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80화
-그래서! 어떻게 할 건지 생각이나 있냐? 없으면 아무리 너라도 위험할 거다.
김태산은 거만하게 말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지금 이를 갈고 총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전력은 정말 어마어마했으니까.
처음 싸움에서 태현이 공성 병기를 부수고, 상대를 제압했다고 하지만 그건 아주 일부분일 뿐.
아직 수많은 전력들이 남아 있었다.
-아. 원래 저 혼자 튈까 싶었는데요.
-…….
김태산은 어이가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이런 뻔뻔한 놈!
‘이래놓고 나를 욕해? 이런 사악한 놈…… 부모 얼굴을…… 아차. 또 내 얼굴에 침을 뱉을 뻔했군.’
김태산은 진정했다.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가장 억울한 건 지금 게시판을 보면 다들 태현을 칭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길드 동맹이라는 거대한 악에 저항하는 정의로운 영웅 그 자체!
-세만어리워워파 : 진짜 랭커 중에서 다른 플레이어들 생각하는 거 김태현밖에 없지 않아요? 다른 랭커들은 자기 퀘스트 하거나 길드 들어가서 모르는 척 하고 있는데, 진짜 김태현 혼자서 길드 동맹하고 싸우는 거 보면 마음 아파지려고 해요.
-님아비다이 : 맞아요! 진짜 길드 동맹 사람들 세금도 많이 걷고 온갖 통행료는 다 걷고…… 플레이어들이 영지 얻으면 맨날 이렇다니까요! 앞으로 오스턴 왕국 더 점령하면 더 심해질걸요? 태현 님 응원합니다!
물론 사정을 아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웃기는 소리였다.
그냥 저놈이 성격 더러워서 시비 붙은 거지!!
뭔가 억울해진 김태산은 태현을 자극해 보려고 말했다.
-저기 널 따라온 사람들은 안 보이냐?
-뭐 자기 인생인데 자기가 알아서 책임을 져야겠죠?
물론 그런 도발에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 태현!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잘됐네요. 원래 방법 없으면 그냥 혼자 빠져나가려고 했는데, 방법이 생각났어요.
-?
-아버지 도움 좀 받으면 되겠네요.
-도움 맡겨놨냐?
-협조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같이 싸우는 것까지가 협조지, 지금 목숨 간당간당한 놈 구해주는 건 범위 밖이야!
-아, 네. 알겠습니다.
태현이 순순히 수락하자 김태산은 갑자기 불안해졌다.
이럴 놈이 아닌데?
-너 뭔 생각이냐? 진짜 안 도와준다?
-아, 지금 길드 동맹 사람들한테 ‘저기 최강지존무쌍 길마 있습니다’라고 소리칠 준비 하고 있느라 바빠서요. 나중에 얘기하죠.
-……하하. 아들아. 무슨 도움을 원하니?
김태산은 길드 동맹 길마를 협박하고, 태현은 김태산을 협박하고, 세상일은 다 돌고 돌게 되어 있었다.
* * *
“공격! 공격!!”
길드 동맹의 신호와 함께, 온갖 종류의 버프가 시작되었다.
사제들의 각종 버프는 물론이고, 음유시인들의 노래부터 시작해서 각종 북, 나팔 등의 연주 버프까지.
플레이어들의 숫자가 워낙 많다 보니 버프의 숫자만 해도 압박이 될 정도였다.
그러나 성안의 플레이어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김태현이 있다!”
“맞아! 우리에게는 김태현이 있어!”
“…….”
그 모습을 보며 이다비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나중에 아무 생각 없다는 거 들키면 반란 일어나는 거 아닐까?’
NPC들이야 괜찮겠지만 플레이어들은 정말로 반란이 일어날지도 몰랐다.
그런 이다비의 마음도 모르고, 태현은 태연하게 움직였다.
“김태현 백작님. 적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체세도. 난 너를 믿는다.”
“??”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마탑의 흑마법사들을 솔선수범해서 이끌었던 네 능력 덕분이지.”
“아, 아니…… 그 정도는…….”
흑마법사 NPC, 체세도는 태현의 말에 부끄럽다는 듯이 겸손한 자세로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태현은 멈추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폭풍 칭찬!
“내가 마탑의 후계자라고 해봤자 나는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은 미숙한 마법사. 네 마법을 보면서 많이 배웠다. 솔직히 존경스러웠다!”
“백…… 백작님!”
[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대화에 보너스를 받습니다.]
[체세도가 당신을 향해 갖고 있던 공포 수치가 사라집니다.]
[체세도의 친밀도가 급격히 상승합니다.]
[에랑스 왕국 마탑 흑마법사들의 사기가 상승합니다.]
와락!
태현은 흑마법사들을 껴안고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던 태현이 갑자기 이렇게 진심 어린 말을 하자 비뚤어진 흑마법사 NPC들도 감동한 눈치!
“…….”
이다비는 그걸 보며 경악했다.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다비는 눈치챘다.
지금 저럴 이유는 하나.
‘저, 저 사람……! 도망치려고 하고 있어!’
“이야. 김태현도 저런 면모가 있네.”
태현의 시꺼먼 속셈을 눈치채지 못하고, 케인은 흐뭇하다는 듯이 코밑을 쓱 훔쳤다.
“저, 저걸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게 안 느껴져요?”
“어…… 김태현이 이상하게 훈훈하다? 뭐 여기까지 같이 왔고 이런 상황이다 보니, 김태현처럼 피도 눈물도 없는 녀석도 감상적이게 되는 거겠지.”
탁탁-
태현은 흑마법사 NPC들을 화술로 완전히 관리를 끝냈다.
이제 이들은 태현이 없어도 믿음으로 최선을 다해 싸울 것이다.
“케인.”
“응?”
“난 너를 믿는다…….”
“허억!”
케인이 감동한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자, 이다비는 한심하다는 듯이 케인을 쳐다보았다.
정말 나중에 사기당하기 딱 좋은 사람!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케인에게도 화술을 쓰기 시작했다.
‘와, 화술 스킬이 플레이어한테도 통할 줄은 몰랐네.’
“……알겠냐. 케인?”
“물론! 네가 날 믿어준 만큼 난 최선을 다해 싸울 거다! 으하하하!”
“그래. 바로 그거다. 그거면 된 거야. 그래야지 우리가 나중에 자선대회 나갈 준비도 할 수 있고 말이야.”
“그렇지!!”
순식간에 기분이 좋아진 케인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흑마법사들을 따라 성벽으로 이동했다.
태현은 바하-바허 부자와 친구들에게도 똑같은 방식을 썼다.
에반젤린은…….
“너 지금 무슨 속셈이야!!”
‘다행이다. 제정신인 사람이 한 명은 있었구나.’
무기까지 겨누면서 질색하는 에반젤린!
그걸 본 이다비는 속으로 안도했다. 여기 사람들이 다 바보는 아니었구나!
“다가오지 마! 너 지금 뭔가 꾸미고 있어!”
“하하. 에반젤린.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정말 아무 속셈도 없는데?”
“거기! 옆에! 그쪽이 말해봐요!”
에반젤린은 이다비를 노려보며 말했다. 물론 이다비는 이런 면에서는 태현 편이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요?”
“이잇……!”
“아니, 진짜 응원하러 온 거라니까? 저기 쟤네들이 치고 들어오기 전에 다들 손 모아서 화이팅 한 번 하려고 한 거였는데. 됐어, 나 빈정 상했어.”
태현은 홱 몸을 돌렸다. 그 모습에 에반젤린은 살짝 약해졌다.
그녀가 정말 오해한 것 아닐까?
“아, 아니. 미안해. 네가…….”
“나 때문이라고? 됐어.”
“아니…… 그게…… 열심히 싸우자! 응!”
에반젤린은 안절부절못하며 태현을 달래려고 들었다.
그리고 이다비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등 돌리고 사악하게 웃는 태현의 모습을!
* * *
“이제 무슨 생각인지 말해주세요!”
“후. 말할 수밖에 없나.”
둘만 남게 되자 태현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저기 오크들 보이지?”
“네.”
“저 사람들 우리 아버지하고 아버지 친구분들이야.”
“드디어 태현 님을 상대하려고 길드 동맹에 가입까지 한 건가요?!”
“그건 아니고, 그냥 어쩌다 보니 저쪽 길드로 위장하고 숨어들어오시게 됐나 봐. 말씀드렸더니 저쪽으로 도망치게 해준대.”
“정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건지 궁금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넘어가죠. 정말요?”
“어. 공성전 시작하면 정신없을 테니까 쉽겠지. 토끼 쫙 풀고, 난 토끼로 변신할 거야.”
“저는요?”
“너도 오게?”
“……태현 님이 혼자 도망치려고 읍읍읍!”
태현은 재빨리 이다비의 입을 막았다.
“알겠어. 알겠어. 같이 가자.”
“그러실 줄 알았어요!”
“너는 나하고 달리 별로 티도 안 나겠다.”
공격을 하는 모두가 태현을 찾아 눈에 불을 켜겠지만, 기껏해야 상인 직업의 겉모습인 이다비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적당한 상황에 빠져나가면 될 것이다.
콰콰쾅! 콰쾅!
“온다!”
“언데드들은 모두 들어라! 내 의지로 너희에게 명령을 내리노니……!”
마탑 흑마법사들이 대형 마법을 준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태현은 그 소리를 들으며 재빨리 움직였다.
-토끼 조종, 토끼 광폭화, 일반 토끼로 변신!
[토끼 지배 스킬이 오릅니다.]
[<독이빨 부여> 스킬이 <사악한 맹독이빨 부여> 스킬로 바뀝니다.]
“앗!”
“왜 그래?”
이다비가 놀라자 토끼로 변신한 태현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귀여워요!”
“……귀여운 건 알겠는데 나중에 이야기하고. 일단 성벽 쪽으로 가자!”
* * *
파파파파파파팍!
“탱커들 앞으로!”
언데드들이 쏘아내는 화살들을 방패로 막아내며, 전사들은 굳건하게 앞으로 전진했다.
판온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대규모 인원이 참가하는 공성전!
수많은 눈이 이 공성전을 지켜보고 있었다.
“성벽을 공격해! 넘어가려면 성벽을 부숴야 한다!”
“마법 준비 중! 10초 남았습니다!”
-카르르르륵!
-죽음을! 죽음을!
그 순간 성벽 위에서, 성벽 사이에서 언데드들이 닥치는 대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각종 인간형 언데드들부터 시작해서 비행형 언데드들까지!
보통 정예 언데드들이 아니었기에, 플레이어들도 긴장했다.
“언데드들 튀어나온다! 사제들 턴 언데드 준비해줘!”
-정화의 빛!
-턴 언데드!
-재에서 재로!
각종 신성 마법이 작렬했지만, 언데드 군세는 견뎌냈다. 그만큼 흑마법사들의 버프가 강력했던 것이다.
콰콰콰쾅!
달라붙는 언데드들!
플레이어들은 이를 악물고 맞서 싸웠다.
그 순간 언데드들 사이에서 작고 귀여운 것들이 튀어나왔다.
“토끼다!!”
“오기 전에 쓸어버려! 저것들 붙으면 진짜 무섭다고!”
플레이어들은 질색을 하며 외쳤다.
태현이 부리는 토끼 떼는 이미 악명이 높을 대로 높아져 있었다.
약한 토끼 몬스터라고 얕봐서는 절대 안 됐다.
‘한 번 토끼 떼에게 잘못 습격당하면 큰일 난다!’
HP도 낮고 공격력도 낮지만, 작고 민첩해서 무리로 우르르 덤벼들면 광역기를 써야 했다.
토끼 떼가 달라붙으면 다른 플레이어들의 광역기에게 죽을 확률이 더 높은 것!
상대하기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우오오오오!”
“와, 저 오크들 뭐야?”
“실력이 대단한데? 우리 길드에 저런 전사들도 있었나?”
한참 언데드들과 치열하게 싸우던 길드원들은 감탄하는 눈빛으로 오크 아저씨들을 쳐다보았다.
묵직한 중병기들을 휘두를 때마다 덩치 큰 언데드 전사들이 퍽퍽 날아갔다.
특히 가장 앞에 선 오크 전사가 엄청나게 사나웠다.
마치 아들한테 사기당하고 뒤통수 맞은 것처럼!
“나를 따라라! 성벽을 뚫는다!!”
“예!!”
“대, 대단하다……!”
“저쪽을 따라가 보자!”
김태산과 아저씨들이 성벽을 뚫기 위해 돌진하는 걸 보자, 매수당한 길마는 절망한 표정을 지었다.
‘미친놈들아……! 너희들이 눈에 띄면 어쩌자는 건데……!’
그 사이 김태산은 성벽을 주문서로 날려 버리고 가장 먼저 돌입했다.
“안녕하세요?”
“태현이는?”
“여기 있어요!”
“…….”
이다비를 만난 김태산은 복잡한 눈으로 토끼를 쳐다보았다.
‘확 지금 공격을 해버리면……’
“아버지. 시간 없으니까 빨리 움직이시죠.”
“그, 그래.”
토끼로 바뀌어도 얄미운 건 여전했다. 김태산은 그렇게 말하며 이다비에게 오크 장비들을 건넸다.
“이거 돌려드려야 하나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만…….”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