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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486화 (486/1,826)

§ 나는 될놈이다 486화

“주, 주인님. 왜 그렇게 쳐다보시는 거죠?”

“너희 그러고 보니 특기가 조각상으로 위장하는 거였지?”

“예!? 아닙니다!”

날개 악마들이 손을 흔들며 부정했다. 그런 특기라니. 그런 특기를 가진 악마는 없었다.

저번에 계속 조각상으로 위장하고 있긴 했지만, 그건 그들 혼자만 성에 남아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것이었다.

들키면 죽었으니까!

“저번에 잘 숨어 있었잖아?”

“그, 그건 비슷하게 생긴 조각상이었고 모험가 놈들도 신경을 안 써서 그랬던 겁니다. 신경을 썼다면 들켰을 겁니다!”

“에이, 아니야. 자신감을 가져.”

“아니, 그게 아니…….”

“자신감을 가지게 만들어줄까?”

[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날개 악마들을 완전히 협박하는 데 성공합니다.]

“……아닙니다…….”

“흐으음, 흐으음. 아주 좋아. 자. 여기 딱 서봐. 좋네. 딱 맞아. 너희들을 위한 곳 같은데?”

태현이 예술가적 모습으로 각도와 구도를 맞추고 있는 사이,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우드스탁 길마가 소리를 질렀다.

“야! 김태현! 우리 올라가도 되냐!”

“좁아서 이 인원으로 충분해. 그만 올라와!”

“야! 연락이 왔어!”

“뭔 연락?”

“협상하자는데?”

“협상?”

태현의 기준으로 ‘협상’은 보통 ‘하하, 우리 서로한테 필요한 걸 들어주자. 물론 난 네가 필요한 걸 들어주지 않을 테지만’이었다.

“누가 협상하자고 연락했어? 잘 해봐.”

“아, 아니. 길드 동맹 쪽에서 연락이 왔다고.”

“뭐? 너 이 자식. 스파이였냐?”

“아니야! 지금 같이 뛰고 있는 거 보면 모르겠냐! 내가 길드 연합 출신이니까 나한테 온 거지!”

태현은 잡상인들을 사절하기 위해 몇 명 빼고 귓속말을 대부분 차단하고 있었다.

지금은 케인도 차단한 상태!

그렇기에 태현에게 접촉하기 위해 길드 동맹은 연락한 것이었다.

“그래서 뭔 협상?”

“네 속셈을 알고 있다는데?”

태현은 어깨를 으쓱했다.

“허, 대단한데? 내가 이 도시를 불바다로 만들려는 걸 어떻게 알고 있지?”

“눈이랑 귀만 있으면 다 알지 않을까요?”

“하긴, 그것도 그렇다. 이다비. 거기 있는 망치 좀 줄래?”

“여기요.”

상인 직업인만큼, 이다비는 평소에 안 쓰는 장비나 아이템들도 많이 갖고 있었다.

“음. 미술 스킬을 안 올려놓은 게 아쉽군. 반성해야겠어.”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스킬들을 많이 안 올려요…….”

태현의 말에 이다비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끝을 흐렸다.

카테란드 해적단의 일을 도우며 미술 스킬을 익혀서 망정이지, 그것도 아니었다면 더 부족했을 것이다.

“흠, 부족한 건 대장장이 기술 스킬과 신의 예지로 해결을 볼 수밖에 없나.”

태현이 지금 하려는 건, 날개 악마들을 조각상으로 위장시키려는 것이었다.

저번에 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저도 도울게요. 저는 미술 스킬 좀 익혀놨으니까요.”

“오. 역시. 케인보다 낫다.”

“진짜요?”

“걔는 스킬 올리는 걸 귀찮아하더라고.”

* * *

“케인, 항복해라!”

“싫다!”

“항복해라!”

“싫다니까!”

“항복하지 않으면 죽인다!”

“죽이라고! 몇 번을 말하냐!”

케인은 발악하듯이 랭커들에게 덤벼들었다.

무려 6명이 케인 한 명만을 노리고 있는 상황!

완전히 궁지에 몰린 상황이었지만 케인은 꺾이지 않고 오히려 덤벼들었다.

“이, 이 자식. 진짜 미쳤냐?”

“그냥 죽이면 안 돼? 위험하다고.”

“아니, 무조건 포로로 만들어야 해!”

랭커들은 이를 악물었다.

지금 상황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많은 것을 감수해야 했다.

먼저 리치가 이끄는 언데드 군단들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사제들을 총동원해서 이 성벽 근처에 강력한 신성 결계를 쳤다.

다행히 케인은 그러거나 말거나 미친 듯이 날뛰었기에 포위하기 쉬웠다.

그렇지만 케인을 제외한 나머지 전력은 멀쩡한 상황. 빨리 케인을 잡고 성벽에서 빠져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역습을 당할 수 있었다.

그런데 케인 저놈이 뭐 잘못 먹은 것처럼 한사코 항복을 거부하고 끝까지 싸우려고 하는 것 아닌가.

“저 자식 보는 눈 있어서 저러는 거 아니야?”

“짜증 나게…….”

현재 싸우는 장면은 완전히 생중계되고 있었다.

랭커들 입장에서는 여섯 명이 케인을 공격하는 거 자체가 망신이었다.

태현도 아닌데 이게 무슨 개망신이란 말인가.

다른 사람들 눈에는 분명 케인이 이 여섯 명과 대등하게 싸우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케인 님! 도우러 가겠습니다!”

“올 필요 없다!”

“어떻게 그럽니까!”

“아, 올 필요 없다고! 혼자 죽을 거야!”

케인은 짜증을 냈다. 바허와 마법사 친구들의 부름이 지겨웠던 것이다.

너희는 속 편해서 좋겠다!

나는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간다!

케인은 더욱더 날뛰었다.

“야! 죽여 봐! 죽여보라고!”

“아오…….”

“이 자식 진짜!”

* * *

“피디님, 어때요?”

“이야, 대단한데? 지금 판온 개인방송 조회 1위부터 3위까지 다 여기네?”

케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신기록을 세우고 있었다.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오단 성 공성전!

랭커 마이크와의 1:1, 리치 등장, 케인 합공…….

이 모든 사건에는 케인이 있었다.

물론 케인 본인은 정신이 없어서 눈치도 못 채고 있었지만, 지금 케인은 전 세계 판온 플레이어들에게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케인은 알려진 것에 비해서 섭외가 거의 안 들어오네요? 개인 방송도 안 하는 것 같고.”

“김태현 만나기 전에 레드존 길마일 때가 컸지.”

케인이 레드존 길마였을 때, 케인은 나름 개인 방송을 진행했었다. 그 방송은 또 나름 유명했었고.

더럽게 재미없는 걸로!

개인 방송은 결국 압도적인 콘텐츠를 보여주거나, 아니면 하는 사람이 재밌게 말을 해야 하는데 케인은 둘 다 아니었던 것이다.

그나마 레드존 길드가 깽판 칠 때나 보려고 사람들이 가끔 모였는데, 판온에서 그 정도 깽판 치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래도 지금은 유명했는데 개인 방송이라도 다시 시작해도 되지 않나 싶은데요. 그 정도 이름값은 되잖아요?”

“되지.”

“그런데 왜 안 하는 거죠?”

“으음…… 내 생각이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서 아닐까 싶은데.”

“네?”

“케인 저 선수가 이제 생각이 좀 깊어진 거지. 예전이랑 달리, 이제는 자기가 뭘 잘하고 뭘 못하는지 아는 거야. 대회에서 우승했잖아? 선수로서 커리어를 관리하는 게 우선이지, 굳이 잘 하지도 못 하는 개인 방송을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물론 아니었다.

케인은 그냥 개인 방송을 하면 태현에게 원수진 놈들이 케인을 찾아와서 화풀이할까 봐 무서워서 못 하고 있는 것이었다.

케인은 스스로가 개인 방송을 더럽게 못한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와, 생각이 깊네요. 저라면 바로 했을 거 같은데. 제 팬들이 다 보러 올 거 아니에요.”

“하하. 원래 어느 곳이든 간에 탑급 정도 되는 선수들은 다 그렇지. 김태현도 실제로 만나봤는데 눈빛부터가 다르더라.”

“어떤데요?”

“어…….”

<혼자 사는 인간들> 피디는 말끝을 흐렸다. 김태현과 만난 걸 자랑하려고 했는데 정작 어땠는지 말하려고 하니 말이 궁했다.

‘김춘식 알지? 김춘식이 다니는 체육관에 운동하는 거 찍으러 갔다가 김태현을 만났거든. 그래서 김태현이 운동하는 것도 한 번 찍으려고 연습 경기를 시켰는데 김태현이 선수를 두들겨 패더라.’

……라고는 말하기는 좀 그랬다!

“……멋, 멋있었지. 남자답고.”

“오오, 저도 다음에 보고 싶네요! 그런데 저번에 김태현 선수하고 같이 파티 플레이 하게 됐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어떻게 됐어요?”

“이상하게 답장이 없네. 무슨 오류인가?”

씹혔다는 건 상상도 못 하는 피디였다.

“피디님! 회의 시작입니다!”

“어. 지금 들어갈게.”

쉬는 시간에 틈틈이 새로 올라온 판온 영상을 보는 것.

그것이 판온 플레이어들의 습관이었다.

그리고 그건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 * *

“어때요, 언니, 대단하지 않아요?!”

“어…… 음…… 어? 하연아, 네가 그렇게 판온을 좋아하는 줄은 몰랐는데…….”

“예전에는 재미를 몰랐는데, 이제 알 것 같아요!”

“그, 그래. 잘됐네?”

이세연은 당황한 눈빛으로 하연을 쳐다보았다.

하연은 케인이 날뛰고 있는 영상을 가리키며 기뻐하고 있었다.

“정말 의리 있고 실력 있고…….”

‘……사기당한 사람이 악에 받쳐서 날뛰는 거 같은데?’

하연과 달리 이세연은 케인의 상황을 정확하게 눈치챘다.

이건 믿고 있는 구석이 있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 그냥 자포자기식으로 날뛰는 것이었다.

실제로 곧 있으면 무너질 게 분명!

‘아니, 그보다 김태현 얘는 어떻게 리치를 소환한 거야?’

이세연에게 더 흥미가 가는 건 리치였다.

* * *

“흠, 어때?”

“조금만 더 팔을 오른쪽으로 꺾는 게 나을 거 같아요.”

“그래. 네 말이 맞는 거 같다. 보는 눈이 있어.”

“헤헤…….”

이다비는 쑥스러운 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 훈훈한 모습에 날개 악마가 용기를 냈다.

“저, 주인님…….”

“어허. 가만히 있어. 조각상이 말을 하면 쓰나!”

태현은 여기에 날개 악마를 두고 갈 생각이었다.

언젠가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사실 깊은 생각과 웅대한 포부를 가지고 하는 계획은 아니었다.

태현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써먹을 수 있는 수단을 몇 개 만들어 놨다.

운 좋으면 이런 수단을 쓸 수 있을 때가 찾아왔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김태현의 계략은 대체 어디까지인가!’ 하고 오해하게 되고…….

“한 번 통했고, 두 번 통했으니 세 번도 통하지 않을까?”

“그런데 태현 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세 번이 통하겠어요?”

“하긴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해. 뭐,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피 보는 건 내가 아니니까.”

“저, 주인님? 주인님???”

“어허. 조각상. 조용히 하라니까. 예술적으로 가만히 있어. 자. 다 됐다.”

[작업을 마쳤습니다.]

[미술 스킬이 오릅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오릅니다.]

[작품명을 지어주십시오.]

“여기 있던 거랑 똑같이 이름 짓고…… 이 정도면 감쪽같지?”

“네. 어지간하면 모를 거 같아요.”

“나중에 쓸 일이 있기를 빌자.”

태현은 날로 먹을 일이 있기를 기대하며 일을 마쳤다. 날개 악마들의 애절한 눈빛은 쿨하게 무시했다.

“자, 이제 할 것도 다 했고 이 근처를 날려버릴까?”

그러자 밑에서 가브리엘이 대답했다.

“네! 너무 좋습니다!”

“……쟤한테 한 말은 아니었는데.”

가끔 태현도 가브리엘이 좀 무서워질 때가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세상이 불타는 걸 보고 싶어 할 뿐’이라는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

“야! 협상하자는 말은 무시할 거야?”

“멍청한 놈. 테러리스트와 협상은 없다!”

“……우리가 테러리스트 아닌가?”

우드스탁 길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사이 이다비는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에게 상황 보고를 받고 깜짝 놀랐다.

“태현 님. 케인 씨가 잡혔대요!”

“뭐?! 이제야?!”

“…….”

“…….”

“하하. 생각보다 오래 버텼네. 근데 케인만 잡혔어? 다른 사람들은?”

“케인만 잡혔다는데요.”

“아. 그렇게 된 거군.”

태현은 그 말에 바로 상황을 알아차렸다. 길드 동맹 쪽에서 바로 성을 점령할 여유는 없으니 일단 케인만 잡은 것이다.

‘에이, 그냥 안에서 조용히 버티지.’

케인이 들으면 뒷목 잡을 생각을 하며, 태현은 입맛을 다셨다.

“좋아. 한 번 이야기나 들어보도록 하지. 귓속말을 허락한다. 해보도록.”

“……우리가 테러리스트 맞지? 그치? 내가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지?”

우드스탁 길마는 혼란스러워져서 길드원들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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