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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491화 (491/1,826)

§ 나는 될놈이다 491화

케인은 싫다는 학생까지 붙잡아서 사인을 해주기 시작했다.

작은 몸집 어디에서 저런 힘이 나오는지 믿지 못할 정도였다.

“크헤, 크헤헤, 크헤헤헤! 사인! 사인 안 받은 놈은 누구냐!”

“그만해, 미친놈아.”

태현은 케인을 제압했다. 케인은 꾸엑 소리를 내며 제압당했다.

“감, 감사합니다.”

“이해해 줘. 얘가 신나서 그래. 팬 만나면 엄청 좋아하거든.”

“그렇군요!”

학생들의 머릿속에는 ‘케인은 팬 만나면 기뻐 날뛰는, 팬서비스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으로 남았다.

“무슨 소란이야?”

“헉, 사장님.”

학생 사이에 끼어 있던 한 명이 깜짝 놀랐다. 보아하니 알바도 태현을 보고 사인을 받으러 온 모양이었다.

“제대로 일 안 하고 이렇게 떠들고 있으면 어떡해?”

“사장님, 그게 아니라요. 여기 프로게이머 김태현 선수가 와있어요.”

“프로게이머가 오든 프로게임단 회장님이 오든 자기 자리를 떠나면 안 되지!”

사장은 깐깐한 태도로 알바를 혼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케인을 쳐다보았다.

“이 사람이 김태현 선수라고? 되게 비리비리해 보이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긴 뭐가 아니야. 변명하지 마! 어쨌든 프로게이머 선수라고 해도 와서 이렇게 시끄럽게 하면 안 되지. 알겠어?”

“죄, 죄송합니다.”

정신이 든 케인은 고개를 꾸벅 숙여 사과했다.

사장은 영 불만스럽다는 듯이 혀를 찼다.

“다른 손님들이 게임 하는 데 방해되잖아.”

“저,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데…….”

“지금 어른이 말하는데 어디서 토를!”

“죄, 죄송합니다.”

툭툭-

둘의 대화를 듣던 태현은 사장의 어깨를 두드렸다. 사장은 날카롭게 말했다.

“뭐야?”

“쟤는 케인이고, 제가 김태현입니다.”

“그래서 어쩌라…… 헉!”

사장은 눈을 깜박이며 태현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사색이 되어 입을 다물었다.

“?”

“??”

다들 의아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 정지했던 사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하하, 젊은 친구들이 좀 떠들다 보면 시끄러울 수도 있지!”

“……???”

“재밌게 놀라고. 저기 음료수라도 좀 서비스해 줘!”

“예?”

갑자기 달라진 태도에 알바가 이해를 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프로게이머잖아. 그런 사람들이 우리 PC방에 왔는데 대접 잘 해줘야지!”

그렇게 말하고 사장은 허둥지둥 물러섰다.

“뭐, 뭐지? 왜 저러는 거지?”

케인은 이해가 가지 않아서 중얼거렸다. 태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내 얼굴을 아니까 저러지.”

“네 얼굴 아는 거랑 뭔 상관…… 헉! 네 성격이 더러운 걸 아는구나!”

“……그게 아니라…… 됐다.”

태현은 말하려다가 말았다.

이 PC방 사장은 태현이 여기 건물 주인인 김태산 아들인 걸 알아본 게 분명했다.

김태산이야 판온 하기 전에는 PC방 단골손님이었으니…….

‘뭐 어쨌든 편하게 할 수는 있겠군.’

멀리서 사장이 힐끗힐끗 태현을 쳐다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불안에 떠는 모습이었다.

* * *

“실패했어.”

“뭐라고?! 말도 안 돼!”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상황이 흘러가서 어쩔 수 없었지.”

“어떻게 그런 조건을 거절할 수 있지?”

“그럴 수도 있더군. 많이 배웠어. 아, 그리고 케인 선수도 만났지.”

“오, 케인 선수를? 괜찮은 선수지? 어때? 이야기는 나눠봤나?”

“잠깐 나눠봤는데 단칼에 거절하더군. 아무래도 김태현하고 같이 가려나 봐.”

케인이 듣는다면 ‘아니에요! 저는 미국 가고 싶어요!! 저는 합숙도 잘 할 수 있어요! 제발 데려가주세요!’라고 말했겠지만, 불행히도 그들은 멀리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멋지군. 그렇게 사이가 좋으니 게임 내에서도 호흡이 잘 맞는 건가?”

“그럴지도.”

“어쨌든 고생했어. 돌아와서 푹 쉬라고. 이번 일은 비밀에 부쳐야겠지.”

“아니. 굳이 비밀로 할 필요는 없어.”

“?”

“은근슬쩍 퍼뜨리라고. 다른 게임단 놈들이 엄두도 못 내게.”

매킨리는 웃으면서 말했다.

물론 태현이 다른 사람들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일은 확실할수록 좋은 법.

뉴욕 라이온즈가 어떤 제안을 했고, 태현이 그걸 거절했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다른 사람들은 아예 제안은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것이다.

이 얼마나 확실한 방법인가!

매킨리의 생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뉴욕 라이온즈가 몇십억의 파격적인 연봉을 태현에게 제시했는데도 거절당했다는 소문은 E스포츠계에 돌기 시작했다.

당연히 다들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 조건으로도 거절당했다고? 더 큰 연봉을 원하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겠지. 뭔가 다른 걸 원하는 거 같은데. 뉴욕 라이온즈의 다른 조건이 마음에 안 들었나?

-계약해야 하는 년도? 게임 내에서 포지션?

-그 정도 연봉을 써서 데리고 오면 무조건 팀 리더를 맡겨야 하지 않나?

-설마 합숙해야 하는 게 싫어서 아니었을까? 김태현은 한국인이니 한국을 떠나야 하잖아.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런 사소한 이유 때문에 그런 제안을 거절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애국심 때문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군.

태현이 들었다면 ‘???’ 했겠지만, 자리에 없는 태현은 반응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알아서 자기 좋을 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남은 게임단들은 태현에게 제안을 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 * *

자선 대회가 채 일주일도 남지 않은 상황.

판온에 접속도 못 하는 유 회장만큼은 아니었어도, 태현도 마찬가지로 바빴다.

상품으로 쓸 오토바이를 만들어야 했고(여기에 필요한 재료는 유 회장에게 연락해 곡물로 뜯어냈다), 케인과 판타지 크래프트를 상대해 줘야 했다.

-곡물 가격이 아직도 안 떨어졌다고?

-네. 태현 님이 판 걸 사가지고 버티고 있나봐요. 더 올라갈 거란 기대를 하고서.

-겁이 없군. 토끼 문제가 언제 해결될지 모르는데.

추위도 가셨겠다, 토끼 문제만 해결되면 농산물들의 생산량은 확 늘어날 게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그 많은 토끼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나머지 언데드들이야 리치한테 맡기고 돌아왔지만, 토끼 언데드들은 태현이 데리고 돌아왔다.

토끼들은 땅 밑으로 굴을 파고 움직일 수 있었기에, 보통 상황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았다.

지금은 태현의 영지 밑에 얌전히 숨죽이고 있는 상황!

그 순간 갑자기 이세연의 귓속말이 날아왔다.

-김태현. 김태현. 들었어?

-…….

-무시하지 마. 들은 거 알고 있으니까. 아마 게임 하느라 핸드폰은 안 보고 있었겠지. 네가 다음에 나갈 프로그램이 결정됐어. 자선 대회 끝나고 게스트로 얼굴만 내밀면 될 거야.

-나한테 말도 없이?

-……네가 적극적으로 어떤 방송을 하고 싶다고 참여했니?

-아니. 안 했는데.

-그러면 불평하지 마!

-…….

태현은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왠지 모르게 분했다.

물론 태현이 방송 관련해서 ‘게임 하느라 바쁜데 더 미룰 수는 없나요? 자선 대회도 나가야 하는데…… 그다음에 생각해 볼게요. 어떤 프로그램 나가고 싶냐고요? 딱히 원하는 건 없고 그냥 추천해 주시면 생각해 보겠습니다’라고 미적지근하게 대답하기는 했다!

-그래서 무슨 프로그램인데?

-<켠김에 끝까지>. 너도 한 번 이름 들어본 적 있을 텐데?

-말씀은 해주셨던 것 같은데…….

태현은 가물가물한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이동팔 대표가 ‘태현에게 어울리는 프로그램들’ 이야기할 때 나왔던 것 같기도 하고…….

-프로그램 자체 포맷은 간단해. 나가서, 게임 하나 잡고, 클리어하면 끝.

-별거 아니네?

-별거 아니지. 그래서 보통 어려운 게임이 나와. 그거 하나 끝낼 때까지 집에 못 가는 거고.

-……뭔 놈의 방송이 그래?

태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런 걸 사람들이 좋아할까?

-엄청나게 좋아해. SBC가 그나마 몇 개 건진 게임 방송이 이거거든.

-…….

태현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게임 못 깨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뭐가 즐겁단 말인가!

-그리고 한 가지 더.

-?

-나도 게스트로 같이 나가게 될 거야.

-어? 왜?

빠직-

이세연은 주먹을 쥐었다.

태현의 목소리에서는 정말 노골적으로 싫다는 기색이 느껴졌던 것이다.

솔직히 이세연 앞에서 저런 태도를 보이는 사람은 태현밖에 없었다!

-방송국이 유명한 판온 선수를 섭외하려다 보니 그런 거 아닐까? 응? 응????

-너 화났냐?

-화 안 났는데????

-화 난 거 같은데. 아니면 말고.

-…….

-어쨌든 알려줘서 고맙다.

태현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세연과 같이 나오게 된다는 건, 즉…….

태현과 이세연이 프로그램 안에서 누가 먼저 게임을 깨나 경쟁을 하게 된다는 것을!

이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지, 태현은 아직 알지 못했다.

* * *

우두둑, 두둑-

“?!”

대회 당일.

아침에 일어난 태현은 거실에서 누군가가 포즈를 잡고 있는 모습에 기겁했다.

물론 그 사람은 김태산이었다.

“후후…… 드디어 때가 왔구나.”

“아, 아버지?”

“왜 그러냐?”

“설마 지금 자선 대회 나가시는 거 때문에 이렇게 폼 잡는 거 아니시죠?”

“맞는데?”

“…….”

태현은 한심하다는 듯이 김태산을 쳐다보았지만, 김태산은 케인과 달랐다.

전혀 주눅 들지 않는 당당함!

“아들아.”

“예?”

“날 안 만나길 빌어라. 나와 만나면 바로 박살 날 테니까.”

미쳐 날뛰는 자신감!

태현은 이 모습을 생중계하지 못한다는 게 너무 아쉬웠다. 생중계할 수 있다면 인기 스타가 되실 텐데!

“……가능하면 반대 블록이었으면 좋겠네요.”

“크하하하! 그래야지. 타라. 태워다 주마.”

김태산은 벌써부터 기분이 좋은지 태현을 태워다주겠다고 말했다.

차고에서 아우디 R8을 꺼낸 김태산은 운전석에 앉은 다음 말했다.

“이 사장이 그러던데, 요즘 열심히 연습을 했다고 하던데? 역시 겁이 난 거구나? 요놈, 요놈.”

“아버지…… 좀 적당히 하시는 게…….”

듣는 태현이 슬슬 부끄러워질 지경!

“으하하하! 우승은 내 차지다!”

김태산의 자신감에는 일리가 있었다.

다른 젊은 플레이어들에 비해, 김태산은 판타지 크래프트에 청춘을 바친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 시간이 만들어내는 자신감!

“그런데 아버지, 이 자선 대회에 특별 초대 손님도 나오는 건 알고 계시죠?”

“응? 누구? 연예인이라도 나오냐?”

배중환-배중열 해설가 형제.

예전 판타지 크래프트 프로게이머로 뛰었던 사람들이었다.

김태산의 표정을 보니 모르는 게 분명했다.

“배중환, 배중열 해설가들이 초대 손님으로 나오잖아요.”

“뭐, 뭐?! 그 둘이 나와? 왜?!”

“회장님이 초대하셨겠죠, 뭐.”

“아니, 프로를 초대하면 어떻게 해! 순수하게 아마추어들끼리 실력을 겨루는 자리에!”

김태산은 분노해서 외쳤다. 이겼다고 자신한 판에 갑자기 두 마리 호랑이가 등장한 기분이었다.

“설마…… 이길 자신이 없으신 건 아니죠?”

“아, 아니. 그럴 리가 있나. 물론 이길 자신이 있지.”

김태산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태현은 피식 웃었다. 역시 아버지였다.

“내가 오늘 뭔가 하나 제대로 보여주마.”

“아버지, 불리하다고 상대방 랜선 끊으시면 안 됩니다.”

“내, 내가 언제 그랬어!”

“채팅으로 욕 써도 안 되고요. 이거 자선 대회지만 방송 나가는 거라 다 남습니다.”

“그, 그랬냐?”

김태산은 솔직히 조금 찔렸다. 방송에 나가는 건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계속 몰랐다면, 채팅으로 욕을 하는 건 조금 고민했을지도 몰랐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좋은 대회에서 내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아버지,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 게임 하는 거 보면서 컸습니다.”

“크흠흠. 크흠.”

할 말이 없어진 김태산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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