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79화
김태산의 주특기 중 하나.
돈지랄!
그 돈지랄은 단순히 비싼 아이템을 현질하는 데에서 끝나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상대방 길드원 매수는 김태산이 즐겨 쓰는 전략이었다.
리X지 때부터 종종 봐왔던 모습 중 하나!
-크크큭…… 내일 ‘그 길드’ 놈들이 선전포고를 한다고 하더군. 멍청하기는. 이미 거기 간부 둘 매수를 끝냈다!
-역시 형님이십니다!
-돈 좀 쥐여주니까 전부 다 팔더라고. 역시 돈이 최고야! 내일 공성전은 끝났다!
김태산의 길드를 깨겠다고 벼르고 벼르던 상대방 길드는 정작 공성전 당일 날 내부 분열로 허무하게 무너졌다.
정정당당한 승부가 아닌, 이런 방식에 허무하게 무너진 상대 길드의 분노와 허탈감은 대단했다.
싸움은 끝났지만 게시판에 글을 올려서 고발할 정도!
-여러분 저 김태산이란 놈을 고발합니다!
-김태산 XXX야! 더티하게 좀 하지 마라!
-너 밤길 조심해라! 카악~ 퉷!
물론 김태산은 그런다고 그만둘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눈치챘다면 더욱더 교묘하고, 더욱더 악랄하게 방법을 진화시킬 뿐!
태현이 어디서 가정교육을 받았는지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었다.
* * *
태현이 언데드 군세를 이끌고 길드 동맹의 영지를 폭풍처럼 휩쓸고 다니는 동안, 김태산과 아저씨들도 신이 나서 움직였다.
“김태현 만세!”
“김태현의 이름으로!”
“우리가 지금부터 하는 건 김태현이 시킨 거야! 알겠지?!”
오크 아저씨들은 그렇게 외치며 평소에 눈여겨봤던 곳들을 습격했다.
그 모습에 김상철은 부끄러워져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냥…… 조용히 입 다물고 습격하면 안 되나?!’
그러나 아저씨들은 신이 나서 즐겁게 웃어대고 있었다. 김상철은 말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으으, 김태현하고는 다시 제대로 승부를 내고 싶은데…….’
저번의 체육관에서 겪었던, 충격적인 패배.
그 패배 이후로 김상철은 정신적으로 많이 성장했다.
-상철아, 괜찮냐? 얘 맛 간 것 같은데?
-설마 은퇴하겠다고 하는 건 아니지? 야. 너무 걱정하지 마라. 피디한테 물어보니까 그거 편집한다고 하더라. 네가 너무 개처럼 두들겨 맞아서…….
-야, 그걸 위로라고 하는 거냐?
-아차. 미안. 어쨌든 편집됐으니까 아무도 모를 거야!
김상철이 걱정된 양성규까지 거들었다.
-너희들 상철이 기운 못 차리면…… 너희들도 전원 다 태현이하고 붙게 한다.
-네?!
-아니 왜요?! 저희가 뭘 잘못했다고요, 관장님!
-연대책임이야. 연대책임! 선배란 놈들이 후배한테 태현이를 떠넘겨?! 너희가 그러고도 선배냐!
할 말이 없어진 선수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러나 김상철은 맛이 가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을 차렸다.
-아닙니다. 관장님. 제 잘못입니다.
-뭐? 아냐, 그 샊…… 아니, 태현이 놈 잘못이지!
-제가 싸우자고 했는데 왜 그 친구 잘못이겠습니까. 부끄러워할 건 저죠. 프로로서 일반인한테 이렇게 깨지다니…… 제가 얼마나 자만하고 건방을 떨고 있는지 깨달았습니다.
-아니, 걔가 일반인은 아닌…….
-초심으로 돌아가, 앞으로 더욱더 노력하고 힘내겠습니다. 그런데 방금 뭐라고 하셨죠?
-아니다. 파이팅! 난 널 응원한다 상철아!
-맞아! 우리는 널 응원해!
-짜식,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하다니! 저 자식은 두들겨 맞고 핑계만 대던데!
-야, 쉿쉿!
선배들의 말은 귓등으로 흘리고, 김상철은 다짐했다.
다시 처음부터 연습하자.
그리고 언젠가 다시 한번 김태현과 붙어보자!
원망이나 증오 같은 감정은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깨달음 비슷한 상쾌함만이 가득했다.
그랬는데…….
‘이게 뭐야!’
김태현하고 정정당당하게 붙고 싶었지, 이런 식으로 김태현의 이름을 빌려서 비겁하게 굴고 싶지는 않았다.
만약 김태현이 나중에 이걸 알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싸움에서 져서 비겁하게 구는 놈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으아아…… 으아아아아……!’
그러나 부끄러움은 부끄러움이고, 지금은 일단 싸워야 했다.
“저놈들 잡아라!”
“김태현이 보낸 놈들이냐!”
김상철은 얼굴을 복면으로 가리고 달려드는 길드원 한 명을 쓰러뜨렸다.
퍼퍼퍼퍽!
김상철은 판온에서 무기를 쓰지 않고 근접 격투로 싸우는 무투가 직업을 갖고 있었다.
현실의 격투기 경험이 있는 김상철이었기에, 이런 컨트롤에서는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훨씬 유리했다.
-오크의 철주먹! 끌어들이는 걸음! 분노의 투혼!
쾅! 쾅! 콰콰쾅!
“상철이 녀석 실력이 부쩍 는 거 같다?”
“그러게. 혼자서 세 명을 상대하네. 뭐지? 뭐 잘못 먹었나?”
“요즘 열심히 연습해서 그래.”
“역시, 젊은 놈들이 좋다니까.”
“로이 인마. 넌 열심히 안 해?”
“맞아, 로이. 비싼 돈 받으면 더 열심히 해야지! 요즘 젊은 놈들은 말이야!”
“…….”
갑자기 구박을 받게 된 로이는 어이가 없어서 오크 아저씨들을 쳐다보았다.
지금 길드 동맹 플레이어들을 쓰러뜨린 게 누군데!
“아이템 챙기고, 건물 부순 다음 빠지자.”
“역시 길마님!”
김태산도 김태현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점령해봤자 오래 버티는 건 무리일 테니, 치고 빠지자!
어차피 김태산과 아저씨들은 정체도 숨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점령이고 뭐고 할 게 없었다.
“비싼 것부터 먼저! 꼼꼼하게 부숴! 그리고 목책이나 벽은 다 부수고 가자! 그래야 나중에 수습하기 어려워지니까!”
“다 됐습니다!”
“좋아, 빠지자!”
김태산과 아저씨들은 우르르 빠져나갔다.
길드 동맹이 소식을 듣고 급히 몰려왔을 때에는 이미 탈탈 털린 마을만이 남아 있었다.
“이, 이…… 김태현…… 죽여 버리겠다!!”
“근데 김태현이 지금 언데드 이끌고 있는데 여기까지 올 시간이 없지 않습니까?”
“다른 놈 시켰겠지!”
“누구요?”
“케인 같은 놈!”
“흠. 확실히 케인이라면…….”
“케인 그 자식도 같이 죽여 버리겠다!!”
* * *
그렇게 치고 빠지고 치고 빠지며 신나는 약탈 생활을 즐기고 있던 김태산에게 정보 하나가 들어왔다.
-지금 길드 동맹의 길드원들이 한 곳으로 모이고 있답니다.
길드 동맹의 인원이 어마어마하다 보니, 안에서 정보는 계속해서 새어 나왔다.
김태산은 그런 정보를 돈 주고 샀다.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적을 알아야 하는 법!
태현은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을 잠입시켰지만 김태산은 그냥 돈으로 매수하는 걸 더 선호했다.
-한곳으로 모이고 있다고? 이유는 안 나왔고?
-이유는 일반 길드원들한테 안 말해줬나 본데요.
길드 동맹도 바보는 아니었다. 유출될 만한 정보는 간부들끼리만 공유했다.
-설마 우리 잡으려고 저렇게 모이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태현이 잡으려고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긴 한데 우리한테도 괜히 불똥 튈 수 있다. 저 정도 인원이 모이면 어지간한 건 다 잡고 가려고 할 수도 있으니까.
-맞는 말입니다.
대량의 언데드 군대를 이끌고 길드 동맹의 본거지로 치고 올라가는 태현만큼은 아니었지만, 복면 쓴 김태산 무리는 이미 충분히 길드 동맹의 원한을 사고 있었다.
-듣자 하니 웬 악마 종족 놈들도 날뛰고 있다던데, 그거 우리 아니지?
-우리 보고 악마로 착각한 거 아닐까요?
-어떻게 착각을 해야 우리를 악마 종족으로…… 음, 착각할 수 있긴 하겠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음…… 거기 길드원들 많이 모인다고 했지?
-예.
-우리도 거기 합류하자.
-예??
-매수할 수 있는 놈들 몇몇 있잖아. 걔네들 좀 찔러보자고. 걔네 길드원인 척 하면 들어갈 수 있을 거야.
길드 동맹은 원래 여러 개의 길드가 합쳐진 길드였다. 거기에 또 추가로 작은 군소길드들이 계속해서 합쳐졌고.
그러다 보니 길드 안에서도 원래 길드원들끼리 뭉쳐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구 길마 한 명만 매수하면, 그 길마가 이끄는 길드원인 척하고 끼어들 수 있었다.
-끼어들어서 뭐 하시게요?
-일단 우리가 가장 안전하고, 그놈들이 뭐 하는지도 바로바로 볼 수 있고…… 기회를 보다가 슬쩍 빠져서 대박도 노릴 수 있지. 그리고 무엇보다 재밌지 않겠냐?
-그건…… 확실히 그러네요!
-재밌긴 하겠습니다!
그래서 김태산은 매수를 시도했다. 평소에 골드를 주면 정보를 팔던, 길드 동맹의 길마 중 한 명이었다.
-미쳤냐!? 여기 사람이 몇 명인데?!
-그러니까 오히려 티 안 나지. 당당하게 활동하면 아무도 의심 못 할걸? 누가 그걸 의심하겠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안 돼! 어쨌든 안 돼!
-아이 참. 섭섭하게 왜 이래? 골드 준다니까! 골드 주면 되잖아!
-걸리면 난 길드에서 쫓겨난다고! 이건 그냥 정보 파는 거랑은 차원이 다른 일이잖아!
-안 걸리면 그만이지. 그러면 이렇게 하자고.
-?
-내가 주는 돈을 안 받으면 내가 많이 섭섭해져서 이제까지 우리가 한 거래를 남들한테 흘릴지도 모르겠는데…….
-이, 이, 이…… 악마 같은 놈!
그렇게 김태산과 아저씨들은 다른 길드원인 척하고서 무리에 끼어들 수 있었다.
“딱히 다른 곳 안 가네요? 오단 성 간다는데요?”
“우리를 노리는 게 아니었군. 일단 따라가자.”
“오단 성 공성전이면…… 태현이 노리는 게 확실하군요.”
“그놈도 호된 맛을 볼 때가 되긴 했지.”
“맛을 본다면 말이죠. 안 질 수도 있어요.”
“이렇게 많이 모였는데?”
“태현이가 이끈 전력도 만만치 않더라고요. 뭔 놈의 데스 나이트를 그렇게 많이 소환했는지…….”
김태산은 턱을 긁적였다.
일단 잠입에는 성공했는데,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태현이를 돕기 위해 공격을 방해한다?
그럴 의리도 없을뿐더러 그러기도 힘들었다. 그랬다가는 대번에 들킬 것이다.
‘그냥 적당히 간 보다가 이길 것 같으면 같이 싸워서 이기고, 질 것 같으면 슬슬 빠져서 다른 곳으로 약탈이나 가야겠군.’
김태산은 그러기로 마음먹었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
“제발 좀 얌전히들 있으라고……!”
김태산에게 매수당한 길마는 필사적으로 속삭였다.
다들 변장하고 있어서 아무도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조마조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알겠어. 얌전히 있겠다니까. 그보다 이길 자신은 있나?”
“이렇게 모였는데 김태현이라고 무슨 수가 있겠어? 저번에 길드 동맹 랭커들 모이니까 김태현도 도망갔잖아.”
“그리고 그다음에는 드래곤 소환에서 쓸어버렸고.”
“……그렇긴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이번에는 드래곤 소환해도 잡을 수 있다!”
매수당한 길마는 갑자기 불안해졌는지 그렇게 허세를 떨었다.
그리고 공격 시작.
“…….”
“…….”
토끼들의 습격, 마이크의 패배. 1차전은 길드 동맹의 망신이나 다름없는 패배였다.
“이, 이건…… 아직 시작도 안 한 거니까. 그렇지?”
“왜 나한테 변명을 하고 그래?”
길마의 변명과 상관없이, 길드 동맹은 단단히 독이 올라서 전투 준비에 나섰다.
“총력전으로 간다! 전부 다 전투 준비! 한 번에 몰아붙이는 거다!”
그걸 본 김태산은 궁금해져서 태현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과연 여기서 어떻게 할지 생각을 해놓은 걸까?
-녀석. 긴장 좀 되냐?
* * *
김태산의 설명을 들은 태현은 바로 김태산을 공격했다.
-돈으로 매수하는 더러운 방법을 쓰니까 맨날 그렇게 원수가 생기는 거죠. 게시판 가면 맨날 아버지 욕하는 글만 보이던데.
-너한테 들을 소리는 아니다. 이 아버지는 적어도 100명이 죽이려고 쫓아오지는 않았어!
-그야 아버지 원수분들은 다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니까 그렇겠죠.
‘이, 이 자식이…….’
김태산이 울컥했다.
태현을 떠보려고 귓속말을 보낸 건데 정작 하려던 이야기는 못 하고 다른 얘기만 하고 있었다.