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89화
“길마님, 앞에서 그런 소리 하시면 안 됩니다. 간신히 약속 잡은 거예요.”
장쓰안의 부하가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 아쉬운 건 그들이었다.
“알아. 알아. 걱정 안 해도 된다.”
‘진짜 걱정 안 해도 되는 거 맞아?’
장쓰안의 태도는 걱정 안 해도 될 만한 태도가 아니었다.
언제나 시비를 만드는 거만한 태도!
그래도 장쓰안의 부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대회에서 개망신을 당하고 나서, 다들 장쓰안을 걱정했던 것이다.
‘저렇게 망신을 당했는데 게임 접으시는 거 아냐?’
‘계정을 삭제할지도…….’
그러나 장쓰안은 바로 회복했다.
-그 비겁하고 사악한 김태현을 응징하기 위해서는 더 강해질 필요가 있겠군!
장쓰안이 현재 찾고 있는 장비는 <뜨거운 울음의 검>.
직업 퀘스트와 관련된 장비였기에 계속해서 찾고 있는 무기였다. 그것 때문에 태현한테 속지 않았던가.
그걸 찾는다면 장쓰안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질 수 있었다.
계속해서 찾던 도중 장쓰안에게 정보가 들어왔다.
<차가운 울음의 검>을 갖고 있는 플레이어가 있다고!
간신히 연락이 닿아서 이렇게 만나게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저기 오는군.”
멀리서 잘 차려입은 플레이어 한 명이 걸어왔다.
구성욱.
<검은 바위단>의 길드원이자, 태현한테 <차가운 울음의 검>을 받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던 아픈 기억이 있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다른 길드원까지 동원하지 않았던가!
“꽤 강해 보이는데?”
“<검은 바위단>은 소수정예 길드로 나름 유명한 길드입니다. 실력도 좋고요. 길마님, 싸워서 좋을 게 없으니 제발 말씀을 조심하셔서…….”
“아. 아. 알겠다니까. 왜 자꾸 그러는지 모르겠군.”
장쓰안은 진심이었다.
왜 다들 나보고 말을 조심하라고 하는 거지?
다른 사람들이 날 조심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만나자고 하셨습니까?”
구성욱은 장쓰안을 알아봤다. 유명 랭커여서가 아니었다. 대회에서 인상이 워낙 깊게 박혔기 때문이었다.
‘……김태현한테 사기당한 놈이잖아?’
어찌보면 같이 사기당한 동지!
물론 그 생각을 입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실례였으니까.
“그래. 내가 만나자고 했다.”
“……?”
구성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만나자마자 저렇게 말하는 싸가지라니.
분명 저쪽에서 만나달라고 애걸복걸하지 않았나?
“죄, 죄송합니다. 저희 길마님 말투가 원래 이러니 이해를…….”
“……됐고,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뭐 때문에 불렀습니까?”
“네가 차고 있는 그 검. 그 검을 어떻게 얻었는지 물어보려고 불렀지.”
“이 검? 그건 왜? 그리고 그걸 내가 왜 말해줘야 하지?”
“하하. 쑥스러워하긴. 나 같은 랭커를 만난 게 흔한 일은 아닐 테니 부끄러워하는 건 알겠지만 적당히 하라고. 나는 바쁜 사람이니.”
“…….”
구성욱은 눈을 깜박였다. 방금 들은 말이 진짜인지 헷갈렸던 것이다.
그러나 옆에 있는 장쓰안의 부하를 보니 그가 제대로 들은 게 맞은 것 같았다.
‘아, 미친놈이구나.’
간단하게 결론을 내린 구성욱!
예전이었다면 당장에 벌컥 화를 내거나, 아니면 결투를 신청하거나, 그냥 자리를 떠났을 것이다.
그러나 구성욱은 많이 성장했다.
태현은 일종의 자연재해 같은 것이라, 그걸 겪은 사람을 성장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어디 무슨 말을 하나 끝까지 들어보자. 정보 얻으면 좋지.’
“이 검이 얼마나 귀한 검인데, 이유도 없이 말해주고 싶지는 않은데.”
“흠, 나 같은 랭커에 대해 궁금해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평소에 매번 궁금해했을 테니…… 좋아. 관대하게 말해주도록 하지.”
꽉!
구성욱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상대가 너무 재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저놈이 김태현보단 낫다, 김태현보단 낫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다시 편안해졌다.
“나는 지금 <뜨거운 울음의 검>을 찾고 있다. 내 직업과 관련된 장비지. 이걸 찾고 있던 도중, 이 검과 형제검인 <차가운 울음의 검>이란 검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 그리고 그 검이 있다면 <뜨거운 울음의 검>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이제 대답이 되었나?”
“……!”
구성욱은 놀랐다.
방금 장쓰안이 말한 게 사실이라면, 장쓰안의 직업은 구성욱과 거의 같다고 봐야 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속성 정도?
“자, 내 사정을 관대히 말해줬으니 그쪽도 빨리 <차가운 울음의 검>을 어떻게 얻었는지 말하도록.”
“이걸 얻느라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그냥 말하라고?”
“영광으로 알지는 못할망정…… 그래. 돈이면 되겠나?”
“흠…….”
구성욱은 생각에 잠겼다.
원래라면 ‘꺼져 미친놈아!’ 하고 떠났을 것이다. 저렇게 건방을 떠는 놈을 배려해 줄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나도 우연찮게 얻은 정보니 골드만 받고 팔아주지.”
“진작 그렇게 나왔어야지.”
장쓰안에게 넉넉하게 골드를 받은 구성욱은 웃으면서 말했다.
“<차가운 울음의 검>은 타이럼에 있는 대장장이 NPC, 구렌달이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지.”
“오오……! 타이럼! 그래서 눈치를 못 챈 거였군. 잘츠 왕국 같은 후진 곳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장쓰안은 감탄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츠 왕국의 타이럼 시라니.
너무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 의심조차 안 해본 곳이었다.
“지금 당장 가봐야겠군.”
“그래, 그래! 당장 가보라고!”
“……?”
장쓰안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구성욱이 마치 부추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흠, 내 팬이라서 날 응원하는 건가 보군.’
“그래. 가보도록 하지. 알려주느라 고생이 많았어.”
장쓰안이 떠나자, 구성욱은 히죽 웃었다. 혹시 몰라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검은 바위단> 길드원이 은신을 풀고 나타났다.
만약 함정일까 봐 대기하고 있었던 것!
“왜 그렇게 웃냐?”
“저놈도 당할 걸 생각하니 너무 즐거워서…….”
“……이해가 간다!”
“그치? 그치?”
구렌달한테 가면 구렌달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하, 그 제작법은 이미 내 가장 뛰어난 제자, 김태현한테 맡겼지’라고.
그걸 들었을 때 장쓰안의 얼굴이 어떨지 너무 궁금했다.
‘크하하하하! 어디 한 번 너도 당해봐라!’
“잠깐만. 생각해 보니 제작법 우리도 있잖아?”
“그렇지.”
태현한테 그 고생을 하고서 받은 제작법.
“근데 그걸 말해주면 저놈이 우리 길드한테서 얻어내려고 할 거 아니야. 안 돼. 저놈도 김태현한테서 얻어내야지.”
너도 한 번 당해봐라!
* * *
한차례 큰 퀘스트를 끝내고, 태현은 오랜만에 캡슐 밖에 나와 있었다.
판온에 집중하려다 보니 밖에서 해야 할 일들은 한 번에 처리하는 일이 많아졌다.
즉, 오늘은…….
“안녕하십니까, 김태현 선수?”
“안녕하세요.”
태현은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멋들어지게 정장을 차려 입은 흑인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화려한 옷차림에 카페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어? 저건 김태현 아냐?”
“그러게? 김태현 같은데……?”
덕분에 몇몇 사람들은 태현의 얼굴까지 알아보고 있었다.
“여기 명함입니다.”
태현은 남자가 건넨 명함을 받았다. 뉴욕 라이온즈, 매킨리, 스카우트 팀 팀장, 거기에 기타로 몇 가지 직위가 더 적혀 있었다.
“통역이 필요 없다고 하셨는데, 괜찮겠습니까?”
“다 알아들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매킨리는 영어로 말했지만 태현은 굳이 번역기를 키지 않아도 다 알아들었다.
그 모습에 매킨리는 엄지를 번쩍 추켜올렸다.
“현지에서 적응하시는 건 문제도 아니시겠군요.”
“적응이라…….”
매킨리가 온 이유는 하나. 태현을 뉴욕 라이온즈 팀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서였다.
원래라면 한국 지사 건물에서 태현을 만나려고 했지만, 태현이 ‘귀찮은데 그냥 집 앞까지 와주시면 안 되나요?’라고 해서 여기까지 온 것!
원래라면 상대방이 불쾌해했을 수도 있겠지만, 매킨리는 신경 쓰지 않았다.
‘김태현은 저래도 되는 선수지.’
오만하거나 건방을 떨어도 용납이 되는 선수가 있었다. 그에 걸맞는 실력을 가진 선수였다.
그리고 김태현은 거기에 가장 어울렸다.
매킨리는 대회에서 보여주었던 태현의 모습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손익을 떠나, 어떻게든 그의 팀으로 데리고 가서 뛰는 걸 보고 싶다!
한 사람의 팬으로서!
“김태현 선수. 자세한 조건은 이미 계약서를 보냈으니 다 아실 겁니다. 그렇죠?”
“예.”
사실 일일이 읽기 귀찮아서 아버지 친구인 정 변호사님께 부탁했다.
-이상한 거 없죠?
-이상한 거 없다.
-그럼 됐어요.
-야, 자세한 내용을 들어야지!
뚝-
“제가 장담하건대, 제가 제시한 이 연봉은 지금 판온 선수들 사이에서 최고의 연봉입니다. 김태현 선수보다 더 많이 받는 선수는 없을 겁니다.”
“오, 그 정도예요?”
생각해 보니 계약서에 제시된 액수를 안 봤다. 태현은 갑자기 얼마인지 궁금해졌다.
‘한 1억에서 10억 사이인가? 그 정도만 해도…….’
“예. 연봉 30억은 E스포츠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연봉입니다. 아직 프로게임 시장은 초창기인 판온이지만, 저희는 김태현 선수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활약을 하시면 연봉은 더 올라갈 수 있습니다.”
“오. 30억이나?”
태현은 놀랐다. ‘우와, 생각보다 많이 쓰네?’ 정도. 돈의 액수로 놀란 건 아니었다.
저 정도는 태현의 통장에도 있었으니까.
그런 태현의 모습에 매킨리는 갑자기 위화감을 느꼈다.
‘……뭐지?’
태현의 반응이 뭔가 이상했던 것이다. 높은 연봉에 기뻐하는 것도 아니고, 고민하는 것도 아니고, 뭔가 달랐다.
저건…… 무관심이었다!
‘어째서지?!’
“저, 김태현 선수. 연봉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
“아뇨. 30억이면 충분하죠.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아직 대회가 그렇게 많이 열리지도 않았는데 저 정도로 투자할 줄은.”
“뉴욕 라이온즈는 그런 팀입니다. 남들이 두려워서 머뭇거리는 동안 미래의 가능성을 보고 과감하게 투자하죠.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본격적으로 판온 대회들이 열리고 프로리그가 구성되었다고 칩시다. 거기서 김태현 선수가 두세 번만 우승해도 저 정도 연봉은 쉽게 나올 겁니다. 그만한 시장이니까요.”
“뭐 그렇기야 하죠.”
“제 회사라서가 아니라, 뉴욕 라이온즈는 선수들을 위한 최상의 팀입니다. 오랜 전통을 가진 명문답게 따로 회사 부지가 있고, 선수들을 위한 숙소가 있지요. 선수들은 거기에서 게임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 숙소 미국에 있죠?”
“예? 당연하죠.”
“제가 들어가면 거기로 가야 하는 거고요?”
“예…….”
매킨리는 태현이 왜 이런 걸 묻나 싶었다. 너무 당연한 것 아닌가.
“으음…… 안 되겠는데요.”
“예?!?!?!”
매킨리는 정말로 태현이 거절할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오만함이 아니었다.
이건 자신감이었다.
태현에게 제안할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좋은 제안을 갖고 왔다는 자신감!
그런데 거절을 하다니. 매킨리는 오랜만에 당황했다.
“혹,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김태현 선수?”
“아. 해외로 나가기 귀찮아서요.”
“…….”
매킨리의 입이 떡 벌어졌다. 방금 잘못 들은 게 아니겠지?
“그, 그러니까. 뉴욕 라이온즈의 모든 혜택과 시설, 그리고 저만한 연봉을 거절하시는 이유가…….”
“네. 해외로 나가고 싶지 않아서 맞습니다.”
“김, 김태현 선수.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는 게…….”
“매킨리 씨.”
“?”
“창밖을 보세요. 뭐가 보이시죠?”
“……건물들밖에 안 보입니다만.”
“저기 보이는 건물들은 다 제 거거나 제 거가 될 겁니다.”
“…….”
“이제 설명이 좀 됐습니까?”
매킨리는 혼이 나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