 다셨다.

오늘 처음 본 회장님이 ‘인생 똑바로 살아!’라고 훈계를 한 것이 꽤나 충격이었던 것이다.

태현과 같은 팀에서 뛸 때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그것 외에는 나름 괜찮게 살았다고 생각한 도동수였다.

게다가 회장님은 태현과 불화로 훈계를 한 게 아니라, 다른 이유로 훈계를 했다.

그거 때문에 괜히 더 눈치가 보였다. 케인한테 꺼지라고 했다가 소란이라도 일어난다면, 회장님이 또 ‘내가 착하게 살라고 말한 지 한 시간도 안 됐는데…… 정말 실망이군!’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유성그룹의 회장 아닌가.

“아, 넌 혹시 게임단에서 연락 왔냐?”

“……왔는데.”

“뭐? 진짜?!”

케인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케인이 놀란 이유는 하나였다.

케인에게도 연락이 안 왔는데(물론 오해였지만), 도동수한테는 오다니!

그저 순수한 놀라움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도동수한테는 다른 의미로 들렸다.

-너처럼 대회에서 트롤링한 놈을 초대한 게임단도 있냐?

“왜, 나는 게임단 초대를 받으면 안 되냐?”

“아, 아니. 그냥 신기해서…….”

“난 중국 쪽 게임단 초대받았다.”

“아. 그렇게 된 거구나.”

케인은 무릎을 쳤다. 중국 쪽에서 태현은 별로 인기가 좋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악역에 가까웠다.

그런 만큼 도동수가 가기도 쉬웠을 것이다.

다른 곳은 ‘아무리 원한이 있어도 그렇지, 대회에서 그런 짓을 하는 선수는 좀……’ 하고 걸렀지만, 중국 쪽 게임단은 ‘뭐 마찰 있었던 건 김태현이니 사람들 여론도 크게 신경 안 써도 되고, 싸게 선수 데리고 올 수 있으면 이득이지’였던 것!

그리고 도동수도 알고 있었다. 그런 가성비 이유가 아니라면 그가 초대받기 힘들었을 거라는 것을.

앞으로 열심히 해서 몸값을 올리겠다고 생각해도 굴욕감은 참기 힘들었다.

“잘난 척 하지 마라. 흥!”

“??”

도동수는 자존심이 더 상했다. 다 알고 있는데 케인이 모르는 척을 하다니.

“ST 파이브, KT 위자드, 뉴욕 라이온즈…… 이런 팀들한테 제안을 받았다고 날 비웃고 있겠지!”

“어? 어? 뭐? 뭔 소리?”

“모르는 척 하지 말라니까! 아오! 다 거절할 정도로 더 좋은 제안을 받았다고 누구를 놀리는 거냐!”

도동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케인이 일부러 멍청한 표정을 짓고 그를 놀리고 있는 기분이 든 것이다.

“흥! 난 다른 곳에서 먹겠다!”

“……자네, 내가 아까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라고 했던 것 같은데…….”

“헉! 회장님!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성질을 내며 일어선 곳에 하필 지나가던 유 회장이 있었다.

유 회장은 한층 더 싸늘해진 눈빛을 보냈다.

단단히 찍힌 기분!

도동수는 원망 섞인 눈빛으로 케인을 쳐다보았다.

‘너, 이 자식. 노린 거지!’

‘쟤는 왜 저래?’

* * *

한편 그때, 정수혁은 마탑에 있었다.

태현이 부탁했던 것이다.

-수혁아, 흑마법사 버리고 온 것 때문에 에랑스 왕국 마탑 내에서 난리가 날 수 있으니까 확인 좀 해줘. 설마 걔네들이 날 공격하러 오진 않겠지만 세상에 절대란 건 없는 법이니까.

태현은 체세도와 흑마법사들을 버리고 온 순간부터 마탑의 공적치 포인트를 모두 포기한 상태였다.

피눈물 나게 아까웠고, 다른 플레이어들이 안다면 ‘그걸 왜!’라고 외쳤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거기서 그들을 챙기겠다고 나섰다가는 같이 발목 잡힐 확률이 100%!

그렇지만 태현도 걱정되는 게 하나 있었다.

공적치 포인트가 깎이는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흑마법사 학파에서 ‘김태현 백작이 감히 우리 흑마법사들을 데리고 가서 버리고 왔다고? 용서할 수 없다!’ 하며 마이너스로 내려가는 상황!

재수 없으면 적이 될 수도 있었다. 물론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었지만, 태현은 언제나 만약을 대비하는 사람이었다.

‘안 그래도 적 많은데 최대한 조심해야지…….’

그런 태현의 부탁에, 정수혁은 긴장한 얼굴로 흑마법사 학파의 구역을 얼쩡거리고 있었다.

슬슬 반응이 나올 때가 됐는데…….

-체세도가 리치가 됐다고?! 김태현 백작은 뭘 하고 있었던 거지?!

‘왔다!’

정수혁은 침을 삼켰다. 제발 적당한 선에서 끝나기를!

-될 거라면 김태현 백작이 리치가 되었어야 했는데!

‘역시 화를 내나……?’

-뭐, 체세도가 리치가 됐다면 그건 그거대로 나쁘지 않은 결과로군. 좋다! 축하하자!

‘???’

-김태현 백작 덕분에 리치가 되었으니 체세도도 고마워하겠군. 흑마법의 이름으로 축하하자!

-체세도 님에게 서신을 보낼까요?

-됐다. 어차피 리치가 됐으니 곧 스승도 못 알아볼 텐데. 알아서 잘 살 것이다.

‘???????’

정수혁은 지금 무슨 대화를 들은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제자가 리치가 됐는데 이 무슨 훈훈하고 만족스러운 분위기란 말인가.

그러나 흑마법사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잘됐네, 체세도!’라고 외치고 있었다.

‘……어쨌든 잘된 거겠지?’

이해는 안 됐지만, 일단 정수혁은 안심했다. 태현을 죽이러 갈 분위기는 아니었으니까!

* * *

“아, 이 빌어먹을 토끼들!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길드 동맹의 길드원들은 투덜거리며 토끼를 공격했다.

이상하게 영지 근처에 토끼들이 너무 많았다.

“중앙 대륙 전체에 저주가 퍼졌으니까 어쩔 수 없지.”

“그게 아니라니까? 내가 에랑스 왕국도 자주 가는데, 거긴 이 정도까진 아니라고. 여기 누가 토끼 풀고 간 거 아니야?”

“……김태현 그놈이 토끼 부리던데.”

“역시! 그놈이 뿌리고 간 게 분명해! 잠깐만, 대륙에 토끼 퍼진 것도 그놈 때문은 아니겠지?”

“……!!”

대륙에 퍼진 토끼 저주.

그리고 태현이 길드 동맹을 공격하면서 사용했던 토끼 떼.

이 두 가지를 연결시키는 건 쉬운 일이었다. 순식간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김태현이 토끼 저주 퍼뜨린 거 아니야? 김태현이야 대형 퀘스트 이것저것 많이 깨니까 그만큼 저주도 위험한 거 걸릴 수 있잖아.

-맞아. 게다가 지금 김태현 영지에서만 토끼 안 들어오고 있다며?

다들 토끼로 고생하고 있으니, 이런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 태현을 위협해야 했…… 으나, 그러지 못했다.

태현에게는 파워 워리어 길드가 있었던 것이다.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소문을 잠재우러 나선 그들!

-아님. 김태현 영지가 멀쩡한 건 카르바노그 신 퀘스트 깨서임.

-카르바노그 신이 누군데?

-토끼의 신임.

-……그딴 신이 있어?! 판온에 아무리 신이 많다지만 진짜?!

-아니, 뭔 이득이 있다고 그런 신 퀘스트를…….

-어? 그러면 저주도 카르바노그 신 찾으면 풀 수 있는 거 아니야? 카르바노그 신전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

-그러고 보니 예전에 카르바노그 뭐시기 나온 던전 있지 않았냐? 그, 김태현이 100명이랑 싸우다가 들어간 던전에…….

-!!

-거긴가?!

-김태현 잡으러 온 놈들이 거기서 토끼 잡고 보스 토끼한테도 깽판 놓지 않았냐? 그놈들이 범인이네 범인! 아주 나쁜 놈들이네!

-맞아! 그놈들이 책임져야지! 왜 김태현이 책임을 져야 해!

기회를 잡은 파워 워리어는 재빨리 역공을 가했다.

다른 사람에게 책임 떠넘기기!

* * *

판온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태현은 이세연과 피 튀기는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사이에 낀 이다비는 울상이었다.

‘그냥 일어나게 해주세요……!’

“김태현 선수. 슬슬 오셔야 하는데요.”

“아, 가겠습니다.”

직원의 말에 태현은 바로 말을 멈추고 일어섰다.

방금까지 싸우던 게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

“잘하고 와.”

“물론 잘하고 와야지.”

“……???”

이다비는 당황한 얼굴로 둘을 쳐다보았다. 싸우던 거 아니었어?

“싸, 싸운 거 아니었나요?”

“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모르겠어!’

그러는 사이 태현은 무대 위로 올라가 김태산과 같이 사진을 찍었다.

-이야, 설마 했던 부자대결! 일이 이렇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김태산 선수는 대회에는 출전한 적 없지만, 판온 내에서는 유명한 플레이어입니다. 이끄는 길드도 유명하다고…… 어? 최강지존무쌍…… 이거 이름이 잘못 나온 거 같은데…… 아, 이거 맞다고요? 하, 하하…… 좋은 이름이네요!

-무엇보다 김태산 선수는 판타지 크래프트를 직접 했던 세대죠. 이 차이가 클 겁니다. 실제로 김태산 선수 경기 내용을 보면 한두 판 한 사람의 실력이 아니에요. 배중열 해설가를 꺾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김태산 선수. 결승전을 앞두고 있는데, 어떠세요. 아들분을 상대하게 됐는데. 이길 자신은 있으신가요?

“물론! 저놈은 날 따라오려면 아직 멀었지!”

-대단한 자신감이십니다! 김태현 선수는 어떠세요?

“뭐 아버지가 많이 하신 게임이니 저렇게 자신감 있으신 것도 당연한 거죠.”

“녀석. 그렇게 말해도 봐주는 건 없다.”

“아니, 뭐…… 아버지가 경기 어떻게 하는지 많이 봐와서…… 경기 하시다가 지면…….”

“하하! 경기 시작합시다.”

태현이 무슨 소리를 하려는지 깨달은 김태산이 다급히 나서서 말을 끊었다.

이게 방송에 나가면 개망신!

* * *

결승전은 그 이전 경기와 달리 5전 3승제의 싸움이었다.

자선대회라고는 믿을 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

다른 사람들은 그 이유가 자선대회치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상금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둘 다 상금은 안중에도 없었다.

자존심 싸움!

태현이 고른 건 인간 진영, 김태산이 고른 건 버그 진영.

김태산은 주먹을 뚜둑거리며 온몸을 풀었다. 오늘 뭔가 한 번 제대로 보여주리라!

그러는 동안 태현은 조용히 앉아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걸 본 이세연이 중얼거렸다.

“저거 또 사고 치려는 거 같은데…….”

태현은 얌전할 때가 가장 무서웠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김태산은 침착하게 정석적인 빌드를 따라갔다. 이제까지 했던 것처럼, 물량과 기세로 태현을 밀어버릴 생각이었다.

수많은 경험으로 쌓인 강함!

그것이 김태산의 자신감이었다.

그리고 태현은…….

“어? 어?”

“저, 저건…….”

보던 선수들은 웅성거렸다.

태현은 빠르게 궁수 유닛을 뽑고 일꾼 유닛과 같이 우르르 김태산의 진영으로 돌격하고 있었다.

저 전략은……!

“알, 알박기!”

“소형 요새로 알 박을 생각이다!”

김태산의 본진 앞에 소형 요새를 빠르게 건설하고, 그 안에 궁수 유닛을 넣어서 버틴다!

그게 태현이 노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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