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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490화 (490/1,826)

§ 나는 될놈이다 490화

‘살다 살다 이런 이유로 거절당할 줄이야……!’

화가 나거나 원망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저 황당할 뿐.

태현이 잘사는 집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부동산 재벌이었군…… 설득할 방법이 없나……?’

아쉬운 게 없는 사람만큼 설득하기 어려운 사람도 없었다.

게다가 태현이 거절하는 이유는 하나. 해외로 가기 귀찮다는 것 아닌가.

‘……어쩔 수 없지…….’

매킨리는 힘이 빠진 얼굴로 일어섰다. 축 늘어진 어깨가 왠지 모르게 안쓰러웠다.

“괜찮으신 거 맞죠?”

“하, 하하. 괜찮습니다. 그냥 좀…… 많이 놀라서…….”

회사 사람들이 이 말을 들으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다른 놈들도 김태현을 섭외하지 못한다는 거겠군. 그나마 한국 팀인가?’

뉴욕 라이온즈와 라이벌 관계인 미국의 게임단들도 태현을 데리고 오지 못할 게 분명했다.

다들 숙소와 합숙 규칙에는 엄격했으니까.

한 번 예외를 두면 규칙을 지켜나갈 수 없는 것이다.

덜컥-

카페의 문이 열리더니, 김덕수…… 아니, 케인이 들어왔다.

케인은 소심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혼자 와서 태현을 찾는 게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

태현을 발견하자 케인이 살았다는 듯이 손을 들려고 했다.

“……어?”

그런데 태현 앞에 처음 보는 외국인이 있었다. 케인은 뻣뻣하게 굳었다.

“오, 저 선수는…… 케인 선수, 케인 선수 맞습니까?”

“맞아요.”

매킨리는 놀란 눈으로 케인을 쳐다보았다.

“혹시 저와 같이 이야기하려고 부르신 겁니까?”

“아닙니다. 계약과는 상관없이 그냥 만날 일이 있어서 부른 건데 저놈이 빨리 온 거예요.”

“아, 그런 거군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케인 선수와 잠깐 대화해도 괜찮겠습니까?”

매킨리는 친절하고 예의가 있었다. 협상이 깨진 상황에서도 태현을 존중했다.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장사는 결국 사람 장사지. 절대 원한을 사거나 밉보여서는 안 돼. 특히 김태현처럼 특A급 선수한테는 더더욱. 계약 못 했다고 심통 부리는 건 애송이나 하는 짓.’

사실 마음 같아서는 케인한테 접근해서 온갖 감언이설을 늘어놓고 싶었다.

태현만큼은 아니어도 케인은 충분히 A급 선수였고, 회사 내에서는 ‘케인을 섭외하면 김태현도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의견도 종종 있었으니까.

잘만 하면 돌 하나로 새 두 마리를 잡을 수도 있는 것!

그렇지만 매킨리는 서두르지 않았다. 지금 눈앞에는 태현이 있었고, 태현은 매킨리의 속셈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바보가 아니었다.

최대한 예의를 지켜서, 태현의 의사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음대로 하시죠.”

“정말 괜찮겠습니까?”

“예, 예.”

태현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사실 매킨리나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달리, 태현은 케인이 해외로 나가도 별 상관 없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인생 아니겠는가.

“케인 선수.”

“예? 어, 예? 김태현? 나, 나 좀 도와줄래? 이 사람 누구야?”

케인은 애절하게 태현을 불렀다. 처음 보는 외국인이 영어로 퍼붓는 상황은 케인에게 너무 가혹한 상황이었다.

“이 자리는 길게 말하기 어려운 자리이니, 오늘은 간단하게 의사만 묻고 가려고 합니다. 만약 의사가 있으시다면 저희, 뉴욕 라이온즈가 다시 자리를 잡겠습니다. 혹시 저희 팀에 들어오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

케인은 머뭇거렸다.

이유는 하나였다.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뭐, 뭐지? 대체 뭐라고 한 거지? 뭐 안 좋은 건가? 이상한 물건이라도 사라는 거면…….’

케인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이럴 때 가장 무난한 대답은?

“N, No! No!!”

“그렇군요…….”

매킨리는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알겠습니다. 다음에 또 뵙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두 분.”

매킨리는 예의 바르게 떠나갔다. 그걸 본 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맞, 맞게 대답한 거 맞나?”

“흠…… 뭐, 실수한 건 없네.”

태현은 케인의 어깨를 토닥였다. 태현이 보내는 따뜻한 눈빛에 케인은 어리둥절했다.

‘왜 이러지?’

“그런데 왜 이렇게 일찍 왔냐? 약속 시간은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

“아. 길 잃을까 봐…….”

“…….”

“…….”

“뭐, 일찍 왔으니 잘됐네. 게임이나 하러 가자.”

태현이 말한 게임은 판온이 아니었다.

판타지 크래프트!

이번 유회장이 여는 자선 대회의 종목인 게임이었다.

“요즘은 PC방보다 캡슐방이 더 많아져서…… 아, 저기 하나 있군.”

“그런데 너 판타지 크래프트 해본 적 없다고 하지 않았냐?”

“그렇지.”

“지금 와서 해도 다른 놈들은 많이 해봤을 텐데…….”

“안 하는 것보단 낫겠지. 해달라고 해서 같이 해주는데 자꾸 투덜거릴래?”

태현의 말에 케인은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태현 이놈은 수틀리면 정말로 그냥 갈 놈이었으니까!

‘그리고 김태현 정도면 뒤늦게 시작해도 다른 놈들보다는 훨씬 잘할 거야!’

케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태현이 게임을 못한다는 건 상상이 가질 않았다.

PC방으로 가면서 케인은 판타지 크래프트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판타지 크래프트는 RTS(실시간 전략 게임)야. 세 가지 종족 중에 하나를 골라서, 자원을 모으고 세력을 키워서 상대방을 이기는 거지.”

“간단하군.”

“간단하긴 뭐가 간단해! 나온 지 오래된 게임인 만큼 전략도 다양하고 온갖 꼼수도 있는 게임이야. 절대 방심해서는 안 돼. 대회에서 만나게 될 놈 중에서 분명 이 게임 엄청 판 놈들도 있을 거라고!”

케인은 열정적으로 말했다. 그 모습에 태현은 한심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판온 대회를 할 때 저렇게 열심히 해보지…….”

“열…… 열심히 했잖아! 어쨌든 세 가지 종족이 있어. 인간, 버그, 로봇. 각자 특성이 있으니까 그걸 잘 파악해야 해. 근데 지금 너 뭐 찾고 있냐?”

“어? 날빌.”

날빌.

날카로운 빌드, 혹은 날로 먹는 빌드!

이런 전략 게임에서 극단적인 도박 전략을 일컫는 말이었다.

초반에 일꾼들을 다 데리고 와서 공격을 시도한다거나, 상대방 본진 앞에 건물을 깐다거나…….

뭐든 간에 지금 처음 시작한 사람이 찾고 있을 전략은 아니었다.

“야! 벌써부터 그걸 보면 어떡해!”

“날빌 연습할 생각인데.”

“날빌로는 다른 놈들을 못 이겨! 일반인들도 아니고 나름 프로게이머들이 나올 거 아니야!”

“오히려 날빌이 가능성 있지. 게임 오래 한 놈들하고 장기전 가면 내가 점점 불리해질 거 아냐. 그리고 난 이 게임을 그렇게 파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케인이나 다른 플레이어들은 자선대회의 상금에 눈이 멀었지만, 태현은 별생각 없이 참가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냥 적당히 해도 상관이 없는 것!

그런 태현의 태도에 케인은 애가 탔다.

“무슨 게임이든 간에 최선을 다해야지! 그게 진정한 프로야!”

“난 판온 프로지 딱히 이 게임 프로가 아닌데.”

“크으으윽……!”

말 한마디를 지지 않는 태현. 케인은 끙 소리를 냈다.

“에이, 알겠어! 네 마음대로 해라. 연습이나 해줘!”

‘연습에서 막아버리면 자기도 정신을 차리겠지!’

케인은 태현과 연습을 하면서 날빌을 모두 막아낼 생각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태현도 생각을 바꾸지 않겠는가!

* * *

“…….”

“야. 너 왜 이렇게 못해?”

케인은 고개를 푹 숙였다.

케인의 진영이 탈탈 털리고 있었던 것이다.

건물들은 다 부서지고 유닛은 다 죽고…… 처참 그 자체!

더 슬픈 건 케인은 태현이 뭘 하려는지 이미 알고 있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점이었다.

태현은 시작부터 ‘날빌로 간다’라고 말했고, 케인은 버티기만 하면 됐는데…….

그걸 못 한 것!

“그냥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판온이나 하지?”

“아, 아니야! 몇 판만 더 해보자!”

케인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래도 학창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는 적수가 없었는데!

한 판.

두 판.

세 판.

“…….”

케인은 엎드렸다.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자 태현도 ‘너 왜 이렇게 못하냐’라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저 안쓰럽다는 듯이 쳐다볼 뿐!

“오랫동안 안 하다 보면 실력이 내려갈 수도 있지.”

“그, 그런가? 그렇겠지?”

케인은 태현의 말에 믿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잠깐만 다른 놈들이랑 해봐야겠다.”

“응?”

케인은 더 이상 태현과 연습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온라인에 있는 다른 상대들을 찾았다.

한 판.

두 판.

세 판!

“3연승! 역시 내가 잘못된 게 아니었어! 저 김태현 자식이 이상한 거였다고!”

“뭐라고?”

“아, 아니. 네가 잘한다고…….”

그제야 태현이 옆에 있다는 걸 깨달은 케인이 목소리를 낮췄다.

‘으, 그래도 실력이 늘려면 김태현 저놈이랑 해야겠지.’

자기보다 약한 상대랑은 해봤자 큰 의미가 없었다.

잘하는 상대와 해야지!

“김태현. 대신 날빌은 쓰지 말자. 연습이 안 된다고.”

“알겠어. 알겠어.”

그러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날빌을 쓰지 않는 태현은 정석적인 빌드로 차근차근 케인을 압박해 나갔다.

“야, 야! 너 이거 처음 한다면서! 이런 건 어떻게 아는 거야?!”

“하기 전에 잠깐 켜서 정석 찾아봤는데.”

“?!?!?”

하기 전에 잠깐 켜고 본 걸 이렇게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고?

‘세상은 너무 불공평해!’

* * *

“저 아저씨들 왜 이렇게 시끄러워?”

“되게 시끄럽네. 뭔 게임 하는 거야?”

“판타지 크래프트 하는데?”

“와, 판타지 크래프트 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어? 진짜?”

“조용히 하라고 할까?”

떠들던 학생들은 힐끗 쳐다보았다.

케인은 덩치가 작았지만, 태현은 딱 봐도 살벌한 겉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그렇게 시끄러운 것 같지는 않아!”

“그, 그러네.”

-김태현. 대신 날빌은 쓰지 말자. 연습이 안 된다고.

“?”

“김태현?”

“김태현이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 헉!”

학생들은 서로 쳐다보았다. 방송에서 봤던 것과 이미지가 달라서 눈치를 못 챈 것이다.

“방송에서 본 것보다 훨씬 무섭게 생겼는데?”

“근데 맞는 거 같아. 눈매만 빼고.”

“말 걸어볼까?”

“저, 저기요…….”

태현과 케인은 하던 걸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한 무리의 수줍은 학생들이 태현과 케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

“형! 저희 형 팬이에요!”

귀찮아질 것 같자 태현은 바로 화살을 돌렸다. 케인에게.

“케인, 네 팬이란다.”

“뭐? 이분이 케인……?”

“이미지랑 다른데?”

“…….”

방송에서 얼굴을 내밀었는데도 다들 못 알아보는 케인이었다. 태현과 달리 이미지가 너무 달랐던 것이다.

“형도 좋아요! 형 팬이에요!”

“맞아요! 이번에 길드 동맹하고 싸우는 것도 잘 봤어요!”

“너, 너희들……!”

케인은 감동한 얼굴로 학생들을 쳐다보았다.

이렇게 따뜻한 소리를 들어본 게 얼마 만인가!

같이 다니던 일행한테는 ‘왜 자꾸 태현 님을 음해하려고 그래요? 사람이 그러면 못써요!’란 소리만 듣고, 리치로 변한 흑마법사들은 ‘명예를 위해 끝까지 싸워야죠!’란 소리나 하고…….

속이 타들어 갔는데, 이렇게 순진무구한 눈동자로 ‘팬이에요!’라고 말하는 학생들을 보니 가슴 깊숙한 곳에서 감동이 밀려왔다.

“뭘 원하냐! 사진?! 사인?! 내가 다 해줄게!”

“어, 네?”

케인의 열렬한 반응에 학생들은 순간 기가 죽었다. 한 걸음 물러서는 그들!

“왜 그래! 사양하지 마! 이런 기회가 얼마나 있겠어! 자! 여기에 사인해주면 되냐?!”

“잠, 잠깐, 가방에는 좀…….”

“사양할 필요 없다니까! 크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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