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84화
우드스탁 길마와 길드원들은 좋게 좋게 태현을 설득하려고 했다.
물론 안 좋게 설득할 자신이 없어서였지만.
“김태현, 있잖아…….”
“없다.”
“그게, 지금 여기를 공격하는 게 꼭 좋은 생각일까?”
“널 공격하란 뜻인가?”
“넌 왜 이렇게 사람이 극단적이냐!”
무슨 말을 해도 다 칼 같이 잘라버리는 태현!
자꾸 우드스탁 길드원들이 귀찮게 굴자, 태현은 설득할 필요성을 느꼈다.
‘귀찮은 놈들.’
태현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잘 들어봐. 지금 길드 동맹에서 강한 놈들은 다 저기 오단 성에 가있지?”
“다는 아닐 걸…….”
“다는 아니더라도 남은 놈들은 자기 퀘스트 깨느라 멀리 있겠지. 지금 당장 아레네 시에 있는 랭커가 몇 명이겠냐? 기껏해야 제작 직업이나 도시 잠깐 들리러 온 플레이어가 전부겠지.”
-길마님, 저거 들으시면 안 됩니다! 우리 저번에도 저거 들었다가…….
우드스탁 길드원 중 한 명이 급하게 말했지만, 우드스탁 길마는 이미 솔깃한 표정이었다.
언제 들어도 그럴듯한 게 태현의 저 말!
“하, 하지만 아레네 시에는 경비병도 있고…… 길드 동맹이 고용한 NPC 병사들도 있을 거 아니야.”
“누가 걔네들하고 다 싸우겠대? 야, 내가 바보냐? 걔네들하고 다 싸우다가 시간 끌면 잡힐 게 뻔한데. 들어가서 쟤네 중요한 곳만 치고 빠지는 거야.”
“어떻게 치는데? 우리 숫자로는…….”
“내 장기가 뭐냐?”
태현의 말에 동시다발적으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사람 엿 먹이는 거?”
“사람 뒤통수 치는 거?”
“사람 괴롭히는 거?”
“…….”
“아, 폭탄!”
“그래. 폭탄. 중요한 곳에 가서 폭탄 터뜨리고 튀는 거지. 그 다음에 빠져나가면 어떻게 잡겠어?”
“쫓아올 텐데?”
“쫓아와도 날 쫓아오겠지 널 쫓아오겠냐? 저번에 기억 안 나? 내가 너희들을 위해 대신 도망쳤더니 길드 동맹 놈들이 날 쫓아왔잖아.”
조용히 듣고 있던 이다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기억이 맞다면, 태현은 우드스탁 길드와 날개 악마들을 ‘버리고’ 간 것이었다.
거기에 길드 동맹 플레이어들이 태현만 쫓아온 거였고.
“그, 그랬지!”
그러나 우드스탁 길마는 이미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기억을 왜곡한 지 오래였다.
난 버려진 게 아니라 김태현이 희생한 거다!
“그러면…… 정말 해볼 만한…….”
-길마님! 정신 차려요!
-아냐, 진짜 해볼 만한 거 같은데?
-자잘하게 다른 곳 터는 곳보다 김태현이랑 이런 거 하는 게 훨씬 더 남는 거 아냐?
뒷감당을 두려워하는 길드원도 있었지만, 다른 길드원들에게 묻혀 버렸다.
“어때. 할 거지?”
“한다! 물론!”
“좋아. 좋아.”
태현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손이 열 손 못 당하는 법.
빠르고 정확하게 치고 빠지려면 숫자가 좀 있어줘야 했다.
“언제 들어갈 거지?”
“잠깐. 올 사람이 있는데…….”
다그닥다그닥-
아레네 시 안에서 몇 명의 플레이어들이 말을 타고 튀어나왔다.
장비를 보니 레벨 50도 안 되는 수준의 장비!
우드스탁 길드원들은 의아해했다. 쟤네들은 누구지?
“어, 어, 어……!”
길드원 중 한 명이 얼굴을 알아보고 벌벌 손을 떨었다.
“야. 왜 그래?”
“저, 저, 저거…… 가브리엘이잖아! 그 미친 폭탄마 놈!”
“미친 폭탄마는 김태현 아냐?”
“쉿. 김태현 옆에 있잖아.”
가브리엘!
태현이 기계공학 대장장이라는 대장장이 메타의 시작을 열었다면, 기계공학 대장장이의 악명을 높인 건 가브리엘이었다.
구박 받는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을 모아서 온갖 테러를 벌이고 다닌 가브리엘!
자폭도 서슴지 않고 덤비는 대장장이들 때문에 고렙 플레이어도 한동안 대장장이들에게 고개 숙이고 다녀야 했다.
“저놈이 왜 저기…….”
“태현 님!”
가브리엘은 반갑게 인사하며 말에서 내렸다.
태현이 부르자마자 아탈리 왕국의 다른 도시로 가 마법 포탈을 타고 아레네 시로 온 것이다.
태현의 영지에는 마법 포탈이 없었다.
‘있어봤자 공격하려는 놈들이나 오겠지.’
“이야. 고마워. 다들 바쁠 텐데.”
“무슨 소리! 언제든지 태현 님이 불러주시면 갑니다!”
“여기 폭탄 챙겨왔습니다!”
대장장이들은 등에 커다란 배낭 하나씩을 메고 있었다.
그걸 본 우드스탁 길드원들은 소름이 돋았다.
‘저거 다 폭탄이야?!’
그랬다.
태현은 아레네 시로 향하며 가브리엘을 부른 것이다.
-가브리엘. 폭탄이 필요한데 혹시 남는 거 있니?
-지금 당장 들고 가겠습니다!
-아니, 그렇게 많이는…… 필요할 거 같긴 한데 꼭 부담 가질 필요는 없고…….
-아닙니다! 꼭 돕고 싶습니다! 태현 님의 도움을 받아 악마의 대장간에서 올린 폭탄 제조 스킬! 이번에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안 그래도 동상에 설치된 폭탄을 쓸 일이 없어서 아쉬웠는데 잘됐습니다. 어떤 폭탄을 원하십니까! 화력이 높은 거? 다양한 효과가 붙어 있는 거? 퍼지는 효과가 오래 가는 거?
-잠깐만, 동상에 설치된 폭탄이라니. 그게 뭔 소리지?
-다 들고 가겠습니다!
-가브리엘? 가브리엘?
* * *
“어디를 터뜨려야 잘 터뜨렸다고 소문이 날까…….”
“…….”
“…….”
우드스탁 길드원들은 어이가 없어서 조용히 입 다물고 있었지만, 대장장이들은 아니었다.
각자 손을 들더니 뜨겁게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저는 거대 대장간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왜지?”
“그냥 꼭 한 번 터뜨려 보고 싶었습니다!”
“…….”
“저는 마법 포탈에 터뜨리고 싶습니다! 터뜨리면 복구하는 데 꽤 큰 비용이 들 겁니다!”
“저는 날아다니는 탈 것 마구간을 추천합니다. 거기도 터뜨리면 상당히 귀찮아지는 곳입니다!”
밥 먹고 ‘야, 폭탄을 터뜨린다면 어디가 좋을까?’만 이야기하는 인간들.
그게 바로 태현의 영지에 있는 대장장이 플레이어들이었다.
급기야 서로 멱살을 잡으며 다투는 그들!
“아니야 이 자식아! 거기보다는 여기가 좋아!”
“아니거든?! 누구 폭탄이 더 센지 겨뤄볼까?”
“좋다! 러시안 룰렛 하자!”
“자. 모두 진정하고.”
태현은 대장장이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는 가브리엘을 쳐다보았다.
“넌 뭐 의견 없냐?”
“지금 의견 나온 곳 다 터뜨립시다!”
“…….”
“…….”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가브리엘을 빤히 쳐다보았다.
‘역시 미친놈이 맞았어!’
‘저거 현실에서도 저러고 다니는 건 아니겠지?’
‘현실에서는 멀쩡한 놈이라던데…….’
다른 사람들과 달리 태현은 가브리엘의 의견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지금 나온 곳을 다 터뜨리기는 인력이 좀 부족하지 않나? 아레네 시가 그래도 대도시라 각 곳에 NPC들이 있어. 폭탄 한 번 터지면 NPC들이 움직여서 어려워질 텐데?”
“동시에 터뜨리면 됩니다.”
“어떻게 동시에 터뜨린다는 거지? 인원 나누면 뚫고 들어가기도 힘들 텐데?”
태현이야 NPC 한둘 정도는 쉽게 제치고 들어갈 수 있다지만, 나눠지면 다른 사람들은 막힐 수 있었다.
“뚫고 들어갈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
“그냥 들고 거기서 자폭하면 되는데요.”
“…….”
“…….”
“……농, 농담이지?”
우드스탁 길마는 그렇게 물었다. 그러나 대장장이들은 진지했다.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면 되겠네요.”
“뭐 어차피 사망 페널티 받을 것도 없어서…….”
쿨한 대장장이들!
우드스탁 길드만 놀라워 할 뿐이었다.
‘이것들 대체 뭐하는 놈들이야?!’
“그러면 믿고 맡기지. 좋아. 그러면 난 어디 갈까…….”
“태현 님, 저기 어떻습니까?”
가브리엘은 손가락으로 먼 곳을 가리켰다.
아레네 시 중앙 광장, 시계탑!
아레네 시가 자랑하는 건축물 중 하나였다.
마탑만큼 안이 넓지는 않지만, 높게 솟아 올린 저 시계탑 건물은 건축가 플레이어들이 공을 들인 건물이었다.
저런 건축물들은 설치된 것만으로도 영지 전체에 버프 효과를 줬다.
우드스탁 길마가 시계탑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저기 길드원들만 들어갈 수 있을 걸?”
“뭐 그건 치우고 들어가면 되고…….”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몰라도 중앙 광장에 설치된 저렇게 멋진 건물을 날려 버린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상징성이 있지 않은가!
“역시 태현 님. 좋아하실 줄 알았습니다!”
“잘 골랐네, 가브리엘.”
“그래서 태현 님이 좋아하실 만한 폭탄도 갖고 왔습니다.”
“하하, 뭘 이런 걸 다…….”
개조된 끓어오르는 궁극의 역병 폭탄:
끓어오르는 궁극의 역병은 대륙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정신 나간 기계공학 대장장이가 심혈을 기울여서 개조한 이 폭탄은, 끓어오르는 궁극의 역병을 제한적으로 퍼뜨립니다.
사용할 경우 악명 대폭 증가.
“……저기, 가브리엘?”
“예?”
“이거 아직도 갖고 있었냐?”
“예! 버리긴 아깝잖습니까!”
해맑은 얼굴로 외치는 가브리엘!
태현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음, 이것도 좋긴 한데 다른 거 없냐?”
“어, 어째서입니까?!”
“이건 나중에 쓰자. 아깝잖아.”
사실 잘못 썼다가는 태현 제외한 전원이 걸릴 테니 쓰지 않는 것이었지만, 가브리엘은 태현의 말을 철석같이 받아들였다.
“그렇군요!”
검은 역병 폭탄:
정신 나간 기계공학 대장장이가 만든 이 사악한 폭탄은, 터뜨릴 시 <검은 역병>을 주변에 퍼뜨립니다.
사용할 경우 악명 대폭 증가.
붉은 역병 폭탄:
정신 나간 기계공학 대장장이가 만든 이 사악한 폭탄은, 터뜨릴 시 <붉은 역병>을 주변에 퍼뜨립니다.
사용할 경우 악명 대폭 증가.
밖에 나가지 않고 악마의 대장간에서 폭탄만 파고든 가브리엘의 집념은 무서울 정도였다.
끓어오르는 궁극의 역병에서 많은 것을 배운, 가브리엘의 역병 폭탄 시리즈!
“이건 어떻습니까?”
“……좋, 좋네.”
이쯤 되자 태현도 말을 더듬을 정도였다.
* * *
다른 대장장이들은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곳으로 폭탄 한 아름을 껴안고 이동했다.
그리고 남은 태현과 이다비, 가브리엘과 우드스탁 길드원들은 시계탑 앞에 섰다.
“길드원 외 출입 금지입니다. 아, 진짜 몇 번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네. 여기 들어가서 구경을 하든, 버프를 받든, 뭐든 간에 길드에 가입을 해야…… 컥!”
푹 찍 푹 찍!
태현은 바로 로그아웃을 시켜버린 후 시계탑의 문을 찼다.
“습격이다!! 습격이다!!!”
“습격…… 컥!”
“시끄러워, 이 자식들아!”
우드스탁 길마는 소리치며 덤벼들었다. 겉을 감쌌던 망토가 날아가자 악마 종족의 겉모습이 드러났다.
“김태현! 우리가 길을 뚫겠다!”
우드스탁 길마는 비장하게 외쳤다. 시계탑 1층에는 길드 동맹의 길드원들이 나름 여럿 있었던 것이다.
지금 같은 때 점수를 따두자!
“응?”
그러나 태현은 이미 나머지 길드원들을 땅에 눕힌 상태였다.
행운의 일격으로 데미지를 폭발적으로 높인 다음 가까운 거리에 있는 길드원들에게 연속적으로 폭딜을 꽂아 넣은 것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화려한 연격!
이렇게 되자 민망해진 건 우드스탁 길마였다.
“…….”
“……올라갈까?”
“그, 그래.”
태현을 따라가며, 가브리엘은 아직 포기하지 못한 표정으로 설득에 나섰다.
“태현 님. 끓어오르는 궁극의 역병 폭탄도 터뜨려도 되지 않을까요?”
“안 된다니까.”
“정말 괜찮습니다! 저희는 모두 걸려도 괜찮다고 각오하고 있습니다. 영지에 가면 해독도 할 수 있고…….”
“거기 가기 전에 죽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 너희야 죽는 게 안 아쉽다지만 이다비 같은 경우는 영지 가기 전에 계속 PK 당할 수도 있다고.”
“그렇군요…….”
가브리엘은 시무룩해졌고, 이다비는 살짝 기쁜 표정이었다.
그리고 1층 카운터 구석에 숨어 있던 길드 동맹의 길드원 하나는 기겁했다. 우드스탁 길드가 놓치고 넘어간 것이다.
‘뭔…… 폭탄을 터뜨린다고……?!’
태현은 안 터뜨린다고 했지만, 멀리서 들은 탓에 길드원은 잘못 들었다.
-김태현이 궁극의 역병 폭탄 터뜨리려고 아레네 시에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